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 여러분께.
현재 ‘감리회소식’이 ‘자유게시판’처럼 사용되고 있습니다.
정치적 입장표명이나 감리회정책과 관계되지 않은 내용 등
‘감리회소식’과 거리가 먼 내용의 글은 ‘자유게시판’을 이용해주시기 바랍니다.

마가복음 20강: 세리와 죄인들과 식사하신 예수(막 2:15-17)

작성자
최세창
작성일
2012-06-06 13:07
조회
2299
다. 세리와 죄인들과의 식사<2:15-17>

<비교: 마 9:10-13, 눅 5:29-32>

이 기사는 여기서부터 새로운 내용을 담고 있다. 마가는【15】그의 집에 앉아 잡수실 때에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예수와 그 제자들과 함께 앉았으니 이는 저희가 많이 있어서 예수를 좇음이러라라고 하였다.

그의 집에 대해 (1) 예수님의 집이라는 설(F. C. Grant, “Holtzmann, Meyer”1)), (2) 베드로의 집이라는 설(山口 昇), (3) 레위의 집이라는 설2) 등이 있으나, 병행구인 누가복음 5:29의 “레위가 예수를 위하여 자기 집에 큰 잔치를 하니······”를 보아 대다수 학자들의 견해인 (3)설을 취해야 할 것이다.

레위 곧 마태는 예수님의 제자가 된 후에 예수님을 자기 집에 모시고, 전에 사귀던 사람들을 초대하여 대대적인 송별회를 열었다.3) 이런 점을 미루어 보아 그가 감사할 줄 아는 부자이었음에 틀림없다.

잔치를 벌인 레위에게 있어서 그들을 대접하는 것보다 더 큰 목적은 그들로 하여금 예수님을 만나게 하는 복음 선교이었다.4) 세리들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 중에는 초대는 받지 않았지만, 예수님의 이적과 말씀을 사모하는 마음 때문에, 혹은 호기심 때문에 찾아온 사람들도 있었다. 또한, 예수님을 책잡기 위해서 온 종교 지도자들도 있었다.

세리와 죄인들의 후자에 대해 범죄자가 아니라, 율법을 바리새인식으로 지키지 않는 사람들[‘땅의 백성들’이라 일컬어졌다]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하는 학자들이 있다(W. Hendriksen, W. L. Lane, 山口 昇). 그러나 범죄자나 부도덕한 사람들을 제외시킬 필요는 없다. 아무튼, 그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1) in E. P. Gould.
2) J. Wesley, M. Henry, H. Alford, W. W. Wessel, E. Bickersteth, D. W. Burdick, C. R. Erdman, W. Hendriksen, “Bruce, Taylor, Vincent”(in 이상근), W. Barclay, E. P. Gould, W. L. Lane, C. E. G. Swift. J. Gnilka, p. 133.
3) J. Gnilka, W. Barclay, W. Hendriksen, C. R. Erdman, E. Bickersteth, W. W. Wessel, M. Henry, W. L. Lane, R. A. Cole.
4) A. E. Sanner, W. W. Wessel, R. A. Cole, C. E. G. Swift.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은 “일반인들, 특히 바리새인들이나 서기관들에 의해서 이방인 취급을 받았다. 엄격한 율법 준수자들은 그들과는 식탁을 같이하지 않았고, 여행도 사업도 같이하지 않았다. 딸을 그들 중 어떤 사람에게 주는 것은 야생 동물에게 주는 것만큼이나 나쁜 일이었다”(W. Barclay).

그러한 전통과 관습을 초월한 예수님의 태도는, 예수와 그 제자들과 함께 앉았으니라고 한 말로 알 수 있다. 앉았으니는 카타케이스타이(κατακείσθαι)이며, 유대인의 식사 자세인 비스듬히 누워 음식을 잡수셨다는 뜻이다. 스위프트(C. E. G. Swift)는 “동방에서 식탁이란 가장 가까운 교제의 장소로 간주되었다.”라고 하였다.

예수님을 좇는 많은 세리와 죄인들과 식탁을 같이한 예수님의 행동은, 그릇된 전통과 관습에 대한 혁명적인 도전인 동시에 모든 사람에 대한 차별 없는 사랑을 드러내신 사건이었다.

그러한 예수님의 행동이 이내 서기관들의 분노를 불러일으킨 사실에 대해, 마가는【16】바리새인의 서기관들이 예수께서 죄인과 세리들과 함께 잡수시는 것을 보고 그 제자들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먹는가라고 하였다.

바리새인의 서기관들(οἱ γραμματείς τών φαρισαίων)은 א, Δ, L, B, W 사본 등을 따른 것이고; A, C, D, K, Θ, Π 사본 등에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οἱ γραμματείς καὶ φαρισαίοι)로 되어 있다. 사본들의 가치상 전자를 취해야 할 것이다.

