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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감독회장후보와 측근, 일탈행위 염려된다.

작성자
오재영
작성일
2016-09-08 21:35
조회
1558
참으로 황당하고 비상식적인 구도자답지 못한 경박한 모습들이다.
한마디로 오로지 교권에 대한 집착이 아니고는 이리 처신들을 할 수는 없다. 이 모습들이 130여년의 역사를 이어받아 신도 160여만을 인도할 교단의 영적지도자가 되겠다는 이들의 품격이며 그를 후원하는 이들의 수준인가?

지구상에 존재하는 인류와 더불어 수많은 종교가 시대마다 함께하지만 종교학에서는 그 모든 종교를 고등종교와 하등종교로 구분 한다고 한다. 그에 대한 기준은 그들이 믿고 따르는 종교에 자기부인(自己否認)이 있는가? 하는 것으로 그 종교에 자기부인이 있으면 고등종교로, 없다면 제아무리 유구한역사와 전통, 수많은 신도들이 따르고 있다하여도 그것은 한낱 자기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하여 존재하는 무속신앙이나 다름없는 하등종교의 부류에 속한다.

이처럼 종교의 생명과도 같은 자기부인이란, 자신이 믿고 따르는 그 종교가 표방하는 영원한 가치를 위하여 모든 이들이 갖고 있는 자신들의 욕망을 내려놓느냐 하는 것이다. 이것이 그가 믿고 따르는 종교의 생명력이며 존재감이다. 그러나 겉으로 보기에는 자기부인처럼 보여도 그 내면의 궁극적 목적이 단지 자신의 욕망을 이루기 위한 수단에 불과한 것이라면, 그것은 그 종교가 갖고 있는 형태와 관계없이 모두가 하등종교와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는 제32회 총회 감독 및 감독회장을 선출하기 위한 준비가 한창이다.
설왕설래, 온갖 떠도는 소문들 요란하지만 최근 일부의 사람들이 공적인 공간에 등장하여 표현하는 행태를 보노라면 우리교단이 미망의 늪에서 헤어나려면 아직도 요원하다는 염려가 앞선다. 어찌하여 명색이 한교단의 영적인 지도자를 세우겠다는 이들이 겁 없이 인본주의적인 수단과 방법들을 함부로 동원하는 것인가?

감독회장선거를 민도 낮은 나라의 국회의원이나 도지사 선거로 착각하는 것이 아닌가? 지금 신앙과 의를 내세우며 온갖 주장들 난무해도 뒤집어보면 모두가 주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몇 명되지도 않는 이들이 특정인을 부각시키며 세우고자하는 선동과 꼼수임을 알만한 이들은 모두가 알고 있다. 어쩌다가 우리가 저토록 자기성찰과 거리가 먼 인사들이 이곳저곳 설쳐대며 온갖 방자한 모습의 추태들을 보고만 있어야하는가?

이들의 행태를 보노라면 도대체 이들의 안중에는 교단의 위상이 허물어지든 말든, 선교의 대상들이 비웃든 말든 기존의 질서와 절차는 물론 모조리 상대를 부정하며 오로지 자신들의 편협한 사고방식의 행태만을 정당화 시키는 모습뿐이다. 지금 열악한 환경에서도 소명 따라 온가족이 자신을 드려 구도자의 삶을 살고 있는 이들은 보이지 않는가?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라면 교회에 끌어드린 이러한 궤변과 요설에 대한책임 감당할 자신들은 있는가?

교단에 소속된 한사람의 동역자로서 충고하건대 지금후보자와 측근들의 그 모습들이 본심이라면 더 이상 교단명예를 실추시키는 혼란들을 일으키지 말고 조용히 헛된 꿈들을 접고 각자 남은 사역에나 전념하기를 바란다. 그것이 그나마 본인과 함께 뜻을 모으는 이들이 더 이상 망가지지 않는 길이다. 그동안 음으로 양으로 교단의 일정한 역할을 한 이들도 있는데 본인들 때문에 교단이 바르게 되고 더욱 맑아졌는가?

