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01-16 감리교여성신문 창간기념예배 설교
희망을 주는 여성들
로마서 16:1-4
하나님의 은혜와 평화가 함께 하시길 축원드립니다.
새해에 하나님께서 우리 감리교 여성들에게 복을 주셔서 <감리회 여성신문>을 창간하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신문을 보니까 감리회 여성들의 조직이 참으로 다양하고, 활동이 활발하더군요.
올해도 여러분들이 모든 분야에서 커다란 진보가 있고, 특히 내 주장에 앞서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잘 수행하여, 모두가 승승하는 통합의 한 해가 되기를 부탁드립니다.
교육국에 양성평등위원회를 조직하였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과거는 물론 현재에도 여성들은 가부장적 권위주의 때문에 차별된 대우를 받고 있습니다. 물론 1977년 1차 가족법 개정으로부터 최근 2005년 3월 호주제 폐지에 이르기까지 여성들에 대한 차별이 점점 사라지고, 양성평등은 이젠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시대적 대세가 되었습니다.
이젠 교회도 달라져야 할 것입니다. 제가 지난 해 여선교회전국연합회 행사에 가서 “암닭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는 속담을 비틀어서 “암닭이 울면 알을 낳습니다”라고 했더니 여선교회 회원들이 뜨겁게 박수를 치며 좋아하더군요.
그런데 여성의 지위가 저절로 자라나지는 않습니다. 결코 남성들이 나서서 도와주지도 않습니다. 결국 여러분이 각성하고, 주인이 되어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사실 여전히 이러한 문제의식 속에서 각성을 한 사람들은 소수에 불과합니다. 때로는 여성지도자들 속에서 남성 못지않은 권위주의와 독점욕을 지니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제 여러분은 여성들의 지도력을 키워가기 위해 먼저 여성들 간에 서로 협력하고 돕는 가운데, 여성들의 지도력이 훨씬 시대정신에 맞고, 평화 지향적이며, 공동선에 합당하다는 것을 우리 모두에게 보여주어야 할 것입니다.
로마서에 따르면 많은 여성들이 재정적 후원자로서 또 동역자로서 사도 바울의 선교사업에 함께 하였음을 보여줍니다.
본문은 그 중에 겐그레아 교회의 지도자 뵈뵈와 모든 이방인 교회의 어머니라 할 만한 브리스길라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특별하게 천거하는 뵈뵈는 로마 교회를 방문하는데, 그는 당시 남자에게만 주어진 ‘디아코논’의 직분을 맡았고, 또 보호자, 후원자라 할 수 있는 ‘프로스타티스’의 역할도 책임지고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브리스길라는 남편 아굴라와 함께 바울의 동역자중 대표적인 여성이었습니다. 아볼로가 에베소에서 전도할 때 그를 집으로 데려가 하나님의 가르침을 더 자세히 설명해 준 일화는 대단히 유명합니다. 바울처럼 천막을 만드는 일을 했던 아굴라 부부는 사도행전과 로마서에 모두 여섯 번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네 번이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로 부인이 남편 보다 먼저 언급되었습니다. 아마도 브리스길라의 활동이 주도적임을 강조하고 있다고 봅니다.
오늘 교육국이 중심이 되어 양성평등위원회가 조직되었습니다. 매우 고무적이 일이고, 아마 한국 교계에서 가장 앞서가는 시도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양성평등은 우리 시대의 주요한 의제가 되었습니다. 이 주제는 의도적으로 제도를 개선하고, 법을 고쳐서도 가능하지만 이미 우리 안의 조화를 맞추어 가는데서 부터 가능하다고 봅니다.
정신분석학자 칼 구스타프 융에 따르면, 그는 한 사람이 제대로 된 인격을 갖추려면 남성적 요소와 여성적 요소가 적절하게 균형을 이루고 있어야 한다고 말하였습니다. 남성에게는 여성적 요소가 어느 정도 있어야 하고, 여성에게는 남성적 요소가 어느 정도 적절하게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융은 남성에게 있는 여성적 요소를 아니마, 여성에게 있는 남성적 요소를 아니무스라고 불렀습니다. 여성적 요소인 아니마는 관계 중심적 성향을 말하는데, 남을 배려하고 남을 위로하고,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요소입니다. 반면, 아니무스는 목적 중심적 성향으로, 무엇인가 추진력 있게 일을 해나가면서 다른 것은 생각지 않고 목적을 향해 나가는 요소를 일컫습니다.
융에 따르면 남성이든 여성이든 간에 아니마와 아니무스가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었을 때에 올바른 인격을 갖고 살아갈 수 있다고 합니다. 남성들에게는 관계 중심적인 여성적 요소가, 또 여성들에게도 목적 중심적인 남성적 요소가 그 만큼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에 아름다운 인격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고, 저는 양성평등의 조화도 가능해진다고 믿습니다.
무엇보다 <감리회 여성신문>이 이러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매개가 되길 바랍니다. 저는 여성 여러분이야말로 감리교회의 선한 청지기일 뿐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희망’이라고 믿습니다.
부탁드리는 것은 저는 <감리회 여성신문>이 또 하나의 신문을 넘어서기를 바랍니다. 언론은 홍수이지만, 언로는 차단된 현실에서 참된 말길을 만들고, 진실한 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그런 창구가 되길 바랍니다. 또 여성들만의 벽을 쌓는 신문이 아니라, 세상과 만나고 이해시키는 다리가 되길 기대합니다. 무엇보다 감리교회를 감리교회답게 하고, 우리 사회에 대해 바르게 성찰하고 참여하는 매개로 성장하기를 부탁합니다.
그런 감리회여성신문일 때, “소리는 많으나 음성은 적”은 오늘, 참된 “희망”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땅의 여성과 남성들을 사랑하시고, 올해도 크게 복을 주셔서, 양성평등의 삶이 보다 구체적으로 살현 되는 한 해 되기를 간절히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