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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디아서 55강 A. 참 자랑거리[6:11-17]Ⓑ B. 축도[6:18] # 연재 끝

작성자
최세창
작성일
2023-10-03 15:35
조회
333

※ 연재되는 필자의 주석책 「갈라디아서․에베소서」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자랑한다고 고백하는 것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다. 문제는 실제적으로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자랑하며 사느냐 함이다. 구체적으로 말해서,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자랑하는 것은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그리스도께 복종하여 그분의 능력으로 사는 것이고(2:20), 그 십자가의 도를 방어하며 또한 사랑의 강권에 의해 선포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고전 9:16, 고후 5:14). 따라서 세상적인 것과의 관계는 끊어지는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바울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라고 하였다.

[세상]은 코스모스(κόσμος)로서 ‘우주’ 또는 ‘세상’(요 1:9, 10, 롬 1:20, 딤전 6:7, 히 9:26, 요일 4:1), ‘모든 인간’(마 5:14, 눅 12:30, 요 1:29, 3:17), ‘하나님을 떠난 인간’ 또는 ‘하나님과 대립되는 불 신앙적인 삶’(요 3:16, 8:23, 18:36, 고전 1:20, 엡 2:2, 벧전 5:9, 벧후 2:5, 요일 3:13, 4:5) 등을 의미한다. 이 외에 ‘단장’, ‘화장’, ‘꾸밈’(벧전 3:4) 등의 뜻도 있다. 여기서는 주로 육체적인 욕심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율법주의적인 삶을 의미하고 있다.

바울은 [세상] 곧 율법주의적인 삶의 원리와 자기 자신은 서로에 대해서 “죽었을 뿐만 아니라 저주받았다”(E. Huxtable)라고 하는 것이다. 이제 둘 사이는 전혀 관계가 없는 것이다(빌 3:8). 이것은 바울 자신의 의지나 힘에 의한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 못박히신 그리스도에 의한 것이다.

믿는 사람은 바울처럼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죽고(2:20의 주석을 보라) 다시 살았으므로(고후 5:17), 세상 것이 아니라 위엣 것을 찾아 살아야 하는 것이다(골 3:1, 빌 3:14, 롬 12:2).

그렇기 때문에, 바울은 【15】[할례나 무할례가 아무것도 아니로되 오직 새로 지으심을 받은 자뿐이니라]라고 말하는 것이다.

실로 복음 곧 십자가의 도(고전 1:18)를 믿는 믿음의 세계에서는 “할례나 무할례가 아무것도 아니며”(5:6의 주석을 보라.), 다만 중요한 것은 새로 지으심을 받은 자뿐인 것이다.

[새로 지으심을 받은 자]란 카이네 크티시스(καινὴ κτίσις)로서 ‘새 피조물’(AV), 또는 ‘새 창조 행위’(RSV)를 의미하는 것이다. 여기의 피조물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성령에 의해 창조된 새 생명을 가리키는 것이다(요 3:3, 5, 딛 3;5. 참조: 고후 5:17).➊ 이 새 생명은 현재 우리가 누리고 있는 것이며(2:20, 롬 7:4, 8:13, 고후 5:17, 딛 3:5, 벧전 1:23), 그 완성은 내세에 성취되는 것이다(롬 8:23, 고전 15:23, 44, 51:53, 살전 3:13, 빌 3:21, 골 3:4 등).

율법주의의 부당성을 논박하고 복음의 진리를 역설해 온 바울은, 이제 복음의 진리를 좇는 모든 이들에게【16】[무릇 이 규례를 행하는 자에게와 하나님의 이스라엘에게 평강과 긍휼이 있을지어다]라고 축복하고 있다.

[규례]는 카논(κανών)으로 곧은 막대를 가리켰으며, 여기서 목수의 자 또는 줄자를 의미하게 되었다. 따라서 비유적으로 행동의 규칙 및 원리(빌 3:16), 의무의 한계 또는 영역(고후 10:13, 15, 16) 그리고 정경의 뜻으로 사용된다.

이 구절의 경우에는 할례 또는 율법의 행위로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거듭난다는 그리스도교의 기본 진리를 가리키는 것이다.➋ 또 넓은 의미에서는 모든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키는 것이기도 하다. 이 점에 대해, 헨리(M. Henry)는 “본문에서 그가 말한 규례는 넓은 의미에서 신앙과 생활의 완전하고 흠 없는 규례인 모든 하나님의 말씀이나 복음의 교훈이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도리, 또는 그가 조금 전에 말한 새로운 피조물에 관한 진리라고도 볼 수 있겠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바울은 이 규례를 따라 행할 자(스토이케수신, στοιχήσουσιν:행하다의 미래형)와 [하나님의 이스라엘에게 평강(에이레네, εἰρήνη: 5:22의 주석을 보라.)과 긍휼](엘레오스, ἔλεος) 곧 자비와 사랑이 있기를 기원하고 있다.

