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 여러분께.
현재 ‘감리회소식’이 ‘자유게시판’처럼 사용되고 있습니다.
정치적 입장표명이나 감리회정책과 관계되지 않은 내용 등
‘감리회소식’과 거리가 먼 내용의 글은 ‘자유게시판’을 이용해주시기 바랍니다.

감리회원들께 보낸(낼) 문자와 카톡. 4.15와 4.16에 대한 소략

작성자
민관기
작성일
2024-04-18 03:26
조회
206
나는 아래의 문서를 현재 감리회 목회자 3,000여 명에게 카톡과 문자메세지를 발송했다.
제대로 다 하려면 앞으로 며칠이 더 걸릴지 모르겠다.
(실제는 아래 글보다 아주 매우 적은 분량으로 전송했다.)

*. 1919. 4. 15는 제암리학살사건이 있었던 날이다.

-. 일제강점기 1919. 4. 15 경기도 수원군 향남면(현 화성시 향남읍) 제암리감리교회에서 일본군의 학살 사건이 있었고, 기독교계에서는 제암리감리교회 사건이라 부른다.

-. 1919. 3. 1 독립만세로 축하식후 3. 31 발안 장날에 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나자 제암리와 인근 주민 1,000여 명이 합류했으며, 이 날 이후 주민들은 밤마다 뒷 산에서 봉화를 올리며 만세로 독립축하식을 지속했다.

-. 이 독립축하식은 팔탄면 가재리 유학자(이정근), 장안면 수촌리(백낙렬), 향남면 제암리와 고주리 천도교 지도자(안정옥, 김흥렬)과 제암리감리교회 순회전도사(수촌리, 화수리교회 등) 김교철과 교인들이 준비했다.

-. 3. 31 정오 장터에서 이정근의 대한독립만세 선창에 따라 천여 명이 따라 부르자 일본 경찰의 위협사격과 군중의 투석이 이어졌고 시위대는 인근 일본인 소학교에 불을 질렀다.

-. 4. 15 오후 제암리 도착한 일본 군경이 마을주민 약 30명을 제암리교회에 모이게 한후 출입문과 창문을 모두 잠그고 집중사격을 했으며, 증거인멸을 위해 교회당에 석유를 붇고 불을 질렀다.(애초에 기획되었다는 증거가 석유 준비)

이로 인해 한 때는 제암리교회학살사건이 아니라 제암리교회소타(불태운, 학살은 사라진, 이는 양심적 일본인들이라 칭해지는 이들이 약 5,000만엔의 사죄기금을 마련해와서는 교회 불태워서 미안하다고 사죄하며 기념예배당을 지으며 호칭된 것이었으나 진상이 1998년? 경기도지사였던 임창렬에게 학살이 아닌 소타사죄기념예배당이라는 것이 알려져 약 30억의 예산으로 소타기념교회를 부수고 학살기념교회로 다시 재건축 개칭되었다. )사건이라 칭해지기도 했었다.
=. 국내에서 정부 재정이 투입되어 건축된 유일한 예이며, 다른 사례로는 뉴욕한인교회(미스터션사인 황기환(건국훈장 애국장) 지사 등 250여 명의 독립유공자 배출, 미국 동부로 가는 모든 한인들은 이 교회로 간다. 뉴욕엔 동포 공동체가 여기 밖에 없었다. 여기엔 헐버트(건국훈장 독립장) 목사의 유니온대, 아펜젤러와 정일형(건국훈장 애국장) 목사의 드루대, 황애덕(건국훈장 애국장) 감신대 교수와 조병옥(건국훈장 독립장) 권사의 콜롬비아대, 미 감리회 해외 선교부 등이 몽땅 포진)에 현재 해외 최초 독립기념관이 정부 재정 55억으로 만들어 지고 있는 중이다.)
=. 아주 매우 중요한 사적이다.
=. 이후 괄호() 건국훈장 기록 생략


이는 일본인 자신들이 저지른 학살이 너무나 끔직하고 만행이 부끄러워 본질을 숨기고 교회당을 불태운 사건으로 위장한 사건이었었다. 이 진상은 감리교회 경기연회 목회자들과 임창렬 지사와의 간담회를 통해 알려졌다.
=. 발언을 김영준 목사가 했다. 이 말은 들은 임 지사는 놀라며 즉시 당장 확인하겠다며 공무원을 파견했고 사실 확인후 그 해 예산에 반영했다.
=. 소타사죄위원회 총무 동지사대 하라 교수가 감신대를 방문했을 시 알려주었다. 불태워서 사죄한다고 지어준 그대들의 교회는 부서졌고 대신 학살교회로 재건되어 바로 잡혔다고..


