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지방 광복절 조찬기도회 설교(2008.8.15)
참 해방의 길
누가복음 9:28-36
하나님의 은혜와 평화가 함께 하시길 축원합니다.
광복 63주년을 맞은 뜻 깊은 민족의 명절에 강화를 방문하여 이렇게 광복절 조찬기도회에 참석하게 됨을 감사드립니다. 올해는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지 60주년을 맞는 해이기도 합니다. 그러기에 더욱 뜻 깊은 감사의 해요, 은총의 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이번에 강화를 방문한 것은 오래 전부터 마음 먹었던 것을 실천에 옮기기 위해서였습니다. 지금 저는 13일부터 2박 3일 동안 강화도를 일주하겠다는 계획으로 순례 중에 있습니다. 마치 무더위 속에서도 저 자신이 청춘이나 된 심정입니다.
걸어 다니면서 여러 가지를 돌아보고, 성찰하게 되었습니다. 걷는 일이 기도요, 걷는 일이 순례요, 걷는 일이 인생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강화는 제 고향이기도 하지만 민족적으로, 문화적으로 또 자연적으로 참으로 다양한 유산과 유적을 간직한 곳입니다. 특히 한국감리교회의 발상지의 하나로 많은 신앙역사가 있으며, 또한 분단의 현장으로서 평화통일시대를 준비하는 고장이기도 합니다.
저는 강화를 한 바퀴 걸어 다니면서 이런 꿈을 꾸었습니다. 앞으로 강화 앞바다가 열리고, 평화의 바다로 탈바꿈하게 될 것이라는 희망 말입니다. 한강 하구가 열리고, 뱃길로 남과 북이 왕래하며, 자유롭고 평화로운 바다어장이 열리게 되면 이곳 강화는 남북 평화통일의 모판이 될 것입니다. 이 지역에 사시는 여러분도 진실한 믿음으로 화해와 평화의 꿈을 더 크게 꾸시길 바랍니다.
우리는 일제 강점 시기에 민족과 교회가 겪은 고난과 아픔을 결코 잊을 수 없습니다. 그럴수록 8월 15일, 이 날을 생각할 때 그 감격과 기쁨이 새롭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반복되는 독도와 관련한 일본의 야욕과 역사교과서를 둘러싼 시비를 보면 우리는 아직 일제의 우산을 완전히 벗지 못했다는 느낌을 갖게 됩니다. 우리는 과거의 짐을 벗고, 온전한 해방을 이루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과제인가를 분명히 깨달아야 합니다.
일제시대와 분단시대 우리 민족의 삶은 골고다와 같았고, 십자가와 다름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 민족에게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은총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고통 속에서, 아픔 가운데 십자가를 극복할 수 있는 신앙과 용기를 주셨습니다. 민주화를 이루고, 경제성장을 통해 부흥케 하셨습니다.
우리는 오늘의 평화와 행복이 있기까지 우리 민족과 교회를 위해 눈물과 피를 흘렸던 선구자들이 계셨음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마 16:24)고 말씀하셨습니다.
십자가를 짊어지라는 말씀을 들을 때는 “아멘”할 수 있지만, 실제로 그 십자가를 짊어지고 산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지 모릅니다. 우리 자신의 목숨을 거는 희생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우리에게는 수없이 많은 변화산 체험이 필요하고, 수없이 많은 겟세마네의 밤이 필요할 것입니다.
본문은 예수 그리스도의 변화산 사건입니다. 누가복음에 따르면 변화산 사건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고난과 부활에 대한 첫 번 째 예고를 한 다음에 일어난 것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변화산 사건이 있기 8일 전에 주님께서는 무리를 향해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쫓을 것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변화산 사건이지만, 다시 본문을 자세히 살펴봅시다. 예수님께서 제자 베드로,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고 산에 올라가서 기도하시던 중에 갑자기 신비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기도하시던 주님의 용모는 변화되었고, 그 옷이 희어져 광채가 난 것입니다. 더욱 놀라운 일은 문득 두 사람이 나타나 예수님과 대화하는 장면입니다. 그들은 히브리 민족의 위대한 지도자와 예언자인 모세와 엘리야였습니다.
흥미를 끄는 것은 예수님과 두 사람이 나눈 말씀의 내용입니다. 누가복음 9장 31절은 세 분의 대화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영광 중에 나타나서 장차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것을 말씀할 쌔”.
여기에서 ‘별세’란 무엇일까요? 우리는 이 낱말을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당할 죽음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물론 십자가 사건을 가리키지만, 단지 죽음이란 의미는 아닙니다.
