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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을 지켜라 cf. 구원≠율법 행위, 양심 행위, 도덕 행위, 종교다원주의신학...

작성자
최세창
작성일
2023-08-25 10:16
조회
378
<디모데후서 1:8-14>

8그러므로 네가 우리 주의 증거와 또는 주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나를 부끄러워 말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좇아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 9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부르심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 뜻과 영원한 때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 10이제는 우리 구주 그리스도 예수의 나타나심으로 말미암아 나타났으니 저는 사망을 폐하시고 복음으로써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을 드러내신지라 11내가 이 복음을 위하여 반포자와 사도와 교사로 세우심을 입었노라 12이를 인하여 내가 또 이 고난을 받되 부끄러워하지 아니함은 나의 의뢰한 자를 내가 알고 또한 나의 의탁한 것을 그 날까지 저가 능히 지키실 줄을 확신함이라 13너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으로써 내게 들은바 바른 말을 본받아 지키고 14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네게 부탁한 아름다운 것을 지키라


1. 시작하는 말

무엇을 지키면서 살고 있습니까? 법을 지키면서 사는 사람이 있고, 범죄 단체의 규칙을 지키면서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양심을 지키면서 사는 사람이 있고, 사단의 소리를 지키면서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인격과 명예를 지키면서 사는 사람이 있고, 금은보화 등의 재물을 지키면서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단의 사설을 지키면서 사는 사람이 있고, 이념이나 교리를 지키면서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주로 지키는 것을 보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습니다.

주 예수님을 믿어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는, 무엇을 지키면서 살아가야 하겠습니까? 답은 성령의 감동을 받은 바울 사도가, 제자 목사인 디모데에게 준 교훈 속에 들어 있습니다. 한마디로, 복음을 지켜 사는 것입니다.

2. 복음을 지켜 살아야 할 복음의 일꾼

바울 사도는 디모데에게 주 예수님의 증거인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말고, 지키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바울 사도가 히브리의 율법과 유대교파와 사상과 문화와 관습에 정통한데가, 헬라의 종교들과 사상과 문화와 관습을 잘 알던 지성인이자 종교인으로서 주 예수님을 메시아 사칭 죄인으로 여겨서 교회를 핍박했었다는 사실 때문에 특별한 의의가 있습니다. 다메섹에까지 교인들을 체포하러 가던 핍박자인 바울이 사도가 된 것은, 부활․승천하신 주 예수님이 만나 주신 은혜입니다.

그런데 산 정상은 하나이나, 정상에 이르는 등산로는 다양한 것처럼, 모든 종교는 절대자에 이르는 다양한 길이므로 구원이 있다는 종교다원주의신학도 있고, 율법 행위나 양심 행위나 도덕 행위로 구원받는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그러나 시대와 장소에 따라서 선과 악, 시와 비, 정의와 불의가 다르기도 하고, 뒤바뀌기도 하는 양심과 율법과 도덕과 종교의 행위로는 구원받을 수가 없습니다. 만약에 인간 세상에 구원의 방도가 있다면, 메시아이신 주 예수님이 오실 리가 없었을 것이고, 하나님께서 메시아를 보내신다는 약속도 하실 리가 없었을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이나 하나님의 성육이신 주 예수님을 믿음으로만 구원받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복음이자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입니다.

바울 사도는 복음으로 인해 줄기차게 온갖 핍박과 조롱을 당하고, 갇히기도 했지만 전혀 굴하지 않고 끈질기게 복음을 지켰고, 전파했습니다. 그 바울 사도는 제자 목사인 디모데에게, 주 예수님의 선교의 삶과 십자가와 부활을 부끄러워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복음을 믿어 지옥으로 끄는 죄의 사함과 거듭남과 자유와 평화와 성결한 삶과 영생의 구원을 얻었으면서도, 이해관계 때문에 복음을 꺼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험악한 세상에서 살려면 모질고 악착스러워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복음을 부끄러워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다음으로, 바울 사도는 옥살이를 하는 자신을 부끄러워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바울 사도는 범죄한 제 식구 감싸기나, 비리나, 뇌물수수나, 파벌 조성 등의 부끄러운 짓으로 갇힌 것이 아닙니다. 복음을 지키고 전하다가 갇힌 것이므로, 옥살이하는 자신을 부끄러워하지 말라고 한 것입니다. 우리는 교인들이나 사람들이 듣기 좋아하는 소리가 아닌, 복음을 선포하고 가르치고 지키는 바울 사도 같은 교역자들을 자랑스러워해야 합니다.

