사회평신도국 자료

아이티에 세운 사랑의 빵 공장 설립 보고서

작성자
이성진
작성일
2010-07-22 10:04
조회
1426
“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롬 8:35)”

     이 글은 2010년 6월 13(일)~6월 26일(토)까지 아이티에 사랑의 빵 공장을 세우고 돌아온 감리교
의료구호단 단장 이수기 목사(오산지방 평화교회 담임)의 글을 발췌한 것입니다.

   여러 재난의 현장에서 섬겨봤지만, 아이티는 정말 고개가 절로 흔들어 진다. 오랜 동안 착취당하며 착한 심성도 무너지고 고통의 삶은 질서 예의와 염치를 버리게 했다. 조금만 힘이 있는 사람이라면 돕는 자들의 손에서도 약탈을 하려 달려든다. 복음에 미친 사람이 아니면 다시 오고 싶지 않은 땅이다. 이 사역보고는 이렇게 미친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아이티와 같이 위험하고 힘든 재난의 현장에 뛰어들게 하는 힘이 무엇일까? \\'예수의 사랑\\' 아니고는 설명할 길이 없다. 주님의 사랑의 능력이 아이티 땅을 변화시키고 있다. 눈으로 보기에는 미미한 변화이지만 보이지 않는 기적의 싹이 트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예수의 사랑, 복음을 위해 고난을 기꺼이 감수하는 사람들에 의해 아이티에 사랑의 역사가 기록되고 있는 것이다.


   서준석 선교사(상동교회 파송)는 대지진 이후 구호사역을 위해 도미니카에서 아이티로 파송 받아 섬기고 있다. 서 선교사의 사역지는 아이티 수도에서 10시간 쯤 떨어진 도미니카의 제2도시 산띠아고이다. 주말은 산띠아고에서 예배를 인도하고 주중에는 아이티에서 많은 구호 선교사역을 하고 있다.(근래 산띠아고는 부인 채해진 선교사가 사역하고 서 선교사는 거의 아이티에서 산다.) 빵공장을 세우러 떠나기 며칠 전 나는 서 선교사와 전화통화하며 울컥했다.

이수기  목사 : 서선교사님 너무 힘들지요? 내가 곧 갈테니 힘내요.

서준석 선교사 : 목사님 저 너무 힘들어요. 집에 좀 가고 싶어요....

                가슴이 울컥하는 이야기를 어찌 다하랴!


   지진 소식으로 어지러운 때에, 아버지가 아들에게 말했다. \\'네 일생에 하나님께 가장 아름답게 헌신할 수 있는 기회라 생각한다. 휴학하고 1년간 네가 아이티에서 섬겼으면 좋겠다.\\' 아이티가 얼마나 위험하고 힘든 곳인지 누구보다 잘 아는 오일영 목사 부부(여주 능서상동교회), 그 부모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수개월을 준비하고(아르바이트도 하고 빵 공장에서 한 달 동안 제빵 특별훈련을 받았다.) 아이티에 들어온 오동근 청년이 그 아들이다. 위험한 땅에 자식을 보내는 믿음과 헌신하는 젊은 일꾼들이 있는 한 복음은 땅 끝까지 전해질 것이라 믿습니다.


   선교팀이 아이티에 들어오는 일정에 맞춰서 도미니카에서도 선교사들(김성자, 전재덕, 신현재, 조현숙)이 분주하게 움직인다. 사역을 위해 여러 날 준비한 물품들을 안전하게 아이티로 수송하기 위해 특급 수송 작전을 세워야 한다. 트럭으로 가지고 들어오는 물품은 구호품도 예외 없이 세금을 물리기 때문에 아침 일찍 산띠아고에서 학생들과 성도들 16명이 동원되었고, 버스에 물품을 싣고 8시간을 달려 국경에 도착, 세관에서 5시간의 싸움 끝에 세금 없이 통과하여 저녁 7시에 포르토 프랑스 한국감리교 선교센터에 도착하였다. 다음날 대부분은 임무를 마치고 다시 도미니카로 귀국하였다. 이와 같이 아이티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일들은 아주 작은 일에도 큰 헌신이 필요하다.


   이 기적의 역사는 한국에서 보내온 사랑의 연보와 눈물의 기도, 온갖 상처를 가진 아이티에서 위험을 아랑곳하지 않고 먼지를 뒤집어쓰고 복음을 위해 미쳐 일하는 선교사들(120여 년 전 한국 땅을 밟았던 선교사들도 그러했을까 생각해본다.) 그리고 구호사역을 검토/결의하고 지원/격려하는 사회평신도국(총무: 엄마리 장로)이 힘을 합쳐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번 선교방문 기간 동안 컨테이너를 찾아서 빵집 건축을 완성하리라고는 아무도 믿지 않았다. 믿음만을 가지고 떠나는 저 스스로도 마음 한 구석에서는 같은 염려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최악의 조건 속에서 최선의 기적을 베풀어 주셨다.


