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8회 총회 개회예배 설교(2008.10.30)
처음 사랑 한결같이
요한 21:15-19
할렐루야!
하나님의 은혜와 평화가 기독교대한감리회 제28회 총회와 함께 하시길 축원합니다.
오늘 결실의 계절에 총회로 모이게 된 것을 감사드립니다. 저는 경건하고, 엄숙한 마음으로 이 총회가 하나님의 영광과 그의 나라를 위해 개최되기를 바랍니다. 성령께서 우리를 인도해 주시기를 기원합니다.
저는 이번 총회를 마치면서 제26대 감독회장의 직무를 마무리합니다. 그동안 감리교회를 대표하면서 여러분의 사랑과 격려, 기대와 지지 속에서 일해 왔음을 감사드립니다. 때때로 비판과 반대는 좋은 약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홀가분하게 모든 짐을 내려 놓습니다.
그동안 제가 느낀 것은 다툼과 주장이 넘쳐나는 현실 속에서, 신앙의 원칙과 관계의 조화를 이루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가 하는 사실이었습니다. 우리가 이해관계에 따라 편을 가르면 가를수록 영적인 판단은 더 없이 무력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늘 하나님의 편에 서 있어야 합니다.
본문은 부활하신 예수님과 세 번 씩 주님을 부인했던 베드로의 만남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통해 우리는 주님 앞에서 다시 한 번 주님을 향한 근원적 물음을 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맨 처음 베드로가 예수님을 만났던 곳은 갈릴리 호숫가였습니다. 그리고 이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다시 갈릴리 해변에서 베드로를 부르셨습니다. 그 때 베드로의 심정은 어떠했을 지 여러분은 충분히 상상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과 다시 마주 대했을 때, 베드로는 어떤 심정이었을까요? 그의 비겁함, 그의 부끄러움, 그의 답답함, 그의 참담함, 그의 면목 없음, 그의 죄스러움, 그의 유구무언 등등, 그는 입이 열 개 라도 할 말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베드로를 향해 물으셨습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세 번 물으셨습니다.
여러분은 베드로의 심정이 되어 보셨습니까? 베드로가 겨우 꺼낸 대답은 “주여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였습니다. 그것은 사실이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베드로는 예수를 사랑하는 으뜸제자였고, 그의 비겁함에도 불구하고 그는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제자 중의 제자였습니다. 베드로의 배신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베드로를 사랑하는 까닭은 우리 모두 베드로의 비겁한 심장을 지닌 연약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저도 감독회장직을 수행하면서 종종 하나님의 편에 서기 보다, 사람의 입장에 섰습니다. 하나님의 뜻 보다는 사람의 입맛에 따라 행동했음을 회개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앞세워 양심을 배신했고, 신앙을 부인했으며, 약자를 무시하였습니다. 저도 베드로와 마찬가지로 부끄러움과 죄스러움으로 예수님 앞에 선 존재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오늘 우리를 향해 같은 질문을 하십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우리 역시 근심하는 마음으로 준비된 대답을 해야 할 것입니다.
“주여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 그 때 주님께서는 베드로를 향해 말씀하신 그 자비로운 음성으로 우리를 향해 “내 양을 먹이라”고 말씀해 주실 것입니다.
갈릴리에서 만난 베드로와 예수님, 이 복된 만남과 대화는 다시 베드로로 하여금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죽게 하는 위대한 동기가 되었습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그 만남 이후에 베드로는 남에 의해 띠를 띠우고 자신이 원치 않은 곳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그 결박은 스스로 택한 것이요, 그 포로는 사랑의 힘으로 자처한 것이었습니다.
결국 베드로의 전 생애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확신이었고, 그의 죽음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역사적 순교가 되었습니다. 저는 베드로의 신앙고백이야말로 교회사에서 가장 실천적인 사건임을 믿습니다.
오늘 한국 교회가 위기라고 말합니다. 그렇게 성장을 구가하고, 부흥을 노래하던 교회가 어떻게 이런 위기를 맞았습니까?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바로 교회의 위기는, 우리 그리스도인의 위기는,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는 물음을 잊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문제는, 우리의 허물은,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는 물음을 잊어 버렸기 때문에 찾아 온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거룩한 사람입니까? 아닙니다. 다만 거룩한 물음이 필요한 사람입니다. 진정으로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는 그 거룩한 물음에 근심할 줄 아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이러한 거룩한 물음이 나를 일으켜 주고, 길을 돌아가게 하고, 새로운 삶을 다시 결단하게 하고, 하나님의 뜻을 돌이키게 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지난 4년 동안 감독회장의 직무를 하는 중에 교회 안팎에서 시시비비가 오르내리는 것을 참으로 많이 들었습니다. 때로는 남의 일 같지 않아 부끄럽기도 하고, 하나님의 종을 자처한 사람들에 대해 속상함과 부끄러움을 느끼기도 하고, 때로는 분노하기도 하였습니다. 참으로 많은 시험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어려움에 봉착할 때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는 주님의 거룩하신 질문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바로 죄인 된 베드로에게 하신 이 물음을 내게 하신 물음으로 받아들일 때, 바로 나를 살리고, 우리 교회를 살리고, 더 나아가 우리 모두를 살릴 것을 저는 믿습니다.
저는 우리 감리교회가 “신실한 사람들”의 모임으로 남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세상적 방식이 좌우하고, 세상적 질서에 편승하고, 세상적 관계에 물든 조직은 결코 신실할 수 없습니다. 언제나 교회는 교회다워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존엄성을 지닌 공동체입니다. 무엇보다 맨발을 서는 거룩함의 영역을 지켜야 합니다.
그러기에 때로는 목청껏 소리치는 아우성 보다 세밀한 음성에 귀 기울여야 합니다. 이해관계로 묶인 다수결의 찬성보다 고독한 단독자의 반대 앞에 무릎 꿇을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랑하고, 존경하는 감리교인 여러분!
지난 4년 동안 전임 감독회장으로서 지냈던 모든 나날동안 함께 해주신 데 대해 깊이 감사드립니다. 제 부족함과 부덕함을 감싸 주고, 마지막까지 희망으로 동행해준 여러분께 깊이 깊이 고마움을 전합니다.
그리하여 5,913교회와 9,259명의 동역자들 그리고 156만 감리교인 모두가 하나님의 자랑이요, 하나님의 깃발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