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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감독회장선거에 그가 공을 세웠는가?

작성자
오재영
작성일
2020-11-06 12:41
조회
1083
현명(賢明)한 지도자와 올바른 천거...

故史에 등장하는 춘추 전국 시대에 진(晉)나라 황제 평공(平公)이 기황양(祁黃羊)에게 물었다.
"남양현의 현령 자리가 비었소. 당신이 보기에 누가 이 자리를 맡을 만하오?" 기황양은 주저함 없이 대답했다. "해호(解狐)라면 잘 해낼 것입니다." 그러자 平公이 놀라 물었다. "해호라면 당신의 원수가 아니오?" 이에 기황양이 답하기를 "군주께서는 누가 적임자인가를 물으신 것이지 제 원수가 누구인가를 물으신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진의 황제 평공은 해호(解狐)를 남양현의 현령(縣令)으로 삼았다. 현령이 된 해호(解狐)는 이후 백성들을 열심히 가르치고 격려하여 폐정을 단시일에 없앴으므로 대단한 칭송을 받았다.

오래지 않아 진평공이 또 기황양(祁黃羊)에게 물었다. "조정에 법관 자리가 비었소. 누가 적임자라고 생각하시오?" 이에 기황양이 대답했다. "기오(忌惡)라면 잘 해낼 것입니다" 그 말에 평공이 이상히 생각되어 물었다. "기오(忌惡) 는 당신의 아들이 아니오? 당신이 그를 추천하다니 두고두고 남의 이야깃거리가 될까 걱정이오."

이에 기황양이 대답했다.
"군주께서는 누가 법관을 맡을 만한가를 물으신 것이지 제 아들이 누구인가를 물으신 게 아니지 않습니까?" 법관이 된 기오는 신중하게 법을 집행하여 해로움을 제거하고 이익을 주었으므로 그 또한 많은 백성들의 칭송을 받았다.

공자가 이 말을 듣고 다음과 같이 칭찬했다.
"그래 기황양이 인재(人才)를 천거할 때는 밖으로는 자기 원수도 피하지 않고 안으로는 자기 자식도 꺼리지 않았으니 진정 공평무사(公平無私)한 인사라 할 수 있다." - 여씨 춘추에서-

성직(聖職)은 논공행상의 전리품이 아니다.

인사(人事)가 만사(萬事)라는 말이 있다. 즉 좋은 인재를 잘 선택하여 적재적소(適材適所)에 세우고 직임을 맡기는 것이 모든 일을 잘 풀리게 하고, 원활하게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구도자(求道者)의 조직에서 누구를 임명하느냐 하는 것은 對內外的으로 상징적인 의미가 매우 크다. 특히 신탁(神託)을 목숨보다도 더 중요하게 받드는 사명을 전제로 할 때는 안팎으로 끼치는 영향이 가볍다할 수 없다. 7천여교회, 1만 여명의 목회자와 130여만의 성도들과 함께, 밖으로는 미래의 선교의 대상들까지 배려하는 인사여야 한다.(행6:1~7). 누구나 본질의 罪性에서 자유로운 이 없겠으나 임명권자도 그동안 지켜온 기본적 상식에 의해 세우길 바란다.

교단 부실에 책임 있는 일부인사들...

옛말에 “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처럼, 지나온 과정에 보통사람들보다 거룩을 더 말하고 성령의 인도와 영혼구원을 말하는 일부 부흥사들이 우리교단에 끼친 해악이 너무 많다. 이들이 많은 이들에게 알려짐을 기화로 오만하면 현대판 ‘게하시’와 ‘발람’의 반열에 서는 것이다. 더욱 엄위 앞에 두려움과 낮은 자세로 분수 넘지 않기를 바란다. 함부로 교단정치에 개입하여 특정인 추천하지 말라. 종교학(宗敎學)은 고등종교와 하등종교를 구별하는 분기점을 자기부인(自己否認)으로 삼는다. 해당종교에 자기부인이 있으면 고등종교, 없으면 하등종교로 분류된다. 여기서 말하는 자기부인이란, 영원한 가치를 위한 자기 욕망의 부인으로 자신이 따르는 종교가 표방하는 영원한 가치를 위해 인간의 욕망이 부인되고 있다면, 그 종교는 고등종교로 간주된다. 그러나 자기부인처럼 보이지만 단지 자기 욕망의 성취를 위한 것이라면, 그 종교의 형태와 상관없이 그것은 미신과 다름없는 하등종교에 지나지 않는다.

신탁(神託)은 생존수단이 아니다.

전에도 인용한바가 있지만 직(職)에 관하여 생각할 때면 떠오르는 단상(斷想)이 있다.
오래전 이미 고인이 된 이은성씨의 소설 ‘동의보감’에 나오는 내용이다. “醫는 아무 그릇에나 담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 그릇은 心性의 맑기와 크기를 말한다. 의를 담는 그릇은 셋이다. 하나는 인품(人稟)이요 둘은 천품(天稟)이요 셋은 신품(神稟)이다. 인품은 고을의 환자를 고치는 그릇이며 천품은 세상 사방의 환자를 고치는 그릇이요 신품은 온 세상의 만병을 바라보는 그릇이다. 고을마다 醫院의 간판들이 널려있듯이 온 지역마다 그 의원(醫院)수만큼이나 수도 없이 있는 敎會들... 지금 선교의 대상들인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 우리는 과연 신앙인다운 품격(稟格)과 그에 따르는 인격(人格)을 갖추고 있는가? 그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허세를 뛰어넘은 자기부인의 치열한 인격도야(人格陶冶)의 당당함을 갖추기에 열과 성을 다하고 있느냐는 말이다.

