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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목사님, 영혼 불사 불멸론에 대한 필자의 견해입니다

작성자
최세창
작성일
2018-09-12 12:00
조회
1059
이경남 목사님, 잘 읽었습니다. 자세한 설명을 할 여건은 아니나, 신약성경 전체 주석을 대조 연구하여 출간하고, 바울의 인간 이해를 집필 출간하면서 필자가 정립한 견해와 달라서 간략하게나마 소개하려고 합니다.

죄인이라는 말은 인간의 육체만 죄를 짓고, 영혼은 무죄하다는 의미가 아니라, 인간을 영육 합일적 존재(성경)로 이해하든 철학자들이나 신학자들의 인간 이해인 이분설(영육이원론), 혹은 삼분설(영, 혼, 육)로 이해하든 간에 전인적 죄인이라는 의미입니다. 만일에 영혼 불사 불멸론이 맞는다면, 죄의 값은 죽음이라는 성경 말씀의 관점으로는 죽지 않거나 멸하지 않는 영혼은 죄가 없다는 의미가 되고, 따라서 주님의 속죄는 인간의 영혼과는 상관이 없고, 범죄한 인간의 육체에만(뼈와 살 같은 육체만 범죄한다는 것도 말이 안 됨) 상관이 있다는 의미가 되는데 그 육체는 썩어 없어지므로 주님의 속죄는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 되고 맙니다. 또, 속죄 제물이 되신 후의 주님의 부활은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것이지, 덜 죽은 자들이나 껍데기만 죽은 자들(영혼 불멸설에서는 인간의 참 자아는 썩어 없어질 악한 물질인 육체가 아니라, 영원히 멸하지 않는 선한 영혼이라 함)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것이 아닙니다.

참조: 성경에 나오는 육, 몸, 영, 혼, 마음, 이성, 생명, 양심 등은 각각의 의미로 사용되기도 하지만, 그 모두는 인간을 지시하는 제유법으로 사용되는 것입니다. 예: 흉악한 범죄자를 가리켜 "저런 양심도 있나!"라고 하는 것은 그의 양심은 흉악하고, 다른 부분은 선하다는 의미가 아니라, 흉악한 범죄를 저지른 합일적 인간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인간 존재는 영혼과 육체로 분리된 상태나, 또는 영과 혼과 육체로 분리된 상태가 되면 인간 존재가 아닙니다.



전체 9

  • 2018-09-12 12:49

    영과 혼과 육체는 인간의 생명 안에서 하나입니다.
    그리고 생명의 길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는 존재가 사람입니다.
    단지 사람의 생명을 영과 혼과 육체로 역할론적인 구분을 하는 것 뿐 입니다.

    1) 육체는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 가는 것이며
    2) 영은 하나님께로부터 왔으니 하나님께로 돌아감이며
    3) 혼은 육체와 영을 떠나 심판을 받게 되리니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삶을 살아온 이들의 혼은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러 영혼의 생명(영생)으로 하나님의 뜻에 부합되지 않는 삶을 살아온 이들의 혼은 하나님의 징벌을 받아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고 혼으로 영벌에 처하게 될 것입니다.


  • 2018-09-12 13:32

    최 목사님 감사합니다 역시 귀 기울어야할 해박하고 귀한 말씀입니다 제 글은 아우구스띠누스의 글에 대한 간단한 요약입니다 제가 혹 잘못 이해한 건지도 모르겟지요 그런데 그가 인간 영혼이 불사하고 불멸한다고 말하는 것은 육체만 타락하고 영혼은 타락하지 않았다는 의미가 아니라 비록 사람이 타락했다하라도 인간에게 하나님의 입김인 그 영혼은 지워지지 않는다 소멸되는게 아니다 (영혼 불멸론) 하는 의미이고요 또 영혼 불사론은 비록 육체는 죽어 분해 소멸된다고 하더라도 우리 속에 있는 영혼까지 죽는 것은 아니다 ..그런 의미인 것 같습니다 아우구스띠누스가 이런 이해를 한 것은 영혼 혹 마음이라는 정신의 작용을 신체의 화작적 부산물 혹운 육체의 원자의 조합물로 보며 육체가 죽으면 영혼도 업어지고 마는 거라는 당시의 유뮬론적인 인간 이해에 반대한 주장입니다 만약 이게 아니라면 오른편 강도에게 네가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신 말씀이 공언이 되겠지요 .하여튼 저도 여기에 대하여 미숙하니까 더 자세한 가르침 주시면 감사 ...


