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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디아서 38강 I. 사랑의 호소]Ⓒ 4:17-20

작성자
최세창
작성일
2023-05-05 20:34
조회
423

※ 연재되는 필자의 주석책 「갈라디아서․에베소서」


바울은 한때 자기를 열렬하게 사랑했던 갈라디아 교인들이 이제는 그를 원수처럼 여기게 된 올바른 이유에 대해, 【17】[저희가 너희를 대하여 열심 내는 것이 좋은 뜻이 아니요 오직 너희를 이간 붙여 너희로 저희를 대하여 열심 내게 하려 함이라]라고 설명하고 있다.

율법주의자인 거짓 교사들이 “너희에게 열심히 영향을 끼치며”(AV), “너희를 진실로 사랑하고 존경하는 것처럼 가장하고 있으나 좋은 뜻에서 그러는 것이 아니라”(M. Henry)고 하는 것이다. 그들은 다만 이기적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열심히 비위를 맞추고 아첨하는 것이다(롬 16:18. cf. 고후 11:2).

율법주의자들의 속셈을 간파한 바울은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오직 너희를 이간 붙여 너희로 저희를 대하여 열심 내게 하려 함이라]라고 경계하고 있다.

[너희를 이간 붙여]가 무엇 또는 누구로부터 갈라디아 교인들을 이간 붙인다는 것인지 문제가 된다. 이 점에 대해 (1) 바울 및 그의 동역자들이라는 설,➊ (2) 교회라는 설(R. T. Stamm), (3) 바울이라는 설(M. Henry, E. Huxtable), (4) 그리스도라는 설(J. B. Lightfoot), (5) 그리스도의 자유라는 설(Erasmus),➋ (6) 다른 교사들이라는 설(Meyer, Vincent)➌ 등이 있다.

바울이 앞에서 이전의 갈라디아 교인들과의 아름다웠던 관계를 말한 점과 이간 붙이는 목적이 저들 곧 율법주의자들에게 열심을 내게 하려는 것이라는 점으로 보아 복음의 진리를 전하고 가르친 바울과 그의 동역자들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율법주의자들인 거짓 교사들은 바울 및 그의 동역자들로부터 갈라디아 교인들을 이간하여 갈라디아 교인들로 하여금 복음을 배척하게 만들고, 또한 자신들을 열심히 섬기며 자신들의 잘못된 교리를 열심히 추종케 하려고 하였다.

이러한 자들을 가리켜, 바울은 “이 같은 자들은 우리 주 그리스도를 섬기지 아니하고 다만 자기의 배만 섬기나니 공교하고 아첨하는 말로 순진한 자들의 마음을 미혹하느니라”(롬 16:18)라고 책망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열심이란 매우 중요한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 그러나 열심이란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열심의 내용이 문제가 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위한 열심인가, 누구를 위한 열심인가 함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바울은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18】[좋은 일에 대하여 열심으로 사모함을 받음은 내가 너희를 대하였을 때뿐 아니라 언제든지 좋으니라]라고 말하는 것이다.

헨리(M. Henry)는 “열심이란 좋은 일을 수행할 때만 훌륭한 것이므로 좋은 일에만 열심을 내도록 하라는 것이고, 좋은 일에 대한 열심은 계속적이고 꾸준해야 한다는 것이다.”라고 풀이하고 있다.

렌스키(R. C. H. Lenski)도 “바울은 놀라운 방법으로 자기 자신을 개입시키면서, 갈라디아 교인들로 하여금 언제든지 좋은 일에 거하도록 촉구하고 있는 것이다.”라고 비슷하게 풀이하고 있다.

그러나 이 구절을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열심으로 사모함을 받]는 이가 누구인지를 밝혀야만 한다. 이 점에 대해 (1) 갈라디아 교인들이라는 설(“Vincent”,➍ R. C. H. Lenski, E. D. Burton), (2) 갈라디아 교인들과 바울이라는 설(Zahn),➎ (3) 바울이라는 설(M. Luther, J. B. Lightfoot, 黑崎幸吉) 등이 있다.

