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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지혜와 거짓 지혜

작성자
원학수
작성일
2016-11-26 00:46
조회
1054
열왕기상 22: 5-12. 야고보서 3:13-18.

“너희 중에 지혜와 총명이 있는 자가 누구냐?” 하는 질문은 스스로 스승이 되고 가르치려하지만 지혜가 부족하고 말과 행동에 실수가 많은 자신들의 위치를 향한 질문입니다.
선생이라고 모든 것을 다 아는 것이 아니고 지혜 자도 아니며 총명한 사람이 된 것도 아닙니다.
야고보 당시에 스스로 선생이 된 사람들이 많았고 자화자찬하며 지혜를 소유한자라고 외쳐대었지만 오히려 시기와 분쟁과 경거망동의 실수가 많은 자칭 스승들이 많았기에 질책하고 경고하는 말입니다.
“내가 지혜와 총명이 있는가? 나는 지혜가 부족하지 않는가?” 자신을 돌아보라는 충고입니다.
모두 지혜롭고 총명하면 좋겠지만 자신이 부족하고 미련하다는 것도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지혜를 지닌 사람들은 온유하고 겸손합니다.
지혜와 온유함은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입니다.

이사야는 온유하고 겸손하신 예수님을 사지로 끌려가는 도살 할 양의 모습으로 표현하였습니다.
그러면 지혜가 무엇입니까?
한글 사전에서는 슬기라고 설명을 합니다.
사물의 이치를 알고 사리를 분별하며 바르게 살며 이웃에게 덕을 세우며 살아가는 슬기를 말한다는 것입니다.
덕과 고상한 성품을 지닌 현명한 마음의 자질입니다. 그러면…

1, 지혜는 어디서 얻게 됩니까?
①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은 믿음 안에서 지혜를 얻게 됩니다.
솔로몬은 1천 번제를 드리고 기도를 하여 지혜를 응답으로 받았습니다.
솔로몬은 이스라엘의 3대 왕으로 취임하고 자신을 지키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께 일 천 번제의 제물을 드리며 감사를 하며 기도를 하였을 때 하나님은 솔로몬에게 나타나셔서 “솔로몬아 내가 네게 무엇을 주기를 원하느냐? 부귀냐? 공명이냐? 장수냐?”고 물으셨습니다.
솔로몬은 “주께서 저에게 큰 은혜를 베푸셨고 주께서 또 저를 위하여 이 큰 은혜를 예비하시고 오늘날과 같이 저의 위에 앉을 아들을 주셨나이다.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종으로 종의 아비 다윗을 대신하여 왕이 되게 하셨사오나 종은 작은 아이라 출입할 줄을 알지 못하고 주의 빼신 백성 가운데 있나이다. 저희는 큰 백성이라 수효가 많아서 셀 수도 없고 기록할 수도 없사오니 누가 주의 이 많은 백성을 재판할 수 있사오리까 지혜로운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소서” 하고 구하였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네가 장수도 구하지 않고 부함도 구하지 않고 무력도 구하지 않고 지혜를 구하였으니 내가 네게 지혜를 주고 네가 구하지 아니한 부귀와 공명까지 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왕상 3:6-15).

그러므로 지혜를 얻으려고 하면 하나님께 구해야하고 하나님께로부터 응답을 받아야 합니다.
인간의 지혜가 하나님의 은사로 위에서 오는 것은 하나님은 한없이 지혜로우시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사상은, 시편 104:24, 잠언 3:19, 이사야 31:2, 예레미야 10:12, 다니엘 2:20,과 지혜문학에서도 자주 인용되고 있습니다.
시편 111:10, “여호와를 경외함이 곧 지혜의 근본이라”고 하였고
잠언 9:10,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 했으며, 성경은 인간들에게 은사로 주신 지혜의 말씀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러므로 지혜의 근본 되시는 하나님을 늘 가까이 하면 지혜를 얻고 사탄과 늘 함께 하는 사람은 미련해지는 것입니다.

시골에서 목회 하던 때 경험입니다.
여 집사님들의 몸에서 풍기는 냄새만 맡아도 일주일 동안 무슨 일들을 했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깨밭을 맨 집사님은 깨 냄새가 나고 콩 밭을 매다 온 집사님들은 콩 냄새가 났으며 농약을 하다가 온 집사님들은 농약냄새가 났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항상 하나님과 함께 하면 하나님의 형상을 닮게되지만 하나님을 떠나 살면 사탄의 형상과 태도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모세도 광야에서 시내산에 올라가 40주야를 하나님과 함께 하다가 내려 왔을 때 얼굴이 빛나고 광채가 나 사람들이 감히 바라볼 수 없어서 수건으로 얼굴을 가렸다고 합니다.