    • 2018-09-12 14:00

      유물론이라는 것을 반 기독교적이다. 반 성경적이라 보는 이 편견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과거 유물론자들의 주장은 많은 부분 반 기독교적이고 반 성경적이었습니다.
      그러나 과학이 발전하면서 유물론적인 과학자들 사이에도 많은 변화가 감지되고 있음입니다.
      물론 아직도 과학자들이 전통적으로 갖고 있던 반 기독교적 세계관과 반 성경적인 세계관을 갖고 있음은 분명해 보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성향을 띄게 된 것은 어저면 교회의 배타주의가 그렇게 만들었을지도 모릅니다.

      다윈이 반기독교인이었을까요? 교회는 말을 합니다. 다윈은 반기독교인이었으며 성경을 거부한 불신앙인이었다고 말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편견입니다. 이것은 교회가 만들어낸 거짓입니다.

      어쩌면 다윈만큼 진실하게 성경을 이성적으로 믿으려 했던 사람은 없었을 지도 모릅니다.
      성경무오성을 주장하며 창조가 아닌 진화를 주장한다고 정죄하고 징계하며 교회에서 내어 쫓으려 했던 이들이 오히려 다윈을 반기독교 주의자로 반 성경주의자로 만들었던 것입니다.

      지금도 창조와 진화는 서로 양립할 수 없는 평행선상을 달리며 서로 대립과 갈등을 보이고 있음이라 생각을 합니다.
      과학자들은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당시의 철학과 사상 그리고 과학을 기본으로 한 이성주의의 발전은 과학만이 반 기독교적으로 변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성경을 연구하고 하나님에 관하여 깊은 묵상 가운데 진리를 추구해야 할 신학 또한 변하였습니다.

      교회는 사회(세상)를 이끌어가야 함에도 불구하고 집단주의화 되고 폐쇄적이 됨으로 오히려 사회(세상)로부터 영향을 받아 온 것입니다. 그러면 그럴수록 세상을 품고 나아가려 하지 않고 보수화 되고 정통화 됨으로써 교회는 고집불통의 단체가 되었는지도 모릅니다.

      유물론적인 생각과 사상이 진심으로 교회를 위협할 것이라 여겼다면 배척하기 보단 품으려 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 교회의 선배들은 그러하지 못했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모습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 안엔 그렇게 거부하길 원했던 물질 만능주의가 판을 치고 있습니다.
      그렇게도 경게하고 경계하였던 물질 숭배가 오늘날의 감리교회를 더럽히고 있습니다.
      목사와 장로들은 교만하며 오만하기조차 합니다.

      같은 감리교회 안에서도 나와 다르면 배척하려 하지 포용하려 하지 않습니다.
      내편이 아니면 무시하고 조롱을 하며 정죄까지 서슴없이 자행합니다.
      '마녀재판'이 진정 과거 교회의 일뿐입니까?

      무전유죄 유전무죄란 말이 심심치 않게 감리교회의 현실임을 지적합니다.
      진정 작금의 감리교회 목사와 장로들이 영혼불사를 믿습니까? 진실한 영혼불사는 반유물론이 아닙니다.
      진정 작금의 감리교회 목사와 장로들은 유물사상에서 자유롭습니까? 진실한 유물사상은 반 영혼불사론도 아닙니다.
      진정 작금의 감리교회 목사와 장로들은 진실로 천국과 지옥을 믿고 있습니까? 거짓 유물사상과 거짓 영혼불사론이 얽히고 섥혀 참으료 묘한 괴물을 만들고 있음입니다. 천국과 지옥을 말하지만 정작 그들의 삶엔 천국과 지옥을 믿는 믿음의 열매가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왜 감독회장의 문제를 두고 주판 두둘기는 소리가 이토록 요란스럽습니까? 10여년이란 긴 세월이 지나도록 아직도 교권에 대한 탐욕만이 이토록 요란스럽단 말입니까?