-. 교회당 안에선 23명의 불에 탄 시신이 발견되었고 마당에서도 6명이 발견되었다. 일본군경은 또 다시 인근 마을을 다니며 민가 700여 호와 수촌리, 화수리, 사강리?교회도 불태웠다. (불태워서 사죄한다면 이 세 교회도 마땅히 재건해주었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 선교사 스코필드 박사(세브란스병원 교수)는 현장으로 자전거로 가서 그 학살의 생생한 현장을 사진과 함께 잔학행위애 대한 보고서를 미국에 보내 국제 여론화했으며, 우리 감리교계에서는 이를 기독교적 정신의 <민족저항운동>으로 본다.

-. 영국 태생의 캐나다 선교사 스코필드의 현장 사진과 목격자 증언을 담은 보고서는 전 세계에 알려졌다. 이에 대한민국 정부에서는 스코필드(석호필)박사에게 건국훈장 3등급 독립장을 서훈하여 그 공로를 기렸다. 한편, 박사는 3.1민족대표 34인으로 불리기도 하며, 김근태 전 의원 등의 스승으로도 알려져 있다.
///.

스코필드는 어떻게 제암리학살사건을 인지하고 즉시 그 현장으로 달려가게 되었을까?

&. 거기에선 딱 1명의 대한인 감리교인이 탈출에 성공했고 그는 밤새워 달려 정동제일교회 노블 감리사 사택으로 가 이 사실을 알렸고 노블이 스코필드에게 이를 알려 박사가 현장으로 가게 된 것이다.

그 청년의 이름이 노경태이고 이를 인지하고 현장 급파한 분 역시 노씨인 노블이며, 노블이 그랬다고 기록한 이는 노블의 부인 매티스 노블이다.

이 일을 통해 우리가 알수 있는 것은 시골 촌동네 청년이 서울에 있는 감리사의 사택을 정확하게 인지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어떻게??? 나도 정확히는 잘 모른다. 그리고 이 청년은 평소에도 설렁탕 다섯 그릇을 먹는 대식가이며 힘이 장사였다고 한다.(허니, 불타는 교회당을 뚫고 탈출에 성공했을 것이다.) 이 사건 고발후 그는 동대문교회 선교타운에 은거하며 살았고, 그 후손들은 지금 감리교회 신앙을 굳건히 유지하고 널리 퍼트리며 살고 있다. 그 후손이 안산대학교 교목인 노현수 목사이다.


우리의 과제를 여기서 도출한다.
안산에서 있었던 10년 전의 세월호 참사는 현상적으로는 기억, 기록, 기념이 잘되고 있는 듯하다. 허나, 아직도 생명안전공원이 착공되지 못하고 있는 일은 큰 아쉬움이다. 왜 도대체 안 되는건지???
이태원 참사 책임자는 왜 아직도 그 자리에 있는지 도무지 알 길이 없다.

현장 서거자인 순국선열들 29위는 대한민국 정부로 부터 건국훈장 4등급에 해당하는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김교철 전도사를 비롯 독립축하식 가운데 피체된 이들은 다행인지? 죽음은 면한 이들에게도 독립유공자 포상이 이루어졌으며, 스코필드 박사는 국제 여론화의 공로로 3등급 독립장을 추서받았다.
위의 분들이 받은 훈장을 뭐라하는건 아니다. 당연한 일이며 아주 잘했다 그런데...

*. 이 학살 사실을 알린 노경태, 그리고 이를 인지하고 스코필드를 파견하고 자신은 왜의 정무총감을 찾아가 극력 항의하여 그로부터 사망자의 유족과 민가를 불태워 이재민이 된 이들을 억지로라도 압박하여 구호하게 만든 노블과 이를 기록한 그의 부인 매티스 노블에 대한 정부의 독립유공자 포상은 없으니 이들에게도 포상이 주어져야 마땅하다고 판단한다.
(이들은 스코필드 박사의 공적을 있게 한 이들이다.)
(이 분들의 인과관계가 아니었다면 사실 자체가 영영 파묻혔을 줄 누가 알겠는가?)