바리새인(Φαρισαίων) 곧 {바리새파의 기원에 대해 요세푸스(Josephus)는 한 곳에서는(Ant., 13. 5. 9, sect 171-3) 요나단 시대(주전 160-143년)에 존재하고 있었다고 하였고, 다른 곳에서는(Ant., 13. 10. 5-7, sect. 288-99) 그들이 역사상에 처음으로 등장한 것은 힐카누스(혹은 탈무드에 나오는 Jannaeus)와 갈등이 있을 때였다고 하였다. 그들은 약 3세기 동안 막대한 영향을 끼쳤으며, 이후의 유대교 형태를 결정함에 있어 다른 어떤 종파보다도 더 많은 역할을 하였다. 그들의 정신적인 계통을 찾는다면 핫시딤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할 것 같은데, 이 핫시딤이 독립투사인 마카비를 지지함으로써 자유를 향한 그들의 노력에 종교적인 뒷받침이 되었다. 그들은 본래 정치적인 단체가 아니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고 종교적인 한 종파였다. 그들 대부분은 사회적으로 볼 때에 중간 계급 출신들로 이루어졌으나, 공동체 안에서 종교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점점 더 강력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바리새란 명칭에 대하여 ‘해설자’(구전 율법의 일로 성서를 해설하는 사람), 또는 ‘분리주의자’(부정한 일들로부터 성별되었다거나, 혹은 산헤드린에서 추방당했다는 의미에서) 등등의 해석이 있다. 맨슨(Manson)은 바리새라는 명칭은 ‘페르샤인’(Persian)을 의미하는데, 반대자들이 그들의 혁신적인 신학 사상 때문에 붙여 준 별명이라고 주장한다. 얼마 후에 이 명칭에 어원학적인 설명을 붙여 ‘분리하다’는 히브리어와 관련시켰다. 그리하여 ‘분리주의자’라고 알려지게 되었다(D. M. Russell).1)

바리새인들의 교리와 신조는 다음과 같다.

(1) 바리새인들은 역사가 하나님의 목적에 의해 신성하게 통제되고 지배된다고 믿었다. 그러나 사두개인들은 인간 자신의 생을 지도하는 것은 개인의 자유이며, 또 역사도 마찬가지라고 하여 반대하였다.

(2) 바리새인들은 사두개인들과 달리 부활을 믿었고, 또한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행한 대로 미래의 세상에서 상급이나 형벌을 받는다고 믿었다.

(3) 바리새인들은 사두개인들이 거부한, 고도로 발달된 천사론을 가지고 있었다(행 23:8).

(4) 바리새인들은 스스로 하나님의 거룩한 천사들을 통한 신적 계시에 의해서 특별하게 하나님과의 밀접한 관계를 즐기는 참되고 경건한 이스라엘로 간주하였다. 확실히 하나님의 호의는 외국의 지배를 받고 있는 현재의 비참한 고통 속에서 명백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다윗의 자손인 ‘기름 부음 받은 주님’에 의해서 땅 위에 회복된 다윗 왕국의 영광이 도래할 좋은 시대를 믿었다. 그들이 기대한 것은 지상의 낙원이었다. 그 기대는 이 세상적인 것이지 저 세상적인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경건하게 살다가 죽은 자들이 메시아 시대에 이 지상 영광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1) D. S. Russell, 신구약 중간 시대, 임 태수 역(서울: 컨콜디아사, 1977), pp. 54-55.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을 나누기 위해 부활하리라고 기대하였다.

(5) 따라서, 바리새인들의 메시아관이란 죄인들의 손에 의해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음으로써 구원의 사명을 완성하는 메시아가 아니라, 지상에 영광스런 다윗 왕국을 완성하는 정치적 메시아요 영광의 메시아이었다.1)

바리새인들은 기록된 것이든 구전이든 율법을 가르치고 해석하고 일상생활에 적용함으로써 종교를 민주화하였다. 즉, 토라가 일반 백성들의 경험 가운데서 살아 움직이고 인격적으로 활동할 수 있게 하였다(D. S. Russell).2) 한 마디로 말해, 그들은 철저한 율법주의자들이었다. 이 “율법주의는 곧 형식주의가 되었고, 형식주의는 또 외형주의와 비현실적인 것이 되고 말았다”(D. S. Russell).3)

그러므로 그들의 주장과 열심은 자연히 예수 그리스도 및 교회와 충돌할 수밖에 없었다(마 6:2, 16, 23:3, 5-7, 23:13, 15, 16-22, 23 등).