미켈란젤로가 그린 최후의 만찬이라는 그림의 예수님 모델과 가롯 유다의 모델은 같은 사람이라고 합니다.
미켈란젤로가 최후의 만찬을 그리려고 예수님 얼굴의 모델을 찾는데 그는 신앙 생활을 잘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가롯 유다의 모델을 찾는데는 마땅한 사람이 없어서 20년이 지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유흥가에서 술에 만취한 사람이 눈에 띄었습니다.
그래서 그를 모델로 가롯 유다를 그렸습니다.
그러자 그가 말하기를 자신은 20년 전 예수님의 모델이 되었던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타락하고 범죄 한 오늘날 가롯 유다의 모델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거역하고 사탄의 말에 순종했던 아담과 하와도 다시 하나님을 가까이 했을 때 믿음의 아들 셋을 낳았고, 거짓말을 잘하던 아브라함도 하나님을 가까이 하였을 때 믿음의 조상이 되었으며, 속이기 잘하던 간사한 야곱도 하나님을 가까이 하였을 때 이스라엘 12 지파의 조상이 되었고, 남의 아내를 빼앗고 그 남편을 살해한 다윗도 하나님을 가까이 하였을 때 성군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들에게 하나님의 뜻에 맞는 인간 모델로 예수 그리스도를 사람의 육체를 입히셔서 이 땅에 내려보내셔서 인류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고 따르도록 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예수님이 사셨던 모습대로 살면서 배우고 따라가려고 노력한다면 예수님을 닮는 삶을 살게될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주신 말씀을 지키며 살아야겠다고 생각하면서도 어디 사람이 그렇게 됩니까?
미련하고 어리석은 인간들이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여서 예수님을 따라 가다가도 사탄 마귀가 꼬이고 유혹을 하면 그리로 끌려가고 마는 것입니다.
마치 그돌라오멜과 연합한 무리들이 소돔을 쳤다가 아브라함에게 패하여 역청 구덩이에 빠져 죽는 모습들과 같이 스스로 범죄하고 자멸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지혜롭게 지혜의 근본이 되시는 하나님을 늘 사랑하고 늘 가까이하면서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② 지혜로운 사람들에게서 지혜를 배우게 됩니다.
어떤 이는 타고난 천성적 재질이나 지능으로 인하여 지혜롭다고 인정을 받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무엘상 16:18, 다윗은 수금을 잘 타고 호기와 무용과 구변이 있었으며 다윗의 아들 솔로몬은 타고난 지혜를 지녔음을 열왕기상 2:9,에서 증명합니다.
사람마다 각기 다른 달란트를 지닌 것입니다.
솔로몬은 먼저 타고난 지혜가 있었기에 하나님께 지혜를 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후천적으로 천성이 소박할수록 지혜를 빨리 얻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스스로 자만하고 교만하면 지혜를 얻기보다는 신앙적으로 손해를 보고 은혜도 받지 못하고 멸망과 진노를 자청하게 됩니다.
이스라엘의 첫 임금 사울과 초대교회 니골라 집사 같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적으로도 좋은 스승을 만난다는 것은 행운을 만나 얻는 사람과 같습니다.

한 인간이 한평생 열심히 탐구하여 스스로 체험하고 경험하여 취한 지혜를 가지고 다른 사람들을 가르치고 전할 수 있습니다.
교육을 통해서 짧은 시간에 많은 경험과 지혜를 전하게 됩니다.
에티오피아의 시바 여왕은 지혜로운 솔로몬에게 지혜를 듣고 배우려고 먼 나라에서부터 많은 선물들을 가지고 예루살렘까지 찾아 왔습니다.
그래서 좋은 친구를 사귀라고 하지 않습니까?

책을 가까이하고 선을 행하고 믿음으로 살려고 애쓰는 사람들을 사귀면 자신도 닮아가게 된다는 것은 일반 상식적인 이야기가 아닙니까?
노름 쟁이를 가까이 하면 노름밖에 배울 것이 없고 주정뱅이를 가까이 하면 술 먹는 것 밖에 배울 것이 없고 도둑을 가까이하면 도둑질 밖에 배울 것이 없고 무당을 가까이 하면 귀신만 섬기는 것을 배우게 되지만 고상하고 품위 있는 삶을 살기를 원한다면 생명의 주인이시고 만물의 창조자이시며 섭리 자이신 지혜의 근본 하나님을 가까이 해야 합니다.
우리의 참된 친구 예수 그리스도를 사귀고 늘 가까이 하시기를 바랍니다.

