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특강:제 2 강

작성자
최세창
작성일
2006-08-24 10:52
조회
1750
최세창:풍성교회, 훼이스신학대학원 객원 교수. 저서:신약 27권 주석 외 다수. 426-3051)

진보와 보수를 망라하여 48권의 마가복음 주석서들을 대조 연구하며 집필한 필자의 \\'마가복음\\'(신약 주석 시리즈)을 매주 2회씩(주일저녁 또는 오후예배와 수요저녁예배)을 교인들에게 가르칠 수 있도록 매주 2회 가르칠 분량을 올릴 계획입니다. 여기에 예화나 실화를 첨가해서 사용하시면 더 유익할 것입니다. (아쉬운 점은 여기에 난하주나 헬라어나 문장 부호 등을 제대로 표기할 수 없는 것입니다.)

<<제 2 강>>

Ⅴ. 기록 동기와 목적

초대 교회는 예수께서 승천하신 후 몇 해 동안은 예수님의 생애와 행적에 관한 사실을 기록할 필요성을 별로 느끼지 못했다. 실상 그 중심 회원들은 예수님의 생애와 사상을 직접 보거나 들은 사람들이었다. 또한, 임박한 재림에 대한 소망 속에 살았으므로 문서화의 필요성을 더더욱 느낄 수 없었다. 따라서, 예수님의 전기는 말에 의해 전해지고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놀라운 기억력에 의해 전달되기는 했지만, 역시 기억력이란 절대적일 수 없었다. 세월이 흘러가면서 전해지는 내용의 일부가 떨어져 나가기도 하고, 혹은 덧붙여지는 현상이 나타났다. 게다가 예수님을 직접 목격한 이들의 수가 줄어들었고, 많은 제자들이 순교했으며, 그리스도의 재림은 생각과는 달리 지연되고 있었다. 따라서, 초대 교회는 예수님에 관한 사실들을 정확하게 기록할 필요성을 느끼게 되어 문서 작업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러한 시기에, 마가는 로마에서 활동하건 베드로를 도왔던 것으로 추측된다. 그리고 위와 같은 동기와 특히 핍박을 받고 있는 로마의 기독교인들의 요청에 의해 본서를 쓰게 된 것이다.

본서는 후에 나온 누가복음과는 달리, 저자의 집필 목적을 제시해 주는 머리말이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앞서 말한 동기와 내용 이해를 통해 마가의 집필 목적을 이해해야만 할 것이다.
우선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마가는 불신자가 아닌 로마 교인들을 염두에 두고 썼다는 점이다. 따라서, “마가복음은 초대 교회의 선전 문학에 속한다고 할 수는 없다”(F. C. Grant, p. 633). 마가의 의중에 있는 로마 교인들은 모진 핍박을 받고 있었고, 심지어 죽음의 위협에 직면해 있었다. 많은 제자들이 화형을 당하거나 굶주린 야수들의 밥이 되거나 창에 찔려 죽는 등의 순교를 하였다. 그래서, 마가는 형제들을 격려하고 후원하고 지도하고 훈련하기 위한 목적으로 본서를 쓴 것이다.

그와 관련하여 마가는 예수님의 행적을 가르치고 싶어하였다. 특히, 그는 예수께서 인간을 위해 고난을 당하시고 십자가에 못박혀 운명하신 메시아이시라는 점을 강조함으로써, 로마 교인들에게 핍박과 죽음에 직면할 수 있는 용기와 위로를 주고자 했던 것이다. 요한네스 바이스(Johannes Weiss)는 마가에게 있어서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박혀 운명하셨음에도 불구하고 메시아가 아니라, 오히려 십자가에 못박혀 운명하셨기 때문에 메시아이시라고 하였다.

앞서 언급한 내용에서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마가복음은 예수님의 생애를 연구하는 데 귀중한 자료인 것은 사실이지만, 역사나 전기로 기록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설교적이며 변증적이며 복음적인 기록이라 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신앙적이며 신학적인 목적으로 쓰여진 것이다(A. E. Sanner, p. 279).

Ⅵ. 특징

마가복음과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은 그리이스바하(Griesbach : 1745- 1812) 이래 ‘공관복음서’(Synoptiker, συνόπτικος)로 일컬어졌다(이상근, p. 3). 이 말은 ‘같이 보는 것’을 뜻하는 헬라어에서 따온 것이다. 세 복음서는 병행 기사와 같은 관점에서 본 공통적인 일들을 많이 기록하고 있다(참조 : I. 마가복음 우선설).

