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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극적‧긍정적 생각과 주의 뜻

작성자
최세창
작성일
2016-08-24 10:30
조회
952
1. 시작하는 말

명사들의 금언 같은 말의 허실을 볼 영적 지각이 있어야 합니다. ‘하면 된다.’, ‘난 할 수 있다.’라고 적극적‧긍정적 생각을 해야 성공한다고 말들을 합니다. 그러나 적극적‧긍정적 생각 때문에 성공한 사람들보다는 실패한 사람들이 훨씬 더 많습니다. 실패한 사람치고, 망한 사람치고 적극적‧긍정적 생각을 안 한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하면 된다고 생각했으니까 한 것이고, 할 수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시간과 노력과 돈을 쏟은 것이 아닙니까? 해도 안 된다거나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예 시도를 안 합니다.
적극적‧긍정적인 생각으로 성공한 사람들도 그 생각이 아니라, 치밀한 계획과 철저한 준비, 강한 집념과 끈질긴 인내, 성실한 노력과 자신감이 생기게 하는 실력 때문입니다.

2. 적극적이며 긍정적인 사고의 문제와 주의 뜻

야고보 사도는 적극적‧긍정적 생각에다 성공의 요소들을 다 갖춘 것 같은 사람들에게 경종을 울리고, 그 모든 요소들과 비교될 수 없는 성공의 결정적 요인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들으라 너희 중에 말하기를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아무 도시에 가서 거기서 일 년을 유하며 장사하여 이를 보리라 하는 자들아”라고 했습니다. 적극적‧긍정적 생각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오늘이나 내일, 아무 도시에 가는 계획과 그 도시에서 일 년 동안 살 계획과 사업 계획도 치밀하게 세웠습니다. 사업 자금도 준비했습니다. 사업 경영 능력에 따른 자신감과 성실한 노력과 성공에 대한 확신도 대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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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습니다. 개인 일이나, 가정 일, 교회 일이나 직장 일, 사업이나 나랏일을 하는 사람들도 다 그들 같아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주님의 형제이며 사도인 야고보가 그런 사람들에게 칭찬이 아닌 경계를 하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첫째, 그 치밀한 계획 하나하나가 다 불확실하기 때문입니다. 오늘이나 내일 떠날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도시에 안전하게 도착할 수 있을지 없을지, 계획한 사업이 그 도시에 적합한지 아닌지, 동네마다 텃세가 있는데 일 년 동안 편안히 장사할 수 있을지 없을지, 사업을 해서 이익을 볼지 손해를 볼지 등등은 그 누구도 알 수 없지 않습니까? 어느 계획 하나 확실한 것은 없고, 다 불확실한 것입니다. 온통 유한한 인간의 머릿속에서 나온 그 모든 것을 누가 보장할 수 있습니까?
둘째, 그들의 인생 계획 속에 하나님이 없기 때문입니다. 치밀한 계획과 철저한 준비와 사업 경영 능력에 따른 자신감과 성실한 노력과 성취에 대한 확신이 대단했지만, 그 어디에도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이 없습니다. 그 계획이 너무 치밀하고, 성공에 대한 신념이 너무 투철해서 하나님이 들어가실 틈이 없는 것이 심각한 문제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교인들 중에도, “얘야, 네 인생 계획 속에 내가 들어갈 자리는 없구나!” 하시는 하나님의 탄식을 들어야 할 이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도 모르게 하나님보다 자신을 더 과신하는 자기 우상화에 빠져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안 믿는 사람도 최소한 성패와 승패를 좌우하는 신비한 의외성은 인정할 줄 알아야 합니다.
셋째, 본질적이며 근본적인 점을 망각했기 때문입니다.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라고 했습니다. 성공해서 출세 가도를 달리면서 적극적‧긍정적인 생각으로 불법‧편법적으로 치부하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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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성적이며 유능하고 유력한 전‧현직 판‧검사들과 정객들도 신문‧방송을 요란하게 장식하면서 치욕의 나락으로 추락하지 않습니까?
성공의 결실을 우상처럼 여기고, 그 성공의 결실을 악용해서 얻은 재물이나, 죄악의 수단과 방법으로 얻은 재물은 어느 한 순간에 날아가는 것입니다. 잠언 23:5을 보면, “네가 어찌 허무한 것에 주목하겠느냐 정녕히 재물은 날개를 내어 하늘에 나는 독수리처럼 날아가리라”라고 했습니다. 혹자는 내가 세계에서 손가락 꼽을 정도의 거부인데 어느 세월에 다 날아가겠느냐고 큰소리칠지도 모릅니다. 목숨이 날아가지요. 누가복음 12:20을 보면,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라고 했습니다. 인간의 근본적인 문제는 잠시 후에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을 잊고 사는 것입니다. 그때 모든 결실은 안개처럼 사라지는 것입니다.
주님의 뜻을 순종하여 성공의 결실을 얻어야 하고,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야고보 사도는 “너희가 도리어 말하기를 주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저것을 하리라 할 것이거늘”이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생명을 유지케 하시는 주님의 뜻은, 우리가 자신을 부인하고,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좇아 살게 하시는 것입니다. 살면서 이것 혹은 저것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꿈과 계획이 반드시 주님의 뜻에 일치되어야 합니다. 그 이유는 각 사람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주님께서 우리 각 사람을 통해 이루고자 하시는 꿈과 계획이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성경 100독을 할 테니 반려자를 달라고 기도하고, 100독을 거의 다하도록 신유와 축귀를 믿지 않았습니다. 귀신이 어디 있냐고 했습니다. 그런데 정신병원에 입원했다가 차도가 없어 퇴원한 종갓집 장손ㅡ20대 딸들이 있는ㅡ을 대하면서 그런 은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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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게 주어져 있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그 후 40여 년 동안 신유와 축귀의 일을 해 오고 있습니다. 대략 70%가 해결됐습니다.
기독교는 인격 수양이나 윤리‧도덕의 종교가 아니라 주 하나님을 믿는 영의 종교입니다. 이성적이거나 비이성적인 종교가 아니라 초이성적인 종교입니다. 합리적이거나 비합리적인 종교가 아니라 초합리적인 종교입니다. 성령 체험을 하면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과 목적과 계획 없이 창조된 사람은 한 명도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꿈이요 소망입니다. 우리의 성공이 하나님의 꿈과 소망의 성취일 때 가장 값지고 유용한 것입니다. 우리의 꿈과 계획을 수행할 때에는 결코 주 하나님을 배제해서는 안 됩니다. 기도와 말씀 순종을 통해 동행해야만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본능적 이기심을 따라 사단의 수단과 방법을 사용하게 되는 것입니다. ‘꿩 잡는 게 매다’라는 말을 좋아하면 안 됩니다. 마태복음 7:17 이하를 보면,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라고 했습니다. 목적이 수단과 방법을 정당화하는 것이 아니라, 정당한 수단과 방법이 정당한 목적을 달성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원하는 꿈이냐 아니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주님이 원하시는 꿈이냐 아니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가 좋아하는 계획과 방법이냐 아니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주님이 좋아하시는 수단과 방법이냐 아니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잠언 16:9을 보면,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라고 했습니다.
누군가가 선교사에게 아프리카에서의 선교 활동을 정말 좋아하는지에 대해 물었습니다. 그런데 선교사의 대답은 너무나 뜻밖이었습니다. “이 일을 좋아하느냐고요? 천만에요. 저와 제 집사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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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러운 것은 딱 질색이에요. 우리는 상당히 섬세한 감각을 지닌 편이거든요. 그 냄새나는 고약한 오두막에 기어들어가는 일은 몸서리치지요. 그 무지막지하고 불결하며 야만스러운 사람들과 함께 사는 건 정말 하고 싶지 않은 일이죠. 그러나 자기가 싫다고 그리스도를 위해 아무것도 안 할 수 있나요? 좋다든지 싫다든지 하는 것은 선교 사업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어요. 우리는 그저 ‘가라!’는 명령을 받아 갔을 뿐이죠. 사랑이 우리를 강요한 것이니까요.”
그 선교사의 기호가 아닌 꿈은 그를 통해 아프리카를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꿈입니다. 내키지 않는 환경과 사람들을 위한 선교 수행은 자신이 아닌 주님의 인도를 따르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혹시나 우리도 주님의 뜻과 무관한 꿈과 계획을 세우고, 적극적‧긍정적 생각을 하고, 치밀한 계획과 철저한 준비, 강한 집념과 끈질긴 인내, 성실한 노력과 자신감을 생기게 하는 실력, 그리고 성취에 대한 확신을 자랑하지나 않습니까? 야고보 사도는 “이제 너희가 허탄한 자랑을 자랑하니 이러한 자랑은 다 악한 것이라”라고 했습니다. 이어서 그는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치 아니하면 죄니라”라고 했습니다. 주님의 뜻을 따라 꿈과 계획을 세우고, 주님이 원하시는 수단과 방법으로 수행해야만 주님이 기뻐하시는 성공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도 행치 않으면 죄라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자신감이 있어야 한다면, 그것은 주님의 뜻에 따르는 데서 생기는 자신감이어야 합니다.

