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CC 선교훈련원 출범식 설교(2008.5.29)
믿음의 방주를 짓듯이
히 11:6-7
하나님의 은혜와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길 기원합니다.
오늘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선교훈련원의 새로운 출범을 축하드립니다. 그동안 KNCC가 걸어온 지난 80여 년의 역사는 자랑할 만한 것입니다. 그 가운데 선교훈련원이 존재하였고, 또 쟁쟁한 지도자들이 많이 배출되었습니다. 한국교회 인재풀 역할을 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런데 NCC가 자기 정체성을 잃고 방황하면서 선교훈련원도 제 기능을 하지 못한 채 그동안 방치되어 왔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다시 배를 띄우는 선교훈련원에 대해 기대하는 분들이 많이 있을 줄 압니다. 저도 그런 마음으로 여러분 앞에 섰습니다. 바라기는 선교훈련원 새 원장 이근복 목사님과 운영위원장 조경열 목사님을 비롯한 여러 위원들과 동역자들께서 모든 이들의 희망을 위해 수고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저는 예전에 커다란 배를 만드는 조선소를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거기에는 아직 완성되지 않은 배들이 있었는데, 몸통을 드러낸 배의 모습이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큰 배의 밑바닥 앞부분이 주둥이처럼 툭 튀어 나와 있었기 때문입니다. 설명을 들으니 이 부분을 용골이라고 불었습니다.
용골은 한마디로 풍랑을 만난 배가 기울지 않고 언제나 제자리로 돌아오게 하는 쇠뭉치였습니다. 즉 오뚝이와 같이 중심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사실 배는 매우 역설적인 몸의 구조를 갖고 있었습니다. 목적지에 빨리 가려면 자기 몸을 가볍게 해야 하는데, 오히려 무거운 쇠뭉치를 달고 다니니 말입니다. 그러나 용골이야말로 꼭 필요한 배의 무게중심이었습니다. 저는 이 용골이야말로 망망대해를 항해하는 배에게 있어서 ‘희망의 무게중심’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선교훈련원이 기우뚱 거릴 때마다 중심을 바로 잡아주고, 넘어질 때 마다 다시 일어설 용기를 주는 그런 용골이 되어주고, 그런 희망의 중심이 되어주길 기대합니다.
세계교회 일치와 연합운동의 상징은 배와 십자가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잘 알듯이 WCC와 각국 NCC의 심볼은 십자가를 우뚝 세워 놓은 배입니다. 그 아래 쓰여 있는 헬라어 오이쿠메네는 ‘사람 사는 온 땅’ 이란 뜻입니다. 저는 이 배를 볼 때마다 노아의 방주를 연상합니다.
사실 방주는 인류 처음의 교회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달리 말하면 교회는 곧 새로운 세계를 잉태할 오늘의 방주라는 의미입니다. 그 방주에는 각양각색의 인종과 언어와 문화가 담겨있고, 육식동물과 초식동물간의 먹이사슬도 방주 안에서 공존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노아는 하나님의 명령에 철저히 순종하는 모습으로 우리를 평화의 항구로 안내할 선장이고, 봉사자였습니다. 이러한 노아의 방주가 일치와 연합의 정신을 반영하고, 친교와 평화를 위해 존재하는 것은 지금도 의미 있는 일입니다. 아니 앞으로도 계속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그 일치를 강화하고, 연합을 지속해야 합니다.
히브리서 11장은 노아를 대표적인 믿음의 사람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믿음이란 무엇입니까? 여기에서 믿음은 사람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 길이며, 이러한 믿음을 통해서 사람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깊이 신뢰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성경은 그러한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존재의식을 가지고 합당하게 살려는 사람을 보상하신다는 것을 분명히 일깨워 죽고 있습니다.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히 11:6).
노아는 믿음으로 모범적인 의인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특히 노아의 방주를 통해 알 수 있듯이 하나님 앞에서 노아가 행한 신뢰와 순종의 태도에 근거하여 모든 사람에게 생명과 평화의 약속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 우리는 이 시대에서 구원의 방주라고 불릴만한 교회의 존재와 그 행태에 대해 어떤 믿음을 갖고 있습니까?
나는 평생 현장교회에 몸담아 온 사람으로서, 또 한 교단을 책임지고 있는 사람으로서, 또 교회와 국가 또는 사회 간의 관계에서 교회를 대표해온 지도자의 한 사람으로서 믿음의 사람 노아와 같지 못함을 부끄럽게 생각합니다. 사실 불신과 회의를 품고 있음을 용기 있게 말하지도 못하고, 모든 것이 잘 되어 갈 것이라고 무책임한 확신을 말하지도 못합니다. 그야말로 경계선에서 아슬아슬한 한국교회의 위상과 모습을 평가자의 모습으로 바라보는 존재가 되고 말았습니다. 사실 이것이 솔직한 제 모습입니다.