이를 위해 감리교회 총회 역사보존위원회와 한국기독교 독립운동가선양회에선 노블 선교사에 공적을 정리하여 정부에 독립유공자 포상을 청원하여 현재 심의중이며, 노경테와 매티스 노블 부인 또한 예비자 명단에 넣고 공적조서를 작성후 청원서를 제출할 예정으로 있다.
(청원서의 대표 서명은 34회 총회의 감독회장과 12분의 감독 그리고 입법의회원과 본부의 임직원, 탁사최명헌목사기념사업회, 재천발전위원회, 당연히 역사보존위원회 등이 했다. 가능하면 참여를 더 많은 감리교인들이 하면 좋다는 생각을 가지고는 있다.)
(김창식, 김기범, 최병헌, 스크랜턴가, 아펜젤러가, 홀가, 채핀, 캠벨, 하디 등 31명이 2021년 2022년 정부에 독립유공자 포상 청원되어 있으며, 이 중 공주영명학원 우리암 선교사와 강제신사참배 거부 순교/순국자 최인규 권사는 2023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아 독립유공자가 되었다.)
=. 이 중 최인규 권사의 건국훈장 추서 감사예배가 감독회의 의결로 24. 5. 9 11시에 아현감리교회에서 드려진다.
최인규 권사가 평신도이기에 사회평신도국의 수고와 노력이 있을 것이고 1회성 감사예배가 아닌 지속적으로 여타 교회 공동체들에서도 감사예배가 드려질 수 있다고 본다.
=. 추서는 추도하여 서훈한다는 서거하신 유공자에게 주는 명칭이고, 생존 유공자에겐 서훈 또는 수훈이라고 한다. 국가유공자 즉, 독립유공자, 참전유공자, 민주유공자에겐 연금, 현충원 안장 등의 혜택이 주어지며 국가유공자예우에 관하 법률에 의한다. 하고, 국민, 문화, 체육, 수교훈장 등의 수훈자는 국가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에 해당되지 않는다.

한편, 노블은 3. 1 독립축하식을 사전에 알고 있던 몇 안되는 분으로 상하이 임정에 자신 관할하의 정동제일교회 담임목사 손정도와 부담임목사 현순을 파송했고, 새담임자인 이필주(대통령장)를 민족대표로 참전케 했으며, 참전 연유는 정확히 알려진바가 없지만 1919년 4월 당진의 면천감리교회 이상만 목사 또한 상하이 임정에 갑자기 나타나 국무령 김구를 도와 국무위원(장관, 독립장)으로서 항일독립전쟁을 지휘하였다.
(상하이 임정엔 총 5명의 목사가 있었다. 이들이 손정도(임정 의정원 의장, 독립장), 현순(임정 사무차장 독립장), 김병조(민족대표) = 대통령장(장), 장붕 = 애국장(장), 이상만 목사이다. 다른 이들은 초기에 국내 재입국, 만주, 미주로 이거하였으나, 이상만 목사만이 유일하게 처음부터 끝가지 임정을 수행하였다. 하여, 상하이 임정의 종교 정체성은 감리교회이다. 라고 하는 것이 사실에 부합된다. 이 들 모두는 정기적 예배를 드렸고, 교인들이 인성학교, 인성유치원의 운영 특히, 곽낙원(김구 모친, 애족장)) 여사와 조마리아(안중근 모친, 애족장) 여사 등도 임정의 최고 안주인들로서 애국종교활동에 참여*주도하였다.)

또한, 상하이 임정엔 미 선교부가 보낸(임정에 보내라고 보낸 선교비는 아니나 노블이 알아서 보냈고, 본국 선교부엔 당연히 선교비로 썻다고 보고한다.) 선교비 1만불이 노블에 의해 송금되어 정부 조직 자금으로 손정도, 현순 목사 등이 사용하였다.

(미화 1만불의 현재 가치는 당시 하위 노임이 1센트 였다니 계산해 보면 1,000,000센트이고 지금의 하위 노임 100,000만원으로 계산하면 약 1,000억에 달하는 돈이다. 당시 미 감리회는 지금의 북쪽 산업지대(뉴욕, 필라델피아, 보스턴, 시카고 등)에 발전하고 있어서 미 감리교인들은 상당한 부유층들이 많았으며 혼신의 힘을 다한 아낌없는<한국인들의 복음 선교를 받아들이는 힘이 강력했고 뛰어난 문화민족임과 선교사들의 열정 그리고 다른 나라는 선교 효과가 아무리 퍼부어도 미미했다. 인도, 중국, 일본 등이 그 예이다.> 선교비 지원을 하였다. 왜 다른곳에 썻느냐고 아무도 안 따졌다. 한국의 미 선교사들이 워낙 위장, 은폐, 구라?(왜어지만 익숙)도 능숙했고... 그리고 써야 할 곳에 제대로 쓴 것이다.
한국 역사상 최고로 빛나는 헌금은 미국내 동포들이 안창호 목사(도산 아님, 건국포장로 독립유공자)를 통해 2,000불을 모금해 상하이의 김구 한인애국단에 보내 이봉창(대통령장), 윤봉길(대한민장) 의사의 거사 자금으로 쓰였다는 사실이고, 김구(대한민국장)가 광복후 환국해 제일 먼저 찾은 이들이 안창호 목사의 후손들이다.
=. 너무 값져서 말로 표현할 길이 없다.