더 나아가, 바울 사도는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좇아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타 종교의 교리나 철학, 율법 등과는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그러므로 복음을 믿는 사람들과 복음의 일꾼들은 조롱과 핍박을 당하는 것입니다. 조롱과 핍박을 이기고, 복음을 지켜 살려면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야 합니다. 고린도후서 2:14을 보면, 바울 사도는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 우리로 말미암아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라고 했습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의 능력을 받아서,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고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어차피 인생에 고난이 필연적인 것이라면, 복음을 위해 고난을 자취할 만하지 않습니까? 복음을 위한 고난에는, 반드시 주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며 이기게 하십니다.

복음과 복음을 위한 고난을 자랑스럽게 여겨야 할 이유가 뭡니까? 복음은 인간의 뜻과 언행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당신의 뜻과 영원 전부터 그리스도 안에서 주시고자 한 은혜대로 인간을 구원하시려고 부르시는 사랑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 못박혀 속죄제물이 되시고, 사망을 이기고 부활하심으로써 영생과 썩지 아니할 것을 드러내셨습니다. 그러므로 믿는 사람은 다 구원받아 영생을 누리는 것입니다. 죄와 불신앙과 멸망 상태에 있는 모든 인간은 믿음 여부로 영생 구원을 얻거나, 영원한 멸망을 당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2:8 이하를 보면,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라고 했습니다.

레에만 스트라우스 목사님이 에콰도르의 정글에 있는 아우카라고 불리는 인디안 부락을 방문했을 때, 선교사를 다섯 명이나 죽여 순교케 한 악명 높은 인디안 살인자와 대화를 하게 되었습니다. 놀랍게도 그는 이미 하나님의 은혜로 성령을 통해 거듭나는 체험을 했습니다. 그는 서슴없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심령을 뒤집어 변화시킨 창조주시며 구세주라고 고백했습니다.

갈라디아서 6:14을 보면, 바울 사도는,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얼마나 그리스도의 복음을 자랑스러워하며 지키고, 전파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에 의해서 복음을 위한 반포자와 사도와 교사로 세우심을 입은 바울 사도는 고난과 핍박을 당했지만, 결코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았습니다. 사명자로 세워 주신 은혜가 매우 크기 때문에 사명 수행에 따르는 고난과 핍박은 물론, 목숨까지도 기꺼이 바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위해 받은 직분을 어떻게 이해하고, 어떻게 감당하고 있습니까?

바울 사도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한 고난과 핍박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더 큰 이유가 있습니다. 바울 사도가 신뢰하는 주 예수님을 알고, 또한 그가 의탁한바 그의 사도로서의 가르침과 일과 그와 그의 전도를 통해 믿은 교인들의 영생 등등을 주 예수님께서 수호하고 보전해 주실 것을 확신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 사도는 디모데에게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으로써, 자기에게서 들은바 아름다운 복음을 본받아 지키라고 하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를 본받아 복음을 지키는 길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으로 행하며 전파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인간의 힘으로는 복음을 제대로 지킬 수가 없습니다. 더구나 온갖 죄악과 불신이 판치는 세상에서, 사단의 힘과 궤계를 이겨 낼 만한 믿음과 사랑을 견지할 수가 없습니다. 이 점을 간파한 바울 사도는 그냥 복음을 지키라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을 좇아 복음을 지켜 살라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지키는 것은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으로 행하는 것이고, 복음을 전파하며 가르치는 것입니다. 이 복음을 지키느라 손해를 보기도 하고, 고난을 당하기도 하고, 조롱을 당하기도 합니다. 심지어 복음을 지키느라 목숨을 바쳐야 할 때도 있습니다. 뭐니뭐니해도,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한 고난보다 더 값진 고난이 없고, 그를 위한 순교보다 더 값진 죽음이 없습니다.

3. 맺음말

사랑하는 여러분! 복음을 지키며 살고 있습니까?

