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지역 3.1절 기념예배(2월 27일)
자유케 하시는 하나님
누가복음 9:28-36
할렐루야!
오늘 원주지역 3.1절 기념예배에 참석하신 여러분께 하나님의 은혜와 평화가 함께 하시길 빕니다.
제가 첫 목회를 시작한 곳이 당시 동부연회였는데, 동부연회 본부가 소재한 원주에 초청받아 여러분을 뵙게 된 것을 대단히 기쁘게 생각합니다.
올해는 감리교회 선교 120주년입니다. 원주는 원주제일감리교회를 모태로 하여 감리교회의 선교와 부흥에 중추적 역할을 담당했던 지역입니다. 저는 원주지역에서 감리교회들이 고르게 성장하며, 서로 유기적 관계를 맺으며 지역사회를 위해 큰 기여와 봉사를 하고 있다고 듣고 있습니다.
특별히 오늘은 교회가 정한 3.1절 기념주일입니다. 우리 교회의 부흥과 발전은 아펜젤러를 비롯한 초기 선교사들과 같은 씨앗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또한 하나님을 믿는 신앙으로 우리 민족을 위해 땀과 눈물로 희망의 씨앗을 뿌린 선배들이 존재했기에 지금 우리가 열매를 거둘 수 있는 것입니다.
이제 3.1절 86주년을 맞아 원주지역에서부터 새로운 독립운동을 꿈꾸시기를 바랍니다. 또 여러분 각자가, 또 교회마다 우리를 사로잡고 있는 모든 사슬로부터 자유와 해방을 계획하고, 경험하시길 바랍니다. 그것은 하나님 안에서 누리는 진정한 평화이며, 영적인 해방일 것입니다.
삼일 만세 운동에 얽힌 흥미로운 일화가 있습니다.
충청도 음성에서 만세를 부르던 농부가 체포되어 문초를 받았습니다. 형사가 뭐라고 물어볼 때마다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오직 “조선독립만세”뿐이었습니다. 화가 난 형사가 매질을 하는데, 뺨을 쳐도 “조선독립만세”, 가슴을 쳐도 “조선독립만세”, 몽둥이로 때려도 “조선독립만세”였습니다. 그는 매를 맞을 때마다 어김없이 “조선독립만세”를 외쳤습니다.
형사가 기가 막혀 잠시 매질을 멈추고 내려다보자니 농부가 말했습니다.
“아이고, 사람 죽겠소. 그만 좀 때리시오.”
“이놈아, 네가 조선독립만세를 자꾸 부르니까 때리는 게 아니냐?”
“그게 아니오.”
“아니라니?”
“당신이 자꾸만 때리니까 내 입에서 조선독립만세가 나오는거요.”
“이놈아, 그게 무슨 소리냐?”
“시방 내 몸에는 온통 조선독립만세가 가득 차 있어서 당신이 때릴 적마다 그놈이 밖으로 튀어나온단 말이오. 그러니 제발 좀 나를 건드리지 마시오. 당신 때문에 나도 죽겠소.”
이쯤은 돼야 참다운 소명이라고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본문은 예수 그리스도의 변화산 사건입니다. 누가복음에 따르면 변화산 사건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고난과 부활에 대한 첫 번 째 예고를 한 다음에 일어난 것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불과 8일 전에 주님께서는 고난과 죽음, 사흘만의 부활을 말씀하시고, 무리를 향해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쫓을 것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변화산 사건을 눈여겨봅시다. 예수님께서 제자 베드로,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고 산에 올라가서 기도하실 때에 갑자기 신비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기도하실 때에 주님의 용모가 변화되고, 그 옷이 희어져 광채가 난 것입니다. 더욱 놀라운 일은 문득 두 사람이 나타나 예수님과 대화하는 장면입니다. 그들은 히브리 민족의 위대한 지도자와 예언자인 모세와 엘리야였습니다. 흥미를 끄는 것은 예수님과 두 사람이 나눈 말씀의 내용입니다.
누가복음 9장 31절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영광 중에 나타나서 장차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것을 말씀할 쌔”. 여기에서 ‘별세’란 무엇일까요? 우리는 이 낱말을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당할 죽음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물론 십자가 사건을 가리키지만, 죽음이란 의미는 아닙니다. 누가복음은 이 낱말을 분명하게 사용하는데 바로 ‘엑소더스’입니다. 엑소더스란 무엇일까요. 바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탈출하여 해방된 역사적인 사건, 출애굽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께서 십자가 사건을 통해서 새로운 ‘엑소더스’를 계획하고 계신다는 뜻입니다. 그것은 이스라엘 민족의 출애굽에 국한하지 않고, 온 인류에게 해당하는 출애굽 사건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당신의 죽으심을 통해 새로운 엑소더스를 이끌고 계심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 말씀을 듣고 베드로가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라고 말한 것은 바로 주님이 이끄시는 엑소더스에 대한 주저함이었습니다. 물론 아직 베드로는 십자가의 의미도, 주님이 이끄시는 새로운 해방도 모른 채 하는 말이었습니다. 우리도 그렇지 않습니까? 자주 주저하고, 자주 머물고 싶고, 자주 안주하고 싶은 것이 우리들의 마음입니다.
성경은 위대한 하나님의 해방을 기록합니다. 첫 번 째 엑소더스는 애굽에서 종살이하고, 억압받던 히브리인들이 가나안으로 출애굽 한 것입니다. 그리고 두 번 째 엑소더스는 바벨론 포로귀환 사건입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엑소더스는 바로 하나님의 엑소더스, 즉 십자가 사건입니다. 주님의 십자가는 우리로 하여금 끊임없이 너희의 속박을 벗어나라, 너희를 옥죄는 죄의 올가미로부터 해방하라고 명령하십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엑소더스를 초대교인들은 이렇게 고백하고, 찬양하였습니다. 빌립보서 2장 6절에서 8절까지 말씀입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어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서 죽으심이라”.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3.1절 기념예배를 드리면서, 여러분은 어떤 엑소더스를 계획하십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은 슬픔으로부터 탈출, 가난으로부터 탈출, 고난으로부터 탈출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엑소더스를 계획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하나님이 보시기에 진실하고 아름답겠습니까?
