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개 신학대학원 연합퇴수회 개회예배 설교(2007.3.26)
배움과 확신 안에 거하라
딤후 3:14-17
반갑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평화가 우리 감리교회의 희망이요, 자랑인 여러분과 같이 하시길 축원합니다.
지금은 사순절기입니다. 그리스도의 아픔과 고난을 기억하고, 십자가의 길을 묵상하는 절기에 이렇게 수련회를 열게 된 것을 축하드립니다. 흔히 영적수련회, 퇴수회, 피정이란 말로 불립니다만, 이런 모임이 개인적으로나 자기 학교만 모이지 않고 우리 감리교회의 세 신학교가 함께 한다니 얼마나 복된 일입니까?
이번 기회에 서로 열심히 사귀고 친밀해 지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앞으로 기독교대한감리회의 동역자로서 힘과 지혜를 모으고, 협력하며 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가까운 미래에 여러분이 경험하게 될 목회현장을 고민하고, 좋은 동역자가 되기 위해 지금부터 마음을 열고 협력하기 바랍니다. 여러분은 우리 감리교회, 주님의 교회의 기둥이 될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뜨겁게 기도하고 하나님을 사모하기 바랍니다. 평생 여러분이 따르고 믿을 만한 분은 선배도 아니고, 교수님도 아니고, 부모님도 아니라 바로 살아계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저는 세 개의 신학대학교에서 공부하는 대학원생들을 만난다고 하여 한편으로는 마음이 들뜨고 신이 났지만, 또 마음 한켠에서는 부담스럽고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마음이 들뜨고 신났던 이유는 여러분이 제가 사랑하는 후배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부담스러운 이유는 앞으로 여러분이 마주할 목회 현장의 미래가 그리 밝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 사회를 보면 어디나 인력포화상태요, 전문가 과잉상태입니다. 패자부활전이 없는 신자유주의의 혹독한 경쟁은 청운의 꿈을 안고 대학의 문을 나서는 젊은이들에게 가혹한 시련을 가져다주고 있습니다. 청년실업이 결코 남의 이야기가 아님을 여러분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교회 현장도 마찬가지입니다. 교인 서너 사람 모이는 교회의 담임 자리도 경쟁이 치열합니다. 수련목으로 합격한 영광도 잠시, 겨우 80만원을 받고 부목사보다 더 열심히 일해야 한다고 들었습니다. 박사학위를 받고 와서 10년이 넘어도 전임 자리를 찾기가 쉽지 않은 것이 현실입니다. 이것은 계약직은 커녕 아르바이트 수준도 못됩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교회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 전반적인 현상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그러나 여러분은 누구보다 행복한 존재입니다. 여러분이 신학교에 입학하면서 높은 연봉과 안정된 직장에서 일할 것이라는 꿈을 가진 사람은 별로 없었을 것입니다. 출세하고 이름을 얻고, 스타가 되길 원했다면 애초에 신학교에 들어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지금 고난에도 감사하고, 소망을 지닐 수 있는 믿음을 가진 여러분은 그래서 행복한 존재입니다.
본문은 사도 바울이 믿음 안에서 낳은 아들 디모데에게 부탁하는 말입니다.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딤후 3:14).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신앙 안에서 배우고, 그 믿음을 확신하였으면 그 안에서 머물며 살라는 당부를 하고 있습니다.
성육신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요한복음 1장 14절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라고 말합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육화하심으로써 사셨듯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듯이, 그런 믿음과 확신 가운데 살라는 의미입니다.
이러한 자기 삶에 대한 분명한 확신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종이 될 수 없습니다. 설사 된다고 해도 쉽게 첫사랑을 잃을 것이며, 그 마음이 변질되기 쉬울 것입니다.
저는 이 시간 여러분에게 세 가지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먼저, 행복한 목회자로 자라가십시오.
사도 바울은 디모데가 이방인 출신임에도 그를 신뢰하고, 동역자요 후계자로 받아들인 까닭은 먼저 디모데의 신실함 때문이었습니다. 물론 그의 가정 배경도 영향을 주었을 것입니다.
“이는 네 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을 생각함이라 이 믿음은 먼저 네 외조모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더니 네 속에도 있는 줄을 확신하노라”(딤후 1:5).
유대인의 전통에 따르면 신앙교육의 주체는 아버지가 아니라, 어머니였습니다. 유대인 어머니를 둔 디모데는 어려서부터 신앙교육 속에서 자랐습니다. 그 신앙양육의 전통과 영향이 오늘의 디모데를 가능하게 만들었습니다. 사실 디모데는 어머니 덕을 본 셈입니다.