2, 지혜에는 참 지혜가 있고 거짓 지혜가 있습니다.
참 지혜란 위로부터 오는 지혜인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사람에게 유익을 주는 지혜입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참 지혜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사람들에게 믿음의 덕과 유익을 줍니다.
반면에 거짓 지혜는 하나님을 거역하고 성령을 근심케 하며 예수님의 사랑을 거역하게 하면서 사람에게 손해를 줍니다.
세상적이오 정욕적이오 마귀적입니다.
거짓 지혜의 정체를 봅시다.

① 독한 시기가 있습니다.
가인이 동생 아벨을 시기하고 미워하여 동생을 죽이면 자기에게 유익이 될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탄 마귀의 꼬임이며 거짓된 지혜였습니다.
피를 나눈 형제로 야곱의 아내가 된 레아와 라헬은 서로 시기하고 질투를 하여 서로 남편을 차지하려고 수단과 방법을 다하였습니다.
그 일로 형제들은 치열한 쟁탈전이 벌어졌고 가정은 늘 불안하였습니다.

사울 왕은 불레셋과의 전쟁에서 공을 세운 다윗을 시기하여 죽이려 하였습니다.
아들 요나단에게 왕위를 계승하여 왕족 가문으로 세습하려고 계획을 하였는데 목동 다윗의 인기가 나라의 왕인 자기보다도 더 백성들에게 칭송을 받는 것을 보자 세습이 방해된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입니다.
제사장과 장로들과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시기하여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베드로와 바울도 죽이려고 하였습니다(행 5:17).
욥기 5:2, “시기가 어리석은 자를 멸하느니라”고 했습니다.
로마서 13:13, “호색하지 말며 질투와 시기하지 말라”고 경고를 합니다.

② 다툼이 있습니다.
창세기 26:20, 아브라함의 목자와 조카 롯의 목자들은 물욕에 치우쳐 서로 다투었습니다.
출애굽기 17:2, 므리바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마실 물이 없다고 모세와 다투었고, 17:8-13, 아말렉과 이스라엘이 전쟁을 할 때에는 모세가 지팡이를 들고 기도하면 이기고 지팡이를 든 손이 피곤하여 내려오면 전쟁에서 짐으로 아론과 훌이 협력을 해서 모세의 양팔을 부축하여 하루종일 들어 올렸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크게 승리하였습니다.
친척과 형제도 서로 다투면 손해를 당하지만 서로 협력하고 도우면 많은 유익을 얻게 됩니다.
잠언 3:30, “까닭 없이 더불어 다투지 말며…” 호세아 4:4, “아무 사람이든지 다투지 말며…”라고 했습니다.
잠언 29:9, “지혜로운 자와 미련한 자가 다투면 지혜로운 자가 노하든지 웃든지 그 다툼이 그침이 없느니라” 했습니다.
디모데 전서 3:3, 디모데 후서 2:14, 디도서 3:2 “말다툼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이사야는 예수님의 성품을 “내가 붙드는 나의 종 내 마음에 기뻐하는 나의 택한 사람을 보라 내가 나의 신을 그에게 주었은 즉 그가 이방에 공의를 베풀리라 그는 외치지 아니하며 목소리를 높이지 아니하며 그 소리로 거리에 들리게 아니하며...”(사 42:1-2).
마태복음 12:19, “그가 다투지도 아니하며 둘레지도 아니하리니 아무도 길에서 그 소리를 듣지 못하리라…” 했습니다.

③ 자기 자랑을 합니다.
요한1서 2:16,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오 세상으로 쫓아 온 것이라” 했으며, 로마서 1:30,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는 자는 자랑하는 자”라 했습니다.
이 사실을 증명하는 일이 있습니다.
이사야 39: 히스기야가 죽을병에 걸렸다가 나았다는 소식을 듣고 바벨론 왕 므로닥발라단은 글과 예물을 보내며 축하 사절을 보내자 히스기야는 기뻐하며 궁중 보물들과 무기고까지 모두 보여주었습니다. 이사야는 그 말을 듣고 히스기야를 책망하며 불길한 징조가 일어날 것을 예언합니다.

