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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반된 두 가지 지혜

작성자
최세창
작성일
2024-04-25 20:08
조회
130
<야고보서 3:13-18>

13너희 중에 지혜와 총명이 있는 자가 누구뇨 그는 선행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온유함으로 그 행함을 보일지니라 14그러나 너희 마음속에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으면 자랑하지 말라 진리를 거스려 거짓하지 말라 15이러한 지혜는 위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요 세상적이요 정욕적이요 마귀적이니 16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에는 요란과 모든 악한 일이 있음이니라 17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벽과 거짓이 없나니 18화평케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

1. 시작하는 말

지혜는 언제 어디 어떤 상황에서나 필요한 미덕입니다. 미덕들은 실천하는 사람과 상황에 따라서 악덕이 될 수도 있습니다. 용기는 미덕이지만, 정당한 시위를 하는 자국 국민들을 살상하는 일에 용기를 내는 것은 악덕입니다. 충성은 미덕이지만, 악행자들이나 침략 전쟁을 일으킨 통치자들에 대한 충성은 악덕입니다.

미덕이 미덕이 되려면 지혜가 필요한 것입니다. 지혜는 보다 더 중요한 것, 보다 더 가치 있는 것, 보다 더 먼저 할 일 등을 분별하여 행하는 능력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사람마다 관점이나 가치관이나 인생관이 다르므로 보다 더 중요한 것, 보다 더 가치 있는 것, 보다 더 먼저 할 일 등에 대한 판단이 다르기도 하고, 상반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2. 지혜와 총명이 있는 자

잠언 9:10에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라고 했습니다.

이성이나 의지나 감정에서 비롯되는 행위도 아니고, 이념이나 사상이나 진영 논리를 좇는 행위가 아니라, 믿음에서 비롯되는 행위를 강조하는 야고보 사도의 지혜에 관한 말씀입니다. 야고보서 3:13을 보면, “너희 중에 지혜와 총명이 있는 자가 누구뇨 그는 선행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온유함으로 그 행함을 보일지니라”라고 했습니다. 지혜와 총명이 있는 그리스도인이라면, 선행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온유함으로 그 행함을 보이라는 것입니다. 지혜와 총명이란 생각만이나 말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선행”의 헬라어 칼레스 아나스트로페스(καλῆς ἀναστροφῆς)는, 훌륭하고 멋지고 매력적이며 아름다운 행위라는 뜻입니다. 이런 행위는, 관점이나 가치관이나 인생관이 다른, 상대적이며 불완전하고 이기적인 사람들의 판단에서 비롯되는 행위가 아닙니다. 이런 행위는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보다 더 중요한 것, 보다 더 가치 있는 것, 보다 더 먼저 할 일 등에 대한 분별에서 비롯되는 유용하고도 값진 행위입니다.

세계 각국의 각계각층의 저명인사들 중에는 생사화복과 흥망성쇠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관점의 지혜와 총명을 모르면서도, 지혜롭고 총명하다고 자부하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세계 각국의 지성인인 저명인사들 중에, 거짓말을 일삼는 자들과 위선자들과 전과자들과 범법자들과 범죄자들과 권력을 남용한 부정축재자들이 있지 않습니까? 그 지성인들은 지혜와 총명이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어리석은 사람들이 아닙니까?

장로교회의 창시자인 칼빈(J. Calvin)은, “이러한 위선자들은 주변 사람들을 멸시함으로써 스스로를 뽐내며 과시하는 것이 보통이다.”라고 주석했습니다. 어드만(C. R. Erdman)도 “저들이 뽐내고 자랑하는 지혜라는 것은, 거짓 지혜요 허망한 지혜이다. 이런 사람들이 단지 지도자들 중에만 있는 것도 아니며, 초대 교회에 국한되지도 않는다는 것은 진실로 불행한 사실이다. 야고보가 책망하는 거짓 지혜의 소유자는 오늘에도 너무나 많다. 인간을 아는 사람은 자기뿐인 것 같이 뽐내며, 증오와 분노로 논쟁에 눈을 붉히며, 말끝마다 진리를 옹호하기 위함이라고 호언하는 자들이 많이 있다.”라고 주석했습니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는 어떻습니까? 언제 어디 어떤 상황에서나, 위로부터 난 지혜와 총명을 받은 사람답게 항상 온유한 마음에서 비롯되는 선한 생활을 잘하고 있습니까?