[하나님의 이스라엘]에 대해 유대인으로서 그리스도인이 된 자들이라는 설(J. A. Bengel, “Zahn”➌)이 있지만, 대부분의 학자들➍은 모든 그리스도인이라고 한다. 바울은 믿음으로 거듭난 자가 [하나님의 이스라엘](롬 9:6. 참조: 빌 3:3)이라고 함으로써, 할례를 받은 자가 이스라엘이라고 주장하는 율법주의자들을 공박하는 것이다.

끝으로, 바울은 “짜증스럽고 분개한 마음으로”(M. Luther) 【17】[이 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가졌노라]라고 하였다.

이 표현은 율법주의자들인 거짓 교사들만을 가리키는 것➎이 아니고, 복음의 진리에서 이탈하고 있는 갈라디아 교인들만을 가리키는 것(W. Hendriksen)도 아니다. 바울은 자신의 사도권과 복음을 가짜라고 악선전하고, 율법의 행위로 구원받는다는 잘못된 교리로 갈라디아 교회의 신앙을 뒤흔들고 있는 거짓 교사들과 그들의 영향을 받아 복음에서 이탈하고 있는 갈라디아 교인들 모두를 가리키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이 서신을 쓴 후에는 그러한 짓들로 인해 자신과 자신의 일을 더 이상 괴롭히거나 방해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 이유에 대해, 바울은 권위 있게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가졌노라]라고 설명하였다.

[흔적]이란 스티그마타(στίγματα)로서, 바늘 따위로 찔러서 만든 육체의 표적, 단순한 낙인, 소유의 표시로서 가축에 새겨진 표시, 도망하지 못하도록 노예의 이마나 손에 찍은 낙인, 신의 노예라는 표시로 찍은 낙인, 병졸이나 포로의 이마나 손에 찍은 낙인 등을 뜻하는 것이다.➏

여기서는 바울이 복음의 진리, 즉 그리스도를 위해 당한 핍박과 고난 때문에 몸에 생긴 상흔들을 의미하는 것이다(행 14:19, 롬 8:17, 고후 4:10, 6:5, 11:23-28, 빌 3:10, 골1:24). 이 상흔들은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자 군사인 사도라는 하나의 증표이기도 하다.

[가졌노라]는 바스타조(βαστάζω)로서 무거운 짐을 진다는 뜻이다. 실로 사도직이란 영광인 동시에 무거운 짐이다(黑崎幸吉).
율법주의자들인 거짓 교사들은 자신들의 남근에 행해진 할례의 흔적을 자랑하였지만(5:13), 바울은 자신의 몸에 가해진 예수님의 흔적을 크게 자랑하는 것이다.

6:11-17의 고찰 결과에 의하면, 바울은 이 부분에서 본 서신의 내용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직접 큰 글씨로 쓰고 있다. 그에 의하면, 율법주의자들(거짓 교사들)이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할례를 받게 하는 것은 십자가의 도를 전하기 때문에 받을 유대인들의 핍박을 모면하고, 또한 할례 받게 한 것을 자랑하려는 속셈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바울 자신은 심령 속에 성령을 모신 사도로서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을 자랑하며 산다고 고백하였다. 그 이유는 죄와 죽음의 종인 인간을 구원하러 오신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일 정도로 타락한 인간의 잔악성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심오하고도 원대하신 사랑을 바로 그 십자가에서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며, 또한 그리스도에 의해 그와 죄악 세상의 관계가 끊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복음의 세계에서 중요한 것은 할례가 아니라, 믿음으로 성령에 의해 새 생명을 얻는 일이다. 바울은 그 복음을 좇아 행할 자들과 참 이스라엘에게 평강과 긍휼이 있기를 기원하고 있다.

끝으로, 그는 자기가 그리스도를 위해 당한 핍박과 고난 때문에 생긴 몸의 상흔, 즉 그리스도의 군사이자 종인 사도라는 증표를 지니고 있으니, 이 서신을 쓴 이후에는 더 이상 괴롭히지 말라고 당부하고 있다.

B. 축도[6:18]

바울은 이 서신을 축도로 끝낸다. 【18】[형제들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심령에 있을지어다 아멘].
바울 서신에서 볼 수 있는 축도 중에 성 삼위의 이름으로 빈 고린도후서의 축도(고후 13:13)가 가장 장엄하고, 그 밖에는 다소 차이가 있으나, 공통적인 것은 [은혜](카리스, χάρις: 1:3의 주석을 보라.)를 비는 것이다.

