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12-27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마 5:9)
하나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길 바랍니다. 오늘 희망이 넘치는 성탄절기에
평화통일교회를 창립하게 된 것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주님의 교회가 세워지는 일은
특별한 사건인데, 탈북자들을 위한 선교센터로서 역할을 하게 될 평화통일교회가 세워진다니
하나님께서 크게 기뻐하실 것입니다. 서부연회의 10년 결실입니다.
또 서울남연회 양천지방에도 아름다운 소식입니다. 주님의 일에 수고하신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평화통일교회가 세워져 이 땅에 찾아와서 우리와 함께 살게 된 탈북자 형제자매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누게 된 것은 참 다행한 일입니다. 그들에게는 피난처요, 고향집과 같은
교회가 될 것입니다. 이 교회를 개척함으로써 복음의 문이 닫힌 북녘 땅에도 예수 그리스도의
평화의 복음을 자유롭게 전해질 날이 곧 다가오리라 믿습니다.
몇 해 전부터 북한을 탈북 하는 사람들이 크게 늘고 있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보도에 따르면
수 만 명이 중국을 떠돌고, 한국에 들어온 이들만 7천명을 넘어섰다고 합니다. 곧 만 명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입니다. 우리는 이들의 고생과 고통을 짐작하기 어렵습니다. 고향과 가족을
떠나야 하는 이유가 무엇이든 그들은 인생에서 최대의 난관과 고비를 맞기를 자처한
사람들입니다. 한국 땅에 입국하기도 바늘구멍이었지만, 앞으로 이 땅에서 살아가는 일도
막막하기 짝이 없을 것입니다.
통일부 국정감사자료에 따르면 탈북자 대다수가 사회환경의 급격한 변화로 다양한 부적응증을
앓고 있다고 합니다. 그들은 한국사회가 자신들에 대해 편견을 갖고 있으며, 이등국민 취급을
하고 있다고 느낀다고 합니다.
지난 분단 세월 60년을 회상해 본다면 당연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우리에게도 격세지감입니다.
사실 지난 15여 년 동안 한국사회에 찾아온 동남아의 외국인노동자들을 우리가 어떻게
대했는가를 돌아보면 이들이 겪은 불편함과 어려움은 불보 듯 분명한 일입니다.
문득 하나님께서 이렇게 일하시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반도라는 지리적조건과
남북분단이라는 정치적 환경 때문에 우리 한국사회는 주변에 이웃다운 이웃이 없었습니다.
사회주의 중국은 이념적으로도, 오랜 역사적 경험으로도 우리와 친구가 되기 어려웠고,
더더구나 여전히 식민경험이 한으로 남아있는 일본과 이웃이 되기는 더 불가능합니다.
그런데 낯선 외국인들이 우리를 찾아왔고, 우리는 어쩔 수 없이 그들에게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수많은 선교사들이 찾아가고 교회가 개척되었으며, 또 이 땅에는 외국인
노동자들을 돕는 교회들이 늘어났습니다.
평화통일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평생 열릴 것 같지 않았던 북한에 대한 선교는 탈북자와
만남으로 조금씩 실마리를 풀어 가고 있습니다. 탈북자들은 북한 사회를 이해하는데 비록
부분적이긴 하지만 시금석이 될 것입니다. 특히 이 교회의 개척자요, 초대 담임자인 강철호
전도사님은 감리교신학대학교와 대학원 등 6년 동안 정규신학과정을 마친 최초의 탈북
목회자입니다. 특히 우리 감리교회의 평화통일선교를 위해,
이 시대에서 그 자신만이 감당할 수 있는 특별한 부르심을 받은 것입니다. 이제 공교회로서
창립하는 이 교회가 민족복음화의 소명에 충실하도록 우리 모든 감리교회가 힘껏 기도하고
사랑으로 동역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의 산상수훈의 첫머리입니다. 팔복에 대한 말씀은 장차올 메시아 왕국의
새로운 기준을 들려줍니다. 특히 화평케 하는 자의 복은 다른 복들에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가장 크고 위대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화평케 하는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 될 것이라고 주님은
약속하십니다. 화평케 한다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화평에 속한 사람이 아니라 화평을
만들어 가는 사람입니다. 화평(에이레네)은 히브리어 샬롬과 견줄 수 있는 말인데 개인의
안녕과 국가 간의 평화는 물론 근본적으로는 하나님과 관계회복을 통한 궁극적인 평화실현을
의미합니다.
저는 평화 통일교회가 화평케 하는 자의 교회가 되길 부탁드립니다. 오늘 우리 시대에 교회는
산상수훈의 말씀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리스도의 능력을 믿기를 즐거워하지만,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는 일을 멀리합니다. 교회가 성장하고 부흥하는 방법론을 가르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참 제자가 되는 삶을 깨우치는 것은 미미하기만 합니다. 평화를 간절히 원하지만
평화를 만들어 나가는 사람, 곧 피스 메이커가 없는 지금 현실에서 평화통일교회는 좋은
본보기가 될 줄로 믿습니다.
“세상에서 화평케 하는 일보다 하나님을 닮은 일은 없다”(브로우더스)는 말도 있습니다.
이 교회가 세워지는 목적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바로 화평케 하는 교회요, 그럼으로써
하나님의 자녀들을 만들어 내는 교회입니다.
요즘 사람들은 많이 “힘들다, 힘들다”고 합니다. 미국의 코뮤니케이션 이론가 스톨츠는
역경지수(AQ, Adversity Quotient)라는 용어를 만들어 냈습니다. 어려운 상황을 극복해 내는
능력을 말합니다. 앞으로 IQ보다 AQ가 인간의 능력을 가늠하는 잣대가 될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늘어갑니다. 사실 역경지수로 따지자면 탈북자들은 이미 잘 훈련된 분들입니다.
이제 그들의 고통과 시련에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가 더해지고,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고백이 어우러진다면 평화통일교회와 민족복음화에 대한 비전은 나날이 자라가고, 커갈 줄로
믿습니다.
평화통일교회는 교회의 선교 뿐 아니라 우리 민족 사이에서 화해자로 역할을 해야 합니다.
그것은 오늘 이 교회를 위해 기도하는 우리에게도 해당되는 권면입니다. 우리 보다 먼저
통일을 이룬 독일의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인 귄터 그라스는 2002년 서울을 방문하여 이런
문제점을 지적한 일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북한의 군사분계선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를 먼저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이렇게 오랜 세월 갈라져 있던 북한 사람들이 그 동안 무엇을 했으며,
여러분들이 그들의 어떤 점을 높이 평가해 줄 수 있는지 알아야 할 것입니다. 상대가 자신의
체면을 잃지 않도록 배려해 주는 것이 중요합니다.”그것은 하나님의 선교의 기본이 되는
충고이기도 한 것입니다.
오늘 평화통일교회를 창립하면서 “희망을 주는 감리교회”로서 우리 교회가 지녀야 할 시대적
소명을 다시금 생각합니다. 저와 여러분이, 또 감리회 본부와 오늘 창립하는 평화통일교회가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희망을 발견하고, 힘써 희망을 증거하며, 겸손히 희망을 나눔으로써
하나님 나라를 섬기는 귀한 청지기가 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