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텔레비전 창립기념예배 설교(2007.12.6)
빛을 예비하는 사람
요 1:4-8
하나님의 은혜와 평화가 여러분과 같이 하시길 축원합니다.
먼저 CTS 기독교텔레비전 창립 12주년을 축하드립니다. 하나님께서 기독교텔레비전을 통해 어둠 속에 있는 우리 세상에 빛을 비추고, 소리는 많으나 음성을 들을 수 없는 이 시대에 소망을 주기를 원합니다. 특히 오늘 이임과 취임을 하시는 공동대표 이사님들을 통해 CTS 기독교텔레비전이 하나님 앞에 더욱 합당하고, 온 교회의 사랑을 받게 되기를 기대합니다.
지금은 교회력으로 대강절 첫 주를 맞아 우리는 특별한 의미의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프랑스 속담에 “두 요한이 일 년을 나눈다네” 라는 말이 있습니다. 두 요한이란 바로 사도 요한과 세례 요한을 가리킵니다. 서양 전통에 따르면 사도 요한은 12월 동지(冬至)의 성인이고, 세례 요한은 6월 하지(夏至)의 성인입니다. 세례 요한이 요한복음 3장 30절에서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고 말했듯이, 빛이 점점 쇠하여지는 지금은 바로 세례 요한의 때입니다.
사람들은 빛의 갈림길에서 분명한 시대의 징조를 파악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이러한 하나님의 시간 속에 두 요한이 존재함을 믿었습니다. 지금 이 시기는 겨울이 깊고, 어둠이 길어 빛의 소중함을 더욱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어둠이 가장 깊은 동지가 지난 직후 성탄절을 맞이하는 우리는 빛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더욱 분명히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세례 요한은 바로 ‘빛을 예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요한복음은 “그는 이 빛이 아니요 이 빛에 대하여 증거 하러 온 자라”(1:8)고 말하고 있습니다.
당시 세상에는 구약시대와 같은 예언이 이미 끊겼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예언의 소리가 끊어진 시대에도 세례 요한만큼은 예언자로 인정하였습니다. 왜냐하면 그의 예언은 모든 사람들을 의로움 가운데로 부르는 소리였고, 인간들에게 하나님을 제시한 시대의 이정표가 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하나님께 파송 받은 사람만이 지닐 수 있는 말할 수 없는 권위를 가지고 선포하였습니다.
세례 요한은 “광야에 외치는 소리”였습니다. 그는 약대털옷을 입고, 가죽띠를 띠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고 지내면서 광야를 주 무대로 하여 활동하였습니다. 성경에 따르면 세례 요한은 엘리야의 능력과 심정으로 다가올 심판을 전하고, 회개를 촉구하였습니다. 그리고 자기 뒤에 오실 메시야의 종으로 자처하면서 그 분의 길을 예비하다가 순교하였습니다.
세례 요한은 마지막 예언자요, 첫 전도자로서 시대정신에 밝은 경건한 의인이었습니다. 바로 ‘새 시대의 길을 닦는 사람’이요, “어둠 속에서 빛을 예비하는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이제 악과 어둠의 시대가 지나가고, 엘리야와 같은 위대한 젊은 예언자가 나타나 광야에서 세례를 베푼다는 소식은 당시 유대의 온 마을과 도시를 놀라게 했으며 흥분시켰습니다. 그리고 곧 왕 되신 메시야가 출현할 것이며, 심판의 날이 도래하고 있었습니다.
‘방송망’(Network)이란 영화가 있습니다. 이것은 현대 미국 사회를 날카롭게 해부하는 문제작으로 아카데미상 4개를 휩쓸었던 영화입니다.
한 밤중에 주인공이 잠을 자고 있는데 이상한 음성이 들렸습니다. 그 음성은 주인공을 향해 “내가 너를 택하였노니 사람들에게 나가서 진리를 말하라”고 말합니다. 주인공은 “나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어째서 하필 진리를 전하는데 나를 택합니까!”라고 변명하였더니, 그 음성은 “이 바보 자식아, 네가 텔레비전 뉴스 캐스터이기 때문에 너를 택한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이 대화는 하나님께서 모세를 택할 때 장면을 현대판으로 패러디한 것입니다. 에집트 파라오에게, 히브리 백성들에게 뿐만 아니라 오늘 잘못된 사회와 무너지는 인간관계 속에 뛰어들어 진리를 말할 해방자 모세는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그렇게 되어야만 한다고 이 영화는 주장하고 있습니다.
