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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소송하는 이들을 가련하다하는가?

작성자
오재영
작성일
2016-10-19 20:01
조회
1792
시카고에 있는 “윌로우크릭 커뮤니티” 교회의 빌 하이벨스 목사가 이런 이야기를 하였다.
“목사가 교회에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은 건강한 자기 자신이다.” “프레드릭 부크너” 라는 영성작가는 또 이런 말을 하였다. “남을 위하여 피를 흘리되 죽을 정도로 피를 흘리는 것은 아무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우리 주위에 보면 다른 사람을 돕는다는 미명하에 자신이 먼저 망가지는 이들이 있다.
그의 주장과 행동들이 겉으로 보기에는 대단하고 숭고해 보일지라도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실질적으로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결국에는 둘 다 죽는 길이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그는 다음과 같은 구체적인“예”를 들어 설명을 한다.
“급류에 휩쓸려 떠내려가는 사람이 있을 때 의협심이 강한사람은 어떻게든 물에 뛰어들어 죽어가는 사람을 건지려고 할 것이다. 그런데 대개 결과적으로 두 사람 모두 죽는다. 아무리 수영을 잘하는 사람이 구조하러 나섰다 해도 급류 앞에서는 모든 사람이 평등하기 때문이다. 수영을 잘하거나 못하거나 아무소용이 없다.

급류에 빠진 사람을 건지는 방법은 달리 있다.
우선 물 밖에서 자기 자신을 지킬 수 있도록 모든 안전조치를 취해야한다.
우선 한손으로 나무둥치를 잡고 있든지, 아니면 끈으로 허리를 묽어 단단한 곳에 고정해 두든지, 아무튼 자기만은 절대로 급류에 휩쓸려가지 않도록 모든 수단을 강구해야한다. 물론 짧은 시간 안에 신속히 이모든 조치를 취해야한다. 이렇게 자기 자신의 안전을 확보한 뒤에 손을 내밀거나 밧줄을 던지면 두 사람모두 살수가 있다....

이 의미 있는 예화는 타인을 돌볼 마음이 있다면 누구보다 먼저 자기 자신부터 돌보아야 한다는 말이다.
즉 자신이 먼저안전하지 않고는 다른 사람을 건져낼 수 없기에 우선은 내가 튼튼히 서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제32회 총회 감독. 감독회장 선거가 많은 이들의 기도와 염려가운데 끝이 났다.
선거이전부터 떠도는 설(說)들이 요란하드니 예상대로 일부의 사람들이 자신들이 무슨 교단의 중요인물이라도 되는 듯이 트집 잡으며 호기를 부리고, 그에 호응하는 이들까지 합세하여 추태(醜態)들을 부리고 있다. 이들에게 권하고 싶은 말이 있다. 더도 말고 지난 2015년도 교단에 제출한 통계표나 자세히 읽어보고 나서든지 하라. 정확한가?...

문득 ‘쎄네카’의 말이 생각이 난다. “죄는 참 묘하다. 이 사람에게서 저 사람에게로 다 옮겨간다.”...
무슨 의(義)를 기준함인지 알 수는 없으나, 이들이야말로 지금 교활한 사단의 치명적인 덫 에 걸려있음이 아닌가?
사단이야말로 우리가 만만히 대할 상대가 아닌 교활함을 소유한 까닭에 쉽게 그 자리에서 벗어나기가 힘들 것이다.
혹시 송사의 달인이라는 호칭을 얻을지는 모르겠으나 부끄러운 표현이며 함께 급류에 휩쓸려 소멸되는 길이기에 멀리할일이다.

누군가 우리를 가리켜평하기를, “외부의적(敵)과 싸움에서는 등신, 자기들끼리 싸우는 데는 모두가 귀신”이라 평하며 비웃고 있다. 모두가 알고 있듯이 세상은 이미 우리를 가리켜 구도자(求道者)라 하지 않는다.
끊임없는 갈등과 분열, 쉽게 화를 내고 증오하며, 천박한 승부욕에 집착 할뿐, 남을 배려하는 이해심 전혀 없는 냉담한사람들로 낙인을 찍어놓았다. 직분과 관계없이 온갖 수단과 방법들을 통하여 서로 물고 뜯으며 상처 입히지 못해 안달하는 일상화된 가련한 모습들이 현재 우리들의 슬픈 자화상이다.

함께 공존하는 세상과 이교도들이 우리를 이러한 무리로 여기고 있는데 그들에게 예수께서 우리의 구세주가 되시고 그리스도인들은 모두가 예수께서 지시하신 자기십자가를 지고 따르는 사람들로서 용서와 배려, 희생과 섬김의 사람들이라는 말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생각들은 해보았는가? “청출어람(靑出於藍)”준비에 실패하는 것은 실패를 준비하는 것이다. 라는 말이 있다.

자신들이 진정 구도의 길을 가는 이들이라면 그가 누구이든 예외 없이 구도자로서 자신을 세속에서 지키기 위하여 자신의 삶 전반에 자신스스로 지켜야할 생명선(線)을 그어놓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러한 자발적인 “자기격리” 만이 그의 구도는 깊이를 더해갈 것이다.

사역의 현장에서 대하는 이들 중에 여러 부류의 사람들을 만나는 경우가 있다.
모두가 신앙을 표방하는 공동체 안에서 만나는 소중한 이들이지만 때때로 부담되는 이들이 있다.
앞에서 볼 때는 한없이 겸손해보이든이가 걸어가는 뒷모습이 거만하기 짝이없는 이가있다. 그와는 반대로 별로 내세울 것 없는, 앞에서는 초라함이지만 돌아서가는 그의 등 뒤에는 한없이 따뜻하고 포근해 보이는 까닭에 마음속에 있는 대화를 나누며 그대로 한번쯤 그 등에 기대어보고 싶은 사람도 있다.