앞 구절에서, 바울이 갈라디아 교인들에 대한 유대주의자들의 열심을 말한 것으로 보아 갈라디아 교인들로 보아야 할 것이다.
따라서 바울의 의도는 갈라디아 교인들이 복음을 전하고 받는 것과 같은 좋은 일에 대하여 [열심으로 사모함을 받]는 대상이 된다는 것은, 자신이 그들과 함께 있든 없든 상관없이 항상 좋다는 것이다. 또, 사모하는 사람이 자신이 아니라, 다른 어떤 사람이든지 상관없이 좋다는 것이다.

바울은 지금 편협한 이기주의나 교파주의적 사고로 율법주의자들을 시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다른 복음(1:6, 7의 주석을 보라.)을 따르도록 하기 위해 갈라디아 교인들을 열심히 사모하기 때문에, 그들에 대해 경종을 울리는 것이다.

끝으로, 바울은 갈라디아 교인들에 대한 자신의 본심을 다시금 밝혀 준다. 【19】[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

바울은 자신의 마음을 괴롭게 한 갈라디아 교인들을 냉대하는 대신에, 어머니와 같은 뜨거운 관심과 사랑으로 [나의 자녀들아]라고 부른다. 이 호칭은 테크니아 무(τεκνία μου)로서, 요한이 자주 사용하는 용어인데(요 18:33, 요일 2:1, 12, 28, 3;7, 18, 4:4, 5:21), 바울의 경우는 이곳에만 사용한다.

바울은 자신의 선교에 의해 개종한 자들을 가리켜, 영적인 의미에서 “낳았다”라고 말하고 있다(고전 4:15. cf. 딤전 1;2, 살전 2:11). 특히, 본 절은 바울 서신 중에서도 가장 깊은 사랑을 보인 것이다(E. D. Burton). 이러한 사랑의 어조는 노한 목소리가 결코 들어갈 수 없는 곳까지 침투해 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W. Barclay).

믿음의 자녀들인 갈라디아 교인들에 대한 바울의 염원은,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라]는 말속에 나타나 있다.

바울의 첫 번째 해산의 수고로 갈라디아 교인들의 마음속에 이루어진 “그리스도의 참 형상이 거짓 교사들이 소개한 미신 때문에 파괴되었으므로”(J. Calvin),➏ 바울은 다시금 그들을 위하여 해산의 수고를 하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해산의 수고는 갈라디아 교인들의 마음속에 그리스도를 형성하기까지 계속될 수밖에 없다.

우리 마음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형성한다는 것은, “바울이 그리스도와 성령을 동의어로 사용한다”(J. S. Stewart, H. A. A. Kennedy)➐는 점을 보아, 성령으로서의 그리스도의 내재 형태를 의미하는 것이다. 또한,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어진다는 것은 곧 그리스도 안에 우리의 존재가 형성된다는 것을 의미하는데”(J. Calvin), 이것이 바로 중생(새사람)의 체험이며(요 3:3, 7) 영적 교제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형상이 우리 마음속에 온전히 이루어진다는 것은 곧 성령의 충만을 받는다는 뜻이다(엡 5:18. 참조: 엡 4:13). 이때에 중생한 우리의 생각과 행위가 온전히 그리스도의 지배를 받게 되는 것이다. 이 점에 대해 마이어(Meyer)가 “중생의 경우도 그리스도의 생명이 심겨져 점점 크게 되어 간다. 그리고 마침내 모든 자아가 우리들 속에 거하여 주시는 분에 의해 상실되어 버리는 것이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바울의 말대로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빌 1:21. 참조: 갈 2:20)가 되는 것이다.

여기에 하나의 중대한 문제가 남아 있다. 즉, 바울이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기까지 해산하는 수고를 한다고 했을 때, 새사람으로 거듭나게 하는 주체가 누구인가? 이 점에 대해 칼빈(J. Calvin)이 “태어나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역사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바울과 같은 설교자나 설교를 통해서 그 일을 성취하신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므로 모든 교역자나 설교자의 궁극적인 목표는, 성도들에게 자신의 형상을 심어 주는 것이 아니라, 바울처럼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도록 하는 것이다.

