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특강 : 제 6 강

작성자
최세창
작성일
2006-09-05 10:24
조회
1470
최세창:풍성교회, 훼이스신학대학원 객원 교수. 저서:신약 27권 주석 외 다수. 426-3051)

진보와 보수를 망라하여 48권의 마가복음 주석서들을 대조 연구하며 집필한 필자의 \\'마가복음\\'(신약 주석 시리즈)을 매주 2회씩(주일저녁 또는 오후예배와 수요저녁예배)을 교인들에게 가르칠 수 있도록 매주 2회 가르칠 분량을 올릴 계획입니다. 여기에 예화나 실화를 첨가해서 사용하시면 더 유익할 것입니다. (아쉬운 점은 여기에 난하주나 헬라어나 문장 부호 등을 제대로 표기할 수 없는 것입니다.)

<<제 6 강>>

4. 시험받으신 예수[1:12-13]
    <비교 : 마 4:1-11, 눅 4:1-13>

예수께 성령이 임한 사건을 기록한 마가는, 이어서 예수께서 성령에 의해 광야로 내몰려 시험받으신 사건을 마태나 누가와 달리 아주 간략하게 기록하고 있다.

불트만(R. Bultmann)은 “이 부분은 원래 자세히 기록된 전설의 단편임이 분명하나, 혹은 예수에 관해서 자세히 기록된 시험 전설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다른 전통에서 자세히 형성된 주제의 단편만이 예수에 관한 전승에 끼어 든 것이리라.”라고 하였다. 그러나, “최근의 주해자들은 광야의 시험의 기사가 어느 정도 역사적으로 사실인지는 확인할 수 없으나, 이 기사가 사실에 기초한 것이라는 것은 인정하고 있다”(山口 昇). 또한, 크란필드(C. E. B. Cranfield)와 같이, 이 기사는 예수님에게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가 있고, 예수께서는 제자들이 자신을 메시아로 인식한 후에 제자들에게 이 일을 말씀하셨다고 보는 자도 있다.  메시아로 인식한 후인지는 확실히 알 수 없지만, 山口 昇처럼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자신의 경험을 말씀하신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이 경험은 예수님의 생애에서 발생한 것이기는 하나, 단순한 인간적 또는 지상적 사건은 아니다. 이것은 하나님과 사단의 싸움이다”( E. Schweizer).

마가는 예수님의 경험에 대해, 그리고(원문 첫머리에 카이, καὶ가 있다.) 【12】성령이 곧 예수를 광야로 몰아내신지라라고 설명하였다.
성령(프뉴마, πνεύμα)과 곧(유튀스, εὐθὺς)은 1:10의 주석을 보라.
후자는 세례받으신 후 ‘즉시’라는 뜻이다(W. L. Lane, E. P. Gould).

광야(에레몬, ἔρημον)는 원래 적적한 곳이라는 의미로, 대개 기도하고 명상하는 장소이었다. 또한, 광야에는 사단이나 악령들이 살고 있는바 저주의 장소로 생각되기도 하였다.
그 위치에 대해 콜(R. A. Cole)은 “구약성경의 많은 예언자들이 소명과 계시를 받았던 장소이다.”라고 하나 정확한 것은 알 수 없다. 곧을 보아 예수께서 세례받으신 지역 중 보다 황폐하고 적막한 곳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E. P. Gould, C. R. Erdman).

몰아내신지라는 에크발레이(ἐκβάλλει)이며 문자적인 뜻은 ‘내던지다’인데, 여기서는 강제성을 내포하는 것이다.

예수님의 수세 때, 예수께 오신 성령께서 지금은 예수님을 시험을 위해 몰아내시는 것이다. 이 점에 대해, 슈바이처(E. Schweizer)는 “예언자들의 이야기에서처럼, 하나님의 성령은 어떤 사람들을 붙잡아 여러 장소로 몰아가는 압도적인 힘으로서 여기에 나타나신다.”라고 설명하였다.
본절과 이하에 표현된 사건은 마치 취임식 행사의 성격과 같은 것이다(E. P. Gould).