미국에 사는 동포 가운데 일제 시대 때 경도대학 법학부를 나온 분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는 유복하여 물려받은 재산도 많았습니다. 늘 <기독교 사상>을 탐독했다는 그는 웬만한 목회자는 시시하게 여기고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현실교회에 대해 매우 비판적인 생각을 지녔지만, 그렇다고 자신은 교회활동이나, 봉사와 헌신에 대해서 별로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평생 직업을 가져본 적도 없습니다. 미국에 이민 온 사람들이 으레 일하는 세탁소, 청과물 가게, 신발수선이든 어느 직업도 가져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 일을 하기에 자기 자신은 너무 아까운 존재였기 때문입니다. 심심하다보니 도박장에 들락거렸고, 이젠 유산도 거덜이 나고 말았습니다. 때늦게 아내가 세탁소에서 일하면서 근근히 살림을 꾸려나간다고 하였습니다. 그가 자랑하는 경도대학 법학부 졸업장이 결국 그의 인생을 망치고 말았습니다. 자신의 삶에서 엑소더스 해야 하는데, 자기 현실에 머무른 결과입니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사람들은 어떻게 달라졌는지 변화에 눈을 감으면 정체되기 마련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도 주위 강대국에게 끊임없이 시달렸고, 결국 식민지 상황을 겪기도 했습니다. 수난과 핍박을 당했으나 그럼에도 하나님께 선택받은 민족이라는 강렬한 사명감으로 가득하였습니다. 고난을 뛰어 넘은 희망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엑소더스를 노래합니다. “영영한 희락을 띠고 기쁨과 즐거움을 얻으리니 슬픔과 탄식이 달아나리로다”.
우리 민족도 오랜 세월동안 고난과 핍박을 받았습니다. 이민족의 침략, 일제 식민지 지배, 분단과 군사독재의 폭력성은 쉴 날 없이 계속되었습니다. 함석헌 선생은 <뜻으로 본 한국역사>라는 역사책에서 우리 민족을 가리켜 수난의 여왕이라는 별명을 붙였습니다. 그는 우리 민족의 경우를 말하면서 우리는 왜 이스라엘의 예언처럼 초월적 꿈이 없는가, 비전 창조에 실패하였는가를 호되게 묻고 있습니다. 그는 고난의 민족인 우리에게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우리가 물어야 함을 일깨우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은 어떤 꿈을 꾸고 있습니까? 여러분의 교회는 어떤 비전을 창조해 가고 있습니까? 생각만 해도 가슴이 펄펄뛰는 꿈이 있습니까? 하나님을 향한 경건한 감동이 있습니까? 어떠한 엑소더스를 계획하며 목숨을 걸고 준비하고 있습니까?
정초에 반가운 소식이 있었습니다. 자랑스런 우리 감리교인 최용신 선생이 2005년 1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된 것입니다. 국가보훈처와 광복회, 독립기념관이 공동으로 뽑은 선생의 공적은 농촌계몽과 조국 독립을 위한 헌신이었습니다.
최용신 선생은 심훈의 소설 <상록수>에 등장하는 채영신으로 더 잘 알려져 있습니다. 농촌계몽을 다룬 상록수는 당시 동아일보에 연재되어 일제강점기에 농촌사업과 민족주의를 고무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그녀는 현재 감신대인 협성여자신학교학생이었습니다.
최용신 선생은 1931년 10월부터 YWCA 농촌지도원으로 화성군 반월면 샘골에 파견되었습니다. 그는 이곳에서 예배당을 빌려 강습소를 개설하였고, 어린이와 청년, 여성을 대상으로 문맹퇴치 활동을 벌이는 한편 생활개선 작업에도 앞장섰습니다. 문화관광부 기록에 따르면 최용신은 천곡강습소의 교장 겸 교사로, 주부회 지도자로, 마을 청년회의 후원자로 그리고 천곡교회의 종으로 일했던 산 선지자였다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최전도사는 겨우 26살의 나이로 샘골에서 숨졌고, 정부는 199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습니다.
나는 최용신의 상록수 정신, 아름다운 신앙의 유산이 여러분과 이 지역 교회를 통해 계속 이어지기를 부탁드립니다. 최용신의 나라 독립을 위한 기도가 여러분의 민족 복음화와 평화 통일을 위한 기도 속에서 이루어지기를 기대합니다. 최용신의 믿음과 희망이 우리 민족과 이 역사 속에서 부흥의 열매로 결실되기를 기원드립니다.
저는 감리교회가 역사적이며, 민족의 고난에 함께 했다고 평가를 듣는 것은 최용신 선생과 같은 사랑의 희생 덕분이라고 믿습니다. 우리 감리교회가 희망을 주는 교회로 제 2, 제 3의 엑소더스를 꿈꾸며 거듭나려고 준비하는 것도 이미 희망의 씨앗을 뿌렸던 선배 감리교인의 수고 때문임을 믿습니다.
우리의 신앙의 근거인 십자가는 영원히 푸른 상록수이며, 십자가를 넘어 부활의 믿음은 영원히 변치않는 희망의 근거입니다. 이 사순절기에, 십자가를 사랑하는 여러분의 예수 사랑하는 마음이, 3.1 독립정신을 계승하여 주님과 함께 새로운 엑소더스로 나아가기를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