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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의 안목이 자기인생을 좌우한다.

작성자
오재영
작성일
2021-03-25 12:15
조회
506
회자되는 이야기 중에,
정신병원에서 환자를 일정기간 치료한 후에 어느 정도 건강하게 되어 퇴원을 시킬 때 ‘이 사람을 가정으로 돌려보내도 적응이 가능할는지, 아직 치료가 더 필요한지’ 망설여질 때 마지막으로 그 환자의 정신건강 정도를 가늠하는 시험방법을 개발한 의사가 있다.

그가 개발한 정신건강 측정방법이란,
그 환자가 있는 방에 수도 장치를 해놓고 수돗물꼭지를 적당히 열어놓은 다음에 수돗물이 졸졸졸 흘러내리게 하여 그 물이 흘러 방바닥에 물이 흥건하게 고이면 환자에게 걸레를 주고 물을 닦으라고 한다. 이럴 때 만일 정신적으로 건강이 회복된 사람이라면 먼저 수도꼭지부터 잠근 다음에 엎드려 그 고인 물을 닦는다. 이는 퇴원이 가능한 사람이다. 그러나 아직 치료가 더 필요한 환자는 수도꼭지는 돌아보지도 않고 방바닥에 괴어 있는 물만 열심히 닦는다고 한다. 이 사람은 아직도 치료가 더 필요한 사람으로 집으로 돌려보낼 수 없다는 것이다.

이 얘기는 우리에게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가?
그것은 정신적으로 건강하지 못한 사람은 언제나 자신이 당한 현실을 놓고 잘했느니 안됐느니, 살겠느니 죽겠느니 하며 몸부림을 친다. 모두가 저놈들 때문이다. 그래서 소리를 높여 이 사람을 원망하고 저 사람을 원망한다. 그러나 정신적으로 건강한 사람은 그 원인이 어디에서부터 진행이 되었는지, 어디서 무엇으로부터 비롯되고 시작이 되었는지, 그 뿌리가 어디에 연결이 되어 있는지를 깊이 추찰(推察)해 들어가면서 심사숙고(深思熟考)하는 중에 근본의 원인부터 고치려 노력하며 좋은 결과를 기다린다. 이런 사람이 성숙한 사람이며 건강한 사람이다.

사람은 사십(不惑.세상일에 정신을 빼앗겨 판단을 흐리는 일이 없는 나이)이 넘으면 자신의 얼굴과 아울러 주변에까지 책임을 져야한다는 말이 있다. 사십대가 되었을 때, 주변사람들이 자기에게 친절하게 대하면 그동안 그는 자기위치에서 원만하게 책임과 배려의 위치에서 삶을 살아온 사람이다. 그가 위치와 정도(正道)를 지키며 더불어 살아왔다는 반증이다. 그러나 그가 중년을 넘었음에도 주변사람들이 본인에게 다가오기를 주저하고 왠지 사람들이 본인을 부담스러워하며 자신으로부터 멀어지고 반가워하지 않는다면 ‘Something wrong with me’ 내가 뭔가 잘못 살아왔고 지금도 어쩌면 잘못 살아가고 있는지 모른다는 생각을 해봐야한다.

신앙의 안목(眼目)이 자기인생을 좌우한다.

이처럼 주변사람들로부터 자신에게 행해지는 어떠한 소문과 평판이 주어지고 있는가에 대한 정확한 판단은 그의 현재와 미래, 이 땅에 아름다운 흔적을 남기고 주님 앞에서의 그날을 대비해야 할 求道者들에게는 지혜(智慧)있는 자세이며 특히 罪人의 원죄를 소유한 채 오로지 주님의 恩惠와 矜恤을 근거로 살아야 할 태생적인 이들이라면 영혼을 담보로 심비(心碑)에 간직할 마음가짐이다. 오늘도 내 앞에 허락된 그 사건과 사연모두가 변함없이 나의 성숙을 위한 주님의 섭리와 인도하심이라면 문제와 사건 앞에 더욱 낮은 자세로 근본원인을 생각하는 사람, 자신의 안목을 넓혀가는 사람이 정신적으로나 신앙적으로 건강한 사람이며 우리가 추구하여야할 모습이다.

