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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 목자들이 들은 성탄 소식

작성자
최세창
작성일
2023-12-20 12:56
조회
157
<누가복음 2:8-14>

8그 지경에 목자들이 밖에서 밤에 자기 양 떼를 지키더니 9주의 사자가 곁에 서고 주의 영광이 저희를 두루 비취매 크게 무서워하는지라 10천사가 이르되 무서워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11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12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인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하더니 13홀연히 허다한 천군이 그 천사와 함께 있어 하나님을 찬송하여 가로되 14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1. 시작하는 말

약속 이행은 성실성을 재는 중요한 척도입니다. 세계 각국의 지도층에는 국민들에게 약속을 해 놓고는, 사리사욕을 챙긴 후에 헌신짝 버리듯이 폐기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이런 불성실한 지도자들은 편파와 불공정, 아부와 아첨, 거짓과 위선, 불의와 부당, 편애와 편견, 부정과 부패, 불신과 냉소, 부정 축재와 음란 등으로 점철된 삶을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갖가지 죄의 종인 인류를 구원하시려고 구주 곧 메시아를 보내 주신다고 약속하신 하나님께서는, 약속대로 메시아이신 구주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 주셨습니다. 그리고 죄와 죽음과 멸망의 종노릇을 하느라 그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모르는 인류에게, 성령을 좇아 주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구원받는다고 알려주시기까지 하셨습니다.

2. 먼저 최고 최대의 희소식을 들은 목자들

탄생하신 구주 예수님이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워 계시던 밤에, 예루살렘과 베들레헴 사이의 높은 초원에는 잠을 자지 않고 양떼를 지키는 목자들이 있었습니다. 모두가 잠든 그 시간에, 그 목자들은 하늘의 별을 바라보곤 하면서 자신들의 임무를 충실히 이행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임무 수행이 한층 더 돋보이는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이스라엘에서는 목자를 아주 천한 일꾼으로 여겼습니다.
둘째, 목자는 척박한 땅에서 양떼를 이끌고 푸른 초장과 쉴 만한 물가를 찾아 떠돌이 생활을 해야 하기 때문에, 종교 의식에 잘 참여하지 못했으므로 멸시와 천대를 받았습니다.

셋째, 천민 취급을 받던 목자는, 법정에서의 증언이 허용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목자들은 밤을 새워 양떼를 지키는 일을 성실하게 수행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랍비 문서에 의하면, 베들레헴 가까운 지역의 양 떼는 성전의 제물용이라고 합니다. 어쩌면, 그 목자들이 지키던 양 떼가 성전의 제물용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렇다고 해도, 그 목자들이 다른 목자들과 다를 것도 없고, 다른 대우를 받는 것도 아닙니다.

아무튼, 그 목자들은 천하게 여겨지던 양 치는 일을 성실하게 이행하고 있었습니다. 자기의 일을 성실하게 이행하는 삶의 자세가, 인류를 구원하실 구주의 탄생 소식을 남들보다 먼저 듣는 영광을 누리게 된 것입니다. 이 장면에 대해 누가복음 2:9에, “주의 사자가 곁에 서고 주의 영광이 저희를 두루 비취매 크게 무서워하는지라”라고 했습니다. 그 목자들은 매우 두려우나, 영광스러운 영적 체험을 했다는 것입니다.

좋은 일꾼은 중요한 일이기 때문에 성실하게 하고, 하찮은 일이기 때문에 불성실하게 하지 않습니다. 좋은 일꾼은 중요한 일인지 하찮은 일인지를 따지지 않고, 자기 성실을 중시합니다. 자기 성실에 문제가 있는 사람이 권력을 쥐게 되면, 권력형 범죄자가 되기 십상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외모가 아니라, 인간의 중심을 보십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어떤 신분, 어떤 자리, 어떤 직업, 어떤 일이냐를 문제 삼으시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진실한 마음으로 성실하게 일하는가를 문제 삼으십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꾼의 마음가짐은, 일에 대해 사랑하는 마음가짐과 진실한 마음가짐과 충실한 마음가짐입니다.

주님의 사자인 천사는 주님의 영광이 두루 비취매 크게 무서워하는 목자들에게, 무서워 말라고 하면서 온 백성에게 미칠 최고 최대의 희소식을 전했습니다. 누가복음 2:11 이하에 보면, “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인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라고 했습니다.

밤새워 임무를 수행하던 목자들은 최고 최대의 희소식인 구주 탄생 소식을 먼저 들었을 뿐만 아니라, 남들보다 먼저 아기 예수님을 뵙고 경배하는 영광도 누렸습니다. 또, 최고 최대의 희소식인 구주 탄생 소식을 남들에게 전하는 영광도 누렸습니다.

믿음의 사람인 우리는 하찮은 일이나, 귀찮은 일이나, 힘든 일이라도, 그 일을 사랑하는 마음과 진실한 마음과 충실한 마음으로 해내야 합니다. 일의 경중을 따져서 성실하게 하거나, 대강대강하거나, 땡땡이를 부리지 말아야 합니다. 굳이 따져야 할 것은 일의 경중의 문제도 아니고, 감독자 유무의 문제도 아니라, 자기 성실의 문제입니다.