“당시에 바리새인들은 6,000명 정도이었다”(W. Barclay).}(빌 3:5의 주석).

서기관들(γραμματείς)은 1:22의 주석을 보라.

예수께서 죄인과 세리들과 함께 잡수시는 것을 보고 서기관들은 감히 예수님께는 직접 힐문하지 못하고, 그 제자들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먹는가라고 비방하였다. 이렇게 한 또 하나의 이유는,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그들의 스승인 예수님이 율법의 규례를 위반하는 것을 일깨워 줌으로써 그들의 스승에 대한 충성심과 존경심이 손상되기를 바랐기 때문이었다. 정말 교활한 이간질이었다. 그 종교 지도자들에게는 아름다운 사랑과 감사도 비방 거리에 불과하였다.

중풍병자에게 죄 사함을 받았다고 하셨을 때에는 마음속으로만 비방하던 서기관들이(2:5-7), 이제는 입을 열어 비방하였다.

그들의 교활한 이간질과 비방을 아신 예수님의 반응은 달랐다. 이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1) M. Black, “Pharisees” in G. A. Buttrick, IDB, Vol. 3(New York: Abingdon Press, 1962), pp. 778-779.
2) D. S. Russell, op. cit., p. 55.
3) Ibid., p. 56.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사실에 대해, 마가는【17】예수께서 들으시고 저희에게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느니라 내가 의원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라고 하였다.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느니라는 풍자적 격언으로 비등한 말은 고전 헬라어에도 있다(이상근).

여기서 건강한 자는 바리새인의 서기관들을, 병든 자는 세리와 죄인들을 비유한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이 실제로 바리새인들이 영‧육이 강건하기 때문에 건강한 자라고 하신 것은 아니다. 다만 그들 스스로가 그렇게 자부하는 것에 대해 풍자하신 것이다.

이어서 예수님은 오신 목적에 대해, 내가 의원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라고 밝히셨다.

의인은 바리새인의 서기관들을, 죄인은 바리새인의 서기관들을 포함한 모든 인간을 의미하는 것이다.

예수께서 바리새인의 서기관들을 염두에 두시고 의인이라고 하신 것은, 그들이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데 올바른 행위로 하나님 앞에 자기들만이 의인으로 인정받고 있다고 자부하는 것을 풍자하신 것이다.

단 한 사람의 예외도 없이 모든 사람은 예수님에 의해서 구원받아야만 할 병자요 죄인이다.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자는 자기기만 속에 사는 사람이거나, 영적 무감각 상태에 있는 사람이다.

필자의 www.newrema.com의 저서들: 신약 주석(마-계 8610쪽)/ 난해 성구 사전 I, II권/ 예수 탄생 이전의 구원/ Salvation Before Jesus Came/ 바울의 인간 이해/ 바울의 열세 서신/ 우린 신유의 도구/ 눈솔 인터넷 선교/ 영성의 나눔 1, 2, 3권/ 영성을 위한 한 쪽/ 절기 설교집 외 20권/ 눈솔 예화집 I, II. (편저)/ 웃기는 이야기(편저).// 다수의 논문들 T. 426-3051



전체 2

  • 2012-06-06 13:27

    # 예수님을 좇는 많은 세리와 죄인들과 식탁을 같이하신 예수님의 행동의 의미
    # 율법주의적 선입견과 고정관념에 젖은 바리새인들(서기관들)
    # 바리새인들의 문자적 의미의 율법 행위와 교리
    # 건강한 자와 병든 자, 의인과 죄인, 그리고 예수님


  • 2012-06-07 11:49

    최웅석 권사님, 필자의 마가복음 주석 연재를 계속 보시고, 특히 공감되는 부분을 밝히셔서 감사합니다.


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조회
공지사항 관리자 2014.10.22 73146
공지사항 관리자 2010.12.29 71532
169 윤법규 2012.06.08 1827
민관기 2012.06.08 710
168 함창석 2012.06.08 2265
함창석 2012.06.08 630
167 김원경 2012.06.08 2331
166 송귀섭 2012.06.07 1783
165 강희천 2012.06.07 2759
164 장병선 2012.06.07 1865
163 장병선 2012.06.07 1956
162 이종선 2012.06.07 1564
161 장병선 2012.06.07 1796
160 관리자 2012.06.07 2229
159 박운양 2012.06.06 2272
158 장병선 2012.06.06 3199
157 김근중 2012.06.06 2317
156 이규만 2012.06.06 1578
155 최세창 2012.06.06 1556
153 민관기 2012.06.06 1722
152 강희천 2012.06.06 2369
151 원학수 2012.06.06 1882
150 이복규 2012.06.06 21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