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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디아서 43강 B.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5:6]

작성자
최세창
작성일
2023-06-12 11:29
조회
515

연재되는 필자의 주석책 「갈라디아서․에베소서」


완전한 의의 소망의 근거에 대해, 바울은 【6】[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가 효력이 없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뿐이니라]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2:17의 주석을 보라.)이란 믿음에 의해 그리스도와 연합된 자들의 생의 길을 의미하는 것이다(S. J. Mikolaski). 이 “연합의 관계는 습관적으로 그리스도와 접촉하고 의존하는 영혼(Soul)의 행위와 그리스도에게서 영적 활력과 능력을 끊임없이 받아들이는 영혼(Soul)의 행위를 통해 유지되는 것이다”(E. Huxtable).

그러므로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가 효력이 없되]라고 단정하는 것이다. 이 점에 대해, 헨리(M. Henry)는 “율법이 지배하고 있었던 시기에는 유대인과 이방인의 차이가 있었고, 할례 받은 자와 안 받은 자의 차이가 있어서, 전자는 하나님의 교회의 특권을 받을 자격을 누렸고, 후자는 그 자격에서 제외되었으나 복음이 지배하는 시대가 되어서는 사정이 바뀌었다는 말이다. 즉, ‘율법의 마침’이신 그리스도께서 오셨기 때문에 할례자와 무할례자 사이에 구별이 없게 된 것이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위에 언급된 차이란 어디까지나 형식적이요 인간적인 관점에서 본 차이이었지, 결코 하나님의 관점에서 본 차이나 내적인 차이는 아니었다. 계속 논의해 온 바와 같이, 율법이 지배하던 시대에도 구원(의)을 얻는 길은 할례나 율법 준수에 의한 것이 아니라 믿음에 의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은혜와 믿음의 영역 안에서는 할례를 받았다거나 받지 않았다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다. 그 사실은 의와는 전혀 무관한 것이다.

완전한 의에 대한 소망을 가질 수 있는 신자에게 필요한 기본적인 의무를 가리켜, 바울은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뿐이니라]라고 말한다.

의의 소망이 믿음에 의한 것이라고 하면, 중요한 것은 그 믿음의 내용이다. 참된 믿음이란 반드시 그 믿음에 따르는 행위가 있게 마련이다. 물론, “믿음에 따르는 행위란 사랑의 행위를 의미하는 것이다”(M. Luther). 바꾸어 말하면, 사랑의 행위가 곧 믿음의 증거라는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야고보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약 2:17)라고 단정하는 것이다.❶

여기에 언급된 사랑은 아가페스(ἀγάπης)로 인간에게서 비롯되는 자연적 사랑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비롯되는 하나님의 본질적 사랑을 의미하는 것이다(사랑의 본질 및 속성에 관한 구체적인 분석은 저자의 「고린도전서」 13장의 주석을 보라).

여기서는 하나님의 사랑 및 그것과 관련된 인간의 사랑을 논해야 할 것이다.

요한일서 4:10에,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라고 사랑에 대해 간결하면서도 심오한 정의를 내리고 있다. 즉, 사랑이란 받을 자격이 없는 상대에게 상대의 요구대로가 아니라, 진정한 의미에서 상대에게 유익을 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공로나 선행의 대가로서가 아니라, 오히려 형벌이 마땅한 대가일 수밖에 없는 죄인들에게 화목제로 그 아들을 주신 것이 곧 사랑이다.

화목제로 주셨다는 말씀에서, 우리는 참된 사랑이란 진리와 정의가 내포되어 있다는 것(고전 13:6)과, 또한 사랑은 상대의 조건과는 상관없이 스스로 분출하는 본성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이 놀라운 사랑은 인간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인간은 하나님과 인간을, 더욱이 원수를 사랑할 수 없다.