갈라디아 교인들에 대한 사랑을 편지로 호소할 수밖에 없었던 바울은 직접 대면할 수 없는 것이 안타까워서, 【20】[내가 이제라도 너희와 함께 있어 내 음성을 변하려 함은 너희를 대하여 의심이 있음이라]라고 말한다.

바울은 성령이 충만한 거룩한 사람으로서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편지를 쓰고 있으나(cf. 벧후 1:21, 3:15, 16),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공의 제한을 의식하였다”(W. Hendriksen). 그래서 그는 [이제라도] 그들과 함께 지내면서, 이전에 엄하게 책망해 온 아버지 같은 음성을 바꾸어, 어머니다운 음성으로 그들을 위한 염려와 사랑을 직접 들려주고 싶어하였다. 다시 말하면, 엄한 질책과 경고조의 태도를 온유하고 부드러운 태도로 바꾸겠다고 하는 것이다.➑

지도자란 바울처럼 원칙을 희생함이 없이, 시간과 장소와 상황에 따라 태도를 바꿀 줄 알아야만 한다(고전 9:20-22).

바울이 그들과 함께 있고 싶어한 또 하나의 이유는, 그 때까지도 풀리지 않는, 그들에 대한 [의심]을 풀어 서로 신뢰할 수 있는 관계를 회복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4:12-20의 고찰 결과에 의하면, 바울은 자신과 자신의 복음을 떠나고 있는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그들의 관습을 따라 지냈던 것처럼, 그들도 현재의 율법의 속박에서 자유를 누리고 전과 같이 자신에게 호의로 대해 달라고 부탁한다.

전에 바울이 병 때문에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되었을 때, 그들은 그를 경멸하고 배척하는 대신에 천사나 그리스도처럼 환대하면서 그의 복음을 받아들였다. 심지어 그들은 복음을 전해 준 바울을 위해서라면 눈이라도 빼어 줄 정도로 감사하고 있었다.

그런데 현재의 그들은 그 복을 모두 상실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복음을 전한 바울을 원수처럼 여기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그들에게 이 모든 일의 원인인 율법주의자들의 속셈을 일깨워 주고 있다. 즉, 율법주의자들은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열심히 아첨하면서, 바울과 바울의 동료들에게서 갈라디아 교인들을 이간 붙여, 그들과 그들의 잘못된 교리를 열심히 추종하게끔 하는 것이다. 바울은 지금 이기주의나 교파주의적 사고로 율법주의자들을 비난하는 것이 아니다. 그는 갈라디아 교인들이 어떤 사람에게 복음의 대상이 되든지 좋다는 입장이었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형상을 상실한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그들 마음속에 다시금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어지기까지 해산의 수고를 한다고 말한다.

끝으로, 바울은 그들과 함께 지내면서 이제까지의 책망하던 엄한 아버지의 음성을 바꾸어 염려와 사랑으로 가득찬 어머니다운 음성을 들려주고 싶으며, 또한 그들에 대한 의심을 풀고 서로 신뢰할 수 있는 관계를 회복하고 싶다고 호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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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석서와 주해서에서 인용할 경우에는, 해당 성구가 있으므로 저자의 이름만 밝혔음.
1) M. Luther, J. Calvin, J. A. Bengel, “Olshausen”(in 이상근), R. C. H. Lenski, W. Hendriksen, 黑崎幸吉.
2) in 이상근.
3) 상동.
4) 상동.
5) in 黑崎幸吉.
6) 참조: 黑崎幸吉은 “첫 번째 해산의 수고는 백지로 돌아가려 하고 있다. 이는 갈라디아 신도의 마음속에 그리스도가 충분히 형성되지 않았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7) J. S. Stewart, op. cit., p. 156. H. A. A. Kennedy, op. cit., p. 123.
8) M. Luther, J. Calvin, J. B. Lightfoot, W. Hendriksen, R. C. H. Lenski, E. Huxtable, 黑崎幸吉, 이상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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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최세창, 갈라디아서, 에베소서(서울: 글벗사, 2002, 2판 2쇄), pp. 196-202.

