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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스피리투스(homo spiritus)

작성자
임종대
작성일
2015-08-05 12:26
조회
1014
호모 스피리투스: 영적인 인간
임종대 목사

인간은 피조세계의 그 어떤 생물과 완전히 다르다. 생김새는 물론이지만 지적인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다르다. 더욱이 인간을 인간으로 존재케 하는 것은 바로 영적인 차원을 가졌다는 것이다. 인간 존재를 표현하는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 생각하는 인간)를 넘어 호모 스피리투스(homo spiritus: 영적인 인간)의 차원을 가졌다. 사도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러나 먼저는 신령한 자가 아니요 육 있는 자요 그 다음에 신령한 자니라.”( 고전15: 46) 신령한 자가 인간의 완성임을 말한다. 모든 인간은 영적인 인간으로서 보이는 대상을 넘어 보이지 않는 대상을 추구할 수 있다. 그것이 다양한 종교의 기원의 이유요, 믿음의 대상들이 존재하는 까닭이다. 기독교인들은 궁극적인 실재( the ultimate Reality)요, 모든 것의 존재와 창조의 근원으로서 하나님의 존재됨을 깨달았고 믿는다. 그리고 궁극적인 실재가 육화되어 이 땅에 오신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다. 그리고 그 예수님과 연합되어 예수님처럼 살아가며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실현하기를 추구한다.

영적인 인간(호모 스피리투스)의 특징을 살펴보고자한다.
첫째로, 영적인 인간은 하나님을 찾게 된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들어진 인간은 스스로 존재할 수 없다. 그리고 영원히 존재할 수 없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 원죄의 지속적인 영향력은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한계있는 삶을 살도록 한 것이다.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져 있다는 것 때문에 인간은 두려움과 불안을 안고 살아간다. 오늘날 보여지는 모습속에서 홀로 독립된 개체로 살아가는 것이 자유롭고 괜찮아 보이지만 모든 인간은 늘 ‘떨리는 삶’을 살 뿐이다. 하나님없는 유한한 실재는 항상 떨리는 삶을 살아간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인간의 내적 상태를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우리가 떨리는 소리를 들으니 두려움이요 평안함이 아니로다.” (렘30:5) 그런 두렵고 떨리는 삶의 근본적인 변화나 해결이 없음에도 인간은 안그런 척하며 살아간다.

보이는 세상을 살면서 보이지 하나님과 단절된 인간은 두 가지 차원에 매몰되어 죽어 간다. 하나는 보이는 세상에 집중한다는 것이다. 육에 속한 사람으로서 육을 위해 살아간다, 자기 세계를 견고히 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자기만을 위해 살아가게 된다. 자기를 방어하며 살아간다. 그러면서 육의 본성은 육적인 경향으로 나타난다.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과 같이 세상 것에 집중하게 된다(요한1 2:16). 점점 다른 사람으로부터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며 자신을 위한 삶을 살게 된다. 영원히 변하지 않는 것에 눈을 감으며 생명의 소리에 귀를 닫게 되어 눈은 있으나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보지 못하는 삶을 살게 된다. 그 다음은 안목적인 세계관을 가진 세속적인 삶의 최고의 변질은 바로 높은 바벨탑을 쌓으며 하나님에 대항하며 스스로 하나님처럼 살고자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교만이라 부른다. 하나님없이 인간 스스로 살아가며 하나님처럼 살아가는 삶이다. 하나님과 단절되었기 때문에 교만해진 것이 아니라 교만하기에 하나님과 단절된 삶을 살아가게 된다. 교만한 인간의 끝은 패망이다(잠16:18) 결국 살고자 하지만 죽는 것이다. 더 잘 살고자 하지만 완전히 죽는 삶을 사는 것이다.

그런 가운데 인간은 영적인 갈증과 배고픔을 느낀다. 육신적인 목마름과 배고픔과는 완전 다르다. 현 시대를 사는 사람들 만큼 잘 먹고 잘 입고 잘 사는 사람들이 어디있을까? 할 정도로 부족함이 없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갈증을 느끼고 만족함이 없이 살아간다. 하나님을 찾는 것이다. 하나님에 대한 영적인 목마름과 갈증을 느끼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을 마조리 톰슨은 이렇게 말한다. “ 하나님을 찾고자 하는 영적인 배고픔과 갈증이 다양한 문화적 요소나 개인적으로 삶의 요소에 중요한 부분으로 자리 잡았다. 이런 갈망은 인간이 본성적으로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영적인 존재요, 삶의 의미와 목적의 근원을 향한 근본적인 갈망이기 때문이다.” 영적인 인간은 안 그런척 하지만 본질적으로 하나님을 찾는 다는 것이다. 우리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을 찾는다. 하나님 또한 자신을 찾으라고 말하신다. “너희는 내 얼굴을 찾으라 하실 때에 내 마음이 주께 말하되 여호와여 내가 주의 얼굴을 찾으리이다 하였나이다.” (시27:8) 찾기 위해 가만히 있으라 하신다. “ 이르시기를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찌어다 내가 열방과 세계 중에서 높임을 받으리라”(시 46:10) 그리고 힘써 알라고 하신다.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호6:3) 영적인 사람은 하나님에 대한 갈망이 존재한다. 그 갈망으로 인해 하나님을 찾고 구하며 결국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드러내시고 만남을 갖게 된다.