오늘도 여전히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교활한 대적 사단과의 처절한 영적전투에서 천하보다 더 귀한영혼을 교도하는 사역자라면 자신이 겪는 표현 불가능한 만남과 사연들마다 좋든 나쁘든 그 책임은 바로 그 누구 때문이 아닌 주님께서 믿고 맡겨주신 본인 자신에게 있다. 아직도 소명(召命)에 대한 불분명함과 미숙(未熟)함으로 피차 겪게 되는 아픔들, 지금 우리가 피부로 겪는 사건들마다 교회의 문제로부터 지방, 연회와 교단, 더 나아가 경제문제, 정치문제. 사회 각 분야에서 들려오는 수많은 분쟁의 소용돌이들마다 모두가 그 직(職)에 오르거나 맡아서는 안 될 적합하지 않고, 준비되지 못한 함량미달인 이들의 정도(正道)를 벗어난 그 대가를 지금 우리는 목도하며 지불하고 있는 것이다.

남에 대한 지적에 집착하기에 바쁜 관계로 그 사람의 내면을 바로보지 못하고 그의 외면에 나타난 소유와 스펙에 따라, 평가하는 시대의 흐름 속에서 크리스천이라면 당연히 그의 소유나 스펙이 아닌 그가 지금 무엇을 생각하며 어떠한 과정의 삶을 살아왔으며 현재 그가 지닌 철학, 지식, 그 속에 무엇이 담겨있는가의 그 심연(深淵)을 바라보는 여유로움과 배려가 마땅하며 모두가 좀 더 나은 미래를 향하는 바른 방향이며 길이다. 이것이 주님의 시선을 두려워하지 않고 타인들의 시선(視線)의식하지 않는 이들에게 가능하겠는가?

글을 마치며...

주님께서는 오늘도 시대의 변화와 상관없이 범인(凡人)에 속한 이들을 고난(苦難)과 시련으로 소명자(召命者)의 사람으로 질(質)을 바꾸신다. 그러므로 사명자의 길에 王道와 쉽고 빠른 길이란 없다. 혹여 있다면 그 길은 사단의 유혹과 착각일 뿐 어느 시점에 도달하면 그의 실체가 드러나게 된다. 시편기자도 “고난 당하기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시139:67). 과거, 남들에 의하여 귀(聽覺)로 들었던 하나님을 눈(眼)으로 봄은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대가없이 도달할 경지가 아니다. 가보지 않은 사람은 모르는 주님과 자신의 대가를 지불한 신뢰가 쌓인 결과일 뿐이다.

사순절(四旬節)의 마지막 주간이다.
종려주일에 이어 고난주간, 자신이 크리스천이라 생각되는 이들에게는 각자 오늘 자신의十字架, 自己否認을 점검해야 한다. 그 십자가 분명하지 않다는 것은 그가 어느 위치에 있든 언제든지 십자가의 원수 될 가능성이 농후함으로...



전체 8

  • 2021-03-25 12:50

    “신앙의 안목이 자신의 인생을 결정한다”는 말은 참 재미있는 표현입니다.
    “신앙”을 사전적으로 검색하면, 그 대상이 “절대적 존재”이고, 안목은 사람의 능력에 속한 것인데, 사람의 능력이 사람의 인생을 결정한다면, 왜 “절대적 존재”가 필요할까요?

    “너 그릇이 그것 밖에 안돼”라고 말하면, “내 밥이 너 밥보다 많아”하면, “한번 까볼까?”
    도대체 무엇을 까야 할까요? 아파트 평수? 아들 스펙? 돈? 명예?
    죽을 때, 아파트 가져갈수 없고, 아들 데려갈수 없습니다. 가져오라고 해도 놓고 가겠습니다.


  • 2021-03-25 13:08

    이 목사님!
    오래전 목사들과 성도들에게 베스트셀러 된 두꺼운 책 제목 중에
    “내가 만난 예수님”이란 간증집이 있었습니다. 각자 가장 낮은 자리
    위기에 있을 때 자신들이 만난 예수님에 대한 고백들입니다.
    남이 뭐라 하든 그 증거 있는 이들은 다른 이들과 다릅니다.

