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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과 국가의 저주와 복

작성자
최세창
작성일
2018-11-19 15:22
조회
587
1. 시작하는 말

지성인이나 전문가나 대가들이 인간과 인간 세계에 대해 많은 명언을 했지만, 하나님의 말씀인 이사야 2:22에는, “너희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그의 호흡은 코에 있나니 수에 칠 가치가 어디 있느뇨”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사람과 일, 꿈과 환상, 사건과 자연 등을 통해 생사화복과 흥망성쇠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떠나, 유력한 인간이나 파벌이나 국가를 믿고 의지하는 저주의 길을 경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육이신 주 예수님을 제외한 사대 성인은 물론, 모든 인간의 공통적인 본질은 피조성과 의존성, 죄성과 이기성, 자율성과 가능성, 유한성과 불완전성, 나약성과 필멸성이므로 믿을 대상이 아니라 사랑할 대상입니다.

2. 개인과 국가의 저주와 복

남 왕국 유다의 예레미야는 제사장의 아들로 재산도 적지 않았으나, 주전 7세기경에 예루살렘에서 예언자로 일하면서 심한 핍박을 받았습니다. 국가적 위기에 하나님이 아닌 앗수르나 애굽을 믿는 왕과 위정자들과 백성들을 책망했기 때문입니다. 저주가 아닌 복을 받으라는 애국애족의 책망이었지만, 강국에 쏠린 그들은 깨닫기는커녕 심히 핍박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레미야 선지자는 회개하도록 개인과 국가의 저주에 대해 선포했습니다.
첫째, 사람을 믿으며 혈육을 그 권력으로 삼는 자는 저주받는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위기에는 더욱더 하나님을 믿어야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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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 앗수르나 애굽을 믿는 유다에게 주신 것입니다. 대표적인 사람은 여호야김 왕이었습니다. 앞장서서 하나님을 믿고 따라야 하는데, 앞장서서 애굽 왕 느고를 믿고 상전으로 섬기는 망발을 했습니다. 애굽 왕 느고가 누굽니까? 앗수르를 치려고 할 때에 앗수르 편을 드는 유다를 쳐서 무수한 살상을 하였고, 여호야김의 부친인 요시야 왕을 죽였고, 국민에 의해 왕이 된 지 석 달밖에 안 된 형제인 여호아하스를 폐위시켜 애굽으로 끌고 간 철천지원수입니다. 그런데 여호야김이 그 애굽 왕 느고를 믿는 것입니다. 왕으로 세워 준 것이 고마웠던 것 같습니다.
여호야김 왕은 장기 집권을 위해 애굽 왕 느고의 요구는 물론, 알아서 기느라 재물과 사람을 공물로 바쳤습니다. 그런 여호야김 왕과 왕비에게 빌붙어 세도를 부리는 벼슬아치들도 있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아부와 아첨에 능란하고, 뇌물 수수에 능숙하고, 강자에게는 비굴하고, 약자를 괴롭히는 것을 외교 수완이 좋은 줄 압니다. 개인이나 기업이나 국가나 외교가 중요하고, 정상회담도 중요하지만, 훨씬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6:33에,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라고 했습니다.
유력한 사람이나 유력한 당파나 파벌이나 외국에 빌붙어 세도를 부리는 것은 저주 받는 길입니다. 역사를 보면, 이런 죄악이 정치계와 법조계와 경제계와 교육계와 군대 등에 만연하여 저주받아 멸망한 국가가, 경제력과 군사력과 외교력 등의 국력이 약해서 망한 국가만큼이나 많습니다.
개인이나 국가나 위기에는 더욱더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간을 인간으로 아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사람은 아무리 실력이 뛰어나고, 돈이 많고, 힘이 세고, 권세가 막강해도, 세월이 갈수록 늙음과 질병과 죽음과 영원한 멸망에 대해 한탄밖에 할 수 없는 것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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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다. 시편 146:3 이하를 보면, “방백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 그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당일에 그 도모가 소멸하리로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유력한 사람을 믿고 의지하며 아부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어느 신학대학 이사장의 생일 축하 파티에 참석했던 교수님에게 들은 얘기입니다. 기도 순서를 맡은 어느 목사님이 기도를 하는데, 얼마나 장황하게 이사장을 칭찬하는 기도를 하는지 듣고 있을 수가 없을 정도였습니다. 온갖 아부와 아첨의 소리가 끝나자 모두가 “아멘!” 했는데, 갑자기 누군가가 “저런 기도는 하나님이 안 들으셔.”라고 했습니다. 모두가 킥킥거리며 웃는데, 또 누군가가 “사람도 안 들어.”라고 해서 삽시간에 웃음바다가 됐습니다.