인간이 사랑을 받을 자격이 없는 대상을 사랑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 있다면, 그것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그 마음에 부어져야만 하는 것이다(롬 5:5, 15:30). 그러한 의미에서, 이 사랑은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이 없는 믿음으로 나는 것이다(딤전 1:5).

믿는 자가 수행해야 할 가장 큰 의무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다(막 12:28-34).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요(요일 5:3), 나아가 전 생명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인간을 사랑하는 것과 분리되는 것이 아니다. 실상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의 시금석이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의 일환이라 할 수 있다(요일 4:12, 20, 21, 5:2).

모든 사람은 그 자신이 느끼고 있든 없든 간에 영적인 면에나 정신적인 면, 또는 육체적인 면에나 물질적인 면에서 결핍되어 있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에게 있는 것으로 그들의 결핍을 채워 줌으로써 사랑을 실현해야 한다.

사랑에 있어서 명심해야 할 것은 필요한 사람에게 줄 것이 있느냐 함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은사와 복을 받아야 할 이유이며, 또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사와 복을 주시는 목적이다.

사랑에 있어서 명심해야 할 또 한 가지 사실은, 남을 사랑할 조건이 완벽하게 구비된 사람은 하나도 없다는 것이며, 또한 남을 사랑할 조건이 하나도 없는 사람은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가 오는 대로 현재 우리에게 있는 것으로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어야 하는 것이다. 인간에게 줄 수 있는 최대의 사랑이란 영생의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선물하는 것이다(행 3:1-10).

하나님 또는 인간을 사랑할 때, 우리의 사랑의 행위를 자기 의나 공로로 생각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우리는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으로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을 받았고, 또 받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우리의 모든 소유와 지체 그리고 생명은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기 위한 도구가 되어야 한다. 이러한 사랑은 이미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을 받은 자들의 공동체인 교회 안에서부터 실현되지 않으면 안 된다(참조: 갈 6:10).

사랑은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요(마 22:40), 율법의 성취요(롬 13:8), 율법의 완성이요(롬 13:10), 최고한 법이요(약 2:8), 예수님의 새 계명(요 13:34)이라고 일컬어지기도 한다.

이와 같은 사랑이 역사하는 믿음이라야 참 믿음이요, 의의 소망의 근거가 되는 믿음인 것이다. 헨리(M. Henry)는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이야말로 기독교의 본질이다.”라고 하였다.

5:2-6의 고찰 결과에 의하면, 바울은 사도로서의 권위와 인격을 걸고 구원의 필수 조건으로서의 할례를 받으려는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할례를 받으면 그리스도의 구속 은혜가 무익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할례를 받는 것은 율법으로 의롭게 되려는 것이므로 율법 전체를 행할 의무를 가지는데, 인간에게는 율법 전체를 완전히 준행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결과적으로 인간은 율법으로는 의롭게 될 수 없으며, 또한 율법의 의를 추구한 그 자체가 이미 그리스도에게서 단절된 것이고, 그분의 은혜를 거절한 것이다.

바울에 의하면, 참된 의미에서의 그리스도인이란 할례와는 상관없이, 그들 마음속에 내주하여 언행을 자극하고 고취하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믿음에 근거하여 완전한 의에 대한 소망을 가진 자라는 것이다. 이 소망의 근거가 되는 믿음은 행함이 없는 죽은 믿음이 아니라, 사랑의 행위가 따르는 믿음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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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석서와 주해서에서 인용할 경우에는, 해당 성구가 있으므로 저자의 이름만 밝혔음.
1) 최세창, 야고보서, 1:14-26의 주석을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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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최세창, 갈라디아서, 에베소서(서울: 글벗사, 2002, 2판 2쇄), pp. 220-224.

