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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여년 전 조선에 전해진 기독교는 진정한 진보였다.

작성자
유병기
작성일
2015-07-21 16:46
조회
1779
130여년 전 한국에 전해진 기독교는 진정한 진보였다.

130여년 전 구미 선교사들에 의해 우리나라에 전해진 기독교와 감리교회는 과연
어떤 것이었을까? 일부에서 말하는 것과 같은 기득권층을 옹호하며 자신의 안위를
도모하는 수구 보수 세력이었을까? 아니면 기존의 틀을 깨고 새로운 세상을 열어가는
진보적인 세력이었을까? 하는 것이다.

나는 2013년 8월 16일 감리교회 본부 게시판에 하디의 회심과 웨슬리의 회심이라는
글을 쓴 적이 있다. 그 글에서 초기 한국 기독교의 선교내용을 하디의 원산대부흥운동과
웨슬리의 올더스케잍 회심과 비교하며 그 의미를 밝혔었다.
그 글이 “한국에 전해진 기독교는 근본주의에 물든 수구 보수인가 아니면 진보인가” 라는
물음에 답을 줄 수 있겠다 판단하여 그 글을 조금 수정하여 다시 올린다.

1903년 하디 회심과 그에 따른 회개운동은 전국적으로 퍼져나가며 사회를 변화시키는
원동력이 되었다. 1738년 웨슬리의 회심과 내적변화 역시 영국사회를 개혁하는 핵심적인
신앙운동으로 전개되었다. 이 두 사건은 모두 성령의 임재를 통해 나타난 동일한 신앙경험
사건이었다. 이 사건들이 기독교와 감리교회의 본질을 나타내고 있다.

웨슬리는 다음과 같이 고백한다.
“나는 2년반 동안이나 본국을 떠나 조지아 인도인에게 기독교를 가르치러 갔었다.
그러나 그 동안에 내가 한 일을 무엇인가? 나는 다른 사람을 회개시키러 갔었다.
그러나 나 자신은 회개하지 못했다” 고 하였다.
이 일 이후 본국에서의 목회도 열정이 없는 무기력한 상태가 되었고 신앙에도 깊은 고민이
생겼다. 이런 상태에서 그의 인생과 목회를 바꾸는 일대 사건이 바로 우리가 그토록 되뇌이는
1738년 5월 24일 올더스케잍 회심사건이다.
이 사건으로 웨슬리는 마음의 평안과 구원의 확신을 갖게 된다.

웨슬리는 마태복음 3장 8절 주해에서
“회개는 두가지가 있다. 하나는 율법적 회개요. 다른 하나는 복음적 회개이다.
율법적 회개는...자신의 죄를 솔직히 인정하는 것이요. 복음적 회개는 모든 죄에서 벗어나
거룩함에 이르는 마음의 변화와 삶의 변화이다” 라고 설명한다.
이처럼 올더스케잍 회심사건으로 그는 내적변화와 삶의 변화를 이루게 되고 그리스도인으로서
그리고 목회자로서 새로운 사역에 쓰임을 받는다.

하디역시 웨슬리처럼 선교지에서의 무력감을 느꼈다. 선교의 열매도 미미하고 자신의 신앙에도
확신이 느껴지지 않는 상태에서 웨슬리가 느꼈던 것과 같은 영적이고 육적인 무기력함을 느낀다.
그런 상황에서 그의 선교와 삶을 바꾸는 일대사건이 일어나는 데 그것이 바로 우리가 말하는
원산에서의 하디 회심사건이다. 이 회심사건은 2000년 기독교 역사의 새로운 장을 쓰게 된
원산 대부흥운동의 기폭제가 되었다.

하디는 1903년 8월 24일부터 30일까지 있었던 사경회와 기도회를 인도할 때에 그는 성령의
임재를 체험하고 웨슬리가 말했던 복음적 회개를 이룬다. 그 사건이후 하디는 신앙적 고민에서
벗어나 마음의 변화와 삶의 변화를 겪는다. 그리고 그의 선교사역에 복음의 능력이 나타난다.
이때부터 하디를 비롯한 선교사들의 복음전파는 전국을 휩쓰는 거대한 불길이 되었다.
이것은 웨슬리의 회심이후 나타나는 회개운동과 동일한 현상이었다.
웨슬리는 가는 곳마다 회개의 역사가 일어났고 이로 인해 영국사회가 변화되는 계기를 맞는다.
그래서 유흥업주들이 웨슬리를 찾아와서 회개를 그만 시키라고 집회를 방해하기도 했다.