그 중 마가복음은 일반적으로 최초의 복음서로 알려졌고, 따라서 우리에게 예수님의 생애에 관한 첫 번째의 보고서가 되므로 가장 중요하다. 바클레이(W. Barclay, p. 1)는 “틀림없이 예수님의 생애에 관한 이야기를 제시해 주는 보다 이른 단순한 시도가 있었다. 그러나, 마가복음은 확실히 남아 있는 것으로는 최초의 예수님의 전기이다.”라고 주장하였다. 이 점은 일반적으로 인정되고 있는 견해이다.

케에(H. C. Kee, p. 5)는 마가의 문학적 특성에 대한 가장 뚜렷한 평가로, 복음서 기자들의 문학적 특성, 특히 마태와 마가의 문학적 특성에 대한 디벨리우스(Dibelius)의 설명을 인용하였다. “의심할 것 없이 복음서들은 비문학적 문서들이다. 그 책들은 문학 작품들과 비교되어서는 안 되고, 또한 비교할 수도 없다.......그 책들은 자료의 편집이다. 그 구성자들은 최소한의 범위에서만 저자들이다. 그들은 주로 전승을 수집한 자들 곧 편집자들이다.”

본서의 문체는 간결하고 직설적이다. 마가는 요한에게서 현저한 사건에 대한 주해 없이 간단 명료하게 사건을 전한다. 따라서, 다른 복음서들에 비해 그 분량이 적다.
간접 화법보다 직접 화법을 많이 사용하였다(4:39, 5:8, 9, 12, 6:23, 31, 9:25, 12:16 등).
다른 복음서들의 지배적인 과거형 대신에 역사적 현재형이 많이 사용되었다. 이런 예가 무려 151회 가량 발견된다(1:40, 44, 2:3, 10, 17, 11:1, 14:43 등).

이야기가 이상할 정도로 급박하게 전개된다(C. F. D. Moule, p. 3). 이와 관련되는 것으로 ‘곧 또는 즉시’(εὐθύς)라는 부사가 무려 41회나 사용된다(1:10, 12, 18, 20, 21, 23, 28, 29, 30, 42, 43 등). 이에 비해 마태복음에는 7회, 누가복음에는 1회만 나타난다.
마가가 사용한 헬라어는 팔레스틴의 용어인 아람어를 직역해 놓은 것 같은 흔적이 있고, 때로는 아람어를 그대로 인용하여 이를 번역해 놓은 구절이 많다(5:41, 7:34, 14:36, 15:34).
본서에는 로마에서 흔히 사용되는 라틴어가 다른 복음서보다 많이 나타난다. 특히, ‘렙돈’(12:42)이나 ‘뜰 안’(15:16)이라는 일반 용어인 헬라어를, 그다지 널리 사용되지 않는 라틴어인 ‘고드란트’나 ‘브라이도리온’(praetorium) 등으로 설명해 주고 있다.

본서에는 다른 복음서들과 달리, 이방인들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이 점은 성전 숙청 사건(11:17)과 미래의 복음 선교(13:10, 14: 9)와 관련해서 알 수 있으며, 또한 본서가 이방인, 특히 로마인을 위한 복음서라는 사실에서도 알 수 있다(참조 : 제 1부 Ⅲ. 대상).

본서는 행위의 복음이라 할 수 있다. 즉, 설교는 간략하게 언급된 반면에 이적담은 풍부하다. 복음서들에는 36가지의 이적이 실려 있는데, 그 중 네 복음 공통의 것은 오천 명을 먹이신 기사뿐이고, 세 복음서에 공통되는 것이 11가지, 두 복음서에 공통되는 것이 7가지, 그리고 한 복음서에만 실린 것이 17가지이다. 본서에는 19가지의 이적이 실려 있는데, 그 중 2가지는 본서의 독특한 이적이다. 즉, 본서에는 전체 이적담 중 과반수가 실려 있는 것이다. 예수께서 자주 사용하신 비유만 해도 본서에는 5가지뿐이다(그 중 2가지는 본서의 독특한 것). 이러한 사실은 ‘강론의 복음’이라고 일컬어지는 마태복음과 대조된다.

