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제일교회 120주년 기념예배 설교(10월 9일)
희망으로 세워진 교회
행 9:26-31
한국 감리교회 초대 교회인 정동제일교회의 창립 120주년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하나님께서 이 교회에 은혜를 베푸셔서, 한국감리교회 모교회로서 온 감리교회에 희망을 주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120년 전 부활주일에, 이 땅에 복음의 씨앗이 뿌려졌습니다. 한국 땅에 복음을 처음 전한 사람은 정동제일교회의 초대 담임목사가 된 27세의 미국인 아펜젤러 목사였습니다. 그는 뜨루 신학대학을 졸업하고, 갓 안수를 받은 젊은이였습니다.
푸른 눈의 젊은 목사가 19세기 말, 거의 무너져 내리던 조선을 어떻게 바라봤을까 하는 상상을 해봅니다. 그가 절망에 처한 우리 민족을 향해 어떤 마음으로 복음을 전했을까 생각하면 아펜젤러 목사가 참 고맙습니다.
아펜젤러 목사는 우리 민족의 희망이 된 분입니다. 그의 보고서와 일기, 편지들이 하나의 역사가 되었습니다. 또한 그가 세운 정동제일교회는 희망으로 세워진 교회입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이 정동 땅을 우리 민족 구원을 위한 희망의 돌베개로 삼으셨습니다.
기록에 보면 아펜젤러가 처음으로 세례를 베푼 한국인은 1887년 7월 배재학당 학생 박중상과 10월에 한용경입니다. 또 로스가 데려온 최성균을 매서인으로 채용하여 황해도와 평안도에 파송하였습니다.
점점 교인이 늘자 아펜젤러는 매서인의 살림집 겸 개종한 학생들의 성경공부방으로 ‘서울 남쪽’에 집 하나를 마련하고 이 집을 ‘베델 예배당’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리고 이곳에서 한국인들을 위한 예배를 처음 시작하였는데, 그 날이 1887년 10월 9일 오후라고 전해집니다. 오늘은 마침 벧엘 예배당에서 첫 예배를 드린 날과 일치합니다.
아펜젤러 선교사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나는 10월 9일 성서 사업을 위해 구입한 집, 베델에서 오후 예배를 시작했다. … 첫 예배를 드릴 때 한국인 네 명이 참석했는데, 매서인 두 명과 구도자이자 진리를 믿는 최씨 부인과 강씨가 그들이다. 우리는 조선식으로 앉아 예배를 드렸는데, 내가 (영어로) 기도하고, 함께 마가복음 1장을 읽은 후 매서인 장씨가 끝기도를 드렸다.
그날 모임은 우리 모두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고 나는 이 모임이 훌륭한 인재들을 길러내는 구심점이 되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간절한 기도를 드렸다.”
아펜젤러의 기도는 하란으로 길을 떠나며 야곱이 베델에서 드렸던 기도,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집이 될 것이요”(창 28:22)라는 서원 기도와 다름없습니다. 바로 그 방에 쌓았던 기도의 제단이 한국 감리교회의 모 교회인 정동제일교회의 출발이 되었고, 온 누리에 현재 5,619개 감리교회로 자라났기 때문입니다.
오늘 사도행전 9장의 본문은 처음 교회의 모습입니다. 한국교회의 출발점을 위해 아펜젤러와 한국인 매서인 등 여러 동역자들을 불러내신 것처럼, 이방 지역에 세워진 초대 교회인 안디옥교회를 위해 하나님께서는 바울과 바나바와 같은 사람을 준비하셨습니다.
초대교회를 살펴보면 하나님께서 사람을 불러 사용하시는 일이 참으로 신비합니다. 그 중에 바나바는 적대자 사울을 신앙공동체 안에 형제로서 받아들인 장본인입니다.
바나바는 희망을 위해 일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바나바는 믿음과 성령이 충만했고, 교회 일이라면 결코 인색하지 않았습니다. 바나바는 초대교회, 특별히 이방선교에 있어 중요한 사역자였습니다. 물론 베드로와 바울처럼 무대의 전면에 나섰던 주인공은 못되었지만, 바나바가 없는 초대교회와 이방선교는 매우 힘들었을 것입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정동제일교회를 희망을 주는 교회로 세우시기 위해 이런 바나바들을 예비해 두셨음을 믿습니다. 바나바처럼 자신을 던지며 헌신하는 여러분을 통해 정동제일교회는 초대교회처럼 선교의 큰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성경은 ‘든든히 서 가는 교회’의 모습을 들려줍니다. “그리하여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 가고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수가 더 많아지니라”(행 9:31).
저는 이 말씀이 정동제일교회의 역사요, 동시에 비전이 되기를 간절히 축원드립니다.
교회가 든든해지려면 제도적인 골격도 중요하고, 경제적인 뒷받침도 튼튼해야 합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 교회를 구성하는 지체 사이에 화목하고, 협력하며, 서로를 섬기려는 사람일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뜻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모여서 예배드리고, 경제적으로 내 것 네 것 없이 모든 것을 유무상통하며, 서로 사랑하고 도와주며, 찬송하고 기뻐하였습니다. 그들은 성령의 역사를 통해서 그리스도와 만났습니다. 성령을 통해 그리스도와 내가 만남의 관계를 이루고, 신비로운 생명의 관계를 이루면서 교회가 날로 성장해 갔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역사, 내가 죽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역사가 나타나는 곳, 그곳이 바로 초대교회였습니다. 이처럼 그리스도가 살아 계신 곳, 그런 교회는 큰 기쁨이 넘치고, 찬양이 우러나오게 마련인 것입니다.