3. 맺음말

소극적이며 부정적인 사고보다는 적극적이며 긍정적인 사고가 낫고, 적극적이며 긍정적인 사고보다는 합리적인 사고가 낫습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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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그러나 정말 우리가 가져야 할 사고는 신앙적 사고입니다. 인간의 허탄한 자랑과 자신감 속에 가려진 불확실성을 깨닫고, 겸손하게 주님의 뜻을 따라야 합니다. 주님의 뜻에 따른 꿈과 계획을 세우고, 기도와 말씀에 착념하여 주님의 방법을 사용해야만 이것저것을 이룰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 주님 안에서 성령을 좇아 주 하나님의 꿈이요 소망이자 우리의 꿈이요 소망을 성취하는 성공적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필자의 www.newrema.com의 저서들: 신약 주석(마-계 8610쪽)/ 난해 성구 사전 I, II권/ 예수 탄생 이전의 구원/ Salvation Before Jesus Came/ 바울의 인간 이해/ 바울의 열세 서신/ 우린 신유의 도구/ 눈솔 인터넷 선교/ 영성의 나눔 1, 2, 3, 4권/ 영성을 위한 한 쪽/ 설교집 22권/ 눈솔 예화집 I, II. (편저)/ 웃기는 이야기(편저).// 다수의 논문들



전체 1

  • 2016-08-24 10:32

    (설교의 성경 본문: 야고보서 4:13-17)
    13들으라 너희 중에 말하기를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아무 도시에 가서 거기서 일 년을 유하며 장사하여 이를 보리라 하는 자들아 14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15너희가 도리어 말하기를 주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저것을 하리라 할 것이거늘 16이제 너희가 허탄한 자랑을 자랑하니 이러한 자랑은 다 악한 것이라 17이러므로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치 아니하면 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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