본서에는 인명(1:29, 36, 2:25-26, 3:6, 11:11, 21, 13:3, 15:21 등)과 때(1:32, 35, 2:1, 4:35, 6:2, 11:11, 19, 15:25, 42, 16:2)와 장소(2:1, 13, 3:7, 20, 4:1, 5:20, 7:31, 12:41, 13:3, 14:68, 15:39, 16:5), 그리고 숫자(5:13, 6: 7, 14:30) 등이 자세하게 기록되었다.
본서의 기사, 특히 예수님에 관한 기사는 매우 생생하며 사실적이다(1:22, 27, 41, 3:5, 4:21, 6:30, 34, 8:2, 12, 10:14, 21, 32, 14:33-34). 이 점은 마태복음이나 누가복음에서는 보기 드문 것이다.

마가는 본서의 중심 인물인 예수님에 대한 묘사에 있어서, 그의 사적과 그 경험을 기록하려고 노력하였다. 그러나, 그는 예수님의 족보와 탄생에 대해서는 다른 복음서들과는 달리, 일절 기록하지 않았다.
산너(A. E. Sanner, p. 276)는 “마가가 예수님의 위대한 사업을 목격한 사람들을 포함한 초대 기독교인들의 신학적 신앙과 확신을 반영하고 있음을 우리는 확신할 수 있다.”라고 하였다. 마가는 예수님의 인격에 대해 ‘하나님의 종’(cf. 사 52:13-53:12)으로 묘사하고, 그분을 가리켜 ‘인자’라고 일컫는다(8:31, 9:9, 12, 31, 10:33, 45, 14:21, 41 등. 모두 14회 나타난다).

본서는 ‘종의 복음’, 또는 ‘수난의 복음’이라고 일컬어질 정도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의 수난 기사가 그 중심 내용을 구성하고 있다. 또, 분량에 있어서도 예수님의 공생애 중 마지막 수난 주간의 기사가 전체의 삼분의 일을 넘는다.

예수님의 수난은 \\'많은 사람을 위한 대속물‘로서의 수난이며 ’언약의 피‘로서의 수난이다.
번(J. H. Burn, p. 4)은 “마태는 유대인들에게 그들의 메시아를 지시해 주고, 마가는 이방인 독자들을 위해 인류의 왕을 묘사해 주고, 누가는 죄인들의 신성한 치료자요 구세주를 그려 주고, 요한은 육체로 나타나신 그리스도의 영원한 선재와 신성을 선포한다.”라고 하였다.

본서의 자료 중 대부분은 베드로에 의거하고, 그 구조는 베드로의 가이사랴 설교(행 10:37-43)와 상통한다(참조 : Ⅱ. 저자). 그러므로 본서는 영광스럽게도 ‘베드로의 복음’이라고 일컬어지는 것이다.
어드만(C. R. Erdman, p. 125)은 “마가복음은 청년의 복음이다. 그 내용이 어찌 간단하고 선명하며 활발하고 힘있는지, 현대의 활동적이고 분주하고 활발한 정신에 꼭 맞는다.”라고 하였고, 이어서 “주님을 능력 있고 이상한 일을 많이 행하시는 하나님의 아들로 나타냈으며, 따라서 이는 하나님의 권위 있는 말씀이 요구되는 세대에 특별한 교훈과 그리스도의 무한한 구속의 능력에 대한 새로운 영감이다.”라고 평하였다.

Ⅶ. 기록 연대와 장소

본서의 기록 연대는 명확하게 알려져 있지 않으므로, 교부들의 증언과 본서의 내적 증거의 양면에서 추론할 수밖에 없다.
‘마가에 대한 반 말시온 서언’(The Anti-Marcionite Prologue to Mark)에 의하면, “베드로가 죽은 후에 그는 이 복음을 이탈리아 지방에서 썼다.”라고 하였다(참조 : 제 1부 Ⅱ. 저자). 그리고 주후 180년경에 리온(Lyons)의 감독이었던 이레니우스(Irenaeus : 130?-202?)는 ‘이단에 반대하여’(Against Heresies, Ⅲ. 1. 1)에서 “죽은 [베드로와 바울] 후에 베드로의 제자요 통역이었던 마가는, 베드로가 선포한 것들을 기록하여 우리에게 전해 주었다.”라고 하였다(참조 : 제 1부 Ⅱ. 저자).
결국 마가복음은 베드로가 죽은(64년경) 후에 기록되었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약간의 문제가 있다. 즉, “이 경우 베드로와 바울의 ‘사’후라고 번역하였으나 ‘사’라고 번역된 헬라어 엑소도스(ἐξόδος)는 ‘출발’이라든가 ‘탈출’(히 11: 22)”로 번역되는 말이다......따라서, 이곳은 베드로와 바울이 어딘가에 출발한 후에 마가가 베드로의 말한 것을 복음서로서 기록했다고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말은 누가복음 9:31(일 개역 : ‘별세’), 베드로후서 1:15(일 개역 : ‘떠난’)에서는 ‘죽음’이라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그러므로, 일반적으로는 베드로의 사후에 마가가 복음서를 기록하였다고 해석되고 있다“(山口 昇, pp. 27-28).