얼마 전까지 우리나라 직장에서 취직할 때, 면접시험에서 가장 자주 물어보는 것이 “아버지가 뭐 하는 분이냐”는 것입니다. 선진국에서는 이력서에 학교와 지역, 부모는 물론 심지어 성(性)도 밝히지 않는다고 들었습니다. 아들이 일하는데 도대체 아버지의 직업이 무슨 상관인지 매우 부당한 질문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저는 여러분이 목회를 시작할 때, 또 진급을 하거나 진로를 결정할 때, 아예 아버지 덕을 볼 생각은 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편법은 쉽고 매력적이지만, 결코 편법이나 요령에 연연해하지 마십시오. 요령에 급급한 사람은 평생 그런 목회만 한다는 것은 이미 선배들이 경험한 일입니다.
바라기는 어머니의 무릎에서 양육 받은대로 늘 정정당당하고 신뢰를 주는 인물이 되십시오.
행복한 목회자가 되는 일에서 중요한 것은 먼저 신실한 사람이 되는 일입니다. 사람을 소개해 달라는 요청은 많은데 당장 떠오르는 사람이 없다고 말 들 합니다.
또 신학적 능력과 외국어 실력을 키우십니다. 앞으로 목회자 역시 전문성의 시대가 됩니다.
지금부터 교회 봉사를 잘 하십시오. 능력과 기회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가장 기본중의 기본은 예수님의 겸손과 순종과 헌신을 닮는 일입니다. 우리는 가장 위대한 목회자야말로 스스로 종이 되시고, 스스로 낮추시고, 스스로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하신 주님의 모범을 닮는 사람임을 정답처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그렇게 살지 못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알고 있고,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깨닫고 있지만, 자신의 한계와 연약함 때문입니다. 성령께서는 이러한 우리의 마음에 역사하셔서 인격을 새롭게 하시고 성숙한 삶으로 이끌어 나가십니다. 이것이 행복한 목회자로 자라가는 과정입니다.
둘째로, 평생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과 씨름하십시오.
우리 감리교 목회자들의 약점 중의 하나가 성경을 소홀히 한다는 점입니다. 세상에 말이 되는 이야기입니까? 감리교 목회자들이 설교를 할 때 주제설교는 강하나, 강해설교는 약합니다. 기본기 없이 주전선수로 뛰는 꼴입니다.
사도 바울은 말합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16).
우리가 개신교인인 까닭은 신앙의 원칙을 회복한다는 것 때문입니다. 1517년 10월 31일,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가 비텐베르크 성(城) 교회에 95 가지 문제제기를 한 때부터 불붙기 시작한 종교개혁은 한 마디로 신앙의 원칙으로 돌아간다는 것입니다.
종교 개혁자들이 말했던 신앙의 원칙이란, 오직 믿음으로만, 오직 은총으로만, 오직 성경으로만 이었습니다.
믿음보다 행위가 신앙의 표준이 되고, 하나님의 은총보다 인간의 노력이 중요하게 되고, 성경보다 다른 권위가 우선이 되는 것은 신앙의 원칙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이것을 당시 가톨릭교회가 모를 리 없었지만, 이 신앙 원칙을 에워싸고 있는 체제의 옷, 제도의 옷, 의식의 옷들이 너무 두껍고 무거워 그 원칙들이 파묻힐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이 옷들을 벗기는 데는 용기가 필요했습니다. 지금 신앙의 원칙을 회복해야 한다고 말한다면 칭찬들을 일이지만, 당시 종교개혁자들은 죽음을 각오해야 했습니다.
종교개혁자들의 가장 큰 공헌은 바로 성경을 일상의 가까이에 옮겨다 두었다는 점입니다. 그들은 “성경이 가는 곳만큼 가고, 성경이 멈추는 곳에 멈춘다”고 하였습니다. 성경이 있는데 다른 가르침을 따라갈 수는 없습니다. 우리들의 신앙과 생활은 성경의 가르침으로 충분하며, 무엇보다 우리들은 성경의 가르침대로 살아야 합니다.
종종 목회자로서 설교를 하거나, 성경을 공부할 때 그 역할을 성경과 현대 세계의 간격을 줄이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 간격을 줄임으로써 복음을 현대인들에게 더욱 가깝게 다가올 수 있도록 만든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현대 세계는 이성과 과학은 물론 너무 많은 의심과 회의로 가득합니다. 그래서 간격을 줄이려는 노력은 목회자인 나 자신이 중세시대 사람이 되거나, 청중들을 바보로 만드는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을 증거 해야 합니까? 우리는 성경을 통해 매우 중요한 신앙의 원칙을 들을 수 있습니다. 그 원칙은 현대 세계의 거짓과 유혹과 불신앙을 낱낱이 일깨워 주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 해독과 속임수로부터 벗어나게 합니다.
오늘의 설교가 하나님의 말씀을 말하면서도 오늘 우리 가운데 존재하는 폭력, 차별, 가난, 우상숭배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성경을 벗어나고, 주님의 말씀을 외면한 잘못된 것이 아닙니까?