영화의 주인공 하워드 빌은 시청율이 낮아졌다는 이유로 2주간의 여유를 두고 파면된 주인공이었습니다. 그는 음성의 명령에 순종하여 카메라 앞에서 외치기 시작하였습니다. “세상이 미쳐가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모든 일이 귀찮아 혼자 내버려 두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러지 말고 실컷 화를 내 봅시다. 자! 지금 곧 일어서 창문을 활짝 열고 고함을 지르십시오. ‘나는 인간이다! 나는 화가 나 죽겠다. 나는 더 이상 못참겠다!’ 라고 외치십시오”
많은 사람들이 이 미친 예언자의 프로그램을 보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뉴스 앵커의 말에 따라 한밤중에 창문을 열고, 공중을 향해 고함을 질러댔습니다. 이 일을 기회로 시청율이 급상승하였고, 돈벌이가 된다고 판단한 방송국은 하와드 빌에게 파면이 아니라 특별 개인 프로그램을 만들어 준다는 내용입니다.
우리는 예언자 요한처럼 시대의 파수군의 역할을 자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기독교텔레비전은 그런 역할을 충실히 감당하기 위해 부르심을 받은 기관입니다. 세례 요한이 현실에 충실한 사람으로, 미래를 준비하는 예언자였던 것처럼, CTS는 오늘의 진실을 증거하면서 동시에 내일의 희망을 증거하는 선지자가 되어야 합니다. 약속의 성취가 더딜지라도 하나님이 미리 정하신 때가 되면 그 약속이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독일 고백교회 목사인 디트리히 본회퍼는 가장 깊은 어둠의 때를 살았던 사람으로서, 우리에게 어둠과 빛의 갈림길을 일깨워 주었습니다. 그는 히틀러 암살 음모혐의를 받고 악명 높은 나치 감옥에 투옥된 1943년 말경, 한 친구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그 때는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을 기다리던 절기였습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묵상을 하던 중에 이런 내용을 기록하였습니다.
“감옥에서 독방생활은 강림절에 관한 많은 것을 나에게 되새겨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뭔가를 기다리고 희망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결국에 우리가 하는 일은 거의 아무런 결과를 낳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문이 닫혀있고 이 문은 오직 바깥에서만 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문이 닫혀있고 이 문은 오직 바깥에서만 열 수 있다는 현실, 즉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문은 밖에서만 열 수 있다는 본회퍼 목사님의 실토는 이제 우리가 할 수 있는 선택의 여지를 분명히 일깨워 주고 있습니다.
바울 사도는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 근신할찌라”(살전 5:6)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스스로 준비하는 사람에게는 주의 강림의 날이 바로 축복의 날이 될 것이지만, 그러나 믿음 없이, 영적인 근신 없이 막연한 평안과 안전을 기대하는 사람들에게는 큰 위기가 닥칠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이 강림절에 영적으로 각성하고 깨어있어야 합니다.
유감스럽게도 이 시대의 많은 사람들은 오늘의 미명이 새벽인지 어둠인지 그 정체를 혼돈스러워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에게 어둠의 종, 죄의 종에서 벗어나 진리에 속하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요한복음 8장 31-32절은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더 나아가 그분은 “나와 같이 깨어 있으라”(마 26:40)고 당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삶은 빛을 예비하기 위해, 구체적인 등불을 준비하는 삶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생명의 빛이신 예수를 고백할 뿐 아니라 나 자신이 세상의 빛임을 증거 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한 영혼을 구원하고, 한국 기독교를 새롭게 하며, 한국 사회를 평화롭게 하기 위해 지난 12년 전 기독교텔레비전을 세우셨습니다. 바라기는 기독교텔레비전 역시 지혜로운 다섯 처녀처럼 넉넉한 기름과 등불을 준비하는 선교기관이 되기를 부탁드립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목적이 여기에 있습니다. 그리하여 기독교텔레비전이 광야의 길을 고르게 하고, 빛을 예비하는 예언자의 사명을 잘 감당하기를 바랍니다. 무엇보다 한국 기독교의 빛이 되고, 우리 사회의 소금이 되길 간절히 기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어둠과 빛의 갈림길인 강림절기에 CTS와 여러분 모두에게 희망과 진리로 함께 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