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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이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이 우리들의 울림이어야 합니다.

작성자
노재신
작성일
2016-01-29 08:32
조회
2370
예수님과 가룟인 유다는 하나님의 일을 함께 하는 동역자이었습니다.
예수님과 가룟인 유다는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고 가야만 하는 동역자(친구)가 분명 했지만
예수님은 인류를 구원하시는 메시야의 길을 가셔야 했고
가룟인 유다는 메시야이신 예수님을 배반해야만 하는 불행한 길을 가야만 했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주님은 가룟 유다를 향해 차라리 태어나지 아니하였더라면 제게 좋았을 것이라 하셨던 것입니다. (마26:24)

분명 예수님과 가룟 유다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세상을 향한 구원의 길을 가야만 하는 동역자(친구)였습니다.
그러나 그 길의 끝은 하늘과 땅 만큼 달라졌습니다.
예수님에겐 구원자란 영광이 주워졌지만 가룟인 유다에겐 탐욕스런 배신자라는 낙인이 찍히고 만 것입니다.
어찌 본다면 가룟 유다는 지금도 억울해 하고 있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의 동역자요 친구였지만 배신자일 수 밖에 없었던 가룟인 유다의 길을 이해한 사람들이
후에 유다복음서를 썼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유다 복음서가 하나님을 반대하는 책일까?
유다 복음서가 예수 그리스도를 반대하는 책일까?
유다 복음서가 성령님의 감동을 훼방하는 책일까?
그것은 모르겠습니다.
왜냐하면 유다복음서를 읽어 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단지 내가 알고 있는 것이라면 가룟인 유다에 대하여 정경과 다른 시각을 갖고 있으며 외경으로 분류된 것이 유다복음서라는 것 뿐입니다.
어찌보면 이름과 같이 단지 가룟인 유다만을 변호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당시 예수님을 죽여야만 했던 유대인들의 입장을 변호하려는 복음서였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제 아무리 동역자(친구)라 하여도 배신자는 배신자일뿐입니다.

동역자라면 같은 사역을 감당하는 친구와 같은 사람을 의미할 것입니다.
동역자라면 함께 힘을 쓰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같은 방향에 서 있어야 하며 같은 방향으로 힘을 써야 하며 한 마음이 되어 서로를 격려하고 위로하고 독려 해야 하는 것입니다.
동역자라는 단어가 주는 의미는 줄다리기에 서 있는 한편(팀)이 된 사람들을 떠오르게 합니다.

어린신절 학교 운동회가 되면 마지막 경기로 청,백간의 줄다리기를 하였던 생각이 납니다.
같은 수의 학생들이 청, 백의 편으로 나뉘어 서로의 힘을 겨루는 것입니다.
덩치 큰 친구들이 많으면 환호성을 지르고 빼빼 마른 친구들이 많으면 한숨을 쉬곤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러나 줄다리기는 해봐야 그 결과를 알 수 있습니다.
의외로 한숨을 쉬던 팀들이 선전을 하고 환호성을 외쳤던 팀은 고전을 면치 못하기도 하였습니다.

지금 우리 감리교회의 동역자들은 어떠한가요?
의외의 선전을 벌이고 있는가요?
아니면 의외의 고전을 면치 못하는 모습인가요?

지금 우리는 감리교회란 팀으로 하나가 된 친구들(동역자들)과 함께 힘겨루기가 한참인 것입니다.
이 씨름은 타교단과의 힘겨루기가 아닙니다.
성경에 말하기를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엡6장)하였습니다.

그러나 또 다시 과거의 어린시절을 회상해 본다면 대부분의 친구들은 있는 힘을 다하여 줄다리기에 동참을 합니다.
그들에게서 동역자란 말의 의미가 와 닿습니다.
그러나 말로만 잘난 채 하는 아이들과 힘없어 보이는 약한 아이들을 비웃으며 힘 자랑하는 아이도 있었으며 함께 힘을 써야할 줄다리기에 호흡을 맞추지 못하고 혼자만 죽을 똥 살똥 힘을 쓰는 아이들도 있었습니다.
덩치가 큰 아이들이 제 아무리 많아도 역시 줄다리기는 한 마음과 한 힘이 된 팀을 이겨낼 수 없는 경기였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방관자가 있다면 그 팀은 이기기 어렵습니다.
훼방자, 방해자가 있다면 그 팀도 이기기 어렵습니다.
스스로 잘난채 하며 함께 한 친구들을 믿지 못한다면 그 팀은 이기기 어렵습니다.
자신의 욕심만을 추구한다면 그 또한 이기기 어려운 팀이 됩니다.
배신자가 있다면 더더욱 그 팀은 이기기가 어렵다 할 것입니다.

누가 감리교회의 배신자인가?
동역자로써 방관하고 있는 이들이 배신자입니다.
동역자로써 한 마음이 되지 못하도록 훼방하고 방해하는 이가 배신자입니다.
동역자로써 스스로 잘난 채 하며 다른 친구들을 무시하고 믿어주지 않는 이가 배신자입니다.
동역자라 하면서 자신의 욕심만을 채우기에 급급한 이가 배신자입니다.

누가 감리교회의 참 된 동역자(친구) 입니까?
동역자의 아픔과 외로움과 슬픔과 고통애 관심을 주며 함께 하려는 이가 참다운 동역자 입니다.
동역자들이 한 마음이 되도록 독려하고 격려하며 함께 하자고 권고하는 이가 참다운 동역자 입니다.
동역자로써 다른 동역자를 자신보다 낫게 여기며 존중해 주며 믿어 줄 수 있는 이가 참다운 동역자입니다.
동역자로써 자신의 이기적 욕심보다 다른 동역자들과 더불어 함께 하려는 이가 진정한 동역자입니다.

예수님은 배신의 꽃이 만개한 그 밤에 배신자인 가룟 유다를 향하여 친구라 하시며 동역자로 인정하셨습니다.
왜 그러셨을까?

이제 이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이 우리들의 울림이어야 합니다.
이제 이것이 우리들의 성령의 감동이어야 합니다.
이제 이것이 성경에 기록된 또 다른 하나님의 역사이어야 합니다.

배신자는 절대로 친구가 될 수 없다는 하나님의 역사에 대한 옛 기록이 구약성경(율법)입니다.
배신자도 친구(동역자)로 삼으신 하나님의 역사에 대한 또 다른 새로운 기록이 신약성경(복음)입니다.
주님은 우리로 가르쳐 깨닫게 하실 것입니다.
죄인도 원수도 친구로 변하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참 복음임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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