그러나,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Clement of Alexandria : 150?-213 ?)는 “마가복음을 쓴 경우는 다음과 같았다. 베드로가 로마에서 말씀을 공공연하게 전했고, 또한 성령에 의해 복음을 전한 후에, 거기에 있던 많은 사람들이 오래도록 베드로를 따라다녀서 베드로의 말을 기억하고 있던 마가에게 베드로가 말한 바를 써 달라고 부탁하였다. 마가는 그렇게 해서 부탁한 사람들에게 복음을 나누어주었다. 베드로는 이 사실을 알았을 때, 적극적으로 금하지도 격려하지도 않았다(Eusebius, H. E. IV. 14. 5f).”라고 하여(참조 : 제 1부 II. 저자), 본서가 베드로의 생전에 기록되었음을 나타내고 있다. 제롬(Jerome)과 오리겐(Origen)도 같은 견해를 표명하였다. 그러나, 다수는 베드로의 순교 후로 보고 있다.

본서의 저작 연대를 추정하는 데 또 하나의 중요한 것은 예루살렘의 멸망(70년)이다. 대체로 ‘소계시록’이라고 일컬어지는 본서 13장은 예루살렘의 멸망을 예언한 것으로 인정되고 있다. 그렇다고 하면, 본서의 기록 연대는 베드로가 순교한(64년경? 65년경?) 이후와 예루살렘의 멸망 이전의 어느 시기로 추정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서의 연대는 매우 다양하게 추정되고 있다. 차프만(Chapman)과 하르낙(Harnack)은 40년대 초, 비칼록(Bychalog)은 55-57년의 어느 시기, 얼레(R. Earle, p. 132)는 50-70년의 어느 시기, 스위프트(C. E. G. Swift, p. 851)는 55-60년 사이의 어느 시기, 만손(T. W. Manson)은 58-65년 사이의 어느 시기, 유세비우스(Eu- sebius)는 63년, 池東植 님은 64년경-70년경 사이의 어느 시기, 스테벤즈(J. D. Stevens)와 윌손(R. M. Wilson)은 65-70년 직전 사이의 어느 시기, 하리슨(E. F. Harrison)은 65-70년 직후 사이의 어느 시기, 바이쓰(Weiss)와 티쎈(Thiessen)과 테일러(Taylor) 등은 67-68년 사이의 어느 시기, 버딕(D. W. Burdick, p. 988)은 67-70년 사이의 어느 시기, 조덴(Soden)과 모파트(Moffatt)는 70-80년 사이의 어느 시기, 카임(Kaim)은 105-120년 사이의 어느 시기, 다빗손(Davidson)은 120년 이후, 그리고 튀뱅겐 학파에서는 본서를 베드로와 바울의 조화를 위한 책이라고 하면서 연대도 130-170년 사이의 어느 시기로 추정한다.
결국 앞에서 잠시 언급한 대로 본서의 저작 연대를 베드로가 순교한 64년, 또는 65년 이후와 예루살렘이 멸망한 70년 직전 사이의 어느 시기로 추정하는 것이 가장 그럴듯하다.

마가복음서가 기록된 장소도 정확하게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러나, 고래로 일관되어 온 견해는 로마이다. 기록 연대를 논할 때에 언급된 대로,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Clement of Alexandria : 150?-213?)는 본서가 로마에서 집필되었다고 하였다. “그 후 고대의 증언들은 로마설에 거의 일치하고 있다(Hermes, Hipolytus, Epiphanaeus, Eusebius Tatian, 등).”