이솝의 우화에 뿔을 자랑하던 사슴이 그 뿔이 나무에 걸려 사냥꾼에게 잡힌 이야기가 있습니다.
우리 나라도 외국의 귀빈들이 방문하면 산업시찰들을 구경시켜주고 발달한 모습을 자랑하지만 역효과를 거두었다는 것입니다.
지나친 자랑은 오히려 역효과를 낳게 하는 것입니다.
로마서 3:27, “그런즉 자랑할 데가 어디뇨?” 빌립보서 2:3,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라고 했습니다.

④ 진리를 거스르고 거짓을 말합니다.
열왕기상 22:22, 유다 왕 여호사밧과 이스라엘 왕 아합이 아람과 전쟁을 하게 되었을 때입니다.
여호사밧 왕이 하나님의 말씀이 어떠하신지 듣자고 하여 아합은 이스라엘 선지자 4백인을 모으고 전쟁의 결과를 묻습니다.
그때 모인 4백인의 거짓 선지자들은 아합에게 듣기 좋은 말로 이번 전쟁은 이길 것이니 올라가라고 거짓 예언을 하였습니다.
여호사밧은 미심쩍고 믿지 못해서 정직한 선지자를 다시 찾아오라고 강력히 요구해 미가야 선지자를 부릅니다.
아합은 자기에게 유익한 말을 하지 않고 불길한 예언만 하는 선지자라고 불평하면서도 여호사밧의 요청대로 이번 전쟁의 결과를 물었습니다.
미가야 선지자를 부르러 간 사자는 미가야에게 다른 선지자들이 모두 듣기 좋은 길한 예언을 하였으니 너도 하나님의 뜻대로 예언하지 말고 듣기 좋은 길한 말만 예언하라고 압력을 넣습니다.
유다 왕과 이스라엘 왕 앞에 이른 미가야 선지자는 그들의 요구대로 듣기 좋은 말로 이번 전쟁에서 크게 이길 것이라고 예언하자 왕은 진실대로 예언하라고 말합니다.
미가야 선지자는 이번 전쟁에서 이스라엘 왕은 죽을 것이라고 하나님의 계획을 예언합니다.
이스라엘 왕 아합은 유다 왕 여호사밧에게 미가야 선지자는 이렇게 길한 예언을 하지 않고 흉한 예언만 하는 자라고 화를 내지만 미가야 선지자는 하나님이 아합을 죽이시려고 길르앗 라못으로 꾀어 올라오게 하기 위해 꾀이는 영을 보내어 거짓말하는 선지자들 속에 들여보냈다고 말합니다.
그러자 거짓 선지자 시드기야는 미가야의 뺨을 때리며 화를 내지만 미가야는 그 사실은 곧 밝혀지게 된다고 예언을 하였고 미기야의 예언대로 아합은 일반 병사와 옷으로 바꾸어 입고 전쟁에 나갔으나 이스라엘 왕을 집중 공격하려는 아람 군사들의 화살을 가슴에 맞고 쓰러져 그의 흘린 피가 병거를 흥건히 적셨고 그 피를 개들이 핥아먹고 그 병거의 남은 피는 창녀들이 목욕을 하는 물에 씻었습니다.
시드기야에게 내린 지혜는 거짓 지혜며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위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닌 꼬이는 지혜였습니다.
세상 적이었습니다.
정욕 적이었습니다.
마귀 적이었습니다.
모든 악함이 가득한 지혜였습니다.
거짓 지혜가 있는 곳에는 이렇게 시기와 다툼이 있습니다.
요란하고 모든 악한 일이 일어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다”(약 1:17)고 했습니다.

3, 위로부터 난 참 지혜를 사모해야 합니다.
위에서 난 지혜는 곧 하나님으로부터 내려온 참 지혜를 말합니다.
시기와 다툼이 없는 지혜입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유익만을 찾는 지혜가 아니라 자신보다 남을 더 낫게 여기고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하는 지혜이기 때문입니다.
시기와 다툼이 나는 이유는 서로가 자신의 유익만을 위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곳에는 사랑이나 희생이나 봉사나 협력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위에서 난 참 지혜는 사랑이 있고 희생이 있고 감사가 있고 봉사가 있고 협력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어지러움의 하나님이 아니시오 오직 화평의 하나님이시니…”(고전 14:33) 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으로부터 난 지혜는 어떤 것이 따르게 됩니까?