누가복음은 이 낱말을 분명하게 사용하는데 원어로는 바로 ‘엑소더스’입니다. 엑소더스란 무엇입니까? 바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의 종살이로부터 해방의 사건, 즉 출애굽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께서 십자가 사건을 통해서 새로운 ‘출애굽’을 계획하고 계신다는 뜻입니다. 그것은 이스라엘 민족의 출애굽에 국한하지 않고, 온 인류에게 해당하는 ‘엑소더스’입니다. 그리고 모든 백성을 향해 참 해방의 길을 가도록 이끌어 내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베드로가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라고 말한 것은, 변화산의 황홀경에 빠진 탓이었습니다. 바로 십자가의 의미도, 주님이 이끄시는 엑소더스의 의미도 모른 채 하는 말이었습니다.
우리도 그렇지 않습니까? 편안한 삶에 자주 주저하고, 자주 머물고 싶고, 자주 안주하고 싶은 것이 우리들의 마음입니다.
우리 민족의 단점은 너무 쉽게 잊는다는 점입니다. 지금 우리 주변에는 벌써 일제시대의 아픔의 역사를 잊어버린 듯이 살아가는 사람을 볼 수 있습니다. 한국 교회가 8.15 직전 주일을 광복절기념주일로 지키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13대 경제 강국이 되었습니다만, 그런데 너무 쉽게 보릿고개 시절을 잊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얼마 전부터 6.25 피난시절의 음식을 시식하는 행사를 벌이고 있습니다. 꽁보리밥, 수제비, 깻묵, 호박죽, 개떡, 소금물로 간한 주먹밥 등을 먹으며 사람들은 옛날 고생을 양념 삼아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이젠 그런 음식을 찾아다니는 사람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웰빙 시대에는 건강에 좋은 별식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400여 년 동안을 기억하며 쓴 나물과 누룩 없는 빵을 먹었습니다. 유월절이 되면 그들은 자녀들에게 조상들의 고난을 되풀이 해 이야기합니다. ‘하가다’라는 유월절 예식 예문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 조상들이 애굽에서 먹던 고난의 빵이다. 배고픈 사람들아, 모두 이 식탁에서 둘러앉아 유월절 만찬을 들자. 우리가 지금은 비록 여기 타향에 살아도 내년에는 이스라엘 땅에 살리라. 지금은 노예이어도 내년에는 자유인이어라”.
고난당하는 조상을 기억해온 이스라엘은 바로 야곱의 후손들이며, 그들은 야곱의 돌베개의 신앙을 지금도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우리 모두 이러한 신앙의 전통을 언제나 기억하며, 여러분의 신앙의 유산을 잘 발전시켜 나가기를 바랍니다. 여기에 진정한 희망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광복 63주년 예배를 드리면서, 여러분은 어떤 엑소더스를 계획하십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은 슬픔으로부터 탈출, 가난으로부터 탈출, 고난으로부터 탈출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자신의 엑소더스를 계획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진실하고 아름답겠습니까?
이스라엘 백성은 주위 강대국에게 끊임없이 시달렸고, 결국 식민지 상황을 겪기도 했습니다. 수난과 핍박을 당했으나 그럼에도 하나님께 선택받은 민족이라는 강렬한 사명감으로 가득하였습니다. 고난을 뛰어 넘은 희망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엑소더스를 노래합니다. “영영한 희락을 띠고 기쁨과 즐거움을 얻으리니 슬픔과 탄식이 달아나리로다”.
우리 민족도 오랜 세월동안 고난과 핍박을 받았습니다. 이민족의 침략, 일제 식민지 지배, 분단과 군사독재의 폭력성은 쉴 날 없이 계속되었습니다. 한국교회가 부족했음에도 불구하고 민족의 고난에 함께 한 역사적인 교회라는 평가를 듣는 것은 순교와 자기희생의 사랑 덕분이라고 믿습니다. 순교의 피는 예수를 사랑하는 마음이었습니다. 이 민족의 해방을 이끌어낸 나라사랑이었습니다.
이제 미완의 광복을 극복하고 화해케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이 민족이 완전한 해방을 누릴 수 있도록 주님과 함께 새로운 엑소더스, 참 해방의 길로 나아가기 바랍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뜨거운 사랑과 뜨거운 가슴으로 우리 민족의 하나 됨을 위해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강화도 지역에 구원받는 백성이 늘어나고, 우리나라에서 으뜸가는 평화선교의 모델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삼천리 방방곡곡에 제2의 해방, 제3의 광복이 이루어지길 축원합니다.
하나님께서 강화도의 모든 교회와 성도님들의 기도에 응답하셔서 이 땅에서부터 진정한 해방과 광복을 허락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