언젠가 금요일에, 결혼 주례를 마치고, 귀가하는 길에 전철을 탔습니다. 제 아내는 자리에 앉았고, 저는 빈자리가 없어서 한참을 서 있어야 했습니다. 피곤하고 다리도 아프고 해서, 앞에 앉은 사람이 언제나 내리나 하고 기다렸습니다. 드디어 그 사람이 일어나 내렸고, 저는 미소를 지으면서 선반에 얹어 놓은 가운이 담긴 봉투를 꺼내려고 손을 위로 뻗었습니다. 바로 그 순간, 누군가의 손바닥에 제 엉덩이가 밀쳐지는가 싶더니, “좀 앉읍시다.” 하는 소리와 함께 어떤 사람이 털썩 앉아 버리는 것입니다. ‘웬 국제 얌체가 성추행을 하나?’ 하고 쳐다보니까, 아, 글쎄 교인이더라고요. 또, 떨어져 앉은 친구를 옆으로 오라고 성화를 해서 옆에 앉혔는데, 그 할머니 목에 십자가가 반짝 반짝거렸습니다.

그래서 저와 아내와 제 옆에 섰던 아가씨 셋이서, 서로 얼굴을 마주 보면서 소리 없이 웃지 않았겠습니까?

“온유”의 헬라어 프라위테티(πρᾳΰτητι)는 고전 그리스어에서는, ‘노여움을 완화하는 방법인 외적 행위’로 사용됐습니다. 어드만(C. R. Erdman)은 “온유함이란 약하게 굴음이란 뜻이 아니다. 온유와 나약을 연결시키는 것은 만부당한 일이다.”라고 하였고, 또 “자기의 실력에 대하여 확신이 있는 강한 자만이 참으로 온유할 수 있는 것이다.”라고 주석했습니다.

3. 위로부터 난 지혜와 세상적, 정욕적, 마귀적 지혜

야고보 사도는 지혜가 있다고 자랑하는 사람들에게, 온유한 마음에서 비롯되는 행위가 없고, 마음속에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으면 자랑하지 말고, 진리를 거슬러 거짓말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시기”의 헬라어 젤론(ζήλον)은 다른 사람의 소유를 탐하는 것이나, 또는 자신에게 합당치 않은 것까지라도 가지고 싶어하는 잘못된 욕망을 의미합니다. 이와 같이 독한 시기는 인간의 우월감이나, 열등감에서 비롯되는 것인데, 특히 열등감에서 강렬한 시기심이 발동하는 것입니다.

“다툼”의 헬라어 에리테이안(ἐριθείαν)은 ‘당쟁심’, ‘당파심’, ‘이기적인 야심’을 의미합니다.

이런 독한 시기나 당파심 또는 이기적인 야심을 가진 사람이 스스로 지혜 있다고 자랑하지만, 실상 진리를 거스르고 있는 것이므로 자랑할 게 없습니다. 이런 지혜는 위 곧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고, 세상적이며 정욕적이며 마귀적인 것입니다.

첫째, 세상적인 지혜는 재물과 권세와 명예 등 죽는 순간에 결별할 세상적인 것들을,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여 얻는 영적인 것들보다 더 중시하며 추구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3:19에, “이 세상 지혜는 하나님께 미련한 것이니 기록된바 지혜 있는 자들로 하여금 자기 궤휼에 빠지게 하시는 이라 하였고”라고 했습니다.

