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10-09 영적대각성 100주년기념 학술대회 개회예배 설교
부흥을 사모하며
하박국 3:2
하나님의 은혜와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길 축원합니다.
오늘 ‘영적대각성 100주년기념 학술대회와 영성집회’를 개최하게 됨을 감사드립니다. 또한 중부연회가 좋은 후원자가 되고, 세 신학대학교 교수님들이 공동으로 협력하여 뚜렷한 학문적 업적을 이룬 모든 노력에 대해 크게 치하를 드립니다.
아무쪼록 오늘 이 학술대회와 영성집회를 통해 우리 교회와 이 세대를 새롭게 하고, 부흥시키는데 앞장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본문에 하박국 선지자가 활동하던 시대를 보면 밖으로는 이방 민족의 압제를 받아 기진맥진하여 죽게 되었고, 안으로는 신앙의 힘을 잃어 육신은 물론 영혼조차 가사 상태에 이르렀습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하박국의 마음은 말할 수 없이 안타까웠고, 살려 달라고 부르짖었습니다.
바로 그가 외치고 사모했던 “부흥케 하옵소서”란 본래 의미는 생명이 있게 해달라는 기도였습니다. 살았다 하는 이름은 있으나 내용이 없고, 형식은 갖추었으나 생명이 없으며, 몸은 있지만 운동력이 없는 산송장과 같은 자신을 하나님의 용광로에 녹여내어 새로운 나로 다시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근래 우리는 영적부흥이 필요하다는 말을 자주 듣습니다. 너도나도 부흥을 입에 올리고, 교단마다 100주년 대회를 계획하고 진행 중에 있습니다. 내적으로 영적 능력을 잃고, 외적으로 신앙의 영향력을 점점 상실하면서 위기의식을 느끼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진정한 부흥운동은 결코 구호에 그칠 수 없습니다. 그것은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가서 새로워지려는 영적 각성 운동입니다. 호세아 선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니 너희는 하나님께로 돌아오너라. 사랑과 정의를 지키며, 너희 하나님에게만 희망을 두고 살아라.”(호 12:6)
지난 121년의 선교역사를 보면 감리교회는 영적각성을 주도한 자랑스런 전통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디 선교사가 1903년 8월, 원산의 감리교 선교사집회에서 시작한 회개와 기도운동은 전국적으로 확산되어 마침내 1907년 평양에서 대부흥운동의 결과를 낳았습니다.
이것은 억압받는 조선민중이 예수 그리스도를 새롭게 알고 이해하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이것은 어느 교파에 국한되지 않고 한국교회를 새롭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백척간두의 위기에 처한 민족과 교회를 향해 희망이 되었던 신앙운동이었습니다.
우리 감리교회는 위대한 영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웨슬리 영성입니다.
웨슬리영성은 무엇입니까? 우리 감리교와 장로교는 서로 어떤 차이가 있느냐라는 이야기를 나눈 일이 있습니다. 한마디로 장로교는 ‘지키는’ 교회이고, 감리교는 ‘바꾸는’ 교회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장 칼뱅과 존 웨슬리의 차이이기도 합니다.
교리를 지키고, 제도를 지키고, 질서를 지키는 교회가 바로 장로교회입니다. 따라서 변화를 싫어하고, 보수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감리교회는 늘 새로워지는 교회입니다. 존 웨슬리는 영적으로 회심을 하였고, 성공회가 금지하는 옥외집회를 열었으며, 가난한 사람들에게 복음을 증거 하기 위해 낮아졌으며, 섬김의 공동체를 이루었습니다. 감리교회는 생명력이 있는 교회요, 가슴이 뜨거운 교회였습니다.
우리는 처음부터 희망의 공동체였고, 다시 ‘희망을 주는 감리교회’로 거듭나야 합니다.
영적각성운동은 참된 회개로부터 출발합니다. 오늘 우리는 마치 대단한 업적이나 이루어 놓은 양 하나님 앞에서 교만하고, 하나님의 것을 사유화하며, 스스로를 자랑하는 일에 익숙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역사 앞에서 우리가 바르게 행하지 못한 불순종은 얼마나 많았으며, 남의 티는 비난하면서도 내 들보를 회개할 줄은 몰랐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참회는 오히려 쉬운 일입니다. 그 다음에 변화되어야 한다는 사실은 더욱 어려운 일입니다. 영적각성은 결코 일회적인 사건에 그칠 수 없습니다. 그 각성에는 반드시 참된 실천이 뒤 따라야 하고, 그 회개의 열매로서 갱신의 삶이 요청됩니다. 한마디로 영적각성보다 영적각성의 실천이 더욱 중요한 문제입니다.
이제 존 웨슬리의 부흥운동이 18세기 영국을 변화시켰듯이, 20세기 초에는 하디 선교사가 영적 새바람을 통해 부흥의 기초를 쌓았듯이, 21세기 벽두에는 우리 감리교회가 앞장서서 새로운 부흥운동을 주도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지푸라기와 같은 우리를 통해 부흥운동의 불씨를 지펴주시길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