누구나 자신에게 불리어지는 그 명칭에 합당한 인격과 품격을 갖추어 삶을 산다는 것이 쉬운 것은 아니다.
누군가 그런 표현을 썼다. 우리가 공존하는 삶의 과정에는 다양한 범죄(犯罪)가 있고, 모든 범죄가 하나같이 사악(邪惡)하지만, 그중에서도 천벌(天罰) 받을 犯罪가 있다했다. 첫째는 의사의 면허를 가지고 환자의 생명존중은 안중에도 없고 자신의富를 축적 하려는 것이요, 둘째는 牧師라는 허울 좋은 명칭을 빙자하여 죄인(罪人)들을 이용하여 밥 벌어 먹고사는 인간들이라고...지난날 교단의 어려울 때 패거리 지어 이익을 따라 중책을 방기(放棄)하든인사들이 또 존재감들을 과시하려는가? 특정인을 지지함은 본인의 품격(品格)과 안목(眼目)에 관함이니 책할 바 아니나 그것으로 끝내고 조용히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 사역의 현장에서 牧養에 힘쓰라. 그것이 남보다 많이 맡기신 분의 뜻 이라는 생각이다.

자리를 벗어나 자기를 과장하는 이들의 행태를 보면 ‘대동소이’ 하다.
말로는 온갖 미사여구 나열하지만 관심은 오로지 자신의 이기심 뿐,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은 없다. 때문에 조석변개 로 義와 관계없이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이익추구에 노심초사 하는 이들이다. 그러나 반짝인다하여 모두 보화가 아니듯이 겉으로 들어나는 뜨거움과 열정이 모두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영혼을 교도하는 목사(牧師) 의 사역에는 오직 두 가지가 있을 뿐이다. 즉 자신의 영광이 아닌, 그동안 자신을 구원하시고 측량할 수 없는 은혜를 베풀어주신 그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리는 것과, 밥 벌어 먹기 위해 사는 것이다.(벧전5:2~3).

최효섭 목사의「명상록」에 정직함을 가리켜, 일에 정직한 것을 ‛성실’이라 하고, 이웃에게 정직한 것을 ‘사랑’이라 부르고, 진리에 정직한 것을 ‘정의’라고 하며, 아내나 남편에게 정직한 것을 ‘정절’이라 부르며, 신에게 정직한 것을 ‘믿음’이라 부른다. 인간의 ‘덕(德)’이라고 부르는 것도 따지고 보면 정직의 추구라 말할 수 있다. 낙담한 기독교 전사들의 사기를 회복시킨다는, 고든, 맥도날드는ᒥ하나님이 축복하시는 삶ᒧ,에서 “상품에 품질이 있듯이 영혼에도 영혼의 질(質)이 있다” 했다. 오늘 우리의 영혼의 질(質)상태는 어떠한가? 전능자 아니기에 혹여 지도자에게 모자라는 부분이 있다면 그에 따라 모자라는 재주는 채우면 된다. 그러나 영혼을 계도하는 사역의 길에는 노력만으로 도달할 수 없는 마음의 영역이 있음을 알고 겸손해야한다.

이철 감독회장께 드리는 부탁...

교단의 중요한 선거 때마다 교단을 위하는 마음도 없이 거듭남조차도 의심되는 이들의 등장으로 이교도들 인지도모를 사회 법관들에게조차 온갖 수모와 수욕을 당하지만, 이제는 두 번 다시 이들이 거룩해야할 성직을 넘보는 일이 있어서는 아니 된다. 이는 그를 비롯한 모두가 자멸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이들이 성직을 넘겨봄은 섬김의 자리가 아닌 군림의 자리로 착각하기 때문이다. 너나없이 이기적인 생각에 매여 기망(欺罔)하나 우리가 이 땅에 유일한 복음을 소유한 막중한 사명자로서 존재하는 현실은 너무나 참담하다. 지금도 매일 평균 40여명 이상의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스스로 포기하는 절망 속에 살고 있다.

지금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이 펜데믹 의 고난의 행군 속에서 미래에 대한 계획은 갖고 있는가?
이제는 네 편 내편이 아닌 지적하는 이들조차도 함께 불러 뜻을 모을 때라는 생각이다. 머뭇거림으로 섬김의 자리에서 벗어나면 교단은 앞으로도 지속되겠지만 책임 있는 이들은 불행할 것이다. 어쩌면 이때를 위하여 본인들을 세우신지도 모를 일이다.(에스더4:13~17).

글을 마치며...

개인적으로 만나면 모두가 존경스럽고, 본인보다는 남모르는 희생과 헌신으로 살아왔기에 오늘에 이르렀으리라 생각을 한다. 더욱이 모두가 교단의 소중한 이들이기에 아끼는 마음으로 기도와 함께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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