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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갚음하지 말고 복을 빌라

작성자
최세창
작성일
2023-08-08 18:29
조회
390
<베드로전서 3:8-12>

8마지막으로 말하노니 너희가 다 마음을 같이하여 체휼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불쌍히 여기며 겸손하며 9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이는 복을 유업으로 받게 하려 하심이라 10그러므로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궤휼을 말하지 말고 11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여 이를 좇으라 12주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의 귀는 저의 간구에 기울이시되 주의 낯은 악행하는 자들을 향하시느니라 하였느니라

1. 시작하는 말

하나님의 은혜로 성령을 좇아 하나님을 믿거나, 하나님의 성육으로서 십자가의 대속 제물이 되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는 죄 사함과 중생, 자유와 평화, 성결한 삶과 영생의 구원을 얻은 하나님의 자녀요 천국 시민입니다. 믿기 전의 옛사람이 죄와 세상과 육과 율법에 대하여 죽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중생한 새사람이 된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5:17을 보면,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라고 했습니다.

골로새서 3:1 이하에는,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라고 했습니다.

2. 앙갚음하지 말고 복을 빌라

예수 그리스도의 수제자인 베드로는 사람들, 특히 박해 아래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서로 대해야 하는 태도에 대해서 가르치고 있습니다. 물론,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은 그리스도인들이, 승천하신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우편에 앉아 계신 위의 것을 생각하고 찾아야 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첫째, 마음을 같이하라는 것입니다. “마음을 같이하여”의 헬라어 호모프로네스(ὁμόφρονες)는 유사한 정서와 성향을 갖도록 하고, 같은 믿음과 소망을 가지라는 뜻입니다.

둘째, 체휼하라는 것입니다. “체휼하며”의 헬라어 쉼파테이스(συμπαθείς)는 함께 즐거워하고, 함께 슬퍼하라는 뜻입니다.

셋째, 서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형제를 사랑하며”의 헬라어 필라델포이(φιλάδελφοι)는 서로 형제 또는 동기간의 사랑을 하라는 뜻입니다.

넷째, 불쌍히 여기라는 것입니다. “불쌍히 여기며”의 헬라어 유스플랑크노이(ευσπλαγχνοι)는 동정하거나 상냥하거나 다정하라는 뜻입니다.

다섯째, 겸손하라는 것입니다. “겸손하며”의 헬라어는 타페이노프로네스(ταπεινόφρονες)인데, 초대 교회 때의 그리스나 로마 사회에서는 악덕이었으나 유대교와 기독교에서는 고귀한 덕으로 간주되었습니다.

겸손한 사람은 무능하거나 무기력한 사람이 아니라,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서 피조물로서의 인간 자신의 부족을 인식하고,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를 구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인식은 영적 능력이 있을 때 가능하므로, 영적 능력이 증대되면 될수록 그만큼 더 겸손해지는 것입니다. 겸손한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으면 깨달을수록,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면 받을수록, 더욱더 겸손해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아보트는 “지식이나 영적 통찰력이 향상되면 될수록 그의 이념은 그만큼 더 높아지게 된다. 따라서 그는 더욱더 자신의 부족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라고 주석했습니다.

바클레이는 “겸손이란 자기 극화, 자기 칭찬, 자기애라는 장밋빛 안경을 벗고, 자기를 직시할 수 있는 용기가 있을 때 가능한 것이다.”라고 주석했습니다.

박해를 당하는 믿음의 형제자매들이 서로 유사한 정서와 성향 그리고 같은 믿음과 소망을 갖고, 함께 즐거워하며 함께 슬퍼하고, 서로 사랑하고 불쌍히 여기며, 겸손히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구한다면, 모두가 큰 위로와 힘을 얻고 반드시 승리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성도들이 수없이 말씀을 읽고 듣고 배워 알면서도, 실제 생활에서는 활용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박해가 아니더라도, 여러 가지 문제와 고난을 겪으면서 얼마나 큰 위로와 힘을 얻고, 승리의 생활을 하고 있습니까?

「금융 위기를 극복하는 방법」이라는 책도 썼고, ‘오늘날 경제에서 부자가 되는 방법’이라는 돈벌이 백과사전을 발표한 바 있는 호주의 한 재산가가 1996년 2월 8일에, 파산하는 바람에 해외 토픽에 오를 정도로 화젯거리가 되었습니다.

그 재산가가 파산한 것은, 그가 쓴 책 내용이 틀렸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가 쓴 책 내용이 맞는다면, 그 자신은 책 내용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나님은 창조주요 섭리자, 구원자요 심판자, 생사화복과 흥망성쇠를 주관하시는데, 그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 시간에만 그리스도인인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배의 핵심은 듣고 착념하고 실생활에서 행하도록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설교인데, 온 영을 기울여 듣지도 않고, 들어도 순종하지 않는 그리스도인들도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 중에는 박해나 환난을 당하면, 하나님을 향해 불평하거나 원망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심지어 배교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들이 알아야 할 것은 그 어떤 핍박도, 그 어떤 환난도 영생과 바꿀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은 없다는 것입니다.