언제나 변함없는 사실이지만 구도자본연의 위치를 벗어나 거룩한 성직을 사리사욕으로 착각할 때마다 그 대상을 불문하고 예외 없이 혹독한 대가를 지불하였다. 그것은 손에 수류탄을 쥐고 있는 사람과 같아서 안전핀이 제거되는 순간 본인은 물론 주변에 관계되어있는 이들까지도 치명상을 입힐 수가 있다. 후보 중 어느 분이 선택을 받든 지금 영적인 리더로서 헤쳐 나가야할 우리의 선교현장은 모두가 알고 있듯이 매우 부정적이다.

구성원들마다 자신들의 책임은 방기하고 분쟁과 다툼으로 날밤을 지새우는 시대, 다른 한편에서는 상대적 빈곤과 생의절망감으로 하루에도 1천여 명이 스스로 생을 마감하려는 시도로 40여명이 이 땅을 떠나고 있다는 통계가 있다. 그 수치 속에는 평신도는 말할 것도 없고 명색이 목사와, 사모. 전도사들도 섞여있다는 참담한내용이다. 이러한 절망을 헤쳐 나가야할 격에 맞는 지도자를 선별하여 세워야한다면 구도자답지 못한 이들은 자중해야한다.

동시에 교단의 책임을 맡고 있는 이들 또한 교회본연의 사명인 구원의 진리를 하나님께로부터 위탁받은 유일한 신적기관으로서의 권위와 영광을 회복해야한다. 아직도 대부분 죄악의 굴레에 묶여있는 이교도들에게 우리가 전하는 복음의 증언에 걸맞은 삶을 실천함으로 우리가 고백하는 그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들 안에 살아계심을 보여주어야 한다.

오늘 우리 모두에게 안타까운 사실은 교단을 대표하는 이들로부터 수시로 주님 앞에서 그분을 면대 하는 영적리더 다운 모습들을 보기가 어렵다는데 있다. 직분에 따라 당연히 갖추어야할 책임에 걸 맞는 은혜의 자리를 벗어나 허접한일에 매달리고 있다는 소식은 듣는 이들로 하여금 그 또한 실족케 하는 짓이다.

아침 Q.T시간 묵상에세이란 에 등장한 내용이다.
“높아지려는 마음은 나라를 분열시킨다. 제자들 사이에도, 교회도 분열시킨다. 그러나 섬김은 우리를 하나로 만들고, 교회를 일으킨다. 교회의 여러 문제 중 하나가 ‘디오드레베 신드롬’(요삼1:9)이다. ‘으뜸 되기를 좋아하는’사람들이 득세하는 한 교회에 평안은 없다. 디오드레베형 인물은 교회직분을 직위로 혼돈하고 권세를 부리려한다. 이들은 참된 기독교지도자가 아니다.”오늘 우리교단이라고 예외일수가 있겠는가?

중세 교회사에 마틴루터의 종교개혁 후에 동요하는 가톨릭을 안정시키기 위하여 예수회를 창시한 ‘이그나시우스로욜라’ 를 중심한 일곱 명의 수사들이 주님께 드린 결의문, “하나님의 뜻이라면, 세계 어느 곳으로나 시체처럼 운반되고 맹인의 지팡이가 되겠습니다.” 이들로 인하여 가톨릭이 안정과 함께 부흥하고 발전하여 세계 곳곳으로 선교사들을 파송하여 우리나라까지 와서 마포나루 한강변에 오늘의 서강대학교를 세웠다는데, 동일한 그리스도의 제자로 자처하는 오늘 우리들의 모습은 왜 이리 초라하고 가련한 모습들인가?...

이제 우리 모두는 자신을 성찰함으로 부끄러운 모습에서 벗어나 하루속히 본연의 자리에 돌아가야 한다. 그것만이 너나없이 주님 안에서 모두가 더불어 사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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