      교회 밖에 있는 유물론자들이 문제가 아니라 교회안에서 하나님을 버리고 물질(돈)과 권력을 하나님처럼 숭배하는 물질만능주의와 교권집착주의적 이기적 신앙이 더 큰 문제이지 않습니까?


  • 2018-09-12 15:09

    두 분 목사님의 글 잘 읽었습니다.
    유물론에서는 인간의 생각은 물질과 물질이 부딪혀 소리가 나는 것 같은 현상이고, 일관성 있는 체계적 사고는 마치 처마 끝에서 빗물이 떨어져 흐르고 나면 땅바닥에 흔적이 남고, 다음에 또 떨어지면 빗물이 그 흔적으로 흐르면서 더 긴 흔적을 남기는 것처럼 형성되는 것이라고 합니다. 참 단순하고 어처구니없는 사상인 것이, 그 사상가들 각자의 견해가 다르고, 사람들의 생각과 사상과 이념과 정서와 의지가 제각각이고, 한 개인의 그것들도 매우 복잡하고 다양하고 변화무쌍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을 유물적 존재라고 하면서 죽으면 물질인 육체의 활동이 끝나고, 따라서 영혼이나 정신적 작용이 없어지는 것을 증거로 내세우기도 하는데, 죽는 것은 육체가 멀쩡한 상태에서, 혹은 육체의 부분들이 없어진 상태에서 숨이 끊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인간을 유물적 존재라고 하면, 생명 없는 물질들에는 없는 지정의의 작용, 특히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교통하는 영적 사고나 영적 지각에 대한 설명이 난감해지는 것입니다.

    # 죽은 다음에 영(본 글의 인간론적 개념들 참조)이 하늘로 올라간다는 표현은 구원받은 인간이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고, 유령 같은 영만 천국에 들어간다는 뜻이 아닙니다. 천국은 유령의 도시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영이시자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이 내주하신 성도가 죽으면, 주님을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하나님께서 그 성도 안의 영으로 말미암아 신령한 몸으로 부활하게 하셔서 천국으로 들어가게 하십니다. 로마서 8:11을 보면,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영육 합일적 인간)도 살리시리라"라고 했습니다.


    • 2018-09-12 15:45

      귀한 설명에 의문이 풀립니다 목사님은 감리교의 보배십니다 감리교 목사 중 제가 신뢰하고 인정하고 존경하는 첫번째 목사님이십니다


      • 2018-09-12 16:17

        너무 과분한 칭찬입니다. 아무튼 감사합니다. 애독하는 글들의 필자이신 이 목사님의 인정을 받는 것은 기분 좋은 일입니다. ^^
        # 필자가 잘못 알고 있었던 성경 구절들이나, 일반적으로 옳다고 인정되고 있는 성경 지식들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되는 성경 구절들이나, 난해하거나 중요한 성경 구절들에 대한 주석을 등록해 오고 있는데 늘 애독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물론, 필자의 주석만이 옳다고 여겨 등록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나누다 보면 필자의 주석의 문제를 발견할 수도 있고, 보다 더 깊고 정확한 주석 또는 해석을 얻을 수도 있기 때문에 등록하는 것입니다.


    • 2018-09-12 16:11

      최목사님은 '인간의 생각은 물질과 물질이 부딪혀 소리가 나는 것 같은 현상'이라는 말로 유물론자의 주장을 헛된 주장으로 매도를 하심입니다. 그러나 저는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인간의 생각은 물질과 물질이 부딪혀 소리가 나는 것 같은 현상'과 같은 것인데 어찌 그 생각이 물질(육체)에 이끌림이 아니라 오히려 물질(육체)를 이끌고 있음인가? 그러니 이 단순히 물질과 물질이 부딪혀 나는 소리와 같은 것은 물질과 물질 속에 이니 깃들여 있었던 고유한 소리 때문이다.

      이 고유의 소리 때문에 어떤 물질과 물질을 만나 소리를 내느야 따라 그 소리가 달라짐과 같이 믿음은 이 물질 속에 깃딘 고유의 소리이며 이 소리는 단순한 가청의 소리가 아니니 소리가 없으나 소리가 없는 것이 아니므로 이것을 영의 소리라 함이다.