   8년간 아이티에서 선교한 김승돈 선교사님은 이렇게 말했다. ‘저도 두 달 전에 도착한 컨테이너를 아직도 찾지 못하고 있고 대부분의 구호기관 컨테이너도 마찬가지 입니다. 목사님이 오셨을 때, 이건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컨테이너 수취인이 이 나라에 법인등록 된 NGO라 해도 면세로 찾기가 어려운데, 선교사 개인 이름으로 보냈으니 불가능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이 컨테이너를 찾은 것은 기적입니다. 그것도 이렇게 빨리 찾은 것은 기적 중에 기적입니다. 전지전능하신 주님의 도우심이 아니면 정말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아이티가 가난과 지진의 수렁에서 벗어나려면 얼마나 걸릴지 모른다. 다소 나아진 부분도 있지만 더 어려워진 부분들도 있다. 어려운 상황을 틈타서 이득을 얻으려는 사람들도 있어 구호품 컨테이너의 통관은 너무나 어려운 일이 되었다. 우리 팀이 도착하기 전 선교사님이 관련 기관들을 이미 여러 번 방문하였으나 허가를 얻지 못했다. 면세관련 부서, 시장, 보건부, 만나기도 어려운 재무부 국장 등 모든 사람들을 만나게 해 주셨고 마음을 하나님께서 녹여주셨다. 처음에는 엄청 냉담했는데 나중에는 기대이상의 도움을 주는 사람들로 변했다. 컨테이너를 찾는데 도와주겠다는 브로커들에게 눈길도 주지 않았고 1원의 뒷돈도 주지 않았다. 이는 언제나 나를 앞서 행하시는 주님의 손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런 상황을 카메라에 담은 CBS 하성은PD는 방송소개 글에 이렇게 썼다.

  “듣자 하니 한국에서 온 NGO단체나 선교 단체 어느 한 곳도 컨테이너를 빼 낸 곳이 없다고 한다. 구호물품을 컨테이너 몇 십 개에 실어 보낸 곳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에이, 컨테이너가 아이티에 도착한 지 이제 10일인데 되겠어? 몇 달이나 지난 곳도 있는데?”

   여기저기서 이런 소리가 들렸다. 하아~ 이러다 촬영은 모두 물거품이 되는 것이 아닌가 했다. 하지만 이수기 목사가 누구인가. 발로 뛰는 실천가가 아니던가. 그 날로 관공서를 누비며 공무원들을 만났다. 포옹도 하고 부족한 영어로 한국전쟁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그들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한국에서 어떤 재미있는 사람이 왔나보다 하던 그들이 차츰 그의 페이스에 말려들기 시작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며칠, 몇 달을 만나도 승인을 안 해주던 그들이 서류에 사인을 하기 시작했다. 물론 한국처럼 일사천리로 일이 진행된 것은 아니다. 담당자가 사인하기로 하고선 4시에 칼 퇴근 해버려 다음날로 넘긴 적도 있었다. (아이티에서는 오후 4시면 모든 관공서가 퇴근을 한다) 하지만 아이티치곤 정말 빨랐다라고 입을 모았다. 그리고는 결국 한국 단체에서는 최초로 감리교 아이티 구호단이 컨테이너를 찾은 곳이 됐다.

   사실 사람들에게 설득하는 방법이 촌스럽거나 때론 창피하기 까지 했다. 퇴근하는 사람을 붙잡고 한 시간 내내 설득을 하고 여자, 남자 할 것 없이 시도 때도 없이 꼬옥 안아주는 이수기 목사였다. 하지만 그게 통했던 것이다. ‘진심은 통한다’라고 하지 않았던가.
  