필자의 newrema.com(T. 426-3051)의 저서 및 역서 :
# 신약 주석(마~계, 1-15권)/ Salvation Before Jesus Came/ 바울의 인간 이해/ 바울의 열세 서신/ 예수 탄생 이전의 구원/ 우린 신유의 도구/ 다수의 논문들/ 난해 성구 사전 I, II권/ 설교집 36권/ 기타 다수
# 번역서 : 예수의 비유(W. Barclay 著)/ 야고보서(A. Barnes 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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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파일 : 004-1.jpg
전체 3

  • 2023-05-05 20:38

    필자의 주석책에는 각주로 되었고, 주석되는 성경의 구절과 용어는 고딕으로 구분했는데, 이 인텨넷 화면에는
    그대로 표시되지 않으므로 각주를 미주로 바꿨고, 고딕을 부호 [ ]로 바꿨습니다.


  • 2023-05-06 12:04

    최 목사님, 안녕하세요?
    위 목사님께서 게시하신 내용을 통해 여러 가지 다양한 입장과 해석에 대해 알게 되어 감사합니다. 또 본문에 대한 저의 소견을 아래와 같이 공유합니다.

    §17 <열심> KJV에서 이는 ‘zealously affect’이고 의미는 ‘질투스럽게 노력’ 정도이다. [민25:11 제사장 아론의 손자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가 내 ※질투심으로 질투하여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내 노를 돌이켜서 내 ※질투심으로 그들을 소멸하지 않게 하였도다 13 그와 그의 후손에게 영원한 제사장 직분의 언약이라 그가 그의 하나님을 위하여 질투하여 이스라엘 자손을 속죄하였음이니라] [사9:7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왕좌와 그의 나라에 군림하여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지금 이후로 영원히 정의와 공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 ☞ 여호와 하나님의 열심 [사59:17 공의를 갑옷으로 삼으시며 구원을 자기의 머리에 써서 투구로 삼으시며 보복을 속옷으로 삼으시며 열심을 입어 겉옷으로 삼으시고 18 그들의 행위대로 갚으시되 그 원수에게 분노하시며 그 원수에게 보응하시며 섬들에게 보복하실 것이라] [겔5:13 이와 같이 내 노가 다한즉 그들을 향한 분이 풀려서 내 마음이 가라앉으리라 내 분이 그들에게 다한즉 나 여호와가 열심으로 말한 줄을 그들이 알리라] [요2:17 제자들이 성경 말씀에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리라 한 것을 기억하더라] ☞ 잘못된 열심 [롬10:2 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올바른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니라] ☞ 잘못된 열심 [고후7:11 보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게 된 이 근심이 너희로 얼마나 간절하게 하며 얼마나 변증하게 하며 얼마나 분하게 하며 얼마나 두렵게 하며 얼마나 사모하게 하며 얼마나 열심 있게 하며 얼마나 벌하게 하였는가 너희가 그 일에 대하여 일체 너희 자신의 깨끗함을 나타내었느니라]

    <이간> [잠6:16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는 것 곧 그의 마음에 싫어하시는 것이 예닐곱 가지이니 19 거짓을 말하는 망령된 증인과 및 형제 사이를 이간하는 자이니라] ☞ 여호와께서 미워하는 것 ⇨ 형제사이를 이간 [겔22:9 네 가운데에 피를 흘리려고 이간을 붙이는 자도 있었으며 네 가운데에 산 위에서 제물을 먹는 자도 있었으며 네 가운데에 음행하는 자도 있었으며] ☞ 피를 흘리려고 ⇨ 이간(목적) [롬3:27 그런즉 자랑할 데가 어디냐 있을 수가 없느니라 무슨 법으로냐 행위로냐 아니라 오직 믿음의 법으로니라 28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 ☞ 자랑 ∋ 행위 vs. 믿음의 법; 서로 배타적….