필자의 newrema.com(T. 426-3051)의 저서 및 역서 :
# 신약 주석(마~계, 1-15권)/ Salvation Before Jesus Came/ 바울의 인간 이해/ 바울의 열세 서신/ 예수 탄생 이전의 구원/ 우린 신유의 도구/ 다수의 논문들/ 난해 성구 사전 I, II권/ 설교집 36권/ 기타 다수
# 번역서 : 예수의 비유(W. Barclay 著)/ 야고보서(A. Barnes 著)

갈-엡.JPG



첨부파일 : 갈-엡.JPG
전체 3

  • 2023-06-12 11:35

    필자의 주석책에는 각주로 되었고, 주석되는 성경의 구절과 용어는 고딕으로 구분했는데, 이 인텨넷 화면에는
    그대로 표시되지 않으므로 각주를 미주로 바꿨고, 고딕을 부호 [ ]로 바꿨습니다.


  • 2023-06-12 19:30

    최 목사님, 안녕하세요?
    위 목사님께서 게시하신 내용을 통해 여러 가지 다양한 입장과 해석에 대해 알게 되어 감사합니다. 또 본문에 대한 저의 소견을 아래와 같이 공유합니다.

    §6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 믿음뿐이니라 ⇨ 너희가 달음질을 잘 함 ⇨ 진리를 ⇨ 순종> ⇔ <할례나 무할례나 ⇨ 효력이 없으되 ⇨ 누가 너희를 막아 ⇨ 진리를 순종하지 못하게 함 ⇨ 그 권면 ⇨ 너희를 부르신 이에게서 난 것이 아님 ⇨ 적은 누룩이 온 덩이에 퍼짐 ⇨ 다른 마음을 품지 아니함 ⇨ 너희를 요동하게 하는 자 ⇨ 누구든지 심판을 받음> ☞ 그리스도 예수와 유대의 할례는 서로 배타적이다. 신약의 시대를 사는 기독교에 속한 이방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선택해야 한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 당연히 신약 교리다. [롬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9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받을 것이니 10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 11 그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하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 ☞ 우리가 죄인 ⇨그리스도 죽음 ⇨ 피로 의롭다고 하심 ⇨ 화목 ⇨ 진노에서 구원 [고전4:15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버지는 많지 아니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내가 복음으로써 너희를 낳았음이라] ☞ 스승과 아비는 다르다. [엡2:13] [엡2:22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 삼위일체가 숨겨져 있다. [빌4:7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 인간의 혼은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돌보심을 받는다. [딤후1:9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소명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의 뜻과 영원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 ☞ “영원 전부터”를 오해해 예정설로 가면 오류가 된다.

    <할례와 무할례> [창17:14] [출12:48 너희와 함께 거류하는 타국인이 여호와의 유월절을 지키고자 하거든 그 모든 남자는 할례를 받은 후에야 가까이 하여 지킬지니 곧 그는 본토인과 같이 될 것이나 할례 받지 못한 자는 먹지 못할 것이니라] ☞ 할례는 유대인의 예전이다. [사52:1] [롬2:25 네가 율법을 행하면 할례가 유익하나 만일 율법을 범하면 네 할례는 무할례가 되느니라 26 그런즉 무할례자가 율법의 규례를 지키면 그 무할례를 할례와 같이 여길 것이 아니냐 27 또한 본래 무할례자가 율법을 온전히 지키면 율법 조문과 할례를 가지고 율법을 범하는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겠느냐] ☞ 할례와 율법은 한 몸이다. [롬4:9 그런즉 이 복이 할례자에게냐 혹은 무할례자에게도냐 무릇 우리가 말하기를 아브라함에게는 그 믿음이 의로 여겨졌다 하노라 10 그런즉 그것이 어떻게 여겨졌느냐 할례시냐 무할례시냐 할례시가 아니요 무할례시니라 11 그가 할례의 표를 받은 것은 무할례시에 믿음으로 된 의를 인친 것이니 이는 무할례자로서 믿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어 그들도 의로 여기심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12 또한 할례자의 조상이 되었나니 곧 할례 받을 자에게뿐 아니라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무할례시에 가졌던 믿음의 자취를 따르는 자들에게도 그러하니라] [고전7:18 할례자로서 부르심을 받은 자가 있느냐 무할례자가 되지 말며 무할례자로 부르심을 받은 자가 있느냐 할례를 받지 말라 19 할례 받는 것도 아무 것도 아니요 할례 받지 아니하는 것도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따름이니라] ☞ 하나님의 계명을 지켜야, 할례보다 [골2:13]