이 축도에는 세 가지의 특징이 있다. 첫 번째의 특징은 [형제들아]라는 호칭을 한 것이다. 이 사실은 바울 사도가 갈라디아 교인들을 여전히 사랑한다는 점을 보여 주는 것이다.➐ 이 점에 대해, 헨리는 “그는 갈라디아 교인들을 형제들이라고 부름으로써, 자신이 그들에게서 받았던 부당한 대우에도 불구하고 그들에 대하여 품고 있었던 부드러운 사랑과 위대한 겸손을 보여 준다.”라고 더욱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두 번째의 특징은 [심령]에 축복을 빈 것이다(빌 4:23, 몬 25). “아마 갈라디아의 율법주의자들의 육체적 종교와 구별하기 위한 언급일 것이다”(Chrysostom,➑ J. A. Bengel).

세 번째의 특징은 아멘(ἀμήν: 1:5의 주석을 보라.)이 첨가된 것이다.
결국 바울은 갈라디아 교인들의 부당한 대우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들을 사랑하는 형제로 여겨 그들의 심령에(프뉴마토스, πνεύματος: 6:1의 주석을 보라.)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도록 축도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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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석서와 주해서에서 인용할 경우에는, 해당 성구가 있으므로 저자의 이름만 밝혔음.
1) M. Luther, W. Hendriksen, 黑崎幸吉, 윤성범, 박윤선.
2) M. Luther, J. Calvin, E. Huxtable, W. Hendriksen, C. R. Erdman, 黑崎幸吉, 이상근. 참조: J. Wesley는 (1)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을 자랑으로 삼는 것, (2) 세상에 대해 십자가에 못 박히는 것, (3) 새로 지음을 받는 것이라고 한다.
3) in 이상근
4) J. Calvin, M. Henry, H. Alford, J. B. Lightfoot, E. D. Burton, 黑崎幸吉, 박윤선, 이상근.
5) J. Calvin, E. Huxtable, R. T. Stamm, 박윤선, 이상근.
6) 참조:R. T. Stamm, E. Huxtable, 黑崎幸吉, 이상근.
7) E. D. Burton, E. Huxtable, W. Hendriksen, 박윤선, 이상근.
8) in 이상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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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최세창, 갈라디아서, 에베소서(서울: 글벗사, 2002, 2판 2쇄), pp. 273-278.

갈-엡.JPG



첨부파일 : 갈-엡.JPG
전체 5

  • 2023-10-03 15:39

    필자의 주석책에는 각주로 되었고, 주석되는 성경의 구절과 용어는 고딕으로 구분했는데, 이 인텨넷 화면에는
    그대로 표시되지 않으므로 각주를 미주로 바꿨고, 고딕을 부호 [ ]로 바꿨습니다.


  • 2023-10-04 11:09

    '복음과 율법' 그리고 '그리스도인의 자유'가 핵심 주제인 갈라디아서에 관한 필자의 주석 연재를 연속적으로 보실 분들이나,
    저장하실 분들은 '통합자료실'의 '자료등록실'에 등록한 것을 이용하시는 게 더 편할 것입니다.


  • 2023-10-04 11:13

    '통합자료실'의 '자료등록실'에는 필자의 마가복음 주석 연재도 등록되어 있습니다.


  • 2023-10-04 14:19

    최 목사님, 안녕하세요?
    위 게시하신 내용을 통해 다양한 입장과 해석을 알게 된 점과, 이 기회에 저도 갈라디아서 본문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살펴보고 문건으로 정리하는 소중한 계기가 되었기에 이점을 같이 감사를 드립니다. 하나님의 말씀들이 담긴 성경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건전한 교리를 찾아가는 노력이 감리회원 모두에게 유익하다고 사료하여 저도 같이 이 여정을 걸었습니다. 본문에 대한 저의 소견을 아래와 같이 공유합니다.

    §15 <아무 것도 아니로되> KJV의 neither…. availeth은 “더 이상 효력이 없다.”다. [에5:13 그러나 유다 사람 모르드개가 대궐 문에 앉은 것을 보는 동안에는 이 모든 일이 ※만족하지 아니하도다 하니] ☞ 효력에는 적절한 조치와 기간의 한계가 포함. [약5:16 그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백하며 병이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니라]

    <오직 새로 지으심을 받는 것만이 중요하니라> ☞ 이는 신약 교리의 핵심 중 핵심이다. 새로 지으심, 새로 지으심을 받는 게 중요

    <새로 지으심> but a new creature. [고후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 누구든지 ⇨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 새로운 피조물