    워치만니 의 글에도 “용서받은 그리스도인은 보통 죄인과 매우 다르다.
    헌신한 그리스도인은 보통 그리스도인과 현저히 다르다.“ 했습니다.
    자신들의 표현을 보면서 내 나름의 평가와 생각하는 바를 올렸습니다.
    평안 하세요. 좋으날 오기를 기대하면서...


  • 2021-03-25 13:15

    큰아들과 작은 아들이 싸웠는데, 아버지가 작은 아들만 붙잡고 말하면 그 집안이 온전하겠습니까?
    어르신들이 그 중심을 잡아주셔야지요.
    봄기운이 느껴지는 화창한 봄날, 목사님의 은퇴생활이 행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 2021-03-25 14:06

    안목 가운데 가장 귀한 안목은 사람을 볼 수 있는 안목입니다. 왜냐하면 세상의 모든 일들은 사람이 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아무리 안목이 좋다하여도 실수 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감리회에 많은 은퇴 목사님들이 후임자를 제대로 볼 수 없는 안목 때문에 낭패를 당하기도 하고 배심감을 갖게 되기도 하고 낙심하기도 합니다.

    많은 은퇴 목사님들이 자신이 수고하여 섬겨 왔던 교회 조차도 출석하지 못하는 실정인 많은 은퇴 목사님들이 존재합니다. 어쩌면 은퇴 목사님들의 문제는 안목의 문제가 아니라 성직매매와 같은 행위를 하고 있음이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사람을 보는 안목으로 후임자를 찾는 것 같으니 실상은 돈을 보는 안목으로 후임자를 구합니다. 그러니 후임자로부터 배신감을 느낄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렇게 잘 못된 행위를 하고선 생각합니다. "세상이 모두 혼으로만 목회를 하려고 하니 그런 것이지..... 내 시대엔 영으로 목회를 했었음인데... 말이야...."
    진짜 (성)영으로 목회를 했었던 것일까요?

    이와 같은 어긋난 안목을 성경에선 안목의 정욕이라 하였습니다.
    안목의 정욕으로 선택한 모든 일들은 필패 입니다.
    은퇴하신 이후 목회적 삶이 주님의 은혜 가운데 진실로 평안하시길 기도합니다.


  • 2021-03-26 06:37

    주변에 아는 은퇴 목사님들 많으세요?
    깨닫게 된 것 한 가지가 살아보지 않고 하는 말들은
    모두가 믿을 것 못된다. 추상적인 기대감 뿐 이였으므로,

    그리고 내 눈에 보이는 현상이 모두가 아니라는 것이요.
    그것은 보이지 않는 세계가 더 넓기 때문이므로...
    - 샬 롬 -


    • 2021-03-26 17:23

      보이지 않는 세계가 넓은 것은 보이는 세계가 작은 까닭이나 보이지 않는 세계는 보이는 세계로 이해할 수 있으니
      하나님은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안에 계시며, 만유 위에 계신 하나님이시니,
      볼 수 없는 하나님을 만유를 통해 만나 뵐 수 있는 은혜롭고 신비한 체험이 우리 믿음의 사람들에게 허락하시는 은혜로운 순간이 됩니다. 이 은혜로운 순간으로 보이지 않는 모든 것을 깨닫게 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볼 수 있는 눈이 귀한 것이며, 들을 수 있는 귀가 복 된 것이며, 깨닫는 영혼이 새 사람의 삶을 살게 됨이니 곧 중생의 삶이 됨입니다. 글Love 입니다.


  • 2021-03-26 17:56

    오 목사님,
    우리 삶 전체가 영적 전쟁입니다. 이를 깨닫든 부지불식간에 깨닫지 못하든 간에,
    우리의 원수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 우리를 무너뜨리려고 합니다.
    하나님의 편에 서려고 하면 원수들의 궤사는 공교해 집니다.
    이때 평화는 깨어지고, 고독과 고통을 감내해야 합니다.
    죽을 힘을 다해 싸워 이겨야 합니다.


    • 2021-03-26 19:44

      장로님의 그 패기는 리스팩 합니다.
      그러나 패기만 있다고 영적인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음은 아닙니다.
      우리의 대장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따름이 모든 악한 영과의 싸움에서 반드시 승리할 수 있는 비결입니다.

      장로님과 찬송을 같이 듣고 싶습니다. "믿는 사람들은 주의 군사니" 찬송가 351장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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