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화복지재단 창립 85주년 기념예배 설교 (2006.4.4)
희망의 겨자씨
마태복음 13:31-32
하나님의 은혜와 평화가 함께 하시길 축원합니다.
오늘 태화복지재단 창립 85주년을 축하드립니다. 1921년, 마이어스 선교사가 시작한 한국 최초의 사회복지관 태화는 우리나라 복지사업의 산역사와 다름없습니다. 그동안 태화기독교사회복지관은 감리교회의 사회선교와 사회복지의 중추를 이루어왔고, 복지시설의 모범을 보여왔습니다.
저는 태화(泰和)라는 이름 속에 이미 이 기관의 선교적 사명이 잘 담겨있다고 생각합니다. 태화의 뜻이 “하나님과 이웃을 섬기고 큰 평화를 이룩한다”가 아닙니까? 앞으로 계속하여 태화라는 이름처럼 우리 감리교회가 수행하는 사회봉사와 복지 분야에서 아름다운 손발이 되어 이웃을 섬기고, 우리 사회를 아름답게 만들어 나가는데 귀히 쓰임 받게 될 것을 믿습니다.
오늘 태화는 거대한 기관으로 성장했지만, 처음에는 겨자씨처럼 보잘 것 없었을 것입니다. 지난 85년 동안 믿음이 자라나듯 성장한 것입니다.
성경을 살펴보면 하나님의 됫박은 참으로 작고 소박합니다. ‘잃었던 은전 한 닢’이나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혹은 ‘밀가루 서 말’은 사람의 필요에도 턱없이 모자라는 것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아주 작은 것들에 대해서도 특별한 애정을 보이심을 잘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비유로 들으신 ‘참새 한 마리’, ‘들꽃’, ‘물 한 모금’, ‘어린아이’ 그리고 ‘겨자씨 한 알’도 마찬가지입니다. 특히 이러한 예들이 모두 사람의 생명과 구원에 깊이 관련된 것들이기에 더욱 의미 적절합니다. 예수님께서 천국비유로 겨자씨를 보기로 든 것도 같은 이치일 것입니다.
물질은 상대적이어서 사람들은 항상 남보다 적게 가진 것을 의식하고, 늘 필요와 쓸모를 호소하게 마련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의 비유를 읽노라면 그동안 적게 가진 것을 약점으로 알고, 스스로 자신의 가치를 낮추어온 사람들에게는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지 모릅니다. 성경의 관심은 부자들의 오만한 풍요에 있지 않고 언제나 가난한 사람들의 삶의 자리에 놓여있습니다.
현대의 자본주의 사회는 ‘존재’보다는 ‘소유’를 지향하는 병든 인간성을 기초로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땅에 왕이요 동시에 종으로 오신 주님은 ‘유대 땅의 가장 작은 고을’에서 ‘갓난 아기’의 몸으로 태어나셨고, ‘말구유’에 누이셨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의 삶 자체로 천국과 겨자씨의 비유를 넉넉히 담고 있습니다.
천국이 겨자씨 안에 담겨 있다는 것은 얼마나 놀라운 발견입니까? 생각해 보십시오. 겨자씨는 인간이 가진 물량적 욕심을 채워 넣기에 너무나 작습니다. 크기로 볼 때 ‘무’ 에 가까운 겨자씨 안에 하늘나라가 잉태되어 있다는 선언은 날마다 물량적인 불안에 사로잡혀 있는 우리를 향한 자유의 선언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부족함과 한계 속에서 하나님나라의 둥지를 틀고 계십니다. 어찌 하나님의 셈을 인간의 컴퓨터로 어림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물량적인 것이 주는 겨자씨의 불안함과 달리 믿음을 지닌 겨자씨는 결코 작지 않습니다. 비록 겨자씨만한 크기이지만 거기에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결합될 때 그것이 세상을 변화시킵니다. 저는 이것을 희망의 겨자씨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불안을 해소하는 방법으로 양을 추구하는 생활에서 질을 추구하는 생활로 삶의 방식의 전환을 촉구하고 계십니다. 겨자씨 한 알 속에 담겨있는 천국,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 기독교사회복지의 정신을 배울 수 있다고 믿습니다.
이제 태화는 커다란 나무가 되었습니다. 많은 새들이 깃들일만합니다. 그 연륜과 사업은 한국에서 복지사업을 대표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작고 보잘 것 없는 사람들과 자잘한 일상의 어려움에도 끝없이 애정을 가지면서 이 사회와 이웃을 섬겨야 할 것입니다. 바로 주님께서 물 한 모금이라도 나누고자 한 사랑하는 영혼들이며,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기까지 사랑하셨던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태화복지재단이 선교와 봉사의 비전을 나날이 확대하여, 무엇보다 사람들에게 칭찬 듣고,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선교기관으로 거듭나기를 간절히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