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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의 통책과 원수의 입맞춤

작성자
최세창
작성일
2023-09-06 10:52
조회
404
<잠언 27:5-6>

5면책은 숨은 사랑보다 나으니라 6친구의 통책은 충성에서 말미암은 것이나 원수의 자주 입맞춤은 거짓에서 난 것이니라

1. 시작하는 말

잘못한 사람에게 “넌, 왜 밤낮 그 모양이냐? 도대체 잘하는 게 뭐냐?”라고 말하는 것은 책망이 아닌 인격 모독입니다. 잘못만 언급해야 합니다. 가능성의 존재로 창조된 인간이 자기를 잘 만들어 가고, 자기의 삶을 잘 만들어 가려면 충고나 책망 등의 말을 잘 받아들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감동을 받은 잠언 기자는, 면책은 숨은 사랑보다 낫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실수나 잘못을 했을 때, 면책이나 통책 등의 바른말을 잘하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실수나 잘못을 덮어주고, 감싸 주는 사람을 좋아합니다. 그러나 덮어주고 감싸주는 것이, 허물을 깨닫고 고치도록 하지 않는 한 별 의미가 없습니다. 오히려 그 사람을 망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될 뿐입니다.

2. 친구의 책망과 원수의 빈번한 입맞춤

성장해야 할 인간은 단점을 보완하거나 지양하고, 장점을 더욱 키워 나가야 하는 존재이고, 허물과 잘못이 있는 불완전하고 미숙한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충고와 책망 등의 바른말을 해 줄 사람이 있다는 것은, 정말 귀한 복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면책은 숨은 사랑보다 낫다고 하는 것입니다. 허물과 잘못이 있는 사람을 위한 어떤 언행도 해 주지 않으면서 마음속으로만 사랑하는 것보다는, 그 사람을 위해서 직접 책망하는 것이 더 낫다는 것입니다. 사실상, 상대를 위해서 구체적으로 표현되지 않는 사랑은, 별 의미가 없습니다. 부모의 마음속 사랑이 아무리 많고 커도, 자녀에게 지각되지 않으면 자녀에게는 받아본 적이 없는 헛것입니다.

사랑이란 속에 숨겨져 있는 데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태로든 상대에게 표현되는 데에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그 사랑이 칭찬이든 책망이든 간에, 물질적인 선물이든 신체적인 접촉이든 간에 상대에게 전해질 때에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속사랑은 무관심이거나, 참 사랑이 아닌 것입니다. 사랑은 상대의 사랑받을 자격 여부와 상관없이, 스스로 분출하는 것입니다. 부부 사이에도 그렇습니다. 필요할 때에 칭찬이든 책망이든 간에 해 주어야지, 잘해도 그만, 못해도 그만 하는 식이라면 심각한 국면에 처한 것입니다.

죄로 멸망당해 마땅한 인류에게 죄 사함과 칭의와 거듭남, 자유와 평화와 성결한 삶, 신령한 몸의 부활과 영생의 구원을 얻게 하신 성자 하나님에 대한 말씀이 빌립보서 2:5 이하입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우리가 품어야 할 주님의 사랑의 마음은 자기 본위, 자기 위주가 아니라, 구원이 필요한 죄인인 인간 본위, 인간 위주입니다. 사랑은 상대의 형편과 마음 상태를 배려하고, 칭찬이나 책망 등의 도움이 되는 언행을 하는 것입니다.

약 30년 전에, 우리나라 교도소에서 200명에게 ‘왜 이혼을 했느냐?’라고 설문 조사를 한 보고서를 보면, 제일 많은 숫자가 남편이 사랑을 표현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 다음이, 남편이 선물을 사 주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사람들, 특히 주 예수님을 믿어 구원받은 형제자매들은 부부 관계나 상하 관계나 친구 관계에서 충고는 물론, 책망과 칭찬을 해 줄 수도 있고, 또 받아들일 수도 있는 사이가 되어야 합니다. 자존심을 내세울 필요가 없습니다. 어차피 모든 사람은 다 허물과 잘못이 있고, 장점과 단점이 있지 않습니까? 세계 역사상 제일의 대가도, 자기 분야의 모든 것을 다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의 언행을 주고받는 것이 지혜로운 인생 태도입니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한 것은 사람의 마음입니다. 몸이 아파서 병원에 간 환자에게, 의사가 “간이 나쁩니다. 신장에 이상이 생겼습니다. 아니, 어쩌자고 이 모양이 되도록 그냥 두셨습니까? 이 약을 잡수시고, 이 주사를 맞으셔야 합니다.”라고 지적해 주고, 책망하고, 권하는 것은 아주 마땅한 일로 여깁니다. 그러면서도 몸보다 더 중요한 인격과 그보다 훨씬 더 중대한 영적 면에 대해서는 지적도 충고도 책망도 들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영이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따르면, 인격이 성장하고, 화를 복으로 바꾸고, 정치를 잘하고, 승리하는 삶을 살 수 있는데도 말입니다.

찰스 2세의 담당 목사인 히킹톤 목사는, 설교 때마다 왕의 악덕에 대해 설교를 했으나, 왕은 여전히 마음대로 행했습니다. 어느 날, 왕이 말했습니다. “목사님, 당신과 나는 좀 더 좋은 친구가 되어야 할 것 같소. 나에게 그렇게 혹독하게 대할 필요가 없지 않소? 어쨌든, 내가 당신 뜻대로 변화되는지 어떤지를 두고 보시오.” 히킹톤 목사는 “좋습니다. 좋아요.”라고 하면서 응수했습니다. “당신의 재위 동안 당신의 처리에 대한 제 비판은 계속될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이 변화될 때 비로소 나도 변화될 것입니다.”