      영의 소리는 세포와 세포를 포함안 모든 것들 속에 깃들며 그 물질의 정체성을 결정하는 아주 중요한 소리로 물질이 존재하기 이전 부터 물질을 존재하게 만든 원인적인 소리임이 분명해 보인다. 물질이 없으면 소리가 없음일까? 소리가 없다고 물질이 없음일까?

      온 우주엔 우리가 들을 수 있는 소리가 있는가 하면 들을 수 없는 소리도 존재한다. 만약 우리가 그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물질(기계)를 만들수만 있다면 우리는 우주에 가득한 소리를 듣게 될 것이다.

      이 우주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물질이 있으니 이 물질은 곧 사람이라 불려지는 인간이다. 인간은 물질과 물질이 부딛힘으로 생각을 하는 것 같지만 근원적으로 존재 해왔던 소리에 의해 그 반응을 보이고 있는 공명적인 존재이다. 이 공명의 소리가 진정 무엇일까?

      이 소리는 우주의 소리라 할 수 있으나 많은 믿음의 선조들은 들을 수 없는 이 소리를 들었으니 그들은 그 공명의 울림을 통해 증거하기를 우주(물질)를 존재하게 만든 그 소리가 곧 말씀이라 함이다.

      이 말씀은 곧 모든 만물을 존재하게 만든 에너지이자 힘이니 이 에너지이자 힘인 존재는 그 누구(물질)를 통해 만들어진 소리가 아니라 물질을 존재하게 만든 소리로써 창조의 소리가 된다.

      이 창조의 소리를 믿음의 선조들은 창조주의 소리(말씀)라 하였다. 이 세상의 모든 만물은 이 창조주의 소리인 말씀을 통해 만들어지기 시작하였다. 곧 빛이 있으라(소리) 하니 빛(물질)이 만들어진 것이다. 이 빛의 물질로 인해 온 우주는 빛과 어둠의 세상으로 나뉘어 졌으니 이 빛이 세상일 밝히 비춤이며 인식케 함이다. 이 빛은 소리이다. 소리는 또 다른 빛이 된다.

      소리는 소리의 공명을 빛은 빛의 울림을 만들어 내니 이 세상은 모든 것이 보기에 심히 좋은 데로 각각의 자리를 만들어 갔다. 이 질서 또한 들리지 않는 소리의 공명이며 보이지 많은 빛의 울림이다. 우리 인간 또한 이러한 공명과 울림으로 지음을 받은 것이다.

      이 공명과 울림을 믿음의 선진들은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 사람에게 전하였다. 곧 창조의 이야기이며 창조의 이야기는 신화로 되어진 공허한 이야기인것 같으나 사람들이 들을 수 있는 소리(이야기)로 들려줌인 것이다.

      사람은 태초 이전에 존재하였던 소리의 공명과 빛의 울림으로 태어났지만 이 공명과 울림을 잃고 제 멋대로 들려지는 소리에 집착하게 되었으니 이것이 사람의 귀로 들을 수 있는 가청의 소리로 타락함인 것이다.

      이 가청의 소리가 물질로 만들어진 소리이며 이 소리는 사람들의 생각을 이루었으니 곧 빛의 울림으로 되었으나 빛의 울림을 잊은 물질의 소리에 불과하게 되었다. 이 물질의 소리만을 진짜의 소리라 주장하는 이들이 있으니 이들은 믿음의 선조들이 아니라 불신앙인들의 조상이 되었으니 곧 들리지 않는 소리는 더이상 소리가 아니라 하며 보이지 않는 빛은 더 이상 빛이 아니라 함이다.

      믿음의 선조들은 말씀 속에서 이 모든 세상을 하나라 하였지만 불신앙의 선조들은 들리지 않음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니 들리는 것과 들리지 않음으로 나누기 시작을 한 것이다.

      믿음의 선조들을 들리지 않는 태초의 소리를 영이라 하였고 이 소리에 의해 보이기 시작한 빛을 진리라 하였으나
      불신앙적인 선조들은 보이는 것 만을 추종하며 그것이 우리를 존재하게 만든 신이라 하니 영은 물질(우상)의 소리에 불과하며 빛은 물질이 존재함으로 인식을 할 수 있는 허망한 것이라 하니 물질(우상)이 있음으로 빛(진리)이 있음이라 거짓을 진리로 가르침이라.