둘째, 정욕적인 지혜는 자연적인 것이나 본능적인 것을 보다 더 중시하여 추구하는 것입니다. 바클레이(W. Barclay)는 “동물이 먹이를 얻거나 살아남기 위하여 물어뜯으며 으르렁거리는 지혜밖에 되지 않는다.”라고 주석했습니다.

셋째, 마귀적인 지혜에 대해서 감리교회의 창시자인 웨슬리(J. Wesley)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 아니라, 사단이 인간의 마음속에 들어가 작용하므로 발휘되는 것이다.”라고 주석했습니다. 요한복음 13:2을 보면,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니”라고 했습니다. 가룟 유다는 마귀에게 빌미잡힌 책임을 면할 수 없습니다.

독한 시기와 분쟁이나 이기적인 야심의 특징을 가진 마귀의 지혜가 있는 곳에는, 불안과 혼란과 무질서와 범죄 등 모든 악한 일이 벌어지게 마련입니다. 이 사실은 창세기 2장과 3장에 기록된, 아담과 하와의 죄와 타락의 과정에서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 특히, 유념해야 할 것은 마귀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서 선악과를 따먹으면 죽을 줄 뻔히 아는, 그것도 에덴동산에 사는 아담과 하와에게 따먹도록 유혹하여 성공했다는 점입니다.

세상적이며 정욕적이며 마귀적인 지혜를 가진 사람들 때문에, 가정과 교회와 사회와 국가가 혼란과 분열의 고통에 휘말리게 되고, 온갖 악한 일들이 발생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눈에는 지혜가 아니라, 미련하기 짝이 없는 것입니다. 잠언 27:22에는, “미련한 자를 곡물과 함께 절구에 넣고 공이로 찧을지라도 그의 미련은 벗어지지 아니하느니라”라고 했습니다.

세상적이며 정욕적이며 마귀적인 지혜는 영적인 것보다 물질적인 것을, 하늘의 보화보다 세상 보화를, 보이지 않는 것보다 보이는 것을, 영원한 것보다 일시적인 것을, 영생보다 목숨을 더 소중히 여겨 추구하는 삶의 수단과 방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위로부터 난 지혜에 대해서,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벽과 거짓이 없나니”라고 했습니다. 사랑에 속한 이 모든 덕목은 우리 주 예수님의 마음과 행위이며, 그 결정적 성취는 바로 십자가의 대속입니다. 골로새서 2:3에,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취어 있느니라”라고 했습니다.

성결하고,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벽과 거짓이 없는 하늘의 지혜는 인격 수양을 비롯한 그 어떤 인간의 노력으로 형성되는 것이 아닙니다. 1:5을 보면, 야고보 사도는,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라고 했습니다.

4. 맺음말

사랑하는 여러분! 참으로 지혜로운 사람은 보다 더 중요한 것, 보다 더 가치 있는 것, 보다 더 먼저 할 일 등의 척도를 자기 자신에게 두지 아니하고, 사랑과 복음 선교에 두는 것입니다. 지혜자의 삶 자체는 사랑의 생활이며, 복음 선교의 삶인 것입니다.

우리 모두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여 물질적인 것보다 신령한 것을, 세상 보화보다 하늘의 보화를,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을, 일시적인 것보다 영원한 것을, 목숨보다 영생을 더 소중히 여겨 추구하는 생활을 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께서 주님의 보혈을 통해 우리를 부르신 뜻을 따라서, 사랑의 열매와 의의 열매와 복음 선교의 열매를 이루시기 바랍니다.

설교자의 newrema.com(T. 426-3051)의 저서 및 역서 : #신약 주석(마~계, 1-15권)/ Salvation Before Jesus Came/ 바울의 인간 이해/ 바울의 열세 서신/ 예수 탄생 이전의 구원/ 우린 신유의 도구/ 다수의 논문들/ 난해 성구 사전 I, II권/ 설교집 37권/ 기타 다수
#번역서 : 예수의 비유(W. Barclay 著)/ 야고보서(A. Barnes 著)



전체 2

  • 2024-04-26 09:30

    아멘.
    목사님의 영육 간의 주안에서 늘 강건하시길 기도합니다. 이참에 본문을 살펴보고, 제 소견을 공유합니다.