왕인 찰스 2세는, 좋은 친구란 충성에서 나오는 통책을 할 수 있는 친구임을 깨달아야 했습니다. 감정을 상할 수도 있고, 고통을 줄 수도 있고, 금이 갈 수도 있고, 고통을 당할 수도 있고, 죽임을 당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모든 것을 무릅쓰고 감히 면전에서 통책할 수 있는 친구가 정말 보화와 같은 친구임을 깨달았어야 했습니다.

믿는 사람은 원수가 될지도 모를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충고나 책망을 할 수 있는 좋은 벗들이 되어야 합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요즘 세상에 영악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뭐하려고 바른말을 해 가면서 인심을 잃고, 손해를 보려고 하겠습니까? 이런 세상에 나를 위해 충고해 주고, 책망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합니까? 대부분이 바른말을 싫어하는데, 내게 바른말을 해 준다는 것은 내 인격을 믿고 있다는 증거니, 오히려 고맙게 받아들여야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중요한 문제는, 우리의 충고나 책망이 바른말이라고 생각하고,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안타까워하지만, 정말 주님이 보시기에도 바른말인가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바울 서신들을 보면, 곳곳에 “주님 안에서 말한다거나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다.”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바울 사도는 섣불리 자기 생각이나 판단을 말하지 않았습니다. 자기의 생각이나 판단이 주님의 생각이나 판단에 맞는 것인가를 따졌고, 다를 경우에는 기꺼이 자기의 생각이나 판단을 버리고, 주님의 말씀으로 교인들을 충고하거나 책망했습니다.

또 하나의 문제는, 우리의 충고나 책망이 지혜롭게 행해지는 것인가 함입니다. 교회와 기업과 국가를 위해 할 일이 많고, 능력도 탁월한데, 바른말 한마디 하고, 아깝게 도태된 사람들이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더욱더 지혜가 필요한 것입니다. 잠언 9:7 이하를 보면, “거만한 자를 징계하는 자는 도리어 능욕을 받고 악인을 책망하는 자는 도리어 흠을 잡히느니라 거만한 자를 책망하지 말라 그가 너를 미워할까 두려우니라 지혜 있는 자를 책망하라 그가 너를 사랑하느니라”라고 했습니다. 기회주의자가 되라는 것이 아닙니다. 책망과 징계를 할 때에, 분별하여 행하는 지혜를 강조하는 것입니다. 잠언 15:23에, “사람은 그 입의 대답으로 말미암아 기쁨을 얻나니 때에 맞은 말이 얼마나 아름다운고”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합하는 지혜나 충성에서 비롯된 책망은, 반드시 받아들여야 합니다. 잠언 29:1에는, “자주 책망을 받으면서도 목이 곧은 사람은 갑자기 패망을 당하고 피하지 못하리라”라고 했습니다. 자주 책망을 들으면서도 교만을 부리다가 망한 사람들을 보면서도, 책망을 몹시 싫어하고 거부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일수록 입맞춤을 무척이나 좋아합니다. 그 입 속에 독이 있는지도 모르고, 아첨과 아부의 소리를 좋아합니다.

우리는 교계나 사회에서 지도자가 바른말이 아니라, 입맞춤 곧 아첨과 아부의 소리를 좋아하다가 자신은 물론, 공동체를 망치는 것을 많이 보았습니다. 결정적인 이유는 잦은 입맞춤이란 실은 원수의 거짓된 사랑이나, 위선적인 우정에서 비롯되기 때문입니다. 외적 행위를 보면, 서로가 아주 친밀한 것 같으나, 서로를 망쳐 버리는 원수가 되고 있는 것입니다. 원수의 위선에서 잦은 입맞춤이 나오고, 또 잦은 입맞춤은 서로 원수가 되게 하는 것입니다.

가룟 유다는 입맞춤으로, 스승인 주님을 은 삼십을 받고 팔았습니다. 그런 배반의 입맞춤이 세상에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는 잦은 입맞춤을 경계하고, 면책과 통책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3. 맺음말

사랑하는 여러분! 갈라디아서 2:11 이하에, 매우 아름다운 사건이 나옵니다. 복음의 진리가 공인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에, 안디옥에 있던 예수님의 수제자인 베드로가 복음의 진리에 어긋나는 위선적인 행동을 하였고, 일부 지도자들까지도 그를 좇는 바람에 초대 교회가 파선할 위험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바로 그때, 바울 사도는 감히 대선배 격인 베드로를 공개적으로 면책하였고, 수제자인 베드로 역시 그 면책을 받아들였습니다. 주님 안에서의 친구의 충성에서 나온 사랑의 면책이고, 주님 안에서의 사랑의 받아들임입니다. 믿음으로 구원받은 우리도 주님 안에서 사랑의 책망을 할 줄도 알고, 감사함으로 받아들일 줄도 알아서 서로 유익한 결과를 이루시기 바랍니다.


설교자의 newrema.com(T. 426-3051)의 저서 및 역서 : #신약 주석(마~계, 1-15권)/ Salvation Before Jesus Came/ 바울의 인간 이해/ 바울의 열세 서신/ 예수 탄생 이전의 구원/ 우린 신유의 도구/ 다수의 논문들/ 난해 성구 사전 I, II권/ 설교집 36권/ 기타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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