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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가 예언한 고난의 주

작성자
최세창
작성일
2024-03-23 12:59
조회
151
<이사야 53:4-6>

4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5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6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며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1. 시작하는 말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한 우리를 구해 준 사람에 대한 고마움을 어떻게 다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게다가 위기에 처한 우리를 구해 준 그 사람이, 오래 전부터 우리에게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던 사람이라면, 그 고마움은 몇 배나 더 커질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평생을 은혜 갚는 삶을 살면서, 더없는 보람을 느끼기도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로 성령을 좇아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인해 죄와 죽음과 멸망에서 구원받은 교인들 중에는 그 은혜를 망각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의 뜻을 떠난 삶을 사는 이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 아래 있는 인류이자 지옥의 멸망을 피할 수 없는 인류를 구원하시려고, 얼마나 오랜 세월을 사랑의 관심을 쏟으셨는가에 대해 알아야 하겠습니다.

2. 이사야가 예언한 주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

우리가 잘 알고 있는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속 은혜는, 영원불변한 사랑의 하나님의 섭리에 따른 주 예수 그리스도의 지고하고 지대한 사랑의 절정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강림하신 때보다 훨씬 더 오래 전에 살았던 이사야 선지자는, 성령의 감동을 받아서 장차 일어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의 행위인 강림과 고난과 대속 죽음을 예언했습니다. 실로, 우리 인류의 질고를 지고, 우리 인류의 슬픔을 당하셨다는 것입니다.

이 예언은 매우 색다른 신학적인 선언이었습니다. 그 때까지의 예언자들과 유대교의 지도자들은, 고난과 슬픔은 죄악의 결과라고 가르쳤습니다. 이런 교훈은 유대교만이 아니라, 동서고금의 공통적인 사상이기도 합니다. 이런 선입견과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인류의 영육의 병고와 슬픔을 대신 짊어지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볼 리가 있겠습니까? 오히려 그가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습니까?

마가복음 15장에 기록된 내용만 보아도 그렇습니다. 군인들은 주 예수 그리스도께 자색 옷을 입히고, 가시 면류관을 엮어 씌우고,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라고 하고는, 갈대로 머리를 치며 침을 뱉으며 꿇어 절하며 조롱했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혹세무민하는 메시아 사칭 죄인으로 여기는 유대교의 지도층은, 로마 권력과 합세해서 불법을 행하는 범죄자로 취급하여 두 강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았습니다. 못박은 후에는, “저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라고 비아냥거렸습니다.

일반인들은 극도의 고통과 극도의 치욕에 시달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보면서 불쌍히 여기는 대신에, 머리까지 흔들면서 “아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 자여! 네가 너를 구원하여 십자가에서 내려오라.”라고 하면서 모욕했습니다.

마태복음 27:44을 보면, “함께 십자가에 못박힌 강도들도 이와 같이 욕하더라”라고 했습니다. 나중에 한 강도는 회개했습니다. 누가복음 23:40 이하를 보면, “하나는 그 사람을 꾸짖어 가로되 네가 동일한 정죄를 받고서도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느냐 우리는 우리의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니 이에 당연하거니와 이 사람의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 하고 가로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라고 했습니다.

결국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부류의 사람들의 비난과 조롱과 비아냥과 저주 한가운데서, 바로 그들 모두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받을 수 있는 영원한 구원의 사랑을 성취하신 것입니다.

모든 사람, 특히 믿음으로 구원받은 우리는 이사야 선지자처럼 영안이 열리고, 영적 지각이 발달해야 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과 고난과 대속 죽음은 그 자신의 운명이 아니라, 죄 아래 있는 인류의 운명을 대신한 것입니다. 그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는 우리 역시 자기 짐은 물론, 남의 짐도 짊어지는 사랑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암에 걸려 원망과 저주를 일삼다가 죽어 가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내 암의 고통 속에 암으로 인해 고통당할 수밖에 없는 모든 사람들의 고통을 모아, 내 가는 죽음의 길로 가지고 가고 싶다.”라고 한 믿음의 여인도 있습니다. 믿음은 정말 값진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장차 있을 주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의 원인에 대해,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라고 예언했습니다.