   컨테이너를 찾은 이후 그는 더 바빠졌다. 빵 공장을 짓는 공사가 시작된 것이다. 컨테이너가 좁은 골목을 들어오지 못해 길 가에서 짐을 푸는 날, 그는 어린아이처럼 좋아했다. 아니 마음은 마치 오랫동안 헤어져 있던 연인을 만나듯 설레고 있었다. 빵도 굽고, 공사에도 참여하고(사실 목사가 예수님처럼 목수도 되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이다. 그의 기술들은 현장에서 통하는 실력이다) 단 한 시간도 가만히 있지 못했다. 결국엔 목이 붓고 말도 못할 지경이 됐지만 주사 한 방 맞고는 또 그렇게 뛰어다녔다. 공사 현장의 모든 부분들을 일일이 직접 확인하고 수정하고 빵 굽는 모든 과정을 도맡아 하는데 몸이 안 상하면 그게 이상할 정도였다.
  (기독교방송, 블로그 다큐 \\'예수와 사람들\\' 7월 12, 13일 방송편 아이티의 오병이어)”


   14일 월요일 도착해서 5일간 낮에는 점심식사도 거른 채 면세허가를 위해 관공서를 찾아다녔고 밤에는 기초공사를 진행했다. 아침 5시에 일어나 예배드리고 밤 12시-1시까지 고된 작업을 계속했다. 바닥 콘크리트 미장을 하다가 비가 오면 비가 그치기를 기다려 밤 늦게 비에 패어 나간 곳을 밤 1시까지 다시 발랐다.(서준석 선교사는 일을 마친 인부들을 2시에 위험을 무릅쓰고 태워다주는 수고를 더했다.)

   금요일 저녁에야 컨테이너를 찾아 선교센터 골목까지 왔고 토요일 아침 드디어 모두의 감격 속에 컨테이너 문을 열고 저녁까지 물품을 하역하였다. 해야 할 일은 절반도 안 되었는데 시간은 벌써 가야 할 날들을 꼽게 되었다. 초초한 마음을 갖는 것도 사치인 양 아침 일찍 주일 예배를 드리고 건축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벽과 기둥이 세워지고 트러스트와 지붕이 얹어져 건물이 완공되어 가는 도중에 하루에 몇 시간은 꼭 소나기가 쏟아져서 지체되기는 했지만, 어떤 것도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는 말씀과 같이 우리의 헌신을 막을 수 없었다.


   공사와 함께 저녁이면 제빵 교육을 병행하고 저녁에 만든 빵은 낮에 선교팀이 텐트촌이나 고아원으로 가지고 간다. 빵을 나누어 준 곳에서 저녁에는 또 다시 복음을 전하는 집회를 여는데 집회는 SON MINISTRY 김정한 선교사님과 서준석 선교사님이 맡아 진행한다. 그렇게 강행군을 하여 계획된 사역을 완수하였고, 계속해서 나머지 빵집들 시설과 교육은 임택수 집사님과 오동근 청년이 감당하고 있다.

   아이티를 떠나는 날, 새벽부터 제빵 교육과 빵을 구우랴 간판을 달고 준공예배 준비하랴 정신이 없는 가운데, 두 주간 빵공장을 건축을 위해 선교센터 밖으로 나가 보지도 못하신 박종덕 장로님과 김걸중 집사님에게 무너진 채 그대로인 대통령궁이라도 구경시켜 드려야겠다 생각해서 서준석 선교사님에게 부탁했다.(한 시간을 계획하고 떠났다가 길이 막혀 구경도 못하시고 되돌아 오셨다.) 10시 30분 드디어 마무리 공사와 제빵 시설도 마치고 빵공장에서 구운 빵을 놓고 선교사님들과 NGO관계자들이 모여 준공예배를 드렸고, 건축팀과 방송PD 그리고 점심 먹을 시간도 없이 사진 몇 장 찍고는 공항으로 부랴부랴 떠났고 귀국 비행기에 지친 몸을 내어 맡겼다.


    여러 날이 지난 지금도, 기적으로 역사하신 아이티 구호사역의 현장을 생각할 때마다 감사가 넘친다. 우리가 만든 빵을 받아들고 활짝 펴진 얼굴들과 먼저 빵을 받아 먹는 친구들을 보면서 간절히 쳐다보는 눈빛들을 잊을 수가 없다.

   금번 구호사역을 통하여 아이티인들을 품고 빵과 복음을 전하는 일에 큰 기여를 한 것 외에 또 다른 성과를 거둔 것이 있는데, 감리교회의 혼란한 상황을 보며 은근히 낮춰보던 이들이 \\'역시 감리교회구만!\\' 하고 이구동성으로 칭찬한다는 것이다.
   아이티에서 사역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감리교회의 이름을 크게 높인 것이다.(국민일보와 기독교방송에서 여러 번 사역을 소개하였고 방송되었다.)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하루 속히 사랑으로 하나 되어 뜨겁게 복음을 전하는 감리교회가 되기를 소망한다.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수십 번 전화로 확인/ 지시와 격려해주신 사회평신도국 엄마리 총무님, 이성진 부장님(아이티에 가 있는 동안 주일 예배도 인도해 주셨다.)과 국위원님들 모두에게 이 자리를 빌어 감사 인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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