저는 성경공부를 위한 성경공부를 강조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을 통해 사람들의 비위를 맞추고, 유행을 쫒아가기 보다 참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바로 서 달라는 부탁을 하고 싶습니다. 장사가 잘되는 프로그램을 따라다니기보다, 주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사건을 만들어 가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세상이 교회를 무시하지 못하는 것은 돈이 많아서 입니까? 사람이 많아서 입니까? 그 어떤 권위 때문이 아닙니다. 바로 이 세상에서 들을 수 없는 말을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수 있는 예언자로서 부름 받았습니다. 그것이 우리 감리교 목회자가 된다는 의미이며, 메도디스트가 된다는 의미입니다.
셋째로,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되십시오.
우리가 성경의 가르침에 귀를 기울인다면, 말씀은 우리를 분명히 변화시킬 것입니다. 그것은 개신교인으로 마땅히 해야 하는 것일 뿐더러, 신앙의 원칙으로 돌아가게 할 것입니다. 이보다 귀한 일은 없습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말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17).
세상은 온전한 사람을 원합니다. 정부에서도 고위 공무원을 뽑는데 가장 큰 기준이 청렴성과 도덕성이라고 합니다. 부동산 투기 혐의와 음주운전의 경우는 그가 아무리 훌륭한 경력과 전문성을 갖추었다고 해도 국민의 공복으로서 부적절하다는 판단하여 후보자에서 제외합니다.
또 요즘 선거법이 얼마나 까다롭습니까. 화환과 경조사 부주, 식사접대, 선물 등 모든 것이 금지되어있고, 300 만 원 이상 벌금형을 받으면 당선이 무효 됩니다. 우리 교회는 이러한 엄격한 환경에 포위 되어있습니다.
지금 가장 혼탁한 것이 종교단체의 선거풍토라고 합니다. 그렇게 인식되는 것은 한편으로는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기 때문이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에게 더욱 모범이 되는 삶을 요청하기 때문입니다.
많이 배웠으면, 자신이 배운 만큼 정직하게 살라고 요구하는 것이 시대정신입니다. 목회자라면, 성직자다운 온전한 삶을 요구하는 것이 사람들의 보편적인 기대입니다. 그것은 거창하지 않습니다. 최소한의 시민의식, 기본적인 그리스도인으로서 모범일 것입니다.
사람들은 대통령 후보든, 고급 공무원이든, 지방 의회의원이든, 자기보다 나은 도덕과 인격을 원합니다. 하물며 동네 교회 목사의 경우라도 그들의 엄격한 기준에서 미달되기를 바라지는 않을 것입니다.
만약 배운 사람들이 최소한 배운 사람 노릇을 못한다면 그 사회는 위기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최소한의 신앙인으로서 모범이 되지 못하다면 역시 위기입니다. 성직자들이 성직자답지 못하다면 그 사회는 영적위기를 넘어 아니라 망할 징조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마가복음 10장 43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아니하니”(막 10:43). 세상 사람들은 다 그래도 너희는 그래서는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세상의 질서와 하나님 나라의 질서는 다르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여러분이 마주칠 목회 현장은 언제나 여러분에게 짐스러울 것입니다. 목사라는 직책은 언제나 여러분에게 희생을 강요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성취보다 좌절을 더 많이 겪을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했던 그 첫 사랑을 잊지 말고 그 예수를 죽도록 사랑하십시오. 그 사랑 때문에 여러분의 아무리 어려운 직분이라도 잘 감당할 수 있을 줄 믿습니다.
저는 여러분의 선배로서 진심으로 권면합니다. 여러 가지 형편에 처하더라도, 늘 낮은자로 겸손히 처신하고,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잊지 말며, 순종하며, 목사 예비과정의 훈련을 달게 받으십시오.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요, 복음의 전도자로 부름 받았습니다. 여러분 스스로 선택하고 결단하며 약속한 일입니다.
힘들 때마다 예수님을 바라보십시오. 그분을 닮아 가는 일, 배우는 일, 그 분처럼 사는 일은 어렵지만 우리는 사랑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천성으로는 어렵지만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로 가능합니다.
저는 요즘 “뒷모습이 깨끗한 사람이 되자”는 말을 자주 하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그렇게 하지 못했다면 이제라도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오늘의 교회 현실의 최전선에서 일하는 감독회장으로서 사명을 생각하면 밤잠을 이룰 수 없지만, 지금까지 지내온 것을 생각하면 전적으로 은혜였음을 고백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다시 일어설 희망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호세아 선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는 하나님께로 돌아오너라. 사랑과 정의를 지키며 너희 하나님에게만 희망을 두고 살아라”(호 12:6).
하나님께서 우리 감리교회에 선물로 주신 세 개의 신학대학교와 장차 영적, 사회적 지도자로 부르신 모든 목회자 후보생들과 “희망을 주는 감리교회”위에 크신 은총을 베푸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