이성과 감정과 의지가 있는 존재라는 점에서 대동소이한 사람들은, “다 그렇게 사는 거지 뭐. 적당히 뇌물 주고받고, 적당히 거짓말하고, 적당히 죄 짓고, 적당히 타협하며 사는 것이지. 지나치지 않으면 되는 거고, 걸리지 않으면 되는 거지.” 하는 생각으로 살고 있습니다. 이런 생각을 버리지 않는 사람들, 죄인 의식을 갖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십자가의 대속 죽음이 별 의미가 없습니다. 또, 주 예수 그리스도 말고도 죄 사함 받을 길과 영생 구원의 길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도, 주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죽음은 별 의미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영이시자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의 감동과 감화로 인한 영적 지각으로 예수님을 죄 사함과 거듭남, 자유와 평화, 성결한 삶과 영생의 주로 믿게 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2:3 후반을 보면,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을 아는 것도, 성령으로 말미암은 영적 지각으로 되는 것입니다. 로마서 8:16을 보면,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라고 했습니다.

어느 여집사가 전도한 시어머니가, 드디어 세례문답을 하게 됐습니다. 그 며느리는, 시어머니가 목사님의 질문에 잘 대답하도록 열심히 교리를 가르쳐 드렸습니다. 특히, 중요한 구원 문제에 대해서는, 귀가 아프도록 반복해서 가르쳐 드렸습니다. “어머니, 목사님이 예수님이 왜 죽으셨는가 하고 질문하시면, 내 죄 때문에 죽으셨다고 대답을 하세요.” 하도 여러 번 반복하니까, 시어머니가 “얘는 내가 그것도 모를까 봐 그러냐?”라고 하시면서 짜증까지 내셨습니다.

주일 날 예배 후에, 세례 문답이 시작됐습니다. 이것저것 물으시던 목사님이, 드디어 제일 중요한 질문이라고 하면서 물었습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까?”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시어머니가 자신 있게 대답했습니다. “예, 우리 며느리 죄 때문입니다.”

주 예수님을 믿은 지 얼마 안 된 할머니가, 텔레비전에서 방영하는 ‘예수의 생애’라는 영화를 보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히는 장면을 보던 할머니가, 한숨을 푹 쉬며 탄식했습니다. “에구,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우리는 정말 주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과 고난과 대속 죽음이, 우리 자신의 죄 때문이라고 믿어집니까?

성령의 감동을 받은 이사야 선지자는 주님의 고난의 효력에 대해서,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라고 예언했습니다. 예수님의 고난과 대속 죽음이, 바로 내 죄 때문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 주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대속 죽음 때문에 믿는 내가 평화를 누리고, 영육의 질고에서 나음을 얻었다는 확신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시기 전에 살던 사람들이, 하나님의 약속대로 십자가에 달려 운명하실 주 예수 그리스도만이 그들의 구원자이심을 믿게 되는 것은 성령의 역사입니다. 또, 우리가 십자가에 달려 운명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구원자이심을 믿게 되는 것도 성령의 역사입니다. 이 놀라운 사실에 대해 바울 사도는 고린도전서 12:3에,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않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라고 했습니다.

옛날, 두아디라 성의 자주 장사로서 하나님을 공경하는 루디아라 하는 여인이 있었습니다. 그 여인이 바울 사도가 전하는 복음을 받아들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또 온 가족들을 믿게 하여 세례를 받고, 집까지 교회로 사용하도록 하는 등 큰 공을 세웠습니다. 그런데 그 직접적인 계기에 대해 사도행전 16:14 후반에,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청종하게 하신지라”라고 했습니다.

3. 맺음말

사랑하는 여러분! 이사야 선지자는 성령의 감동으로 고난의 주 곧 메시아 예언을 했습니다. 우리는 성령에 의해서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 성령께서는 우리의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증거하십니다.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대속 죽음이, 우리의 죄와 불신앙 때문에 우리가 당할 질고와 슬픔을 대신 짊어지신 것임을 마음속에 깊이 새겨야 합니다. 또한, 우리가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요 천국 시민으로서 영적인 기쁨과 평화를 누리는 것이, 주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대속 죽음의 덕택임을 알아야 합니다. 이 모든 놀라운 은혜가 영원한 하나님의 섭리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고, 감사하며 복음 선교의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설교 동영상 : 유튜브)
설교자의 newrema.com(T. 426-3051)의 저서 및 역서 : #신약 주석(마~계, 1-15권)/ Salvation Before Jesus Came/ 바울의 인간 이해/ 바울의 열세 서신/ 예수 탄생 이전의 구원/ 우린 신유의 도구/ 다수의 논문들/ 난해 성구 사전 I, II권/ 설교집 37권/ 기타 다수
#번역서 : 예수의 비유(W. Barclay 著)/ 야고보서(A. Barnes 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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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3-25 12:53