목사나 교인이나 아부가 아닌 믿음의 행위가 몸에 배야 합니다.
둘째, 생각과 의지의 근원인 마음이 하나님에게서 떠난 사람은 저주받는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유력한 사람을 믿거나 권력으로 삼는바 자기 나름대로 생각하고 행동합니다. 독재자들처럼 생사화복의 주관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일은 말할 것도 없고, 자기의 인생조차도 마음대로 안 되는 것입니다. 마음이 하나님을 떠난 사람들의 성공과 출세의 결실이 마음대로 된 것 같지만, 실은 사단의 종노릇인 죄악의 축적이요 남의 피눈물의 축적이요 저주의 축적이지, 깨끗한 마음대로 된 것이 아닙니다. 그런 사람들보다 더 자괴지심과 양심의 가책과 속상함과 내적 갈등을 겪는 사람은 없습니다. 이런 고통을 못 느낀다면, 인간성이 완전히 상실되었거나 망가진 것입니다.
인간의 경이로운 성취인 지식과 첨단 과학이 인간을 창조주의 뜻에 맞게 성장하도록 기여하지 못하고, 비인간화를 촉진하거나 인간을 인생 무대에서 밀어 낸다면 복이 아닌 저주입니다. 그러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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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지성인과 과학자도 마음이 하나님을 떠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저주받는 길을 가는 인간의 결과는 사막의 떨기나무처럼 좋은 일의 오는 것을 보지 못하고, 광야 메마른 곳, 소금의 땅, 사람이 거하지 않는 땅에 거하는 것입니다. 회개의 절호의 기회입니다.
여호야김 왕은 예레미야의 설교를 듣기는커녕, 예언서를 불태웠고, 선지자들을 핍박하고 죽였고, 원수인 애굽 왕을 믿고 조공을 바치고, 전쟁으로 인한 경제 공황에도 과도한 세금을 걷고, 강제로 백성을 동원하여 시온산에 호화로운 외국식 궁전을 지었습니다. 국제 정세를 오판하여 애굽과 애굽보다 더 막강한 바벨론 사이에서 친애반바 외교를 하고, 애굽 왕의 신하 노릇을 하면서 불안한 부귀영화를 누리던 여호야김 왕의 말로가 어땠는지 압니까?
바벨론의 침략으로 북새통에 비참하게 죽었는데 묘지에 제대로 묻히지도 못했고, 18세인 왕자 여호야긴이 왕위를 이었으나 부친의 악행을 좇다가 석 달을 못 넘기고, 바벨론으로 끌려가 33년 동안이나 포로 생활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 외국식 궁전은 바벨론의 군대에 의해 잿더미가 되고 말았습니다. 애굽은 도움이 되기는커녕, 바벨론에게 패배했습니다.
하나님을 떠나 자기 위주와 자기 본위로 사는 자들이 잘나가다가 가는 곳도 끔찍하지만, 죽어서 가는 곳은 지옥입니다. 본받는 자손들까지 저주받게 됩니다. 여호야김 왕이 비참한 최후를 맞은 이유 중 하나가 열왕기하 23:37에 나옵니다. “그 열조의 모든 행한 일을 본받아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더라”
자녀를 위해서라도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개인과 국가의 저주에 대해 선포한 예레미야 선지자는, 개인과 국가의 복에 대해서도 선포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며 부탁하는 사람은 복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는 물가에 심긴 나무가 그 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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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를 강변에 뻗치고, 더위가 올지라도 두려워 아니하며, 그 잎이 청청하며,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아니함 같습니다. 생수의 근원이신 하나님께 뿌리를 내린 우리의 인생에도, 무더위와 가뭄 같은 난관이 있습니다. 그러나 난관 때문에 오히려 우리의 인생에 값진 열매를 맺게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돋보이는 것입니다. 또, 물가에 심긴 나무도 성장 과정을 거쳐 열매를 맺는 것처럼, 생수의 근원이신 하나님께 뿌리를 내린 우리의 모든 일에도 거쳐야 할 과정을 거쳐야만 많은 열매를 거두게 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4:16을 보면,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라고 했습니다.
79세이신 어느 교인의 글입니다. 김 권사님은 99세인 할머니이십니다. 가끔 교장으로 은퇴하신 따님이 모시고 와서 앞자리에 앉으시면 앞이 그득합니다. 체수가 크셔서가 아니라 분위기입니다.
예수님을 믿으신 것이 유별납니다. 일찍이 혼자 되셔서 다섯 자녀를 잠재워 놓고, 망연하여 한숨을 쉬고 있는데 선명하게 해가 보이고, 환청이 아닌 옆 사람의 말소리로 “딸아, 나는 예수인데 걱정마라. 내가 너를 도와주마.”라는 음성을 들었습니다. 들어 본 적이 없는 이름을 듣고, 수소문하여 다음날 가까운 교회의 목사님을 만나고 나서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다섯 자녀를 훌륭하게 키우신 여장부라는 칭송을 듣게 된 것입니다.

