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선교주일 은평천사원 주일예배(2007.4.15)
희망을 만난 사람
눅 17:11-19
할렐루야!
하나님의 은혜와 평화가 장애인주일 예배에 참석하신 여러분과 함께 하시길 축원합니다. 이 시간에도 희망의 주님으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시는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주님께서는 장애인선교주일 예배를 통해 장애를 지닌 자매와 형제들에게 소망을 주시고, 장애가 없는 이들에게도 서로 돕고 사랑하는 능력을 주실 줄로 믿습니다.
오늘 우리 감리교회의 자랑이고, 대표적인 사회복지시설인 은평천사원에서 장애인선교주일 예배를 드리는 것은 매우 반갑고, 기쁜 일입니다. 특히 이곳에서 수고하시는 모든 직원과 봉사자들께 감사드립니다.
사실 남을 위해 일한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입니까? 그래서 독일의 신학자 몰트만은 “소망이 없는 봉사는 고통에 불과하다”고 말하였습니다. 만약 우리가 수단으로만 사회봉사에 관한 일을 하고, 사랑이 없이 사회복지에 종사한다면 얼마나 피곤한 일이겠습니까? 거기에는 보람이 있을 리 없습니다.
저는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본받고, 그 사랑의 손에 잡힌바 되어 이러한 거룩한 수고를 하게 되었음을 믿습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예수님은 장애인과 비장애인 모두를 진심으로 사랑하신 분입니다. 그러나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우리 자신은 정작 주님의 사랑을 본받는 일에 게을리 하였고, 무책임하였음을 돌아보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 감리교회에서는 4월 셋째 주일을 장애인선교주일로 제정하여 거룩하게 지키려고 하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이 자리에 참석한 우리 자신부터 앞장서서 힘껏 장애인을 향한 전도와 봉사를 실천하고, 예수님께서 주신 영원한 생명과 희망을 나눌 수 있기를 부탁드립니다.
예수님께서는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마 9:12-13)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사회적 편견과 신체적 아픔을 지닌 이들에게 오히려 더욱 가까이 다가가시고, 구원해 주셨습니다.
안양에 음성 나환자들이 모여 사는 성 나자로 마을이 있습니다. 오래 전일입니다만, 어느 독지가의 도움으로 이 마을에 현대식 식당건물을 지었습니다. 이제 주방기구와 접시, 냄비, 국그릇, 수저 등 식기류만 장만하면 정말 좋은 시설에서 음식을 나누어 먹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모두들 꿈에 부풀었습니다.
그러나 주방가구와 식기를 장만할 형편이 못되었기에, 신부님은 교구에 속한 교회들에 공문을 보내 요청하였다고 합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부탁한 짐이 가득 실린 트럭이 도착하였고, 신부님과 직원들은 마음이 들떠서 짐을 풀어보았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성한 그릇이라곤 별로 없었습니다. 이가 나갔거나, 구부러졌거나, 찌그러졌거나 대부분 상한 것들뿐이었다고 합니다.
아마 이런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문둥병자들이 아무 데나 담아 먹으면 어떻겠어?”
행여 우리는 그러한 불쌍한 마음을 갖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 예수님 안에서는 의인도 죄인도 모두 같은 사람입니다. 건강한 자도 아픈 사람도 차이가 없습니다. 오히려 예수는 죄인과 병자를 특별하게 대하시고, 선호하시며, 그들을 향해 손을 내밀고 계십니다.
이 원리는 장애인에게도 적용되었습니다. 주님에게 있어서 장애인과 비장애인은 서로 다르지 않습니다. 오히려 장애인이야말로 진정으로 예수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며, 주님께서는 당신께 소망을 둔 그들을 찾고 계십니다.
누가복음은 예수님과 만난 열 명의 문둥병자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예루살렘을 향해 가다가 갈릴리와 사마리아의 경계가 되는 지점에 이르렀습니다. 그곳은 인적이 드믄 외딴 촌이었는데, 어떤 사람들이 예수 일행을 향해 멀찍이서 소리쳤습니다.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긍휼히 여기소서.”