이처럼 하디도 전국을 순회하면서 회개운동을 펼쳐나갔다. 그 회개운동은 웨슬리의 회개운동처럼
개인의 내적변화와 삶의 변화로 나타났다. 잘못된 생활을 청산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새 삶을 살아
가는 것이다. 성령을 통한 이 개인의 변화는 사회적 변화로 이어졌다.
즉 복음적 회개로 성도들이 내적변화와 삶의 변화를 경험하고 그것이 사회변화로 나타난 것이다.
이것이 온전한 그리스도인의 삶이라 할 수 있다.
원산 대부흥운동의 중심이 된 이 회개운동은 그 당시 한국사회를 변화시키는 주역이 되었다.

따라서 하디의 회심과 웨슬리의 회심에서 우리는 기독교 신앙의 핵심을 발견하게 된다.
바로 성령의 역사를 통한 복음적 회개, 이로 인한 내적변화와 삶의 변화가 이루어져야만 온전한
그리스도인이 되고 복음전도자가 되며 목회자로서 자기 역할을 감당할 수 있게 된다는 사실이다.
사회는 사람들로 구성되어있다. 따라서 그 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이 변화되면 결국 그 사회는
변화되어 간다. 하디를 비롯한 한국에 복음을 전한 선교사들과 이 복음을 받아들인 한국 민들은
성령의 도우심으로 이것을 증명해냈다. 사회와 세상을 변화시키는 기독교의 본 모습인 것이다.

웨슬리는 사회적 문제에도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모리비안 교도들과의 결별도 결국 사회적 역할
즉 기독교 신앙과 그에 따른 사회적 실천에 있었다. 웨슬리는 경건주의자들이 추구하는 내세적인
절대적 하나님 나라에 대한 신앙도 견지하면서 이 땅에 현세적인 하나님 나라를 구현하는 데에도
마음을 쏟았다. 그것이 사회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동기가 되었고 이것을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는 것으로 보았다. 그래서 웨슬리는 노예해방, 여성해방, 고용제도 개혁, 분배와 나눔,
노동자들의 노조운동 등을 실천하게 된다. 사회변화와 사회적 성화를 추구하는 행함의 믿음이었다.

하디를 비롯한 선교사들 역시 그 당시 선교지 한국의 사회문제에 관심을 기울였다.
영국과 달리 우리 사회는 봉건적 유교사회였고 특히 이민족의 침탈로 국권을 상실한 식민지 나라
였다. 이러한 선교지에서 민중들이 겪는 고통을 풀어내고 그들이 전인구원을 얻도록 돕는 것은
필수적인 것이었다. 그들은 이를 위해 복음적 회개운동과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는 민족운동을
함께 펼쳐나갔다.

민족운동은 독립운동과 그것과 관련된 자주, 자립, 자유를 깨닫게 하는 계몽운동이었다.
즉 신식교육을 하는 학교들을 세워 개화된 학문과 사상을 익히게 하고 신앙교육을 하는 신학교를
세워 신앙을 체계화 시키고 삶과 연결시키며 신문과 서적들을 발간하여 새로운 사상과 정보들을
접하게 했다. 또한 민중들을 위한 병원들과 사회복지시설들을 세워 힘들고 괴로운 사람들을 도왔다.
이런 계몽운동과 사회운동은 하층민들이 기독교 복음 안에서 사회의 중심세력으로, 지도 그룹으로
발돋움하는 결과를 낳았다. 물론 양반층들도 일반 민중들과 함께 이 대열에 합류를 했다.

특히 한성감옥의 복음전파는 그 영향이 매우 크다. 요즈음으로 치면 정치사상범에 해당되는 인사들이
한성 감옥에 수용되었다. 그곳에 선교사들이 가서 도서관을 만들고 온갖 종류의 서적들과 문서들로
기독교를 전파했다. 이런 한성감옥전도로 그곳에 갇혀 있던 대다수의 양반 식자층이 무더기로 기독교를
받아들이고 새로운 삶을 일궈내는 열매를 맺었다. 이처럼 그 당시 조선인들에게 세상 보는 눈을 뜨게
하고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만들어 나갔다.
진정한 기독교 선교활동이요 민중계몽운동이며 사회통합운동이며 사회해방운동이었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그들은 기존 사회에 적대적이지 않았다. 따라서 폭력적이지도 않았다.
거대한 담론을 만들어 대항하지도 않았다. 비폭력 신앙운동이고 민족계몽운동이었다.
이 신앙운동과 민족계몽운동은 교회 안에서 온전히 이루어졌는데 양반과 천민이 하나 되고
남녀노소가 하나 되며 모두가 주인이 되는 인권과 자주와 자립과 자유와 평등의 사회를 이루었다.
따라서 교회는 해방구와 다름이 없었다. 이런 연장선에서 만든 협동조합은 신앙과 삶을 연결하는
농촌운동으로 분배와 나눔의 평등과 인권을 보장하는 사회통합과 일치를 일궈냈다.