한 가지, 구도자인 우리는 언제든지 주께서 부르시면 떠날 준비를 하고 있어야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철없고 젊은 시절에는 한없이 멀게만 느껴지던 것이 이제는 누구에게나 예고 없이 다가오는 사실임을 알기에 오늘도 준비하는 마음의 부담을 갖고 있다.

죽음이란 무엇일까? 죽음이란 누구에게나 작별인사를 하지 못하고 떠나는 것이다.
목사를 비롯하여 수많은 크리스천들, 특히 믿음이 좋다는 사람일수록 자신들의 죽음에 대하여 잘못된 환상을 갖고 있다. 자신이 세상을 떠나는 날, 사랑하는 가족들을 모두 불러 자기가 좋아하던 찬송과 성경을 읽고 함께 감사기도를 드린 후에 ‘안녕’할 것이라는...

그러나 이것이야말로 현실과는 너무나 거리가 먼 환상이다.
삶의 현장에서 이러한 모습으로 세상을 떠나는 이는 거의 없다. 사람들은 아침이면 집을 나서면서 저녁이면 당연히 돌아올 것이라는 마음으로 집을 나선다. 이것도 엄청난 착각 중에 하나다. 지금 세계의 수십억의 인구 중에 수십만 명은 밤이 깊어도 집에 귀가하지 않고 있다. 그들 모두가 낮 동안에 집밖에서 객사(客死)한 것이다.

어떤 이는 밤사이에, 사고로 비명횡사 하며, 어떤 이는 의식도 없이 중환자실에서 호흡기로 연명하다 떠나며, 사지 멀쩡해도 치매로 인해 바른 정신과는 거리가 먼 상태에서 그의 일생을 마친다. 이것이 우리의 엄연한 죽음의 실상이다. 이러한 엄중한 사실 앞에서 우리는 과연 어떠한 흔적을 남기고 주님 앞에 가야하는가?



전체 5

  • 2016-10-19 20:35

    “남을 위하여 피를 흘리되 죽을 정도로 피를 흘리는 것은 아무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 말이 진리라면 예수님의 죽으심도 그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은 죽음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세상은 그리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목사는 예수님 때문에 그리 말할 수가 없습니다.

    목사는 남을 위하여 자신이 스스로 피를 흘리거나 목숨을 버리지 못한다 할지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리 말을 해야 할 것입니다. \"남을 위하여 피를 흘리는 것만큼 고귀한 희생은 없으며, 친구를 위하여 자신의 목숨을 버린다면 이 보다 큰 사랑이 없다.\"
    왜냐하면 그 고귀한 친구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알고 믿기 때문입니다.

    신경하 목사도 가련한가요?
    전용재 감독회장님도 가련한가요?
    원형수 전관리자도 가련한가요?
    성모 목사님이 가련한가요?
    오목사님께서 말씀하시는 이 소송하는 이들이 가련하다는 그 기준은 무엇입니까?


  • 2016-10-19 20:54

    그래도 교회내소송했다고 감리회를 떠나라고 기염토하시는 분보다는 온건하시네요.
    잘못된것 있으면 교리와 장정안에서 소송으로 해결하고 바로잡을 수 있으면해야죠.
    그러나 교회일가지고 사회법정으로 나간다면 욕먹어야죠.


    • 2016-10-20 13:48

      장로님!
      위에 말씀하시는 이들은 감리회를 떠나지도 않지만 떠날수도 없습니다.
      그러한 마음 자세를 갖고 어디가서 적응하겠습니까? 세상 우습게 보여도 정확하고 냉정합니다.
      격에 미달되는이들 행세하기 어렵다는 말입니다. 법원에가면 정확한가요? 순진한건지, 어깃장놓는건지, 이해가안되는이들입니다.
      지금 밤낮으로 떠들고있는것이 무슨 무슨 게이트 어쩌는데, 평검사 판사가 아닌 고위층 장급들인데, 그세계도\"이현령 비현령\" 일텐데, 성경보다 판사를 더믿는이들이니, 그저 맘편하게 순진한 사람들이라 생각하렵니다. 건강하십시요...


  • 2016-10-20 07:20

    소송의 진원자나
    소송꾼들은 자기는 의인인척
    감리회를 위한다고 하나
    그 결과는 본인도 상처
    감리회는 더 망가지는 것이
    그간의 신경하목사 때부터의 9년간
    감리회의 꼬라지가 아닌가요?
    하여 진정 감리회를 위한다면
    양보하고 내려놓아야 마땅합니다
    가련하기 짝이 없지요


  • 2016-10-20 08:46

    현재의 감리회꼬라지는 횡령사기간통폭력등...부도덕한 목회자들과 부정직한선거운동등으로 당선되었던 일부감리회지도자 그리고 좋은게좋은거고 은혜를 사모하던 병신도들이 공동으로 만든꼬라지아닌가요.
    이걸 고치지않고 그냥두니 매선거때마 악순환되자나요.

    또 언교회출신이니 언신학교출신이니 하며 끼리끼리뭉쳐다니며 감리회를 농단하고 그런꼴을 보면서도 입다물고 은혜를 외치는 정치꾼들이 일조를 했지요.

    또.자신이다니는 교회도 아닌데...남교회일에 뛰어들어 문제를 더꼬이게하여 사회인들이 보기에 추태로 인식하여 손가락질하는줄도 모르고 여전히 남교회일에 매진하는 사람들 불쌍한 인생이죠.
    이는 노동법에서 말하는 제3자개입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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