박해와 환난이 심하면 심할수록, 우리는 더욱더 마음을 같이하고, 기쁨과 슬픔을 같이하며, 서로 사랑하고 동정하며, 겸손하여 하나님의 위로와 능력과 지혜를 얻어 승리해야 합니다.

박해 아래서 믿음의 형제들이 가져야 할 태도를 가르친 수제자인 베드로는, 더 나아가 박해자들을 비롯한 원수들을 대하는 성도들의 태도에 대해 가르치고 있습니다.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는 것입니다. 로마서 12:14에,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라고 했습니다. 로마서 12:17에는, “아무에게도 악으로 악을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악이나 욕을 일삼는 원수에게 보복하지 말고, 복을 빌어 주라고 우리를 부르셨다고는 하지만, 문제는 원수를 갚는 대신에 복을 빌어 주는 일이 쉽지 않다는 데 있습니다.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하여, 아예 단념해 버리는 교인들도 있습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그런데 조금만 깊이 생각해 보면, 이게 참 기가 막힌 교훈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깊이 사랑하시고, 얼마나 자상하게 사랑하시는가를 알게 되는 교훈입니다.

죽이고 싶도록 미운 원수니까, 할 수 있는 대로 최대한 미워하고 증오해 봅시다. 원수를 갚기까지 미움과 증오심이 부글부글 끓는데, 어디서 끓습니까? 원수의 가슴에서 끓습니까, 내 가슴에서 끓습니까? 원한에 사무쳐서 울화병이 생기는데, 누구에게 생깁니까? 원수입니까, 나입니까? 증오심과 원한의 포로가 되면 일도 손에 잡히지 않는데, 누구의 일입니까? 원수의 일입니까, 내 일입니까? 이제 아시겠습니까? 사랑의 주 하나님께서, 믿는 우리를 위해 얼마나 깊이 신경 쓰시는지.

오랜 세월, 천신만고 끝에 원수를 갚았다고 칩시다. 그래서 얻은 게 뭡니까? 원수의 시체가 아닙니까? 그렇다면 그냥 내버려둬도 언젠가는 반드시 시체가 될 텐데, 공연히 나만 천신만고하고 오랜 세월을 낭비한 것이 아닙니까? 창조주 앞에서 마땅히 만들어 나가야 할 내 인격이 있고, 또 수행해야만 할 교회 안팎의 내 일이 있는데 말입니다. 에베소서 5:15 이하를 보면,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 것을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 같이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하여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주님이 어련히 아셔서, 우리를 위한 말씀을 주시는 줄로 믿고 순종해야 합니다. 주님이 말씀하신 것이요,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목적이라니까 원수를 위해 복을 빌어 주십시다. 안 되면, 억지로라도 기도하면서 복을 빌어 주십시다. 내주하신 성령의 인도를 따르기만 하면 됩니다. 우리도 자녀가 도저히 할 수 없는 것을 알면서도, 자녀에게 하라고 시킬 때가 있지 않습니까? 자녀를 괴롭히자는 것이 아니라, 자녀가 할 수 있도록 도울 요량이 있어서 시키는 것이 아닙니까? 자녀가 할 수 있는 것만 하면, 성장할 수가 없지 않습니까? 원수를 위해 복을 빌어주거나 원수에게 앙갚음하는 것뿐만 아니라, 범사에 요량이 있으신 하나님을 인정하면 놀라운 결과를 볼 수 있습니다. 잠언 3:5 이하를 보면,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라고 했습니다.

그리하면, 원수에 대해 주님께서 처리해 주실 것이고, 우리는 복을 유업으로 받게 될 것입니다. 그뿐 아닙니다. 우리가 주님의 마음을 품고, 성령을 좇아 끓어오르는 원한과 증오심을 통제하고, 원수에게 복을 빌어 준다는 자체가 얼마나 놀라운 복입니까?

주님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주님의 귀는 의인의 간구에 기울이시되 주님의 낯은 악행하는 자들을 향하십니다. 로마서 12:19을 보면,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라고 했습니다.

3. 맺음말

사랑하는 여러분! 박해 등의 고난을 당하는 우리에게는, 주님이 고난당하는 우리를 보고 계시고, 부르짖는 간구에 귀를 기울이신다는 사실보다 더 큰 위로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죄악을 행하는 사람들에게는, 은밀한 악행까지도 하나님의 목전에서 행해지고 있는 것이라는 사실보다 더 큰 두려움은 없을 것입니다.

베드로 사도의 교훈의 결론입니다. 거듭난 영원한 생명을 사랑하고, 완전한 구원이 성취되는 좋은 날을 보기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간사한 계교를 말하지 말고,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여 이를 좇으라는 것입니다. 주님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주님의 귀는 의인의 간구에 기울이시되 주의 낯은 악행하는 자들을 향하신다는 것입니다.

설교자의 사이트 www.newrema.com(T. 426-3051)의 저서 및 역서 : #신약_주석(마~계, 1-15권)/ Salvation Before Jesus Came/ 바울의 인간 이해/ 바울의 열세 서신/ 예수 탄생 이전의 구원/ 우린 신유의 도구/ 다수의 논문들/ 난해 성구 사전 I, II권/ 설교집 36권/ 기타 다수 #번역서 : 예수의 비유(W. Barclay 著)/ 야고보서(A. Barnes 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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