    §18 <좋으니라 it is good> [창1:4 빛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둠을 나누사] [사52:7 좋은 소식을 전하며 평화를 공포하며 복된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구원을 공포하며 시온을 향하여 이르기를 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하는 자의 산을 넘는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가] [렘26:14 보라 나는 너희 손에 있으니 너희 의견에 좋은 대로, 옳은 대로 하려니와] [마7:11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 좋은 것 [눅1:53 주리는 자를 좋은 것으로 배불리셨으며 부자는 빈 손으로 보내셨도다] [롬7:18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 선한 것 [엡6:8 이는 각 사람이 무슨 선을 행하든지 종이나 자유인이나 주께로부터 그대로 받을 줄을 앎이라] [히9:11 그리스도께서는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사 손으로 짓지 아니한 것 곧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 [히10:1 율법은 장차 올 좋은 일의 그림자일 뿐이요 참 형상이 아니므로 해마다 늘 드리는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나 온전하게 할 수 없느니라] ☞ 히브리(유대인)에서 구약의 대제사장, 율법 같은 유업이 장차의 예표가 된다.

    <대하였을 때, present with> ☞ 이는 얼굴 앞 대면으로 아래의 언제든지와 대비된다. 20절 참조 많은 이들은 사람의 바로 앞에서는 열심히 하나, 항상 열심이지 않다. [눅13:1 그 때 마침 두어 사람이 와서 빌라도가 어떤 갈릴리 사람들의 피를 그들의 제물에 섞은 일로 예수께 아뢰니] [행10:33 내가 곧 당신에게 사람을 보내었는데 오셨으니 잘하였나이다 이제 우리는 주께서 당신에게 명하신 모든 것을 듣고자 하여 다 하나님 앞에 있나이다] [고전5:4 내가 실로 몸으로는 떠나 있으나 영으로는 함께 있어서 거기 있는 것 같이 이런 일 행한 자를 이미 판단하였노라] [고후10:2 또한 우리를 육신에 따라 행하는 자로 여기는 자들에 대하여 내가 담대히 대하는 것 같이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나로 하여금 이 담대한 태도로 대하지 않게 하기를 구하노라 11 이런 사람은 우리가 떠나 있을 때에 편지들로 말하는 것과 함께 있을 때에 행하는 일이 같은 것임을 알지라] ☞ 면전에서와 떠나 있을 때 같아야 한다.

    <언제든지 always> ☞이는 항상이며, 면전대면과는 대비된다. [마26:11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니와 나는 항상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 [막14:7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으니 아무 때라도 원하는 대로 도울 수 있거니와 나는 너희와 항상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 [요8:29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하시도다 나는 항상 그가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므로 나를 혼자 두지 아니하셨느니라] [요12:8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니와 나는 항상 있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고후2:14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 우리로 말미암아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고후4:10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빌1:4 간구할 때마다 너희 무리를 위하여 기쁨으로 항상 간구함은] ☞ 항상은 “하나님 앞에 선다”는 의미를 포함한다. 이는 눈 앞에서만 열심인 것과 대비되며, 이런 태도는 불신앙이다.

    §19 <나의 자녀들아> ☞ 23절, ‘형제들아’와 대비된다. 이는 육체적 어린이를 말하고 동시에 영적으로 미성숙한 자를 말한다. [마19:13 그 때에 사람들이 예수께서 안수하고 기도해 주심을 바라고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오매 제자들이 꾸짖거늘 14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린 아이들을 용납하고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 천국이 이런 사람의 것이니라 하시고] [요13:33 작은 자들아 내가 아직 잠시 너희와 함께 있겠노라 너희가 나를 찾을 것이나 일찍이 내가 유대인들에게 너희는 내가 가는 곳에 올 수 없다고 말한 것과 같이 지금 너희에게도 이르노라] [요일2:12 자녀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 죄가 그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사함을 받았음이요] [요일3:18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19 이로써 우리가 진리에 속한 줄을 알고 또 우리 마음을 주 앞에서 굳세게 하리니] [요일4:4 자녀들아 너희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또 그들을 이기었나니 이는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자보다 크심이라 5 그들은 세상에 속한 고로 세상에 속한 말을 하매 세상이 그들의 말을 듣느니라] [요일5:21 자녀들아 너희 자신을 지켜 우상에게서 멀리하라]