또한, 신약성경 자체에서도 유력한 외증을 찾을 수 있다. 디모데후서 4:11에는, 바울이 마가를 로마로 초청한 사실이 있고, 베드로전서 5: 13에 의하면 마가는 베드로와 같이 로마에 있었다. 이 외증 외에 내증도 로마설에 유리하다. 앞(제 1부 III. 대상)에서 우리는 본서의 수신자가 이방인, 특히 로마 교인들인 점을 밝혔다. 그 내증들은 그대로 본서의 집필 환경, 즉 집필 장소에도 적용될 수 있는 것이다.

위와 같은 이유로 대부분의 현대 학자들도 로마설을 따르고 있다.
그 밖에 알렉산드리아설과 안디옥설과 갈릴리설 등이 있다.
안디옥설은 4세기 후반의 교부인 크리소스톰(Chrysostom)이 “마가는 그 기록한 복음을 애굽에 전하였다”(Eus., H. E. ii. 16)라고 한 유세비우스의 말을 오해하고, 또 마가가 애굽의 알렉산드리아에서 순교하였다는 전설에 의거하여 주장한 것이다. 그러나, 이 설은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므로 지지하는 학자들이 없다.

안디옥설은 스토(Storr)와 바트레트(Bartlet)와 플러(R. H. Full- er)의 견해이다. 山口 昇은 플러(R. H. Fuller)의 견해를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그는 로마설은 현대의 많은 학자들에 의해 받아들여지고 있으나, 라틴어적 어법은 로마와 동시에 로마에 의해 점령되어 있었던 팔레스틴에 있어서도 마가복음이 쓰여진 것을 보여 주고 있다고 말한다. 또, 마가와 베드로와 로마라고 하는 관계는 베드로전서 5: 13에 기초하여 2세기에 추측으로 [에 의해] 산출된 것은 [이므로] 신뢰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마가복음이 헬라어로 기록되고 바울에 가까운 요소를 가지고 있으므로 그 그리스도론은 헬레니즘이었다고 말한다.

그뿐 아니라, 마가복음의 전승은 팔레스틴의 전승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하여 결국 이런 점으로 안디옥이 성립의 장소로 가장 적합하다고 주장하고 있다(‘신약성서의 비평적 서론’).”
이어서 山口 昇은 “그러나 안디옥설도 단지 이방인 교회 중에서 팔레스틴에도 가까운 곳이라고 하는 관점에서 결과되는 추측에 기초하는 것으로서 그것 이상의 적극적 증거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 점에서 이 설에도 한계가 있다.”라고 비판하였다. 동시에 그는 “그러나 마가는 바나바 및 바울과 함께 안디옥에 있었고, 바울이 안디옥 교회에서 제 1차 전도 여행을 보냄 받아 떠났다고 하는 사도행전의 기사(13:1-3 )는 신뢰할 수 있는 것이므로, 그 점과 함께 생각한다면 이 설은 참으로 매력적이다. 마가는 바울 및 바나바와 함께 전도 여행을 떠나 예수의 복음을 말하는 일의 필요성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을 것이고, 그 위에 그것을 구두로 전달할 뿐 아니라 문서식으로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할 필요성에 눈뜬 것은 아닐까. 그러므로 그는 안디옥에서 이 복음서를 기록했다고 하는 추측이 가장 적절하다고 생각된다.”라고 말하였다. 이러한 견해는 마가가 위의 두 사람과 함께 전도 여행을 하는 도중에 포기하고 돌아간 사실(행 15:37-38)로 미루어 받아들이기 어렵다.

갈릴리설은 마르크센(W. Marxen)이 주장하는 설이다. 그는 마가복음에 있는 라틴어 어법은 마가가 채용한 전승에 포함되었던 것이라고 생각하고 로마설을 부정한다. 그리하여 마가가 갈릴리를 강조하고 있는 점에서 갈릴리, 혹은 그 근처에서 기록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러한 의미에서 “그는 마가복음을 ‘갈릴리 복음’(the Galilean Gospel)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마태복음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아마도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은 주로 갈릴리 주변에서 형성되거나 수집된 예수 전승에 의존했기 때문일 것으로 보이며, 아마도 주로 갈릴리 지역에 거주하던 예수의 제자들에 의해 보전되고 발전되어 전달되었을 것으로 보인다”(김득중).

