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문은 어디인가

작성자
백승학
작성일
2020-10-13 12:33
조회
503
우리에게 문은 어디인가

백승학

베들레헴에 있는 '예수 탄생 기념교회'의 출입문을 머리를 잔뜩 숙이며 들어가 본 자라면 '겸손의 문'이라 불리는 그 문의 의미를 누구든지 가슴에 간직하여 돌아왔을 것이다.
그 문의 폭은 80cm이고 높이는 1.2m 이다. 그 문이 원래는 아치형의 커다란 문이었는데 훗날 어떤 연유로 축소되었다고만 알려져 있다. 출입문이 작아지고 난 후 사람들은 그 문을 ‘겸손의 문’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겸손의 문이 지니는 이미지는 삶 속에서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지점에 관한 생각의 어떤 단서들을 제공해 주고 있을 것이라 여겨진다. 우리가 삶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자리란 언제든지 모든 것이 넉넉하고 여유로운 자리가 아니라 오히려 삶의 공허와 어두움의 갖은 요인들로 인한 좁고 협착한 자리일 것이기 때문이다.

이 점에 관하여 인간의 삶에 처해진 절망의 여러 요인들과 상황을 ‘출구가 없는 방’으로 묘사한 이는 문학가이면서 철학자였던 쟝 폴 샤르트르이다. 그는 말하기를 바람이 불듯이 삶의 한켠을 부단하게 파고드는 끝모를 공허함이라거나 타인으로부터의 따가운 시선이야말로 출구가 닫혀져 있는 방 안에 갇힌 자들이 가질만한 절망 그 자체라고 하였다.
그러나 절망이라는 같은 언어를 샤르트르와는 다르게 본 이가 있었다. 덴마크의 철학자 키에르 케고르이다. 그는 인간의 절망이 인간을 죽음에 이르게 만드는 혹독한 질병이라고 언급하면서도 오직 인간에게만 주어지는 '절망에 관한 자각과 자기 인식'이야말로 진정한 빛을 찾아나서게 하는 계기이기에 절망은 오히려 행복을 향해 나아가는 실존의 문이라고 하였다.

언젠가 뉴스에서 화재로 불길이 번져오자 급하게 상가 건물의 비상문을 열고 나갔다가 비상문만 있고 디딜 계단은 없었던 건물 아래로 사람들이 추락한 사건에 대해 들은 기억이 있다. 문이라고 다 믿어서는 안 되는 이유를 알게 해준 뉴스였다.
온통 문이 없는 듯이만 여겨지던 세상, 또한 가짜 문의 위험이 곳곳에 도사려 있는 세월을 살아본 자라면 높이 120cm에 폭 80cm의 문이 작다고 무슨 문제겠으며 화려하지 않은들 무슨 대수겠는가.

문은 바깥으로 나가는 통로이면서 동시에 사람의 재산과 생명을 보호해주는 역할을 한다. 문이 있기 때문에 추위를 막을 수 있고 도둑이나 강도가 들어오는 것을 막을 수 있다. 몇 년 전에 잡지사에서 일하는 지인의 청탁으로 원고를 쓰느라 마침 글의 주제와 관련된 독립영화 한편을 관람한 적이 있다. 인생에서 보호자가 필요한 사람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영화였다.
하루 일해서 하루 먹고 사는 일용직 노동자들이 몇 달 째 임금을 주지 않는 오야지의 집에 찾아가 거실 현관문을 가지고 간 공구로 떼 내어 트럭에 싣는 장면으로 영화가 시작되고 있었다. 그때 거실에는 또 다른 빚 독촉 때문에 식구들이 몸을 피했는지 오야지의 열여섯 살 난 아들만 혼자 잠들어 있었다. 밖에는 연신 눈이 내리고 차가운 바람이 불었다. 그런데 이 영화의 마지막은 현관문을 떼어가는 데 주동 역할을 했던 주인공이 혼자 트럭에 문을 싣고 와서는 그때까지도 여전히 밀린 임금을 받지 못하였음에도 문을 다시 달아주고 떠나는 장면이었다. 자기 자신도 문이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 세상을 수없이 살아왔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었다. 문이 없는 거실에는 열여섯 살 난 오야지의 아들이 웅크린 채 잠들어 있었다.

신약성서에서 예수는 자신을 문이라고 소개한다. “나는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요한복음 10:9)
또한 문이 우리의 삶의 공간에 언제나 존재하듯이 우리의 일상 가운데 항상 함께 있겠다고 약속하셨다. “내가 너희를 고아처럼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요한복음 14:18)
바울이 빌립보 교인들에게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빌립보서 1:6)하고 편지를 쓸 수 있었던 것도 그가 우리의 문이 되시는 예수께서 우리를 고아처럼 버려두지 아니하시고 항상 함께 하시며 지키시겠다는 약속을 굳게 믿었기 때문이다.
출처)
https://facebook.com/seunghaak.ba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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