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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 어린아이가 되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 갈 수 없는 이유

작성자
오세영
작성일
2012-06-04 23:16
조회
3355
1)“예수께서 보시고 분히 여겨 이르시되 어린아이들의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시고”
   (막10:14-15)

2)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마 18:3)

3)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아이같이 자기를 낮추는 자가 천국에서는 큰 자니라(마18:4)

* 예수님의 어린아이에 대한 비유와 교훈의 말씀을 어떻게 해석하느냐는 난해구절 중의 하나 라고
볼 것이다. 주석가들도 각각 다른 해석을 보이고 있다. 필자는 이 부분의 해석으로
순수, 악에서 멀어짐, 겸손, 착함, 의지(신뢰)로 해석을 하고 싶다.
그 이유를 다시금 정리해 본다.

1. 예수께서 어린아이를 통해 천국의 비밀을 가르쳐 주실 때의 상황을 살펴보면  어린아이들이
예수께서 가르치실 때에 서슴없이 달려 나와 설교를 방해 했던 때이다 이때 제자들이 그 아이들을
막았다. 또한 제자들이 누가 크냐고 분쟁 할 때 어린아이를 세워두고 자기를 낮추는 자가 천국에서
크다 하셨다.

2.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이었고 교훈이었다.
그 제자들은 예수님의 부르심에 단순하게 따랐고 모든 것을 버리고 함께 했다.
그리고 전적으로 어린아이처럼 주님을 의지하며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런 그들에게 주님은 돌이켜 어린아이가 되라고 말씀하신다.

3. 여기서 우리는 주님께서 어린아이가 되라는 말씀을 “받아들임, 단순성, 허약성, 무력성,
신뢰(신앙)” 으로 해석 할 수 없는 원천적 이유를 보게 된다.
그 제자들은 이미 그것을 충족시키고도 남는 상태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4. 제자들이 아이들을 험악하다 할 정도로 제지하며 나서는 것이나(예수께서 분히 여기신 것을 볼 때)
누가 큰 자 인가를 비교하며 분쟁하는 모습을 보시며 주님은 천국에서 큰 자가 누구며 큰 자는
고사하고 돌이켜 어린아이 같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 갈 수도 없다 하셨다.

5. 편집비평으로 볼 때 공관복음 모두 어린아이 비유 뒤에 부자청년의 이야기가 나온다.
주님은 부자청년에게 천국에 들어가는 길을 진지하게 가르쳐 주셨다.
어릴 때부터 율법을 철저하게 지키며 영생을 사모했고 천국을 침노한 청년의 삶이 충분히
보이는 대목이다. 그 청년이야 말로 유대인들의 전통대로 율법을 지켜 영생을 얻고자 최선을
다한 모습의 표상이었다. 그런데도 그 청년에게 예수님은 어찌된 일인지 한 술 더 떠서  모든 재물을
나누어 주고 따르라 한다. 이는 믿음 안에서 변화되는 인간의 상태에서만 가능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천국을 어린이들처럼 인간의 허약함과 무기력을 인정하고 단순히 받아들이라는 주장과는
상당히 거리가 멀다. 이러한 주장은 애초당초 주님이 복음 안에서 한 인간을 변화시키고 새롭게 하여
선한 인간의 모델이라고 할 수 있는 어린아이를 통해 하신 교훈과 거리가 멀다 할 것이다.

6. 제자들은 돌이켜 어린아이가 되어야 한다. 크고자 하는 생각에서 지극히 작은 자를 멸시하고 무시하는 태도에서 그래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주어진 하나님 나라를 어린아이처럼 순수하고 착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

7. 예수께서 베푸신 산상수훈이나 사복음서에 나오는 모든 교훈은 실로 인간의 사악함에서
돌이켜 선하고 착한 모델인 어린아이 같이 선하고 착하게 거듭나며 성장해 갈 것을 촉구하고 있다.
주님은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는 자라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사랑, 착함, 선함, 자비, 긍휼, 순수 이러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으며 놀랍게도
어린아이들이 그 모델이 되고 있다.
여기서 어린아이를 통념적, 개념적으로 이해해야지 어린이에게서 보여지는 고약한 면을 불필요하게
부각 시킬 필요는 없다.

8. 산상수훈의 결론이 무엇인가!
이말을 듣고 지키는 자는 반석위에 집을 짓는 자며 지키지 않는 자는 모래위에 집을 짓는 자니 그
무너짐이 심하여 천국에 이르지 못한다.
말씀을 지키는 자는 누구라도 어린아이들을 통하여 보이는 특징이 아니면 아무도 지킬 수 없다.
성령의 사람으로 변화 받지 못했던 제자들도 지키지 못하고 있기에 주님은 그들에게 장차 믿음의
사람이 되어 주의 말씀에 순종하고 따를 수 있는 모습을 보시며 어린아이의 비유를 들려주신 것이다.