교회도 일치를 이루고 사회도 일치를 이루며 선교도 협력선교로 일치를 이뤄냈다.
특별히 일치된 한글성경과 찬송가 발행은 압권이다. 한문 위주의 권위적인 사회에서 모든 사람들이
한글로 된 성경과 찬송가로 신앙생활 할 수 있게 한 것은 또 다른 변혁이고 참 에큐메니칼이었다.
이런 결과들로 교회는 대부흥의 성장을 하게 된다. 한마디로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된 것이다.

하디를 비롯한 선교사들의 이런 선교활동은 사제중심의 봉건적 중세사회와 교회를 개혁한
마틴 루터의 종교개혁과 문예부흥 못지 않는 대 사회변혁이었다.
그 당시 조선의 전통사회를 뿌리 채 흔들어서 바꿔놓는 것이었다.

기독교의 구원은 내세적 구원만이 아니다. 현세적 구원도 중요하다. 현재의 고통과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구원도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예수님이 병들고 괴로움에 빠진 사람들을 고쳐주시고
새 삶을 살게 하신 것이 바로 여기에 속한다.
당시 사회의 고통과 괴로움은 일제의 식민지였다. 따라서 식민지에서 벗어나 독립을 얻게 하는
것은 현세적 구원으로 중요한 일이었다. 이 독립운동에 교회가 신앙적으로 응하게 하였다.
제국주의 일본의 식민지배로부터 나라를 되찾고자 하는 독립운동은 필수적인 것으로 기독교가
민족을 위해 해야 할 사명이었다. 그렇게 하지 않은 일부 선교사들도 있었지만 하디와 헐버트는
이 독립운동에 적극적인 지원과 참여를 아끼지 않았다.

이러한 민족운동과 회개를 수반한 신앙운동은 그 당시 사회를 변혁시키고 새 세상을 만드는
기폭제였다. 이와 같은 사회변화는 웨슬리가 추구했던 사회적 성화와 맥을 같이 하는 것이다.
물론 거기에는 고난과 박해가 수반했고 그것을 이겨내는 믿음의 실천이 있었다.

결론적으로 하디의 회심사건과 회개운동 그리고 선교사들의 선교활동은 우리나라와 민족을
구원하고 변화시킨 성령의 역사로 영국에서 웨슬리를 통해 일어났던 성령의 역사가 우리나라에서
재현된 것이다. 성령의 역사로 복음이 폭발적으로 확산되어 전국을 강타하는 대부흥운동으로
이어지고 이로 인해 사회가 대변혁을 이루고 기독교회는 폭발적인 부흥과 성장을 이룬 것이다.
이는 2000년 기독교 역사에서 그리 흔하지 않는 드문 사건이다.
이와 같은 성령을 통한 기독교 선교활동이 대한민국의 기독교회의 토대를 이루었고 오늘날의
대한민국을 있게 하였다. 이 모두가 다 하나님의 은혜이다.

그런고로 내세화시켜 사회와 결별된 기독교가 결코 아니었다.
또한 기존의 사회질서를 수구하며 기득권층을 옹호하는 보수세력이 아니었다.
한국에 복음을 전한 선교사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지만 자신들의 안위를 도모하지 않고
철옹성 같은 봉건적인 폐쇄적 신분사회를 변화시키고 나라와 민족의 자유와 자주독립을 위해
헌신하며 인간을 구원하고 새로운 세상과 사회를 만들어내는 역할을 감당했다.
이 기독교가 진정한 진보가 아니겠는가!

웨슬리는 복음적 회개이전의 선행은 선행이 아니라고 말한다.
이는 성령의 역사를 통해서만 내면의 변화와 삶의 변화를 이룰 수 있고 나아가 사회변화를
이룰 수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웨슬리는 성령이 떠난 교회가 될까봐 걱정했다. 이 웨슬리의
걱정이 사실화 되지 않도록 130여년이 지난 오늘 이 하디의 회심사건과 회개운동 그로 인한
내적변화와 삶의 변화를 통한 사회변화가 기독교 복음을 전수받은 우리 감리교회와 성도들을
통해 이 땅에 다시 재현되기를 기도한다.

시흥종교교회 유병기 목사



전체 2

  • 2015-07-21 17:38

    유병기 목사님, 좋은 글 감사합니다.


  • 2015-07-21 18:22

    최세창 목사님 좋은 글로 받아주셔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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