6‧25 전쟁 때, 피난을 못 간 김 목사님은 공산군을 피해 낮엔 산 속에 숨고, 밤엔 집으로 돌아오는 생활을 하면서 틈틈이 교인들의 집을 심방했습니다. 그러던 중에 이웃 동네의 30~40명이나 되는 청년들이 공산군에게 살해되는 끔찍한 만행이 벌어졌습니다.

이장이 사태를 수습하려고, 친구인 김 목사님과 의논했습니다. 김 목사님은 마을에서 부흥회를 해서, 동네 사람들을 안심시키는 게 좋겠다고 했습니다. 공산 치하에서 부흥회를 한다는 것은 죽을 각오를 했다는 뜻입니다. 결국 이장이 사람들을 자기 집 마당으로 동원했고, 부흥회가 시작됐습니다. 김 목사님이 달빛 아래서 설교를 하는데, 한 사람, 두 사람 자리를 뜨더니 이장까지 슬그머니 달아났습니다. 목사님이 주위를 살펴보니 공산군 일개 분대가 포위한 채로 좁혀 오고 있었습니다. 이왕 죽을 바에야 당당하게 죽자는 각오를 다지고는, 공산군들을 향해 죽을힘을 다해 설교를 계속했습니다. 아,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총을 겨누며 가까이 온 공산군들이 갑자기 걸음을 멈추고, 넋을 잃고 목사님을 쳐다보는 겁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목사님은 마지막 설교로 알고 계속했습니다. 얼마 후, 한 군인이 가자고 명령했고, 모두 그냥 돌아갔습니다.

어리벙벙해 하는 목사님 앞에 나타난 이장이 목사님을 붙들고, 감격에 겨워 울면서 말했습니다. “나는 오늘 하나님을 보았네. 오늘 밤 자네가 꼭 죽는 줄 알았네, 공산군이 자네 가까이 다가오자, 갑자기 하늘에서 빛이 자네를 비추고, 흰옷 입은 사람들이 자네 주위를 둘러서는데 공산군들보다 더 많더군. 공산군들이 자네 주위를 서성거리며 더 이상 접근하지 못하더라고. 그런데 공산군들이 물러가자 흰옷 입은 사람들이 사라지고, 하늘에서 내려오던 빛이 없어지더구먼. 이젠 나도 자네가 믿는 하나님을 믿겠네.”

(설교 동영상: 유튜브)
설교자의 newrema.com(T. 426-3051)의 저서 및 역서 : #신약 주석(마~계, 1-15권)/ Salvation Before Jesus Came/ 바울의 인간 이해/ 바울의 열세 서신/ 예수 탄생 이전의 구원/ 우린 신유의 도구/ 다수의 논문들/ 난해 성구 사전 I, II권/ 설교집 36권/ 기타 다수
#번역서 : 예수의 비유(W. Barclay 著)/ 야고보서(A. Barnes 著)



전체 4

  • 2023-08-28 08:51

    아멘..


    • 2023-08-28 12:53

      필자의 갈라디아서(주제 : 복음과 율법, 기독교인의 자유) 연재에 계속 관심을 보이시고,
      본 설교에도 관심을 보이시고, "아멘."으로 화답하셔서 감사합니다.


  • 2023-08-28 09:46

    맺음말의 예화는 앞뒤가 안 맞습니다.

    김목사님이 공산군을 피해다니다가, 더 이상 피해다니지 말자- 결심을 하셨다는 말이죠..
    先行 원인이 무엇이든, 부흥회를 하다가 순교하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을 모았죠..

    앞구절에 보면, 공산군인은, 이웃 동네의 30-40명의 청년들을 살해했습니다.
    그러니까 죽을 결심은, 김목사外에, 부흥회를 참여하는 성도들의 결심도 필요합니다.
    그런데, 모인 성도들은 그런 결심이 없었나 봅니다. 다 도망갔으니까요..

    김목사가 설교를 잘했나 봅니다. 성령의 역사일 수도 있죠..
    성도들은 도망갔지만, 공산군들은 설교를 다 듣고 되돌아갔습니다..
    어쨌든, "공산군의 양심"이 "성도들의 양심"보다, 더 훌륭합니다.


    • 2023-08-28 12:54

      필자의 설교에 관심을 보여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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