    <그리스도의 형상> [창1:27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다. 원숭이가 진화한 게 아니다. [사45:18 대저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하늘을 창조하신 이 그는 하나님이시니 그가 땅을 지으시고 그것을 만드셨으며 그것을 견고하게 하시되 혼돈하게 창조하지 아니하시고 사람이 거주하게 그것을 지으셨으니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느니라] [롬9:20 이 사람아 네가 누구이기에 감히 하나님께 반문하느냐 지음을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느냐 말하겠느냐 21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들 권한이 없느냐] [고전15:49 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 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이의 형상을 입으리라] [골1:15 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시니] ☞ 흙에 속한 자의 형상 ⇔ 하늘에 속한 이의 형상,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 [딤전2:13 이는 아담이 먼저 지음을 받고 하와가 그 후며]

    <해산하는 수고 travail> ☞ 사도 바울은 사역에 진심이며, 이를 해산하는 수고로 표현한다. 요즘 이런 자세를 가지고 교회를 돌보는 이가 얼마나 될까? 종교인으로 땅에서 부와 권세를 잡으려 하나, [창38:27 해산할 때에 보니 쌍태라] [출18:8 모세가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바로와 애굽 사람에게 행하신 모든 일과 길에서 그들이 당한 모든 고난과 여호와께서 그들을 구원하신 일을 다 그 장인에게 말하매] ☞ 출앱굽에서 당한 고난이 해산과 같다. [사45:10 아버지에게는 무엇을 낳았소 하고 묻고 어머니에게는 무엇을 낳으려고 해산의 수고를 하였소 하고 묻는 자는 화 있을진저] [렘4:31 내가 소리를 들은즉 여인의 해산하는 소리 같고 초산하는 자의 고통하는 소리 같으니 이는 시온의 딸의 소리라 그가 헐떡이며 그의 손을 펴고 이르기를 내게 화가 있도다 죽이는 자로 말미암아 나의 심령이 피곤하도다 하는도다] [렘6:24 우리가 그 소문을 들었으므로 손이 약하여졌고 고통이 우리를 잡았으므로 그 아픔이 해산하는 여인 같도다] [애3:4 나의 살과 가죽을 쇠하게 하시며 나의 뼈들을 꺾으셨고 5 고통과 수고를 쌓아 나를 에우셨으며] [호13:13 해산하는 여인의 어려움이 그에게 임하리라 그는 지혜 없는 자식이로다 해산할 때가 되어도 그가 나오지 못하느니라] [미4:9 이제 네가 어찌하여 부르짖느냐 너희 중에 왕이 없어졌고 네 모사가 죽었으므로 네가 해산하는 여인처럼 고통함이냐 10 딸 시온이여 해산하는 여인처럼 힘들여 낳을지어다 이제 네가 성읍에서 나가서 들에 거주하며 또 바벨론까지 이르러 거기서 구원을 얻으리니 여호와께서 거기서 너를 네 원수들의 손에서 속량하여 내시리라] [요16:20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는 곡하고 애통하겠으나 세상은 기뻐하리라 너희는 근심하겠으나 너희 근심이 도리어 기쁨이 되리라 21 여자가 해산하게 되면 그 때가 이르렀으므로 근심하나 아기를 낳으면 세상에 사람 난 기쁨으로 말미암아 그 고통을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느니라] [살전2:9 형제들아 우리의 수고와 애쓴 것을 너희가 기억하리니 너희 아무에게도 폐를 끼치지 아니하려고 밤낮으로 일하면서 너희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였노라]

