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03-02 협성대학교 입학식 설교
희망의 문
요 10:9-10
하나님의 은혜와 평화가 협성대학교와 여러분 모두에게 함께 하시길 축원합니다.
오늘 협성대학교 입학식에 참석하여 여러분과 처음 만난 것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 대학은 기독교대한감리회의 목회자를 양성하는 산실이고, 우리나라의 다방면에서, 또 세계라는 무대에서 일할 지식인과 기술인을 양성하는 지성의 전당입니다.
이전에도 그랬지만 앞으로도 150만 감리교인은 협성대학교가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나날이 성장하고 발전하기를 진심으로 바라며, 지원할 것입니다.
이 자리에는 기독교인도 있지만 아직 교회의 문턱에도 가보지 않은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신앙적 풍토의 학교 분위기를 느끼신 분도 있지만, 여전히 낯선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제가 여러분을 위해 축하시를 하나 전해 드리겠습니다. 다윗왕이 부른 노래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고/ 쉴 만한 물가로 인도 하시는 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 하시는 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한동안 이 시편 23편은 전국 8도 사투리로 번역되어 인터넷 상에도 회자되었던 대단히 유명한 말씀입니다.
시편 23편은 세계에서 가장 사랑 받는 시라고 합니다. 그래서 가장 널리 암송되고 있으며, 심지어 ‘지상 최대의 시’라는 별명이 붙어 있습니다. 성경에서 시편 23편만큼 대중적인 하나님의 말씀은 없을 것입니다. 숱한 이야기로 만들어졌고, 신앙고백이 되었습니다.
나치에게 희생당한 유대인의 홀로코스트의 악몽 속에서 유대인들은 이 시편을 암송하였고, 심지어 미국의 9.11 항공기 테러와 관련한 이야기까지 시편 23편은 숱한 에피소드를 만들고 있습니다.
즉 시편 23편은 인간의 온갖 위험과 아픔을 하나님과 관계 지으며, 버무려가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시를 암송하는 사람마다 시편 23편은 현재진행형이 됩니다. 그러면서 날마다 하나님과 구체적인 관계를 맺어 가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제 입학했지만, 오래 전에 우리나라 1학년 대학영어교재에 소개된 이야기 한편을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군 비행기 조종사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한 여성으로부터 위문편지를 받게 되었고, 여러 차례 편지를 주고받으며 펜팔을 지속하게 되었습니다. 그 여성은 편지에 시편 23편을 소개하면서, 이 시를 암송하면 좋겠다는 제안을 하였고, 이 군인은 여성의 편지를 계속 받고 싶었기 때문에 기꺼이 받아 들였습니다.
어느 날 그는 연습 비행 중에 잘못된 기류에 휩싸였습니다. 비행기 동체는 사정없이 흔들렸고, 그 역시 두려움에 휩싸였습니다. 눈앞이 캄캄해진 그 순간 그의 뇌리를 스치는 메시지가 있었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그는 펜팔 여성에게 편지를 썼고, 그리고 마침내 휴가를 가서 드디어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 다음은 여러분이 상상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여러분도 대학시절 동안 아름답고 감동적인 이야기를 만들어 가시길 바랍니다.
시편 23편에서 말하는 ‘나의 목자’는 바로 여호와 하나님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목자가 되신다는 것입니다. 목자는 양을 돌보는 주인입니다. 하나님과 인간을 목자와 양으로 비유한 것은 바로 인간이야말로 하나님의 돌보심이 꼭 필요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집짐승인 소, 말, 양은 모두 집에서 기르는 가축이지만, 이 짐승들을 다루는 방법은 저마다 서로 다릅니다. 소는 뒤에서 몰고 가야하고, 말은 옆에서 다루어야 하며, 양은 앞에서 이끌어야 합니다.
그 이유를 모두 아시겠지요? 소는 뿔로 사람을 박을 수 있기 때문에 뒤에서 몰아야 하고, 말은 뒷발질할 염려가 있으니 옆에서 붙잡고 가야하며, 그리고 양은 머리가 나빠서 어디로 가야 할 지 모르기 때문에 앞에서 인도해야 하는 법입니다.
사실 우리 인간들의 모습은 미래를 알지 못하는 양과 같은 존재입니다.
신약성경 요한복음 10장에 보면 선한 목자의 존재에 대해 보다 자세히 소개합니다. 학교에는 선생님이 있고, 가정마다 부모님이 계시듯이 우리 모든 인간에게는 나의 목자, 곧 하나님이 계십니다.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요 10:11)
한 마디로 ‘선한 목자’는 양을 위해 목숨을 버리는 분입니다. 성경은 선한 목자를 가리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라고 소개합니다. 또한 누구든지 선한 목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면 풍성한 생명을 얻을 것입니다. 삶에 지친 이들이나, 불안에 떠는 자들이나, 위로와 격려가 필요한 이들과, 고난당하는 자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는 선한 목자처럼 우리 곁에서 힘이 되어 주시고, 보호자가 되어 주십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얻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요 10:9-10)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희망의 문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영원한 문이십니다.
오늘의 시대를 가리켜 탈중심, 해체의 시대라고 합니다. 중심의 해체가 선언되어 버린 탈중심의 시대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내 삶의 심장부에다 튼튼한 중심으로 예수를 그리스도로 모시기를 주저하지 않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야말로 스스로 중심을 해체하고, 변두리로, 낮은 곳으로, 그 소외와 곤궁과 비참의 자리로 자신을 이동해 온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 자신이 ‘희망의 문’이 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에로스는 올라가는 사랑이지만, 아가페는 내려오는 사랑입니다.
에로스는 자신을 격상시키려는 욕망이지만, 아가페는 자신을 내어 던지려는 의지입니다.
예수를 아가페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그가 내려오는 사랑이고, 다른 사람을 위해 자신을 내어 던지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구세주가 되셨습니다.
사랑하는 입학생 여러분!
다시한번 여러분의 입학을 축하드리며, 축복합니다. 여러분이 앞으로 4년 동안 이 학교를 사랑하고, 이 학교를 통해 꿈을 실현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그리하여 한국인이요, 세계인으로서 인류를 위한 봉사자요, 평화의 참여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고대 그리스의 대작가 헤시오도스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사람들을 훌륭한 일에 부르는 자는 훌륭하다. 훌륭한 자의 부름에 응하는 자 역시 축복 받으리라. 하지만 부르지도, 부름에 귀 기울이지도 않고 다만 쉬기만 하는 자는 아무런 쓸모가 없다.”
협성대학교는 여러분이 들어선 희망의 문입니다.
이 문은 여러분에게 열정과 성실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 문은 여러분에게 꿈과 희망을 약속하고 있습니다.
이 문은 여러분에게 성숙한 내일을 제공할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을 초대하신 그 부르심에 충실하셔서, 여러분의 꿈이 아름다운 열매를 맺도록 하나님께서 은혜 베푸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