그동안 예수님 앞을 가로막은 사람들은 병자, 죄인등 대부분 문제가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 역시 10명의 문둥병자들이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문둥병자는 늘 마을 공동체로부터 추방되어 격리되기 마련이었습니다. 옛부터 문둥병은 천형, 즉 하늘이 내린 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대답은 간단하였습니다.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성경 레위기 13-14장에 보면 문둥병에 대한 판별이나 정결예식들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데, 얼마나 복잡한 절차와 의식이 필요한지 모릅니다. 이렇게 복잡한 과정을 겪은 다음 완전한 치유가 판명 났을 때에 문둥병자들은 사회에 복귀되고 가족에게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열 명의 문둥병자들은 제사장들에게 달려가다가 몸이 깨끗해졌음을 발견하였습니다. 그런데 그중 한사람이 큰 소리로 하나님을 찬양하며, 예수님께로 돌아왔습니다. 아마 나머지 아홉 사람은 정결예식과 속죄제를 준비하기 위해 바쁜 모양이었습니다.
성경은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린 사람은 바로 사마리아 사람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유다인 아홉 사람이 아닌, 천하게 취급받던 사마리아 사람만이 유일하게 되돌아와 감사를 드렸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온 자가 없느냐?”
“아홉은 어디 갔느냐?” 저는 이 물음이 다만 문둥병자들에게만 하신 말씀이라고 들리 지 않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책망이 오늘 하나님의 백성임을 자부하고 사는 대다수의 그리스도인을 향한 것으로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잃고 살아가는 불안하고 황폐한 사람들을 향한 부르심으로 들을 수 있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비록 육체적인 질병과 장애는 없으나 영적인 불구와 심령의 장애로 고통 받는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초청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돌아온 사마리아인은 육체적인 치유뿐 만아니라 영적인 구원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그가 만난 것은 희망 그 자체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장애인이나 환자들을 돌보셨던 것은 그들을 통해 하나님의 역사를 세상에 드러내기 위해서였습니다. 이것은 메시야의 존재의미였고, 동시에 교회의 존재이유입니다.
주님을 그리스도로 따르는 사람들은 세상의 약자들, 어쩌면 현대 사회에서 가장 약자인 장애인을 돕고 봉사함으로써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수 있어야 합니다. 따라서 교회는 참으로 죄인과 사회적 약자와 장애인의 편안한 공동체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장애인과 병자들을 통해 하나님의 역사를 보여주신 이유입니다.
앞으로 모든 장애인의 희망이, 그들을 향한 사랑의 봉사가 주님의 능력으로 가능하게 되길 간절히 기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하는 분들의 수고와 진심이 오직 주님의 사랑과 능력으로 부터 비롯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오늘 우리는 세족식을 하게 됩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섬김의 삶에 대한 응답을 의미합니다. 봉사란 헬라어로‘디아코니아’인데, 바로 예수님께서 친히 행 하셨듯이 허리를 굽혀 봉사하고, 남의 발을 씻어주는 섬김의 삶을 뜻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행동을 통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는 역할 모델을 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그렇지 않을지니 너희 중에 큰 자는 젊은 자와 같고 다스리는 자는 섬기는 자와 같을지니라”(눅 22:26). 교회가 남을 위해 봉사하고, 섬김의 직분을 담당하려는 것은 신앙적 응답이며, 윤리의 기본인 것입니다. 교회가 이 땅에 존재하는 한, 고통 받는 이웃이 우리 곁에 머물러 있는 한 사회봉사는 시대적 코드입니다.
오늘 장애인들의 현실을 볼 때 그들의 아픔은 정신적· 신체적 장애에 그치지 않습니다. 신체적 결함뿐 아니라 편견이란 사회적 장애는 450만 장애인들에게 더욱 큰 고통이며, 아픔입니다. 우리 교회는 물론 정부와 사회공동체 모두가 장애인들이 기본적인 생활과 권리를 보장받는 일에 앞장서야 합니다.
저는 이런 꿈을 꿉니다. 그것은 희망 그 자체입니다.
우리나라 모든 교회마다 크고 작은 사회복지 시설이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속회와 구역회 등 소그룹마다 독거노인, 소년소녀 가장, 재소자, 결식아동, 장애인, 이중문화가정, 외국인 노동자를 위한 봉사와 결연관계를 확대해 나가는 그런 희망 말입니다. 모든 교인들이 자원봉사자로 훈련받고 참여하는 그런 꿈 말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우리 기독교는 복음전도와 함께 사회봉사를 통해 인류의 생명을 구원하는 희망의 공동체 사명을 신실하게 감당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이 땅에서 예수님처럼 살아가는 수많은 희망과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장애인들이 만나고자 하는 희망을 어디에서든 마주할 수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 나라의 모습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을 희망의 증언자로 부르셨습니다. 우리가 함께 이러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기를 소원합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평화가 은평천사원과 여기에서 공동체로 살아가는 모든 지체들, 그리고 장애인선교에 대한 사명을 갖고 살아가는 모든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과 교회들 위에 함께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