    §16 <규례를 행하는 자> ☞ 천로역정 주인공처럼 “그리스도인으로 신앙의 순례길을 걷는 자.” [빌3:16 오직 우리가 어디까지 이르렀든지 그대로 행할 것이라 18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 19 그들의 마침은 멸망이요 그들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그들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 20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평강과 긍휼> [사54:10 산들이 떠나며 언덕들은 옮겨질지라도 나의 자비는 네게서 떠나지 아니하며 나의 화평의 언약은 흔들리지 아니하리라 너를 긍휼히 여기시는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느니라] ☞ 하나님의 자비 화평과 언약 [딤전1:2 믿음 안에서 참 아들 된 디모데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로부터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네게 있을지어다] ☞ 은혜와 평화는 하나님한테서 온다. 사람에서부터가 아니다. [딤후1:2 사랑하는 아들 디모데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로부터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네게 있을지어다] [딛1:4 같은 믿음을 따라 나의 참 아들 된 디도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 예수 우리 구주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네게 있을지어다] [요이1:3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하나님 아버지와 아버지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로부터 진리와 사랑 가운데서 우리와 함께 있으리라] [유1:2 긍휼과 평강과 사랑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 긍휼과 평강(평안) ≡ 자비와 평화, 같은 말

    §17 <이후로는> [대하16:9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들을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나니 이 일은 왕이 망령되이 행하였은즉 이 후부터는 왕에게 전쟁이 있으리이다 하매] [사9:7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왕좌와 그의 나라에 군림하여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지금 이후로 영원히 정의와 공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 [사59:21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들과 세운 나의 언약이 이러하니 곧 네 위에 있는 나의 영과 네 입에 둔 나의 말이 이제부터 영원하도록 네 입에서와 네 후손의 입에서와 네 후손의 후손의 입에서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 지금부터…. 특정한 어떤 시점을 중심으로 사람의 인생은 분기된다. [미4:7 그 새긴 우상들은 다 부서지고 그 음행의 값은 다 불살라지며 내가 그 목상들을 다 깨뜨리리니 그가 기생의 값으로 모았은즉 그것이 기생의 값으로 돌아가리라] [눅5:10 세베대의 아들로서 시몬의 동업자인 야고보와 요한도 놀랐음이라 예수께서 시몬에게 이르시되 무서워하지 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하시니] [요14:7 너희가 나를 알았더라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로다 이제부터는 너희가 그를 알았고 또 보았느니라] [히10:13 그 후에 자기 원수들을 자기 발등상이 되게 하실 때까지 기다리시나니] [계14:13 또 내가 들으니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이르되 기록하라 지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이르시되 그러하다 그들이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그들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하시더라] ☞ ‘지금 이후로’ 어떤 일에도 때가 중요하다.

    <예수의 흔적> ☞ 이는 할례 같은 종교적 외양이 아니다. 이는 새로 지으심을 받은 이후이다. [레19:27 머리 가를 둥글게 깎지 말며 수염 끝을 손상하지 말며 28 죽은 자 때문에 너희의 살에 문신을 하지 말며 무늬를 놓지 말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 육체에 문신은 금하신 일이다.

    §18 <형제들아> ☞ 4장 12절, 28절 참조. 이는 믿음이 성숙한 자를 말한다. [행13:26 형제들아 아브라함의 후손과 너희 중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아 이 구원의 말씀을 우리에게 보내셨거늘] ☞ 예수 그리스도 구원의 말씀을 받은 자 [롬12: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 이는 사도바울과 같이 믿음이 성숙한 이들에게 주는 권고이며, 대상이 일반 교인은 아니다. [고전7:24 형제들아 너희는 각각 부르심을 받은 그대로 하나님과 함께 거하라] ☞ 소명대로 하나님 안에 거하는 자 [약4:11]

    <심령> 개역개정에서는 심령이나, KJV는 ‘your spirit’이고, ‘너의 영’이다. 영이 성령이나 악한 영 같은 다른 영과 교류한다. KJV는 마음 mind와 영 spirit는 구분하여 표현한다. [엡4:23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 ☞ 이는 영이다. 혼에 해당하는 마음이나 생각이 아니다.


    • 2023-10-04 16:16

      엄 장로님, 안녕하시지요?
      필자의 갈라디아서 주석 연재에 계속 관심을 보이시고, "위 게시하신 내용을 통해 다양한 입장과 해석을 알게 된 점과, 이 기회에 저도 갈라디아서 본문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살펴보고 문건으로 정리하는 소중한 계기가 되었기에 이점을 같이 감사를 드립니다. 하나님의 말씀들이 담긴 성경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건전한 교리를 찾아가는 노력이 감리회원 모두에게 유익하다고 사료하여 저도 같이 이 여정을 걸었습니다. 본문에 대한 저의 소견을 아래와 같이 공유합니다."라고 하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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