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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도자의 위치를 벗어나 위기에 있는 사람들.....

작성자
오재영
작성일
2015-07-21 16:35
조회
1819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에 소명자로 부름 받아 살아가는 정상적인 구도자의 삶이란 어떤 것인가?
그 소명이 분명하다면 누구를 막론하고 항상 자신의 위치에서겸손의 마음가짐으로 묵묵히 감당하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영적 세계를 모르는 세상 사람들은 단순히 재수. 운이 없었다는 신세타령으로 끝나고 말지만, 교활한 사단과의 싸움에 전생을 걸고 영적 전쟁을 수행하는 구도자에게는 모두가 중요한 일이다.

교활한 사단은 언제나 무장을 해제하고 위치를 벗어나 엉뚱한 곳에 시선을 주고 있는 사람을 찾아내어 넘어뜨린다.
그러므로 구도자는 언제나 자신의 나약함을 인정하고 유혹의 기회를 미리 차단하는 것이다. 그리하지 않으면 유혹이 꿈틀거리며 고개를 들 때 물리치기가 쉽지 않다. 어쩌면 그때는 이미 굴복당한 형편에 있을지도 모른다. 어떤 이는 자신의 의지를 과장하여 본인을 예외로 하는듯한 언행으로 소일하지만 인간의 의지라는 것이 그리 내세울만한 것이 못된다. 모두가 성경의 경고를 마음에 새겨야 할 것이다.“그러므로 선줄로 생각하는 사람은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10:12).

구도자에게 있어 말씀 외에는 모든 것이 유혹이겠으나 시대의 조류 탓 인지 본인들은 부인하고 있으나 구도자라면 누구에게나 치명상을 입는 성적인 타락의 소문들이 많다. 예수님의 기준으로야 모두가 동일한 죄인들이지만, 아직도 구원에 이르러야할 이교도의 비중이 80%에 이르며 이들을 위하여 교회가 있다고 한다면 모든 유혹 중에 성적인 유혹은 치명적이다. 최근에 미국 라이프 교회의 담임 목사인 ‘크레이그 그로쉘’ 목사의 “목사로 산다는 것” 에 대한 글을 읽고 생각하는 바가 많았다. 아래 글은 그 내용의 일부이다.

누구든지 유혹은 조심해야한다.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서늘함을 느낀다.
북극의 에스키모 인들이 맹수이며 육식성동물인 이리를 처치하는 방법의 이야기가 있다.
부락의 가정들이 해를 당하지 않기 위해서 그들은 토끼나 다람쥐를 사냥한 다음 부락민들은 예리한 양날 검을 그 짐승의 피에 적셔서 피가 칼날에 얼어붙게 한다. 그리고는 피에 덮인 칼날이 위로 보이게 해서 칼자루를 땅속에 단단히 묻는다.

밤중에 이리는 피 냄새를 맡고는 뭔지 알아보려고 접근한다. 그리고 이리는 피가 얼어붙은 칼날을 핥기 시작을 한다.
얼어붙은 피와 싸늘한 금속이 이리의 혀를 마비시키면 결국 이리는 칼날에 제 혀를 베어 자신의 더운피를 맛보게 된다.
혀의 마비로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이리는 갈수록 더 빨리 허겁지겁 칼날을 핥으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리의 혀는 갈가리 베어진다. 이리가 사태를 알아차릴 때에는 이미 돌이킬 수 없을 만큼 상처가 깊어진 다음이다. 그다음 이리는 서서히 피를 흘리며 죽어간다.

자신을 성찰하지 못하고 처음에는 그저 대수롭지 않게 가볍게 시작한 버릇과 습관들이 머지않아 중독이 되어 지난한 세월, 쌓아온 자신의 삶을 바닥부터 허물어 내리는 모습들을 교활한 사단과의 영적 전쟁터 에서는 수도 없이 보게 된다.

“오직, 주님의 은혜가 아니면 우리가 어디에 서있으며 감당할 수가 있겠는가?.”...
겸손히 자신을 낮추며 엄위 앞에 옷깃을 여미는 것이 구도자의 바른 자세일 것이다.



전체 3

  • 2015-07-22 11:06

    남 다른 식견과 안목으로 시대를 통찰하는 감리사님의 글을 통해 깨달음을 얻게되어 감사 드립니다


  • 2015-07-22 16:10

    이리의 교훈을 많은 이들이 보고 배워야 합니다.
    주님의 은혜를 모르는 사람들, 그에 역행하는 사람들...우리 감리인들이 흡사 이리와 같은 모습...


  • 2015-07-23 09:17

    오세영 목사님! 과분한 칭찬과 격려 감사드립니다.

    박영락 집사님!
    언젠가 감게 에 올린 글 중 ‘칼에 베인 상처’의 내용이 교회의 아픔으로 다가왔던 기억이 있습니다. 최근에 집사님께서 올리신 글의 내용들은 영원을 지향하는 구도자의 세계에서는 그리 중요한 것들이 아닙니다. 어느 시대에나 본분 망각하고 직분과 명칭에 관계없이 자기성찰에 소홀한 이들의 가련한 이들이 있습니다.

    섬기시는 상도동교회, 80년대만 해도 전국적으로 부흥의 소문이 돌아 전도 집회마다 간증자 들이 넘쳐나곤 했습니다. “알맞은 시기에 알맞은 인재가 알맞은 자리에 등용되어 능력을 발휘 하는 예는 개인이든 교회든 은혜의 시대에는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입니다.\" 이제는 마음에 있는 실망과 미움의 상처 모두 주님께 맡기고 (롬12:18-21) 가족이 먼저 무릎으로 허물어진 교회 세우기 위해 기도해야하지 않겠습니까? 집사님 의 이름을 보면서 문득 부모들이 염원을 담아 부르심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개인이든 가족이든 주님 앞에서 다른 이를 탓하기보다 자신의 탓으로 돌리고 중보의 자리에 서는 이들은 숫자와 관계없이 모두가 현존하는 미래의 희망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주님 은혜 안에 평안 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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