요셉은 아버지의 편애와 가벼운 입놀림과 형들의 미움으로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외국의 노예가 되었지만, 하나님을 믿는 믿음만은 잃지 않았습니다. 믿음으로 일하며, 믿음으로 생활하는 사람으로 변화되었습니다. 그 요셉은 애굽의 시위대장 보디발의 노예 일을 할 때나, 그의 가정 총무의 일을 할 때나, 유혹하던 안주인의 모함으로 감옥에 갇혀 전옥의 제반 사무를 볼 때나, 애굽의 총리 일을 할 때나 한결같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믿음으로 일관했습니다. 그런 요셉은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므로, 하는 일마다 형통했습니다. 요셉은 자기 성실의 대명사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불성실하게 일하는 불성실한 사람에게 함께하시면서 형통케 하실 리가 없지 않습니까? 일을 소홀히 하는 사람이나, 죄악의 수단과 방법으로 일하는 사람이나, 권력형 범죄를 하는 사람이나, 침략 전쟁을 하는 전범자 등에게 하나님께서 함께하실 리도 없고, 형통케 하실 리도 없지 않습니까?

요셉처럼 믿음으로 일하고, 믿음으로 사는 사람이라면, 하나님께서 불행을 막도록 계시하시며 역사해 주시거나, 복을 받도록 역사해 주십니다. 천국에서 영생을 누리는 복은 물론, 이 세상에서도 하늘의 영광과 풍성한 복을 받아야 하지 않습니까? 받는 은혜와 복을 나누는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으로 살아야 하지 않습니까?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 앞에서, 사랑과 진실과 성실과 충실이 담긴 마음으로 일하며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바로 그런 목자들에게, 최고 최대의 희소식인 구주의 탄생 소식이 먼저 전해졌습니다. 세상의 지위 여하, 재산의 다소, 지식의 다소, 명성의 유무, 권세의 유무 등과는 별 상관이 없습니다.

천사는 목자들에게 전해 준 최고 최대의 희소식의 표적에 대해 일러주었습니다, 누가복음 2:12에,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인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라고 했습니다. 죄와 불신앙으로 멸망당해 마땅한 인류에게 주신 하나님의 가장 값진 선물이신 구주 예수님을 그 누구도 영접하지 않기 때문에, 구유에 누워 계시다는 것입니다. 구주 예수님이 하나님의 구원 약속을 따라 우리와 같은 사람의 모양으로 오셨는데, 하나님의 선민이라는 자부심을 가진 유대인들도 오신 아기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부르스 선교사는 아마존 오지의 고립된 모덜론 부족과 함께 살고 있었지만,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인간으로 오신 이유를 이해시킬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개미가 된 사람’이라는 그 부족의 전설을 들었습니다.

모덜론 부족의 어느 현명한 지도자가 길에 앉아 쉬고 있을 때, 개미들이 열심히 집을 짓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집을 잘못 짓고 있어서, “그렇게 짓지 말고 이렇게 해!”라고 충고했습니다. 그러자 개미들은 그 현자의 말을 이해하기는커녕, 놀라서 도망치기에 바빴습니다. 현자가 매우 안타까워하다가, 드디어 개미가 될 결심을 했습니다.

개미가 된 현자는 개미들과 말이 잘 통하게 되어 집짓는 것을 도와주고, 또 그 외의 일들을 합리적으로 도와주었습니다. 모든 개미들이 그 사람 개미를 따르고 존경하자 시샘하는 개미들이 죽이려고 해서, 어쩔 수 없이 그는 다시 사람이 되어야만 했습니다.

부르스 선교사는 이 전설을 가지고, 그 부족 사람들을 전도할 수 있었습니다.

천사의 전언이 끝나자마자 홀연히 허다한 천군이 그 천사와 함께 있어, 구유에 누우신 구주 예수님을 찬양했습니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바울 사도는 죄 아래 있는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성자 하나님으로서의 모든 영화와 영광을 버리고, 가난한 요셉과 마리아를 통해 구유에 인간으로 오신 구주 예수님에 대해 증언했습니다. 고린도후서 8:9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니라”라고 했습니다. 또, 고린도후서 9:15에 보면, “말할 수 없는 그의 은사를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하노라”라고 하는 바울 사도의 고백이 나옵니다. 우리를 영원히 부요케 하시려고 가난하게 되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서 우리도 감사에 넘쳐 주 예수 그리스도를 경배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일을 감당해야 할 것입니다.

3. 맺음말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자기를 비어 사람의 모양으로 오셔서 대속의 십자가를 지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신 구주 예수님의 겸허한 복종은, 하나님께는 더할 나위 없는 영광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구원의 뜻을 좇아 구주 예수님을 믿는 모든 사람들에게는 평화인 것입니다. 죄 사함으로 인한 하나님과의 평화요, 내적 평화요, 인간들과의 평화입니다.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이 모든 평화는, 하나님의 은혜로 성령을 좇아 오신 구주 예수님을 믿음으로만 가능한 것입니다. 이 놀랍기 그지없는 성탄 소식은, 사랑하는 마음과 진실한 마음과 충실한 마음으로 일하던 목자들에게 먼저 전해졌습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설교자의 newrema.com(T. 426-3051)의 저서 및 역서 : #신약 주석(마~계, 1-15권)/ Salvation Before Jesus Came/ 바울의 인간 이해/ 바울의 열세 서신/ 예수 탄생 이전의 구원/ 우린 신유의 도구/ 다수의 논문들/ 난해 성구 사전 I, II권/ 설교집 36권/ 기타 다수
#번역서 : 예수의 비유(W. Barclay 著)/ 야고보서(A. Barnes 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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