위의 주장에 대해, 山口 昇(p. 37)은 “그러나 마가복음이 갈릴리를 지향하여 맺어지고 있는 것으로서 마가의 신학적 입장을 이해하려고 하는 것은, 각 복음서의 특색을 찾아내어 이것을 모두 복음서 기자의 신학적 의도였다고 설명하려고 하는 편집사적 방법이 갖는 약점이라고 말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라고 비판하였다. 또, 그(p. 37)는 “같은 편집사적 방법을 사용하고 있는 다가와도 마르크센(W. Marxen)의 입장을, 자칫하면 모든 것을 이념에 환원해 버리고 마는 독일 학문의 나쁜 경향이 여기에 나타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라고 비판하고 있다.”라고 소개하였다.
거론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로마와 알렉산드리아(Eic- hhorn), 예루살렘과 안디옥(Allen) 등 두 장소에서 기록되었다는 절충설까지 등장하고 있다.

한 마디로 말해, 위의 설들은 전통적인 견해인 로마설을 뒤집을 만한 근거를 갖고 있지 못하며, 또한 내세우는 논지 역시 로마설에 비해 훨씬 빈약하다. 결국 우리는 마가복음의 집필 장소에 대한 가장 그럴듯한 견해로 로마설을 지지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Ⅷ. 마가복음의 끝 부분

본서의 끝 부분(16:9-20)은 신약성경의 본문 비평학에서도 매우 어려운 문제에 속한다.
우선 사본들부터가 일치하지 않고 있다. “초기의 것으로 중대한 사본인”(W. Barclay, p. 5) א, B, 2386 등에는 없는데, “후기의 것으로 저급한 사본인”(W. Barclay, p. 5) A, C, D, K, Δ, Θ, Π, ƒ13, 28, 33 등에는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K 사본에는 ‘짧은 결말’(그리고 그들은 베드로와 그의 동료들에게 명령받은 모든 것을 간략하게 보고했다. 이 일이 있은 후, 예수님 자신도 그들을 통해서 영원한 구원에 관한 신성 불멸의 메시지를 동쪽으로부터 서쪽에까지 선포하셨다.)로 되어 있다. 이에 비해, 바로 나머지 사본들의 내용을 ‘긴 결말’이라고 일컫는다. 그 밖에 L, Ψ 사본 등에는 ‘짧은 결말’과 ‘긴 결말’(9-20절)이, 그리고 W 사본에는 9-14절과 ‘긴 결말’(9-20절)이 다 기록되어 있다.

9-20절이 마가가 쓰지 않았다는 외적 증거는 다음과 같다. 위대한 교회사가 유세비우스(Eusebius)와 벌게이트(Vulgate : 라틴어로 번역된 카톨릭 교회의 성경)의 번역자인 제롬(Jerome)을 포함한 초대 교회의 몇몇 교부들은 9-20절이 생략된 사본들의 입장을 따랐다. 헨드릭슨( W. Hendriksen, p. 683)은 더욱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맨트(Clement of Alexandria)와 오리겐(Origen) 같은 초대 교부들은 그 구절들을 알았던 것 같지 않다. 주후 260년경에 출생하여 340년경에 죽은, 유명한 교회사가인 유세비우스(Eusebius)를 따르면, 마가복음의 가장 정확한 사본들과 거의 모든 사본들은 16:8로 끝맺고 있다. 아마도 유세비우스(Eusebius)가 죽은 해에 출생한 것 같고, 그 사람처럼 거의 80세에 죽은 제롬(Jerome)도 거의 모든 헬라어 사본들에는 9-20절이 기록되지 않았다고 썼다.