전체 5

  • 2012-06-04 23:31

    모가난해?


  • 2012-06-04 23:50

    결국, 오목사님.. 제 말에 격동되어 공부 많이 하셨네요..^^ 그건 좋은 일입니다..

    그리고 오목사님 주장내용에 상당 부분 최목사님의 결론을 수용하셨구요..

    근데,, 다른 건 다 그만두고.. 오목사님.. 어린아이의 순수함을 고집하시는데..

    그 어린아이의 순수함이라는 것이.. 하나님의 칭의론적 구원 앞에서 요청됩니까..

    불요청됩니까.. 그것만 대답해 보시지요.. 그러면 모든 답이 규명되리라 봅니다..


  • 1970-01-01 00:00

    김 목사님 때문에 새삼 공부한 것은 아니고요. 어제의 일정을 보아도...
    집중해서 글을 올릴 욕심과 열정이 생긴 것이지요.
    어쨌든 문제 제기의 형식이 좀 그렇지만 내글에 질문하는 것이니 대답하지 않을 수 없네요.

    칭의의 순간에 어찌 인간의 공과가 요청되겠습니까! 이렇게 질문하시면 논지 파악을 어떻게 한 건지 당황이되며,
    무엇보다 칭의의 은혜를 교리적이거나 지식적 동의로도 얻을 수 있다는 것으로 여겨 나오는 질문 인것 같습니다.
    칭의와 함께 동시적으로 성화는 시작되며 진행된 것입니다.
    성령의 역사로 마음으로 믿어 칭의에 이른 사람은 주께서 원하시는 열매를 맺는 자이지요.
    삭개오처럼 말입니다. 칭의는 우리를 어린아이와 같은 부름으로 인도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순수해야 칭의를 얻는 것이 아니라 칭의의 결과가 순수하다거나 착함과 선함을 낳기에 칭의는 한 인간을
    돌이켜 인간의 참된 모델인 어린아이로 이끌기에 칭의를 얻어야 천국에 갈 수 있다는 말이나, 돌이켜 어린이가
    되라는 말은 같은 것이니, 내 글에서 펠라기우스적인 내용을 본다는 것은 칭의를 사람의 힘으로나 지식적으로
    얻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군요.
    이신득의의 종교개혁 이래 칭의에 대한 인식 부족 그래서 칭의의 능력과 은총,참된 믿음의 결과인 칭의와 함께 동시적으로 오는 변화와 성령의 열매를 잘 모르기에 회심 이전의 웨슬리처럼 맥 없는 그리스도인 열매없는 그리스도인 천지가
    되었습니다. 예배당만 나오면 무제한의 구원과 영생을 선언해 주니 중세시대와 다를 바가 없는 것은 칭의를 인위적으로
    지식적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인 것이지요.


  • 1970-01-01 00:00

    오목사님께서 공부하시고 깊이 생각하시면서.. 아주 상당히..

    최목사님의 주석적 결론에 근접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바로 최목사님은 그러한 결론을 내리셨던 것입니다..^^

    인간의 공로가 아닌.. 하나님의 전적인 은총 바로 거기에서..

    믿음의 시작이 있노라고.. 천국은 시작 되노라고..

    유대인들에게 말씀하신거에요.. 수고 많으셨습니다..


  • 2012-06-05 13:02

    난 게시판에 글을 쓰면서 잘 모르는 부분은 분명 공부하고 글을 씁니다.
    그러나 금번의 토론에서는 공부 할 이유가 없었고 시간도 없었습니다.
    자꾸 공부 많이 했다하니 한번 토를 달아 볼까요. 어제의 시간을요.
    어제 오전 10:30분 6월 교역자회의 참석 오후 2:30분 약속(30분) 오후4시약속(일산4-9시)
    귀가하여 10시 30분 쯤 부터 위 본문 작성(소요시간 40-50분)
    이런 내용을 쓰는 것은 기본적인 것을 자꾸 공부많이 했다하니 좀 기분이 그렇군요.

    그리고 분명 최 목사님과 저는 다른 견해 입니다.
    그러니 아래 글을 또 다셨네요. 거기에 덧글을 올려 드려야지요.

    또, 또한 정말 김목사님 글쓰기가 독특하네요.
    무슨 숙제검사해 주시는 선생님처럼 쓰니. 그래도 내 글을 쓰기 위해 썼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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