      거짓은 물질에 의해 존재케 된 실상이나 진리가 아니니 참 빛에 의해 종국에 사라져 없어질 헛된이 됨이다. 그러나 진리는 물질을 존재하게 만든 빛과 소리와 같으니 이 빛과 소리 속엔 어둠과 밝음이 하나이니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을 각자의 자리에 질서를 따라 보기에 심히 좋도록 존재하게 만든 창조주의 이름이 된다.

      창조주는 스스로 존재해 왔다. 그리고 영원히 스스로 존재할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스스로 존재하는 하나님을 떠나 물질이 되었으니 그 물질은 제한된 시간 속에 존재할 뿐이다. 영원의 시간이 인간을 존재하게 하였으나 인간은 영원을 잃고 영원의 그 넓고 큰 시간 속에서 짧고도 짧은 시간을 지내며 존재하는 제한된 시간을 전부로 여긴다.

      그러나 지금도 이 영원의 시간은 소리의 공명과 빛의 울림을 통해 인간의 소리와 빛 또한 영원한 시간속에 존재함을 깨닫게 하니 영은 영원을 향하고 육은 불질의 제한적 시간을 쫓아 허망하게 사라질 것이다. 그러나 이 또한 사라짐이 사라짐의 종국이 아니니 존재하게 하신 이가 또 다시 존재케 할 것이다.

      다만 그 존재케 하시는 영의 뜻에 합당한 존재만이 존재케 될 것이니 이것이 들리지 않는 소리의 공명이며 보이지 않는 빛의 울림이니 그로 인해 만들어진 모든 물질의 규칙이 되며 질서가 된다.

      신앙인들은 들리지 않는 소리의 공명이 있는 자이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빛을 따르는 자들이다. 이 공명과 빛이 물질의 통해 보여지는 빛과 들리는 소리를 무시하지 않으니 물질을 통해 존재하는 소리오 빛도 무시하지 않음이 될 것이다.

      비신앙인들은 들리지 않는 소리는 존재하지 않음이라 하고 보이지 않는 소리는 없음이라 하니 소리의 공명과 빛의 울림이 없는 빈상자와 같다. 그러나 때론 이 빈상자가 스스로 공명과 울림을 만들어 내니 선지자의 소리와 같고 빛의 진리처럼 물질의 소리를 만들어 내니 곧 물질의 소리며 물질의 빛이며 물질의 질서와 규칙이니... 물질을 숭배케 하는 우상숭배인 것이다.

      우상 숭배는 물질의 소리와 빛을 따름이지만 들리지 않는 소리를 거부하고 보이지 않는 빛을 부정하니 거짓의 아비인 것이다. 물질의 형태는 시간을 따라 변할지라도 사라지지 않는다. 물질 또한 그 영원한 창조주의 소리와 빛을 따라 영원히 존재할 것이다. 다만 그 모양만 변화 될 뿐이다.'

      이것이 물질과 물질이 부딪혀 소리가 나는 저의 생각이며 이 글은 이 소리의 현상 입니다.


      • 2018-09-12 16:34

        노재신 목사님, 필자는 남의 글을 비판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지요. 부득이 해야 할 경우에는 남의 글을 이해 정도가 아니라 소화될 때까지 몇 번이고 반복해 읽지요. 또한, 그 글의 주제에 관한 것을 연구한 다음에 하지요. 그렇지 않으면 본글을 바로 이해하기가 어렵고, 따라서 초점에서 벗어난 비판을 하게 되거나, 본글을 이용해서 자기 선입견이나 고정관념에 따른 자기의 다른 글을 쓰기 쉽기 때문이지요.
        필자의 본글에 대한 노 목사님의 댓글들에 대한 답글은 위의 글로 대신하지요.


        • 2018-09-12 18:31

          남의 글을 비판하지 않으면 내 글이 나올 수 없습니다.
          만약 노 목소리가 아니라면 그 글은 거의 남의 것을 짜집기 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짜집기 하는 것도 기술이긴하며 실력이긴 하지만 진정한 의미에선 남의 것을 도용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그런의미에서 목사님과 같은 분들이 제 글에 대한 비판을 통해 목사님의 목소리를 감게에 펴시길 바랄 뿐입니다.
          논쟁이 없이 발전이 없으며 영감없이 깨들음은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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