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동포지원을 위한 간담회 설교(2008.7.11)
두 개의 떡
레 23:15-17
하나님의 은혜와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길 기원합니다.
오늘 기독교를 대표하는 지도자 여러분께서 북한동포지원을 위한 간담회로 모인 것을 감사드립니다. 참으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일이라고 믿습니다.
아무쪼록 이 시간 우리가 드리는 기도와, 나누는 논의들이 먼저 하나님의 마음에 들고, 또 북한 동포들에게 참 위로가 되며, 우리 자신에게도 성찰의 기회가 되기를 진심으로 기대합니다.
지난 6월 말에 한국 교회는 맥추감사절을 지켰습니다. 성경에 기초한 전통적인 명절을 맞으면서 이미 농경문화를 잃어버린 21세기에 이러한 감사절이 어떤 의미가 있는가 하는 물음을 갖기도 하였을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교회에서 맥추감사절을 지키는 의미는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에 대한 감사요, 그 역사를 기억함으로써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그럼으로써 우리 자신이 지금도 역사하시는 하나님 사건의 참여자임을 고백하게 됩니다.
레위기 23장은 가나안에 정착한 이스라엘 민족의 밀수확 감사제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 절기를 칠칠절이라고 불렀습니다. 칠칠절에는 제사장이 특별히 새로 수확한 밀로, 누룩을 넣어서 만든 떡을 곡식예물로서 하나님께 바칩니다. 즉 누룩을 넣지 않은 딱딱한 떡과 쓴 나물을 먹는 무교절과는 정반대입니다. 무교절이 ‘종의 고난\\’을 기억한다면 칠칠절은 ‘자유인의 감사\\’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주목할 만 한 일은 \\’두개의 떡\\’을 여호와께 드린다는 점입니다. 왜 두 개일까요? 유대인들은 칠칠절에 룻기를 읽습니다. 이것은 이방인 룻이 유대인과 한 가족이 되었다는 것을 기념하는 것입니다. 즉 제사장이 두 개의 떡을 바치는 까닭은 이방인을 위한 것이 아닐까 짐작하게 됩니다.
제단에 놓인 ‘두 개의 떡’은 유대인과 이방인을 상징합니다. 유대인과 이방인의 하나됨을 예표하는 것입니다. 그런 후에 23장 22절은 칠칠절의 명령을 선포합니다. “너희 땅의 곡물을 벨 때에 밭 모퉁이까지 다 베지 말며 떨어진 것을 줍지 말고 너는 그것을 가난한 자와 객을 위하여 버려두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
우리는 이러한 모든 구약의 말씀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예표로 받아들입니다. 주님께서는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모두 구원하시려는 만민의 주님으로 오셨습니다. 그래서 에베소서 2장 19절에서는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는 외인도 아니요 나그네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얼마 전에 영화 ‘크로씽’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 영화가 우리의 마음을 울리는 것은 그들이 탈북과정의 온갖 고난을 이겨낸 인간승리 때문이 아닙니다. 그들의 현장고발을 통해 미처 몰랐던 새로운 사실을 듣게 되었기 때문도 아닙니다.
우리는 새터민을 통해 지금 이방인과 다름없이 구원의 울타리 밖에 존재해왔던 그들의 아픔과 배고픔과 비인간적 삶을 보았습니다. 우리는 그들을 통해 당장 북한 동포들이 처한 위기상황과 굶주려 죽어가는 사태를 듣고 있습니다. 영화 ‘크로씽’은 이러한 이야기를 한국교회와 무심한 우리 자신을 향해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두 개의 떡’을 다시 고백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바치는 제단 위에 북한 동포들의 몫을 마련해야 합니다.
우리는 오늘도 역사하시는 ‘오병이어의 기적’에 참여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생명의 떡으로 임하셨던 예수 그리스도를 강력히 증거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6장 35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사랑하는 여러분!
제가 북한의 조선그리스도교연맹 강영섭 위원장에게 직접 들은 말입니다. 그는 “남한에서는 북한 사람들이 다 회개해야 도와주겠다고 하는데, 다 죽고 나면 도와줘야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하더군요.
저는 이제 우리가 먼저 손을 내밀 때라고 믿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주시는 생생한 진실인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에 우리 모두 순종하십시다.
“네 생각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이르되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