마가는 광야에 이끌려 가신 예수께 대해, 【13】광야에서 사십 일을 계셔서 사단에게 시험을 받으시며 들짐승과 함께 계시니 천사들이 수종들더라라고 하였다.
성경에서 사십 일이란 상징적 의미로 고정된 기간을 언급하는 것이다(W. L. Lane, W. W. Wessel, J. Gnilka, p. 67). 모세는 시내산에서 금식하며 사십 주야를 지내면서 십계명을 받았고(출 24:18, 34:28), 엘리야는 사십 주야를 행하여 하나님의 산 호렙에 도착하였다(왕상 19:1 -8). 또, 이스라엘 민족이 광야를 방랑한 기간은 40년이었다(신 8:2).
그러므로 이 기간은 시간적인 의미라기보다는 오히려 신앙적인 의미, 즉 하나님의 특별한 목적을 위한 준비, 시련, 연단 등을 의미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사단(σατανά)은 마귀라고도 일컬어지는데, 마가와 바울을 비롯하여 신약성경 기자들은 인격적인 악의 왕으로 믿었고(마 4:1, 3, 5, 8, 눅 4: 2, 3, 6, 13, 8:12, 벧전 5:8, 롬 16:20, 엡 4:27, 히 2:14, 약 4:7, 요 13:2, 27, 요일 3:8, 10, 12, 5:18, 19, 계 12:9, 유 9), 예수님 또한 그렇게 믿으셨다(마 6:13, 13:39, 25:41, 막 3:23, 26, 4:15, 눅 4:8, 10:18, 11:18, 13:6, 22:3, 31, 요 8:44).

사단 곧 마귀의 별명은 ‘바알세불’(마 12:27), ‘뱀’(고후 11:3), ‘용’(계 12:3), ‘벨리알’(고후 6:15), ‘악귀의 머리’(막 3:22), ‘이 세상의 왕’(요 14: 30), ‘공중의 권세 잡은 자’(엡 2:2), ‘원수’(계 11:12), ‘악한 자’(엡 6:16), ‘대적자’(벧전 5:8), ‘고소자’(계 12:10), ‘시험하는 자’(마 4:4), ‘거짓말쟁이’(요 8:44), ‘속이는 자’(계 12:9), ‘살인자’(요 8:44) 등이다.

이 외에 마귀를 표시하는 다이모니온(δαιμόνιον)은 복수로 사용되어 그 수가 많은 것을 표시하며, 사단의 부하들로 취급되고 있다.

사단(마귀)은 비범한 능력을 가진 초자연적 존재로서 하나님을 대적하고, 인간들을 유혹하여 타락시키는 짓을 한다(욥 1:6, 슥 3:1, 마 4:1-, 13:39, 눅 4:1-, 8:12, 요 13:2, 행 10:38, 엡 6:11, 딤전 3:6, 7:11, 딤후 2: 26, 3:3, 살전 2:3, 약 4:7, 벧전 5:8). 그는 죽음의 권세를 가진(히 2:14) 이 세상의 통치자이지만, 그리스도에게 결정적으로 패배를 당하였다( 마 25:31, 유 9, 계 2:10, 12:9, 12, 20:2, 10).

또, 마귀의 모든 활동은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도구로 이용되는 것이다(고전 5:5, 고후 12:7). 예를 들면, 마귀는 유다의 마음속에 예수님을 팔려는 생각을 주어(요 13:2), 그로 하여금 예수님을 팔게 했지만, 결국 예수님의 죽음을 통해 인간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영원한 구원 계획에 이용된 꼴이 되고 말았다.

그와 같이 마귀의 모든 활동은 하나님의 원대하고도 심오한 섭리를 위해 허용되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결국에는 하나님에 의해 멸망당할 운명에 처해 있는 존재이다(계 20:10).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는 마귀(벧전 5:8)의 시험에 대해 {클라케(A. Clarke)는 “사단은 세 가지 형태로 시험한다. (1) 간교한 뱀의 형태로 시험하는데, 이는 우리의 의식을 속이고, 우리의 판단을 왜곡시키고, 또 우리의 상상을 호리기 위한 것이다. (2) 빛의 천사의 형태로 시험하는데, 신령한 것들에 대한 그릇된 견해로 우리를 속이기 위한 것이다. (3) 우는 사자와 같은 형태로 시험하는데, 이는 맹렬한 반대와 핍박과 죽음에 의해 우리를 제압하고 멸하기 위한 것이다.”라고 설명하고 있다.}(벧전 5:8의 주석).