한편, 세브란스 병원(제중원과 상동병원의 합동)의 에비슨(감리회 출신, 애족장) 선교사에게는 미국의 세브란스씨가 5만불을 기부했으며, 상동교회 미드 부인의 기부금, 동대문교회 볼드윈 부인의 기부금, 중앙대학교 전신 중앙보육학교 기부금 파이퍼 부인? 기부금,, 배화여학당의 캐롤라이나 연회?의 기부금 등 이 돈들이 계산이나 되는 돈들 일까?
미안하지만 우리는 지금까지 위의 분들에게 감사의 예를 표한 적이 없다. 허니, 당연히 정부에서는 아무 영문도 모를 밖에.. 누굴 탓할 일도 아니다.
=. 당연히 우리는 은혜에 감사의 예를 갖추고 정부에는 예우를 요구해야 한다.


-. 4. 16의 세월호 참사에 관하여는 다 안다고 하니 생략한다.
세월호 참사 생영안전공원이 중요하나 세월호 참사 추도교회의 지정이 필요하다고 느껴지기는 한다.
마치, 위안부소녀 기념교회(박영규 목사, 김민석 집사 등)를 추진하듯이 말이다.
어떤 교회가 그냥 우리 교회는 **교회인데 세월호 참사 추도교회다. 라고 해도 된다는 말이다.
어떤 이익을 바라진 말고 그냥 성직자의 양심으로 그들은 추도되어야 하기에...


이상 끝
혹, 더 알고 싶거나 의문이 되시는 분들은 문자나 전화로 문의해도 된다.<010 3082 7004>
제암리학살사건과 발안 장터 독립 축하식으로 피체된 이들 포함 독립유공자가 약 50여 명이다.


&. 의견 : 매년 감리회 경기연회의 삼일절 기념예배가 제암교회에서 드려진다. 나는 엄마와 교인들과 함께 1988년 이후 계속 참여해 왔다.

제암교회가 중요한건 학살 사건 때문이다. 물론, 삼일절이라는 큰 범위에서 예배를 드리는 것이지만, 삼일절은 독립선언을 축하하는 만세가 시작된 날이고, 4. 15는 학살의 날이니 이 학살의 날을 추도하는 예배가 드려져야 한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이 추도의 날에는 제암교회와 유족들만 참여하여 추도예배를 드려왔다고 한다.

이에 이를 삼일절 기념예배는 경기지역과 충청지역까지의 감리회 선교구역 3. 1 독립선언 사령 기지가 수원종로교회였으므로 여기에서 드려져아 한다는 의견을 가지고 있으며, 4. 15엔 가족과 제암교회만이 아니라, 어떤 단위가 참여하는 추도예배가 드려져야 하지 않을까? 하는 의견이다.

제암교회에 가서 만세부르며 독립 축하식을 하니 영 축하의 맛이 나지 않고 그렇다고 추모를 하자니 그것도 아니고 참 그렇다. 이 경험이 30년도 넘으니 딱 일제 36년의 세월이다. 그러고보니 벨로 긴 세월도 아니다. 훅~갔으니 말이다. 그리고 난 개근상을 받아도 된다, 누가 좀 줘라~


진짜 끝.



전체 1

  • 2024-04-23 23:05

    첫 줄 문자메세지를. 을 문자메세지로. 로 수정함.


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조회
공지사항 관리자 2014.10.22 68343
공지사항 관리자 2010.12.29 66526
13796 송신일 2024.04.30 23
13795 민관기 2024.04.30 49
13794 함창석 2024.04.30 18
13793 원형수 2024.04.29 63
13792 홍일기 2024.04.29 45
13791 최세창 2024.04.25 117
13790 이주헌 2024.04.24 87
13789 박상철 2024.04.24 85
13788 함창석 2024.04.22 106
13787 홍일기 2024.04.22 152
13786 정진우 2024.04.19 127
13785 송신일 2024.04.18 139
13783 원형수 2024.04.17 224
13782 박연훈 2024.04.15 122
13781 김병태 2024.04.15 504
13780 함창석 2024.04.15 114
13779 송신일 2024.04.14 170
13778 최세창 2024.04.13 127
13777 홍일기 2024.04.12 2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