    §약3:13 <지혜와 총명이 있는 자 ⇨ 선행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온유함으로 a good conversation his works with meekness of wisdom ⇨ 그 행함을 보일지니라> ☞ 지혜는 혼적 영역이기에 눈에 보이지 않으나, 선한 말과 온유로 하는 행함을 보일 때, 눈에 보이게 된다. 여기에 선한 말과 온유가 수단이 아니라면, 이는 하늘로부터 온 게 아니다.

    <지혜와 총명> [잠21:11 거만한 자가 벌을 받으면 어리석은 자도 지혜를 얻겠고 지혜로운 자가 교훈을 받으면 지식이 더하리라] [사44:25 헛된 말을 하는 자들의 징표를 폐하며 점치는 자들을 미치게 하며 지혜로운 자들을 물리쳐 그들의 지식을 어리석게 하며] [렘4:22 내 백성은 나를 알지 못하는 어리석은 자요 지각이 없는 미련한 자식이라 악을 행하기에는 지각이 있으나 선을 행하기에는 무지하도다] ☞ 악에 대한 지각 ⇔ 선을 행하기에 무지 [단2:20 다니엘이 말하여 이르되 영원부터 영원까지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할 것은 지혜와 능력이 그에게 있음이로다 21 그는 때와 계절을 바꾸시며 왕들을 폐하시고 왕들을 세우시며 지혜자에게 지혜를 주시고 총명한 자에게 지식을 주시는도다] ☞ 하나님은 지혜와 지식의 원천이시고, 그에게 속해 있다. 하나님을 아는 지혜, 하나님께 대한 지식이 있어야 한다.

    <선행 good conversation> ☞ KJV에서 이는 행위보다는 대화의 질이 선함 [벧전1:15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이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all manner of conversation’ 거룩한 자가 되라] ☞ 모든 행실 ⇨ 모든 대화 [벧전3:16 선한 양심을 가지라 이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너희의 선행을 your good conversation’ 욕하는 자들로 그 비방하는 일에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려 함이라] ☞ 선행 ⇨ 선한 대화

    <지혜의 온유 meekness of wisdom> [고전4:21 너희가 무엇을 원하느냐 내가 매를 가지고 너희에게 나아가랴 사랑과 온유한 마음으로 나아가랴] [갈5:23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 온유는 성령의 열매 [갈6:1 형제들아 사람이 만일 무슨 범죄한 일이 드러나거든 신령한 너희는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잡고 너 자신을 살펴보아 너도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하라] ☞ 죄를 범한 일이 드러나거든, 온유한 심령으로 ⇨ 선한 대화

    §14 <시기와 다툼 envying and strife> [롬13:13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 시기는 죄다. 인간의 시기심은 결국 죄를 아들로 낳는다. [고전3:3 너희는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 ☞ 육신에 속한 자 ⇨ 시기와 분쟁 [빌1:15 어떤 이들은 투기와 분쟁으로, 어떤 이들은 착한 뜻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나니] ☞ 종교인의 두 부류 ❶착한 뜻으로 하는 이 ⇔ ❷투기와 분쟁으로 하는 이 [딤전6:4 그는 교만하여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변론과 언쟁을 좋아하는 자니 이로써 투기와 분쟁과 비방과 악한 생각이 나며 5 마음이 부패하여지고 진리를 잃어버려 경건을 이익의 방도로 생각하는 자들의 다툼이 일어나느니라] ☞ 그는 ❶교만하여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❷변론과 언쟁을 좋아하는 자 ⇨ 경건을 이익의 방도로 생각하는 자들의 다툼 (종교로 돈벌이)

    §15 ☞ 지혜는 크게 보아 대립하는 두 부류가 있다. ⒜ 어떤 지혜 ∈ (정체성) 땅, 정욕, 마귀의 것 ∈ (동기) ❶ 마음속에 독한 시기와 ❷다툼 ⇨ (§16, 결과물) ❸혼란 ❹모든 악한 일 ∉ 진리를 거슬러 거짓말 ∉ 위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님 ☞ 마귀 지혜는; 정욕이 목표이고 땅에서 혼란과 악을 부른다.