    <효력이 없으되> neither... availeth은 쓸모가 없다. [에5:13 그러나 유다 사람 모르드개가 대궐 문에 앉은 것을 보는 동안에는 이 모든 일이 ※만족하지 아니하도다 하니] ☞ 효력에는 적절한 조치와 기간의 한계가 포함. [약5:16 그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백하며 병이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니라]

    <사랑> [창27:4] [신5:10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아4:10] [호3:1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이스라엘 자손이 다른 신을 섬기고 건포도 과자를 즐길지라도 여호와가 그들을 사랑하나니 너는 또 가서 타인의 사랑을 받아 음녀가 된 그 여자를 사랑하라 하시기로] ☞ 하나님의 사랑은 한 음녀를 사랑하는 그녀 남편의 사랑과 다르지 않다. [마5:46] [요13:34] [요14:23] [요15:10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롬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 기독교에서 사랑은 하나이며, 예수님이 죄인이 된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이다. [롬13:10] [고후6:6] [요일4:16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의 안에 거하시느니라 17 이로써 사랑이 우리에게 온전히 이루어진 것은 우리로 심판 날에 담대함을 가지게 하려 함이니 주께서 그러하심과 같이 우리도 이 세상에서 그러하니라 18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19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 기독교에서 사랑은 하나이며, 하나님의 사랑, 이웃 사랑, 인간이 음식에 대한 사랑도 다른 게 아니며, 본질에서 일치한다. 이를 철학적으로 언어적으로 여러 개로 나누거나 번잡하게 설명하는 게 혼적 접근방식이다.

    <믿음> [마9:28 예수께서 집에 들어가시매 맹인들이 그에게 나아오거늘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능히 이 일 할 줄을 믿느냐 대답하되 주여 그러하오이다 하니 29 이에 예수께서 그들의 눈을 만지시며 이르시되 너희 믿음대로 되라 하시니] ☞ 믿음이란? 신약적인 단어이고, 예수께서는 아직 성취되지 않으신 일에 대해 나중에 능히 이루신다고 확신하는 것이다. [마14:31 예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 그를 붙잡으시며 이르시되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하시고] ☞ 믿음이 작은 자도 있다. [마16:8] [눅17:6 주께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라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어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 ☞ 겨자씨 한 알만한 크기의 믿음도 큰일을 하는데, 사람이나 동물뿐 아니라 식물과 자연 만물도 이에 순종한다. [롬1: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 하나님 의 the righteousness of God ⇨ 믿음 faith ⇨ ‘의인 Just’을 살림 (이는 칭의 justification이다) [롬3:30 할례자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또한 무할례자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실 하나님은 한 분이시니라] ☞ 믿음 ⇨ ‘의롭다 justify’ 하심.: 이는 칭의다. 인간은 자기 행실로 스스로 의롭게 되지 못한다. [히6:1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의 도의 초보를 버리고 죽은 행실을 회개함과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 믿음의 초보를 버려야 [딤전1:19] [약2:14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 믿음은 행함이 따른다. 행함이 없다면 구원이 어렵다.


    • 2023-06-13 12:23

      엄 장로님, 안녕하시지요?
      필자의 갈라디아서 주석책 연재에 관심을 보이시고, "위 목사님께서 게시하신 내용을 통해 여러 가지 다양한 입장과 해석에 대해 알게 되어 감사합니다. 또 본문에 대한 저의 소견을 아래와 같이 공유합니다."라고 하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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