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 여러분께.
현재 ‘감리회소식’이 ‘자유게시판’처럼 사용되고 있습니다.
정치적 입장표명이나 감리회정책과 관계되지 않은 내용 등
‘감리회소식’과 거리가 먼 내용의 글은 ‘자유게시판’을 이용해주시기 바랍니다.

아버지의 이름으로

작성자
백승학
작성일
2020-03-26 06:23
조회
505
아버지의 이름으로

백승학

몇년 전이었다. 2017년 7월이었을 것이다. 내가 담임 목회자로 섬기고 있는 참사랑교회가 35평 상가에서 길 하나 건너에 있는 조금 더 넓은 곳으로 이전하게 되었다. 마침 세 들어 있는 상가가 헐리게 되어 이전할 장소를 찾고 있던 타 교단의 목사가 우리 교회가 있던 자리로 오고 싶어 하였다. 함께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목회하시면서 힘든 일도 많이 겪으셨지요?” 내가 이렇게 말문을 열자 가위로 갈비탕 안에 있는 고기를 자르다가 멈추더니 그가 말했다.

“큰 딸을 고등학교에 못 보냈어요. 너무 큰 상처를 딸에게 안겼지 뭡니까. 아참, 그런데 예배 실 강단과 사무실, 주방 칸막이가 아기자기하게 잘 꾸며져 있던데 설치비용을 제가 다만 얼마라도 드려야겠지요? 저쪽으로 가시면 다시 설치하셔야 될 테니까요.” 그때 나는 내가 마음으로 생각했던 것보다 지나치게 커다란 목소리로 다급히 말했다. “아! 그거요. 그거는 다른 분들이 다 그냥 해 주신 거예요. 강단, 전기, 칸막이, 주방까지 다 누군가의 손길을 통해서 하나님이 해 주신 것입니다. 그러니 목사님도 그냥 쓰시면 돼요.”

우리 딸이 다섯 살 때였다. 이웃에 사는 타 교회 권사님이 피아노학원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무료로 가르쳐 준다며 자꾸 보내라고 해서 딸을 피아노학원에 보냈다. 어느 날 아내가 레슨이 끝난 딸을 피아노 학원 문 앞에서 기다렸다가 데리고 들어오는데 보니까 눈물을 줄줄 흘리고 있었다. 그날따라 늘 다니던 길이 공사중이라서 다른 길로 돌아오는데 오는 길에 딸이 통닭 집 앞에서 발이 땅에 붙은 것처럼 딱 멈춰선 채 움직이지를 않더란다. 끌려오지 않으려는 송아지처럼 엉덩이를 쭉 빼고 버티는 딸을 강제로 끌고 오는 데 눈물이 자꾸만 나서 견딜 수가 없다고 하였다.

나는 딸의 손을 잡고 동네 수퍼로 갔다. 닭 모양처럼 생기고 이름도 치킨 후라이든가 뭔가였는데 후라이드처럼 바삭거리는데다가 치킨 향도 나는, 평소에 딸이 사먹던 것 보다 훨씬 비싼 과자를 딸의 손에 쥐어준 뒤 데리고 들어왔다. 딸은 더 이상 불만이 없어 보였다. 문제는 아내가 밤이 늦도록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일본의 문필가 나가이 다카시는 1945년 8월 나가사키에 투하된 원자폭탄으로 부인을 잃고 본인도 원폭 피해자가 되어 방안에 줄곧 누워 지내는 처지에 놓인다. 어느 날 죽은 엄마를 꼭 빼닮은 딸이 하교시간이 되어도 오지를 않아 걱정을 하고 있는데 평소보다 훨씬 더 늦게 돌아오는 딸의 손에 컵 하나가 들려있었다. “아빠! 점심 급식 때 나온 파인애플 주스인데 한 모금 먹어보니 너무 맛있어서 아빠 줄려고 안 먹고 가져왔어요. 오다가 교문에서 다른 아이와 어깨가 부딪치는 바람에 조금 쏟았어요.” 파인애플 주스가 쏟아질 까봐 더딘 걸음으로 집까지 오느라 평소보다 늦게 도착했던 것이다.

나가이 다카시는 원폭 피해를 입기 전에 아이를 더 많이 안아주고 아이와 더 많이 놀아주지 못한 것이 너무나 후회가 된 나머지 세상의 모든 아버지와, 또한 아버지의 입장에서 세상의 모든 아이들에게 마음으로 들려주고 싶은 글들을 구두로 집필하여 ‘아버지의 목소리’라는 책을 출간하였다.

나는 또한 이 책을 읽던 비슷한 시기에 읽었던 다른 책에서의 내용 한 장면이, 그 책의 제목과 저자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기억에 남아있다. 책 속에서 아버지를 가장 필요로 하는 시기에 딸을 떠나 있다가 이미 많이 자라버린 후 나타난 아버지를 향하여 딸이 묻는다. “아빠! 나보다 더 예쁜 다른 딸이 다른 곳에 있어서 나를 잊고 그 딸과 함께 지내셨나요?” 아버지는 대답한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나의 딸아! 그게 아니란다. 아빠가 정보요원으로 적국에서 나라를 위해 일을 하다가 체포당해서 지금까지 감금되어 있었단다. 네 곁에 와서 너를 얼마나 안아주고 싶었는지 모른단다.”

어느 철학자는 말하기를 우리가 멀다고만 여겨지는 죽음에 대하여 죽음이 멀리 있지 않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살아간다면 세상은 훨씬 달라질 것이라고 하였다. 나는 오늘 이렇게 말하고 싶다. 사실은 사도바울이 이미 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우리가 아버지의 마음으로 사람들을 대하면서 세상을 살아간다면 세상은 완전히 달라질 것이라고.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비는 많지 아니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복음으로써 내가 너희를 낳았음이라.”(고린도전서 4:15)

https://greenword.postype.com/series



전체 0

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조회
공지사항 관리자 2014.10.22 69140
공지사항 관리자 2010.12.29 67389
13799 홍일기 2024.05.04 54
13798 엄재규 2024.05.03 128
13797 최세창 2024.05.03 76
13796 송신일 2024.04.30 102
13795 민관기 2024.04.30 122
13794 함창석 2024.04.30 50
13793 원형수 2024.04.29 142
13792 홍일기 2024.04.29 124
13791 최세창 2024.04.25 154
13790 이주헌 2024.04.24 106
13789 박상철 2024.04.24 105
13788 함창석 2024.04.22 130
13787 홍일기 2024.04.22 181
13786 정진우 2024.04.19 170
13785 송신일 2024.04.18 176
13784 민관기 2024.04.18 244
13783 원형수 2024.04.17 283
13782 박연훈 2024.04.15 145
13781 김병태 2024.04.15 569
13780 함창석 2024.04.15 1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