    §16 <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 ⇨ 혼란과 모든 악한 일이 있음> ☞ (동기) 시기는 다툼과 연대하여, ⇨ (결과물) 혼란과 악한 일을 낳는다. 시기는 이미 죄다.

    §17 ☞ 지혜는 크게 보아 대립하는 두 부류가 있다. ⒝ 어떤 지혜 ∈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 (정체성) ❶첫째 성결, ❷다음에 화평, ❸관용, ❹양순, ❺긍휼, ❻선한 열매가 가득, ❼편견과 거짓이 없음 ⇨ (§18, 결과물) ❽화평으로 심어 ❾의의 열매를 거둠.

    <성결> [레16:19 또 손가락으로 그 피를 그 위에 일곱 번 뿌려 이스라엘 자손의 부정에서 제단을 성결하게 할 것이요] ☞ 제단은 피를 뿌려 주기적으로 성결하게 해야, 성물도 그 차체로 성결하지 않다. [수3:5 여호수아가 또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자신을 성결하게 하라 여호와께서 내일 너희 가운데에 기이한 일들을 행하시리라] ☞ 백성도 성결하게 해야 한다. [요11:55 유대인의 유월절이 가까우매 많은 사람이 자기를 성결하게 하기 위하여 유월절 전에 시골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갔더니] ☞ 유대인은 주기적으로 정결례를 치러야 한다. 모든 인간은 스스로 성결하지 않다.

    <화평> [마5:9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 화평의 복 [마10:34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 예수님은 화평, 평화를 주시는 이가 아니다. 하나 많은 종교인이 성경의 교리를 벗어나, 불의 가운데 살면서 하나님의 대리인 시늉을 하면서 옆구리에 평화를 주머니에 차고, 여기저기에서 팔고 다닌다.

    §18 <화평, 의의 열매> [사48:18 네가 나의 명령에 주의하였더라면 네 평강이 강과 같았겠고 네 공의가 바다 물결 같았을 것이며] ☞ 의와 평강(peace)는 동전의 양면과 같다. 평화는 ⇨ 의로 열매 맺어야 한다. [사62:1 나는 시온의 의가 빛 같이, 예루살렘의 구원이 횃불 같이 나타나도록 ‘시온을 위하여 잠잠하지 아니하며 For Zion's sake will I not hold my peace’ 예루살렘을 위하여 쉬지 아니할 것인즉] ☞ 하나님의 義, 하나님께서 주시는 平和. 이는 하나님에게서 온다. 만일 어떤 인간이 혼적 영역의 산물로 ‘평화’와 ‘화평’를 앞세우는 게 주제넘은 일이다. [롬14:17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 하나님 나라의 본질…. 어떤 이가 성경에 나타난 ‘의’를 두고 “고부간의 의리다.”라고 해석하던데, 이는 기독교 교리가 아니며 異端 思想이다. [히7:1a 이 멜기세덱은 살렘 왕이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라 2 아브라함이 모든 것의 십분의 일을 그에게 나누어 주니라 그 이름을 해석하면 먼저는 의의 왕이요 그 다음은 살렘 왕이니 곧 평강의 왕이요] ☞ 멜기세덱의 이름은 義(righteousness)와 平岡(peace)


    • 2024-04-26 21:36

      필자의 설교 '상반된 두 가지 지혜'에 "아멘"으로 화답하시고, 설교의 성경 본문에 대한 견해를 피력하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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