많은 헬라어 필사본들이 9-20절을 포함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지만, 그러나 단순히 수의 많음이 아니라 적절하게 평가할 때, 그 균형은 생략 쪽으로 무겁게 흔들리게 된다.”
또한, 9-20절이 마가가 쓴 것이 아니라는 내적 증거가 있다.
첫째, 어법이 다르다. 마가복음 16:1-8에는 그 나머지 부분(1:1-15:47 )에 사용되지 않은 낱말이 겨우 네 개뿐이지만, 16:9-20에는 적어도 14개의 낱말이 사용되었다. 또한, 마가복음의 나머지 부분과 다른 양식으로 사용된 낱말들이 있다(10, 11, 13절의 ἐκείνος와 9절의 φαίνω).
고울드(E. P. Gould, pp. 302-303)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9-20절에 ἐκείνος는 5회 사용되었는데, 공관복음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것이다. 오히려 요한복음에 자주 사용되었다. πορεύομαι[가다]는 3회 사용되었는데, 복음서의 어느 곳에도 나타나지 않는다. τοίς μετ’ ἀυτού γενομένοις[그와 함께 있었던 자들, 즉 제자들]는 또 하나의 낯선 표현이다. θεάομαι[보다]는 마가복음의 다른 곳에는 나타나지 않고, 그 밖의 곳에는 드물게 나타난다. 그러나, 이 문장(9-20절)에는 2회 사용되었다. ἀπιστέω[‘믿지 않다’, ‘불신하다’]도 이 문장에서 2회 나타나지만, 마가복음의 다른 곳에는 나타나지 않는다. Μετὰ (δὲ) ταύτα[‘후에’, 또는 ‘이 일 후에’]는 마태복음이나 마가복음의 다른 곳에서는 발견되지 않는 절이다. 그 절은 누가복음[5:27, 10:1 등]과 요한복음[3:22, 5:1, 6:1, 7:1 등]에 몇 번 나타난다. 사건의 계승을 지시하는 데 사용된 Ὕστερον[‘그 후에’, ‘나중에’]은 마가복음의 다른 곳에서는 발견되지 않는다. θανάσιμον[치명적인]은 신약성경의 이곳에만 나타난다. βλάπτω[‘ 상처를 내다’, ‘피해를 주다’]는 이곳 외에 누가복음 4:35에만 나타난다. συνεργούντος[함께 일하는]는 바울의 애용어이며, 또한 야고보서에서 한 번 발견되지만, 복음서 중에서는 이곳에만 나타난다. βεβαιούν[확증하다]은 바울 서신과 히브리서에서 발견되지만, 복음서 중에서는 이곳에만 나타난다. ἐπακολουθείν[‘따르다’, ‘참가하다’]은 디모데전서에 한 번, 베드로전서에 한 번 나타나지만, 복음서 중에서는 이곳에만 나타난다.
클로스테르만(Klostermann)도 9-20절에 있는 마가의 어법이 아닌 낱말의 목록을 제시해 주고, 또한 그 문장에 마가의 애용어인 ‘즉시로’, ‘또. 혹은 다시’ 등과 같은 마가의 특색 있는 관용어가 없음을 언급하였다.

앞서 언급한 학자들이 제시한 용어에 대한 논의는 사본들이나 번역 성경에 따라 약간의 차이(어떤 사본들이나 번역 성경들에는 있으나, 다른 사본들이나 번역 성경들에는 없을 수 있다.)가 있을 수 있지만, 그러나 9-20절이 마가가 직접 쓴 것이 아니라는 점을 주장하기에는 충분하다.
둘째, 문체 및 내용이 어울리지 않는다. 고울드(E. P. Gould, p. 303)는 “이 부분은 우리 주의 현현에 관한 단순한 요약인데, 이는 마가복음에서는 전혀 낯선 설화 양식이다. 마가는 복음서 기자 중에서 가장 생생하고 생기 있는 문체를 나타내는데, 이 부분은 단순한 열거이다.”라고 하였다. 또, 그(p. 303)는 믿는 자들에게 따른다고 약속된 σημεία[표적]의 성격을 들어 9-20절이 마가의 것이 아니라고 하였다. 즉, 그는 예수님에 의해 행해진, 남을 위한 표적이 아닌 표적들을 지적한 것이다. 웨셀(W. W. Wessel, p. 792)은 “8절과 9-20절 사이의 관계는 모호하고 거북하다. 9절은 남성 주격 분사인 ἀναστασ[살아나신]로 시작하는데, 이는 그 선행사로 ‘그’ 곧 예수님을 요구하는 것이다. 그러나, 8절의 끝 문장의 주격은 예수님이 아니라 여인들이다. 막달라 마리아는 전에 언급된 적이 없었던 것처럼 언급되지만, 실은 십자가와 장례식 그리고 바로 앞의 부활 이야기에서 세 번 나타난다. 또한, 가서 베드로와 제자들에게 예수님의 부활을 말하도록 명령받은 여인들(7절)이, 9- 20절에서는 막달라 마리아를 제외하고는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 무덤에 있던 천사는, 부활하신 예수님이 갈릴리에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신다고 말했지만, 예수님의 현현은 예루살렘과 가까운 부근에 한정되었다. 이 모든 요인은 긴 결말에 대한 반대를 더욱 무게 있게 만드는 것이다.”라고 자세하게 설명하였다.