시험을 받으시며는 페이라조메노스(πειραζόμενος)인데, 명사형인 시험은 페이라스모스(πειρασμός)이며 마귀가 인간, 특히 성도를 멸망시킬 목적으로 하는 ‘유혹’(마 4:1-11, 약 1:13)이라는 의미와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상시키거나 우리에게 복을 주시기 위한 목적으로 하시는 ‘시련’이나 ‘연단’(창 22:1, 출 15:25, 신 8:2, 13:3, 38:8, 대하 32:31)이라는 의미가 있다. 물론, 마귀의 시험을 통한 하나님의 연단이라는 의미로 보아야 할 경우도 있다. 이러한 의미 외에 ‘고난’ 또는 ‘환난’(눅 22:28)이라는 뜻도 있다. 멕라우글린(G. A. McLaughlin)은 “큰 축복은 항상 큰 시험이 따른다.”라고 하였고, 또 “위대한 전도자를 만들려면 큰 은혜뿐 아니라 큰 시험이 필요하다.”라고 하였다.

마가가 예수님이 받으신 시험의 내용 및 결과를 직접 설명하지 않은 것은 의미심장한 것이다. 이 점에 대해, 웨셀(W. W. Wessel)과 레인(W. L. Lane)은 예수님의 전 선교가 사단과의 끊임없는 싸움이며, 40일간의 광야에서 받은 소수의 시험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라고 하였다.

예수님은 성령의 인도를 받으시면서 사단에게 시험을 받으셨다. 대개의 경우에 성령과 사단은 동시에 역사한다. 예수님을 시험한 사단은 평안을 누리는 교인들에게는 안일과 나태로, 믿음이 강한 교인들에게는 교만으로, 약한 교인들에게는 환난으로 시험하여 넘어뜨린다. 사단이 시험할 수 없는 인간의 상태란 있을 수 없다. 따라서, 우리는 항상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아야 하며(히 12:2), 또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엡 6:11).
광야 시험에서의 예수님의 승리는 들짐승과 함께 계시니라는 표현 속에 암시되어 있다.

유대 광야의 들짐승은 사자, 표범, 곰, 산돼지, 재칼, 늑대, 뱀, 하이에나 등을 가리키는 것이다. 따라서, 들짐승과 함께 계시니란 아담이 시험받던 환경과 반대되는(W. Hendriksen, 黑崎幸吉) 광야에서의 예수님의 공포와 고독과 위험을 나타내는 것(黑崎幸吉)인 동시에 종말론적인 평화(호 2:18, 사 11:6-9, 65:25)를 암시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은 구약성경에 예언된 메시아로서 오셨다는 것이 암시되고 있는 것이다. 이 이상은 묵시 문학적 문헌 속에 계속 살아 있다. “들짐승들이 숲에서 나와 사람들을 섬길 것이요 독사와 용들이 굴에서 나와 어린이들에게 이끌리리라”(sBar 73, 6). 이로써 예수님이 사단의 시험을 이기셨다는 사실뿐만 아니라, 예수님과 함께 종말론적 시간이 시작된다는 사실이 암시된다. 선취적으로 예수님이 사단을 제압하셨으므로, 결국 예수님은 사단을 궁극적으로 멸망시키실 것이다(살후 2:3-12, 계 19:19, 20, 20:2, 10).

슈바이처(E. Schweizer)는 “유대 전승에 따르면, 야생 동물과의 싸움은 타락과 더불어 시작되었다.......교회가 이 이야기를 할 때는 예수께서 마지막 때의 의로운 자로 오셨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아담과 같이 예수께서는 사명을 받은 후에 곧 하나님에 의해 시험으로 인도되었다. 그러나 아담과 달리, 예수께서는 자신의 시험을 이김으로써 낙원을 회복하셨다.”라고 하였다. 그러한 의미에서 “예수께서는 낙원의 시대를 가능케 했던 새로운 아담이다”(J. Gnilka, p. 69).
그러므로 성령을 좇아 사는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 안에서 사단의 시험을 받을 뿐만 아니라, 종말론적 평화를 만나게 되는 것이다.

천사들이 수종들더라의 천사들(앙겔로이, ἄγγελοι)은 {영계의 존재들을 가리키는 것이며, 어느 종교에서나 신과 인간 사이의 중간 존재이다. 천사의 표상은 인간적인 영역, 혹은 신적인 영역에서 유출되어 나온다.