    §20 <내가 이제라도 너희와 함께 있어> KJV “I desire to be present with you now, 나는 지금 당신과 함께 있기를 원합니다.”이며, 여기에서 desire는 원한다./탐한다./소원한다는 강한 의지의 표현이다. [창3:16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원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 ☞ 이는 아내가 남편을 원하는 갈구이다. [신5:21 네 이웃의 아내를 ※탐내지 말지니라 네 이웃의 집이나 그의 밭이나 그의 남종이나 그의 여종이나 그의 소나 그의 나귀나 네 이웃의 모든 소유를 탐내지 말지니라] [시38:9 주여 나의 모든 소원이 주 앞에 있사오며 나의 탄식이 주 앞에 감추이지 아니하나이다] [시92:11 내 원수들이 보응 받는 것을 내 눈으로 보며 일어나 나를 치는 행악자들이 보응 받는 것을 내 귀로 들었도다] [아7:10 나는 내 사랑하는 자에게 속하였도다 그가 나를 사모하는구나] [렘22:27 네 목자들은 다 바람에 삼켜질 것이요 너를 사랑하는 자들은 사로잡혀 가리니 그 때에 네가 반드시 네 모든 악 때문에 수치와 욕을 당하리라] ☞ 돌아오기를 사모함. [막9:35 예수께서 앉으사 열두 제자를 불러서 이르시되 누구든지 첫째가 되고자 ※하면 뭇 사람의 끝이 되며 뭇 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하시고] [빌4:17 내가 선물을 구함이 아니요 오직 너희에게 유익하도록 풍성한 열매를 구함이라]

    <언성을 높이려> KJV에서 ‘to change my voice’로, ”내 음성을 바꾸려“이고, 개역 개정은 ‘언성’을 음성, 소리, 목소리 등으로 표현했기에 연관 구절을 찾기 쉽지 않다. [삼상26:17 사울이 다윗의 음성을 알아 듣고 이르되 내 아들 다윗아 이것이 네 음성이냐 하는지라 다윗이 이르되 내 주 왕이여 내 음성이니이다 하고] [시29:3 여호와의 소리가 물 위에 있도다 영광의 하나님이 우렛소리를 내시니 여호와는 많은 물 위에 계시도다 4 여호와의 소리가 힘 있음이여 여호와의 소리가 위엄차도] [사66:6 떠드는 소리가 성읍에서부터 들려 오며 목소리가 성전에서부터 들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그의 원수에게 보응하시는 목소리로다] [렘7:34 그 때에 내가 유다 성읍들과 예루살렘 거리에 기뻐하는 소리, 즐거워하는 소리, 신랑의 소리, 신부의 소리가 끊어지게 하리니 땅이 황폐하리라 [계14:2 내가 하늘에서 나는 소리를 들으니 많은 물 소리와도 같고 큰 우렛소리와도 같은데 내가 들은 소리는 거문고 타는 자들이 그 거문고를 타는 것 같더라]

    <너희에 대하여 의혹> [창37:33 아버지가 그것을 알아보고 이르되 내 아들의 옷이라 악한 짐승이 그를 잡아 먹었도다 요셉이 분명히 찢겼도다 하고] ☞ 의혹 [신28:66 네 생명이 위험에 처하고 주야로 두려워하며 네 생명을 확신할 수 없을 것이라] [마14:31 예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 그를 붙잡으시며 이르시되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하시고] [마21:21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가 믿음이 있고 의심하지 아니하면 이 무화과나무에게 된 이런 일만 할 뿐 아니라 이 산더러 들려 바다에 던져지라 하여도 될 것이요] ☞ 의심 [막11:23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요10:24 유대인들이 에워싸고 이르되 당신이 언제까지나 우리 마음을 의혹하게 하려 하나이까 그리스도이면 밝히 말씀하소서 하니] [롬14:23 의심하고 먹는 자는 정죄되었나니 이는 믿음을 따라 하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라 믿음을 따라 하지 아니하는 것은 다 죄니라] ☞ 의심


    • 2023-05-06 20:23

      엄 장로님, 평안하시지요?
      한결같이 필자의 갈라디아서 주석책 연재에 관심을 보이시고, "위 목사님께서 게시하신 내용을 통해 여러 가지 다양한
      입장과 해석에 대해 알게 되어 감사합니다. 또 본문에 대한 저의 소견을 아래와 같이 공유합니다.."라고 하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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