3. 맺음말

개인의 일이든지 직장 일이든지 나랏일이든지 간에, 잘난 줄 아는 자기 위주나 자기 본위의 처리를 하는 것은 잘되는 것 같으나 저주받는 길입니다. 생사화복과 흥망성쇠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것은 막연한 것 같으나 복을 받는 길입니다.
개인이나 국가나 복 중 복은 하나님의 성육이신 영생의 주님을 믿어 멸망의 심판을 받지 않는 것이고, 저주 중 저주는 영생 구원의 주님을 믿지 않아 멸망의 심판을 받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생수의 근원 되시는 하나님께 뿌리를 내려, 어떠한 난관에도 불구하고 때를 따라 잎이 무성하고, 꽃이 만발하고, 열매가 풍성한 인생과 모국이 되도록 기도하며 힘쓰시기 바랍니다.

설교의 성경 본문: 예레미야 17:5-8, 요한복음 3:18)

5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무릇 사람을 믿으며 혈육으로 그 권력을 삼고 마음이 여호와에게서 떠난 그 사람은 저주를 받을 것이라 6그는 사막의 떨기나무 같아서 좋은 일의 오는 것을 보지 못하고 광야 간조한 곳, 건건한 땅, 사람이 거하지 않는 땅에 거하리라 7그러나 무릇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 8그는 물가에 심기운 나무가 그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 더위가 올지라도 두려워 아니하며 그 잎이 청청하며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아니함 같으리라
18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필자의 newrema.com의 저서들: 신약 전체 주석/ 난해 성구 사전 I, II권/ 예수 탄생 이전의 구원/ Salvation Before Jesus Came/ 바울의 인간 이해/ 바울의 열세 서신/ 우린 신유의 도구/ 눈솔 인터넷 선교/ 영성의 나눔 1, 2, 3, 4권/ 영성을 위한 한 쪽/ 설교집 26권/ 눈솔 예화집 I, II. (편저)/ 웃기는 이야기(편저).// 다수의 논문들 HP 010 6889-3051



전체 2

  • 2018-11-19 23:41

    사람을 믿으며 혈육을 그 권력으로 삼는 자는 저주받는다는 것입니다
    말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 2018-11-20 11:34

      늘 필자의 글(설교와 주석과 짧은 글)을 애독하시며 공감하시고, 더욱 공감하시는 부분을 적시하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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