둘째로, 하나님을 찾은 영적인 사람은 진리를 깨닫게 된다.
세상자체가 헛된 것은 아니나 헛된 것을 구할 수 있는 세상에 살면서 영원한 것을 구하게 된다. 여기 살면서 이미 저기를 살기에 다른 삶의 목표를 갖게 되고 집중하게 된다. 삶은 속도가 문제가 아니라 방향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며 혼자 스스로 사는 존재로부터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게 된다.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구원이 임하였고 구원받은 영적인 사람을 사는 것이 행복한 삶이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은 인간이 살 수 있는 최상의 삶임을 깨닫는다. 이 세상을 살기 위한 정보나 이론이 아닌 영원한 삶을 살아가도록 한 말씀으로 진리로 추구하며 진리 안에서 자유롭게 살았던 예수님의 삶을 본받으며 예수님처럼 살아간다. 영적인 사람은 진리 안에서 살아가고자 한다. 땅엣 것을 찾는 것은 진리가 아니며 하늘의 것을 찾는 것이 진리이다. 하늘에 속한 영광을 찾되 땅에 속한 영광을 더 이상 구하지 않는다(고전15:4)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요14:6)이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께서 자신을 통해 하나님아버지께 이르기를 원하신 것이다. 예수님께서 자신안에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음을 알게하신 것이다. 예수님께서 자신이 생명이신 하나님임을 말씀하신 것이다. 진리이신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이 진리다. 변하지 않는 생명의 약속이다.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믿게 되는 것이 소각이다. 이런 영적비밀을 깨닫는 것이 소각이다. 즉 작은 깨달음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을 알게 한 것은 우리의 속한 지혜가 아닌 성령께서 하신 일이다. 이런 작은 깨달음의 연장선상에서 신학이나 체험 그리고 상상력까지 사용된다. 소각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시작하며 무지한 인간들에게 주시는 깨달음의 선물이다. 그로인해 자신이 사랑했던 것이 얼마나 헛된 것이며 그 삶이 얼마나 죽을 삶임을 알게 된다. 그리고 절대적으로 십자가의 그 사랑이 얼마나 큰지를 알게 된다.
대각은 큰 깨달음을 말한다. 지적인 이해나 깨달음의 수자준에서 벗어나 삶이 변화되는 것이다. 변화된 삶이 말씀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진리이신 예수님안에서 살게 된다. 이제 하나님과 둘이 아니라 하나가 되는 것이다. 생명과 진리의 빛이신 하나님이 우리안에 우리가 그 하나님안에서 살게 되는 것이다. 현재 영성의 빈곤은 지식의 빈곤이 아니라, 깊은 깨달음 즉 큰 깨달음의 빈곤으로부터 온다. 깊이 파지 않기에 존재의 가벼움이 삶을 지배하고 언어를 지배한다. 인간의 작은 지식이 영적인 지혜의 영역에 맞닿을 때 더 이상 인간의 말이 아니라 말씀이 되는 것이다. 말씀은 밖에서 안으로부터 들어와 안에서 육화되어 삶으로 나타나게 된다. 삶과 언어가 하나가 된다. 그리고 하나님의 능력이 되는 것이다. 영적인 사람은 진실로 자신이 깨달은 진리를 가지고 사는 사람이 아니라 진리이신 예수님안에서 진리를 깨닫고 살아가는 사람이다.

셋째로 영적인 사람은 진리안에서 자유롭게 살아간다.
영적인 인간은 하나님처럼 사는 것이다. 하나님처럼 산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사셨던 삶이다. 육에 속한 사람이 아니라 영에 속한 사람처럼 살아가게 된다. 지상에서 가장 강력한 삶의 영향력을 드러낸다. 더 이상 육에 속한 사람처럼 자신의 이익을 위해 살지 않는다. 자신의 나라와 영광을 위해 살지 않는다 육체적인 감각이나 욕망에 갇혀 살며 멸망의 길을 걸어가지 않는다. 오직 하나님을 위해 다른 사람을 위해 자기가 부인된 삶을 살아간다. 그 삶이 영적인 사람의 삶이요, 예수님의 향기가 내뿜어지며 생명의 빛이 환하게 밝히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 깊이 파야 한다. 깊이 파라는 것은 자기를 던지라는 말이다. 진리가 드러나는 삶은 진리와 하나가 될 때만이다. 진리의 말씀이 육화될 때만이다. 진리에 대한 지식이나 정보를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진리와 하나가 되기 위해 진리의 삶을 살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은 위험은 감수해야 한다.

공수부대에 가는 사람들은 누구나 고공에서 낙하산을 타고 내려와야 한다. 누구도 피할 수 없다. 공수부대원들이 훈련하는 것을 보았다. 지상으로부터 3000 m 에서 뛰어내려 1000m 까지 자유낙하를 한 후 비로소 낙하산을 펴고 지상에 내려오는 것이다. 뛰어내리는 순간까지 그리고 그 순간이 가장 두렵지만 막상 뛰어내리고 낙하산을 펴고 내려올 때 평안해진다고 한다.
낙하산을 이론으로 배우고 깨닫고 낙하산을 타기 위해 배우는 모든 것은 소각이다. 그러나 정말 뛰어내리며 자신과 공중이 하나가 될 때 그것이 바로 대각이다. 그 순간을 맛보기 위해 뛰어내리지 않으면 안된다. '이것이 진리야' 라며 말하는 사람도 많고 진리를 안다고 말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진정 진리가운데 자신을 던져 진리 안에서 자유로운 사람을 사는 사람이 영적인 사람이다.

영성지도가 임종대 목사(예수의 사람들 교회 & 예수님처럼 영성 형성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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