    아멘...
    주안에서 늘 영,육간에 강건하시길 기도합니다. 이참에 본문을 다시 살펴보면서 저의 소견을 아래로 공유합니다.

    §사53:4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 이는 흔한 다른 징벌들과 차이가 있고 대속이다. [레26:18 또 만일 너희가 그렇게까지 되어도 내게 청종하지 아니하면 너희의 죄로 말미암아 내가 너희를 일곱 배나 더 징벌하리라] ☞ 불순종 ⇨ 죄 ⇨ 징벌 [눅21:20 너희가 예루살렘이 군대들에게 에워싸이는 것을 보거든 그 멸망이 가까운 줄을 알라 21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갈 것이며 성내에 있는 자들은 나갈 것이며 촌에 있는 자들은 그리로 들어가지 말지어다 22 이 날들은 기록된 모든 것을 이루는 징벌의 날이니라] ☞ 멸망 ⇨ 징벌의 날: 심판

    §5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히12:8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친아들이 아니니라] ☞ 만일 누가 징계를 받는다면, 이는 버림받은 게 아니다. 하나 징계를 받는 당사자에게는 쓰다. [벧전2:24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 누가 ‘평화’를 말하고, 이를 즐길 때, 대신에 누군가 그의 죄를 대가로 죽었다.

    §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요10:12 삯꾼은 목자가 아니요 양도 제 양이 아니라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나니 이리가 양을 물어 가고 또 헤치느니라] ☞ “우리는 다 양 같아서” ⇨ 인간은 ‘다 all’ 어리석어 그릇 행한다. 양은 ❶자기 앞가림을 잘 못하고, ❷늘 적에게 공격받는다.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왕하8:27 아하시야가 아합의 집 길로 행하여 아합의 집과 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으니 그는 아합의 집의 사위가 되었음이러라] ☞ 이 길은 저주받은 현실이고, 이어서 지옥으로 가는 길이다.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출30:15 너희의 생명을 대속하기 위하여 여호와께 드릴 때에 부자라고 반 세겔에서 더 내지 말고 가난한 자라고 덜 내지 말지며] 레16:21 아론은 그의 두 손으로 살아 있는 염소의 머리에 안수하여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불의와 그 범한 모든 죄를 아뢰고 그 죄를 염소의 머리에 두어 미리 정한 사람에게 맡겨 광야로 보낼지니 22 염소가 그들의 모든 불의를 지고 접근하기 어려운 땅에 이르거든 그는 그 염소를 광야에 놓을지니라] ☞ 구약에 대속의 여러 예표가 등장한다. [마20:28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 대속(代贖, atonement redemption), 이는 하나님께서 구약의 번죄물에 해당하는 예수를 그리스도로 택하셨다. 그는 아브라함의 때에 모리야 산에 준비된 번죄물이다.

    ✱✱✱ 이는 성령의 감동으로 한 이사야의 예언 중 일부이다. 성경 안에는 이와 같은 수많은 예언이 고스란히 기록되어 있고 큰 비중을 차지한다. 예언은 기독교와 다른 종교, 다른 종교 서적들, 다른 종교인들과 구분하는 중요한 결정적 차이점이다. 성경은 모든 예언은 성취되어 가면서 다 인류의 역사가 된다. 한편 만일 누가 자신을 선지자라고 주장한다면, 그가 말하는 내용을 문서에 기록하고 검증하면 다 분별 된다. 그가 거짓 선지자(눈먼 예언자)인지 혹은 진짜인지?


    • 2024-03-25 16:52

      필자의 설교에 "아멘"으로 화답하시고, 설교의 성경 본문에 대한 견해를 피력하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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