웨셀(W. W. Wessel)의 베드로와 제자들에게 예수님의 부활을 말하도록 명령받은 여인들(7절) 이하의 논의는, 같은 이유로 고울드(E. P. Gould, p. 304)와 헨드릭슨(W. Hendriksen, pp. 685-686)에게서도 논의되었다.
山口 昇(p. 40)은 “마태와 누가는 여기[1:1-16:8]까지는 서로 비슷하나, 이후가 되면 서로 다르다. 필경 여기까지는 마가를 자료로 하여 왔으나, 여기서 마가가 끝나 버렸으므로 이후는 마태나 누가가 독자의 자료에 의하여 기록한 것이라고 말한다.”라고 하였다.
위와 같은 이유들로 미루어 마가복음은 원래 16:8에서 끝난 것이고, 16:9-10, 16:9-14, 16:9-20 등은 후에 보충된 내용으로 보는 것이 권위 있는 현재 학자들 중 대다수의 일치된 견해이다. 그러나 만장일치는 아니다. 버곤(J. W. Burgon), 렌스키(R. C. H. Lenski), 힐즈(E. F. Hi- lls) 등은 16:9-20이 마가에 의해 쓰여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 소수의 주장은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제 또 다른 문제가 대두된다. 즉, 마가가 실제로 복음서를 16:8로 끝내려고 의도한 것인가 그렇지 않은가 하는 문제이다.

전자를 주장하는 고울드(E. P. Gould, p. 304)는 “16:8로 마가복음이 끝나는 것은 모호하다. 그러나, 만일 이 모호성이 마가의 양식에 낯선 것이라면, 그것은 이 끝이 진짜라는 것을 보여 줄 수 없고, 다만 베낀 이들 중 어떤 이는 이 끝을, 다른 이는 ‘짧은 결말’을 제공하며 느꼈던 어려움만을 보여 줄 뿐일 것이다. 이 두 가지 결말이 있다는 것은 원래부터 9-20절이 없었다는 추정 증거가 된다. 그러나, 실제로 이 끝의 간결함은 복음서의 시작과 아주 병행하는 것이다. 그 시작과 끝은 둘 다 똑같이 복음서 기자의 주목적과는 상관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이상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마가의 양식과 일치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그러나, 웨셀(W. W. Wessel, p. 793)은 16:8로 끝낸 것은 마가의 의도였다고 하는 학자들의 견해가 적절하지 않은 세 가지 이유를 들고 있다.
(1) 초대 교회 자체가 완결되지 않은 것으로 강렬하게 느껴서 ‘짧은 결말’과 ‘긴 결말’을 삽입하여 증거하였다.
(2)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좋은 소식’을 의미하는 책이 여인들이 두려워하는 것으로 끝났다(마가가 그리스도의 인격에 대한 두려움과 신비를 강조하는 것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3) 예수께서 부활하신 후에 갈릴리에서 베드로와 다른 제자들에게 나타나리라고 하신 약속의 성취에 대한 기록이 없다(참조 : 16:7).
헨드릭슨(W. Hendriksen, p. 687)도 마가가 복음서를 16:8로 끝낼 의도였다고 하는 주장에 대해 반대하는 두 가지 이유를 제시하였다.
(1) 일찍이 그와 같이 모호하게(ἐφοβουντο γάρ) 끝내는 책의 예가 없었다.
(2) 끝이 매우 모호할 뿐 아니라 매우 비극적이다. 마태복음 28:8을 따르면, 여인들은 ‘무서움과 큰 기쁨으로’ 무덤을 떠났다고 하였다. 반면에, 마가는 자신의 이야기를 침울한 어조로 끝낼 의도였을까?
결국 우리는 마가가 자신의 복음서를 16:8로 끝내려고 한 의도가 없었다고 결론지을 수 있다.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 대부분의 학자들은 마가복음이 16:8에서 갑자기 끝난 것은 옛날 두루마리의 끝 부분이 손상되어 없어졌거나, 그 부분을 잃어버렸거나, 마가가 중병이 들었거나, 순교했기 때문일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모든 견해가 추측에 불과하므로 자세하게 논의할 필요가 없다.

아무튼, 대체로 마가복음 16:9-20의 내용 자체는 신빙성이 있는 것으로 인정되고 있다. 그 내용인 부활하신 주의 현현과 그 결과로서의 승천과 하나님의 우편에 앉으신 것 등은 초대 교회의 견해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그 내용은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의 내용과 상통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마가복음 16:9-20은 간접적인 것이기는 하나, 성령의 영감에 의해 쓰여진 것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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