① 성결합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기에 충분할 만큼 깨끗합니다.
마태복음 5:8, “마음이 청결한 사람은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라고 한 것처럼 부정과 부패와 더러운 죄들을 십자가의 보혈로 씻어버리고 의롭고 거룩함으로 바뀌어져서 하나님께 나아가게 하는 것입니다.

② 화평하게 합니다.
하나님과 죄인이 불화 하였으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흘리신 보혈이 중간에 막힌 죄의 담을 헐어버리고 화목하게 하신 것처럼 참 지혜는 모든 사람들에게 화평을 얻게 합니다.
썩고 부패한 곳에 소금이 되어서 부패를 방지하고 맛을 내어야 하는 것입니다.
어둡고 험악한 곳에 빛 된 생활로 어두움을 몰아내고 진리의 길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③ 관용합니다.
사울은 다윗을 죽이려 쫓아 다녔으나 다윗은 사울을 죽일 수 있는 기회가 있었어도 죽이지를 않고 자신의 진실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럴 때 사울은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였습니다.
종교의 지도자들은 죄도 흠도 없으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처형하고도 조롱하고 비웃었으나 예수님은 원수들의 영혼까지 불쌍히 여기셔서 그들을 위하여 용서의 기도를 하셨습니다.

스데반 집사도 예수님처럼 자신을 돌을 던져 죽이는 원수들의 영혼을 위하여 기도하였습니다.
성 어거스틴은 “스데반의 기도는 기독교가 바울을 발견하게 하였다” 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은 “7번씩 70번이라도 형제를 용서하라”고 하셨고, 빌립보서 4:5,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들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④ 양순합니다.
칼을 드는 자는 칼로 망하고 사랑을 주는 사람은 세계를 정복합니다.
나폴레옹은 “나는 칼로 세계를 정복하였으나 실패를 하였고 예수님은 사랑으로 세계를 정복하셨다”고 말했다 합니다.
마태복음 5:5, “온유한 사람은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차지할 것이요”고 하였습니다.

⑤ 궁휼합니다.
여리고로 내려가는 길에서 강도를 만난 사람에게 궁휼을 베풀었던 사람은 제사장도 아니며 레위인도 아니었으나 유대인들에게 멸시를 받는 사마리아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제사장에게서 배우라고 하시지 않았고 레위인에게서 배우라고 하시지 않으며 사마리아 사람이 한 것처럼 궁휼하고 자비를 베푸는 사람이 되라고, 아는 대로 행하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야고보서 2:13, “궁휼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궁휼없는 심판이 있으리라 궁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느니라”고 하였고, 잠언 21:13, “귀를 막아 가난한 자의 부르짖는 소리를 듣지 아니하면 자기의 부르짖을 때에도 들을 자가 없으리라”고 하였으며, 누가복음 6:36, “너희 아버지의 자비하심 같이 너희도 자비하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⑥ 선한 열매를 맺습니다.
성령의 열매입니다.
사랑의 열매입니다.
믿음의 열매입니다.
화평의 열매. 인내의 열매. 자비의 열매입니다.
양선의 열매, 충성의 열매, 온유의 열매, 절제의 열매입니다.
이런 열매는 많이 맺을 수록 좋은 열매들입니다.
하나님께는 영광이 되고 사람들에게는 덕이 되는 열매들입니다.
육신의 열매는 더러움, 호색함, 우상숭배, 술수, 원수맺음, 분쟁, 시기, 분 냄, 당 짖는 것, 분리, 이단, 투기, 수취함, 방탕(갈 5:19-21) 같은 것입니다.
이것들은 악한 열매들입니다.

⑦ 편벽과 거짓이 없습니다.
자기가 낳은 자녀들도 편애를 하면 결과가 좋지를 못합니다.
하물며 사람과 사람 사이에 편파적인 대우를 하는 것은 율법도 세상 법으로도 금하고 만인 평등을 주장하는데 어긋나는 일이 됩니다.
편벽과 거짓이 난무하고 있다면 어찌 화평이 오겠습니까?
왕은 백성들에게 장수는 신하들에게 부모는 자녀들에게 평등하게 대하여야 참된 평화가 오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혜로운 자나 미련한 자나 부자나 가난한 자나 모두를 똑같이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인류를 다같이 사랑하시고 귀하게 여기십니다.
백인이나 황인종이나 흑인종이나 똑같이 사랑하시고 똑같이 귀하게 여기십니다.
이러한 사랑을 모두 체험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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