유감스럽게도 오늘 우리시대의 방주를 자처한 교회는 배 구실을 하기 어려울 만큼 낡고 손상되어있습니다. 사람들에게 안전도에 있어 신뢰를 잃은 지 오래되었습니다. 크게 수리를 하고 개조를 하기 전에는 물에 뜰까 의심스럽습니다. 방주 안에는 밑도 끝도 없는 분쟁과 갈등이 계속되어 왔습니다. 오늘의 방주는 침몰하기 직전상태에 있습니다.
구원의 희망은커녕, 적신호가 켜져 있습니다. 과연 2000년간 지속된 교회의 구원을 향한 항해는 하나님 나라의 항구까지 인류를 인도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교회로 하여금 교회되게 함으로서 가능할 것입니다.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지 못하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예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좇는 의의 후사가 되었느니라”(히 11:7).
지금 우리에게 참 믿음이 있다면, 우리는 노아처럼 그 경고음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여전히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살아간다면 우리는 오늘의 방주를 수리하고 견고하게 하는데 최선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최근 대운하와 미국산 쇠고기 수입파동을 보면서 시대가 참으로 변했음을 실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저와 비슷한 감회를 갖고 있을 것입니다. 예전에는 이런 일에는 NCC가 목숨을 걸고 앞장 서 거나, 재야에서 들고 일어났을 텐데, 지금은 어린 학생들의 촛불만 바라보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무력해진 탓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성숙해 진 덕분입니다. 더군다나 경찰이 시민을 연행한다니 “나도 잡아가라”고 하면서 경찰서를 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그런 당당함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요?
이젠 함부로 정치를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만약 여전히 그런 시대착오적인 생각과 판단을 한다면 국민의 실망과 저항은 불 보듯 뻔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러한 현상을 지켜보면서 오늘 한국교회의 위기의 실체가 무엇인가를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습니다. 21세기 선교는 더 이상 1960년대의 의식과 1980년대의 정신만으로는 불가능할 것이라고 봅니다. 우리 교회는 달라진 시민문화 한 가운데에 존재합니다. 우리가 선교해야할 대상은 이런 당당한 사람들입니다. 바라기는 선교훈련원이 새로운 시대의 요구에 맞는 교회의 선교적 과제를 개발하고, 참여를 확대하고, 리더십을 발굴해야 할 것입니다. 무엇보다 교회가 교회다워지는 참 교회의 길을 제시해 주기를 부탁드립니다.
독일의 신학자 프란츠 알트는 1982년 <산상설교의 정치학>이란 책에서 이 시대 기독교인 정치가들이 예수의 산상수훈 정신을 따르지 않고 있다고 안타까워하였습니다. 그는 “이천 년 전에 선포된 산상설교에 평화로운 세상에 대한 영적 열쇠가 있다”고 주장하면서 이것을 현실정치에서 실현해 나갈 것을 주창하였습니다. 그가 최근에는 <생태주의자 예수>를 썼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향해 산상설교를 사랑한다면 예수가 본을 보이신 창조와 생태의 정신대로 살 것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 다는 것은 이렇게 구체적인 일입니다.
그러기에 존 웨슬리는 말하기를 기독교는 ‘고독한 종교’가 아니라 ‘사회적 종교’라고 하였습니다. 기독교 복음주의는 바로 세상을 사랑하셔서 인간이 되시고 십자가를 지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기본 중의 기본, 원론 중의 원론을 잃어 버린다면 우리 교회가 설 땅은 점점 위축되고 말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보다 구체적인 방주를 만들 필요를 요청 받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 시대에도 튼튼한 노아의 방주가 필요합니다. 그것은 바로 처음 교회의 모습입니다. 그것은 교회로 하여금 교회되게 함으로서 가능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동안 우리들이 일구어낸 성취뿐만 아니라 허물과 실패까지도 은혜를 베푸시길 기도합니다. 또 우리 모두 마주친 현실을 통해 새로운 내일을 일구시는 하나님의 계획과 손길을 발견하기를 바랍니다.
지난 80여 년 동안 한국교회의 희망의 중심이었던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가 우리 시대의 구원의 방주가 되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친교를 강화하며, 하나님 나라를 확대하는 그리스도의 몸이 된 공동체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