성경에서 천사란 용어는 이중적인 의미, 즉 ‘하나님의 사자’와 ‘영적인 존재’로 사용된다. 그러나, 영적인 존재가 다 하나님의 사자는 아니다. 포로기 이후의 구약 저서에는 이런 구분이 없어지고, 다만 천사는 하나님의 사자로서 이해되었다. 또, 구약성경의 천사는 천적 존재로서의 본질을 가지고 있다. 구약 외경에 의하면, 바벨론 포로기 이후의 천사 개념에 변화가 생겼는데, 무엇보다도 자연 현상을 조절하는 영으로 되어 있다.

다음으로, 신약성경에는 전통적인 천사론에 별로 더 보탠 것이 없다. 대체로 천사 출현은 예수님의 사건과 결부되어 있다. 육신을 입으신 그리스도의 출현은 우주적인 사건이므로, 인간의 눈에 보일 뿐만 아니라 천사들에게도 보이셨다.

천사들은 구속의 모든 계획에 대단한 관심을 가졌고, 또 가지고 있다(벧전 1:12). 그리스도의 탄생 시(눅 2:9-14), 사단의 시험을 이기셨을 때(마 4:11), 그분의 선교 사역과 그분의 고통과 위기 그리고 궁핍의 때에 천사가 나타났다(마 4:11, 눅 2:9-13, 22:43, 24:4, 히 1:6). 또한, 그분의 사후(마 28:2-7)와 승천 후에도 천사들이 제자들에게 말하였다(행 1:10-11).
신약성경에서는 거룩한 천사(엡 3:10, 골 1:16, 2:10)와 타락한 천사( 고전 15:24, 골 2:15) 모두를 언급하고 있다.

바클레이(W. Barclay)는 “당시의 유대인들은 고도로 발달된 천사 숭배를 하고 있었다. 모든 것은 그 자체의 천사가 있었다. 바람의 천사, 구름의 천사, 눈의 천사, 추위의 천사, 더위의 천사, 계절의 천사들이 있었다. 랍비들은 이 세상에는, 심지어 풀잎 하나까지도 천사가 없는 것은 없다고 하였다.

랍비들은 천사들의 세계에 세 계급이 있다고 가르쳤다. 첫째 계급은 좌천사(thrones : 9천사 중 셋째 천사)와 그룹(cherubim : 9천사 중 둘째 천사로 지식의 천사)과 세라핌(seraphim : 최고위 천사)이 포함된다. 둘째 계급은 권천사(powers : 여섯째 천사)와 주관 천사(lordships)와 힘의 천사(mights)가 포함된다. 셋째 계급은 천사들(angels)과 천사장들(archangels)과 권세자들(principalities)이 포함된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천사장은 선한 천사들의 지도자요, 하나님의 백성을 수호하는 미카엘(단 10:13, 21, 12:1), 하나님의 계시를 전달하는 가브리엘(단 8:16, 9: 21. 비교 : 눅 1:19, 26), 성도들의 기도를 집성하는 라파엘(토비트 3:17, 5:4, 8:2, 9:1, 5, 12:15), 그 밖에 우리엘(Ⅱ Esd. 4:1), 라구엘, 사리엘, 예레미엘 등이다. 최대의 천사장은 루시퍼이었으나 타락하여 사단이 되었다(사 14:12).

랍비들은 (바울도 한때는 랍비였다.) 천사들이 사람들에 대해 매우 적대적이었다고 믿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셨을 때, 천사들이 화를 냈다고 믿었다. 그것은 마치 천사들이 하나님을 누구하고도 나누어 소유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것 같았다.

랍비들에게는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율법을 주시기 위해 시내산에 나타나셨을 때, 천사들의 무리에 의해 옹호되셨고, 그 천사들은 이스라엘에게 율법을 주시는 것을 싫어하여 율법을 받으러 산에 오르는 모세를 습격했는데, 하나님께서 직접 개입하시지 않았더라면 모세의 발걸음을 막을 수 있었다고 하는 전설이 있었다.}(롬 8:38의 주석).
천사들의 수종이 40일간 내내 계속된 것인지, 40일의 시험이 끝난 후인지(“크란필드”, E. Bickersteth)가 확실치 않다. 마태복음 4: 11을 미루어 보면 후자가 적합한 것 같다.

대 레오(Leo)에 의하면, 짐승들과의 사귐은 그리스도의 인성에, 천사들의 시중은 신성에 관련해서 해석된다. 결국 낙원의 아담을 시험하여 일단 재미를 보았던 사단은 지금은 시험을 통해 예수님의 신성만 드러내 준 꼴이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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