어느 신문기자가 구세군의 창시자 윌리엄 부스에게 “다가오는 미래에서 가장 큰 위험은 무엇입니까?”하고 물었습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습니다.
“교회가 이 세상에서 중생 없는 용서를 말하는 철학적 기독교와 그리스도 없는 기독교를 소개하는 것이요. 성령 없는 종교, 하나님 없는 정치, 지옥 없는 천국을 소개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정동제일교회가 걸어온 길이나, 앞으로 걸어갈 길은 모두 하나님을 전심으로 추구하는 길이요, 반석 위에 집을 짓는 과정이었습니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더욱 사랑하고, 주님의 명령에 더욱 충성하시길 부탁드립니다.
잠시 120년 전으로 돌아가 봅시다. 갑신정변의 여파로 서울 분위기는 외국인들에게 호의적이지 않았습니다. 쇄국정책을 썼던 당시 조정은 서양 종교가 들어오는 것을 원치 않았으므로 단지 교육과 의료 사업만을 허락 받았으며, 직접적인 복음전도는 금지된 상태에서 일해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교사들과 한국 초대교회는 전국 각지에서 복음전도와 교회설립에 헌신하였습니다.
지금 우리는 120년 전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최상의 선교 조건과 신앙의 자유를 지니고 있습니다. 최고의 예배시설과 넉넉한 재정을 자랑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은 우리 시대가 만든 것이 아닌 120년 전부터 뿌려진 씨앗의 결과이며, 아름다운 신앙의 유산과 전통입니다.
정동제일교회가 12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것과 함께, 우리가 지금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명령에 충성하고 있는지, 이 시대의 등불로서 민족과 하나님 나라를 위해 얼마나 헌신하고 있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러한 역사적 토대 위에 우리 자신의 현대사를 써야 합니다. 역사학자 E.H 카는 “역사는 언제나 다시 쓰는 현대사이다”라는 말을 하였습니다.
정동제일교회는 개체 교회 하나가 아닙니다. 한국감리교회 온 교회의 시작이 된 교회요, 야곱의 베개돌과 같은 교회입니다. 아펜젤러로부터 시작된 감리교회 복음 전도의 역사는 정동제일교회를 비롯한 모든 한국감리교회의 공통된 역사입니다. 이 자리에 앉아계신 여러분 자신이야말로 아펜젤러와 초대 교인들이 베델 예배당에서 처음 예배드릴 때 “훌륭한 인재들을 길러내는 구심점이 되게 해달라”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한 기도의 열매들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그러기에 이 교회와 여러분은 온 감리교회의 유산입니다.
희망으로 세워진 정동제일교회 성도 여러분!
우리가 먼저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으니,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갑절로 충성을 다합시다. 이 교회를 통해 훌륭한 제자를 양성하고, 이웃에게 복음을 증거하고, 민족의 평화를 위해 봉사하는 일은 마땅히 행할 일이며, 주님께서 기뻐하실 것입니다.
어느 오랜 역사를 가진 교회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예배 후에 교회 식당에서 점심을 먹는 데 기다리는 사람이 많아 아주 복잡하였답니다. 마침 이 교회에 처음 나온 부부가 있어, 음식을 받아서 서성거리다가 마침 빈 자리가 있어 겨우 앉았더니, 옆 자리에서 어느 노인분이 “그 자리는 우리 손자 며느리네 자린데..” 하더랍니다. 멋적어 하면서 다시 밥그릇을 들고 일어난 새 신자 부부가 그 전통을 자랑 하는 교회의 새 식구가 되었을까요?
제 생각에 적어도 정도제일교회는 스스로 자수성가한 것처럼 자부하는 요즘 교회들처럼 “우리 교회, 우리 교회”하는 식의 교회이기주의가 있어서는 안됩니다.
여러분이 하는 만큼 온 감리교회가 따라 합니다. 정동제일교회가 전도하고, 봉사하고, 교육하고, 나누고, 섬기는 만큼 온 감리교회가 배울 것입니다. 그러니 정동제일교회가 잘해야 합니다. 여러분의 교회가 아브라함처럼 복의 통로가 되고, 여러분의 교회가 야곱처럼 복을 나누어야 합니다.
그래서 희망으로 세워진 정동제일교회가 이 시대에도 “희망을 주는 정동제일교회”가 되시길 기대합니다.
우리 감리교회는 ‘희망을 주는 감리교회’라는 표어를 내 걸었습니다. “그러니 너희는 하나님께로 돌아오너라. 사랑과 정의를 지키며, 너희 하나님에게만 희망을 두고 살아라.”(호 12:6)
지금 사람들이 가장 목말라하는 것은 희망입니다. 우리 주변에서 희망을 찾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가장 목말라 찾는 것은 하나님입니다. 모든 희망의 원천이요, 우리에게 복을 주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바울 사도는 로마서 15장 13절에서 “희망의 하나님께서 믿음에서 오는 온갖 즐거움과 평안을 여러분에게 충만하게 주시고, 성령의 힘으로 희망이 여러분에게 차고 넘치게 해 주시기를 바란다”고 하였습니다.
그러기에 우리 그리스도인은 희망의 사람들입니다. 믿음으로 사는 우리는 거룩한 꿈을 꾸는 사람들입니다. 믿음은 희망의 새날을 예비하는 하나님이 주시는 능력입니다. 존 번연은 “믿음이 건강할 때는 희망도 결코 병들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정동제일교회 교우 여러분!
우리의 참 희망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함께 붙잡고, 희망을 주는 교회, 희망을 만들어 가는 성도가 되기를 위해 새롭게 결단합시다.
그래서 120년의 연륜과 역사를 맞는 정동제일교회와 여기에 모인 성도님들 모두가 희망의 창조자, 희망의 메신저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