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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권하여 데려다 내 집을 채우라

작성자
최세창
작성일
2023-07-22 10:32
조회
502
<누가복음 14:15-24>

15함께 먹는 사람 중에 하나가 이 말을 듣고 이르되 무릇 하나님의 나라에서 떡을 먹는 자는 복되도다 하니 16이르시되 어떤 사람이 큰 잔치를 배설하고 많은 사람을 청하였더니 17잔치할 시간에 그 청하였던 자들에게 종을 보내어 가로되 오소서 모든 것이 준비되었나이다 하매 18다 일치하게 사양하여 하나는 가로되 나는 밭을 샀으매 불가불 나가 보아야 하겠으니 청컨대 나를 용서하도록 하라 하고 19또 하나는 가로되 나는 소 다섯 겨리를 샀으매 시험하러 가니 청컨대 나를 용서하도록 하라 하고 20또 하나는 가로되 나는 장가들었으니 그러므로 가지 못하겠노라 하는지라 21종이 돌아와 주인에게 그대로 고하니 이에 집주인이 노하여 그 종에게 이르되 빨리 시내와 거리와 골목으로 나가서 가난한 자들과 병신들과 소경들과 저는 자들을 데려 오라 하니라 22종이 가로되 주인이여 명하신 대로 하였으되 오히려 자리가 있나이다 23주인이 종에게 이르되 길과 산울가로 나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 24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전에 청하였던 그 사람은 하나도 내 잔치를 맛보지 못하리라 하였다 하시니라

1. 시작하는 말

지혜는 보다 더 중요하고, 보다 더 가치 있고, 보다 더 먼저 해야 할 일을 분별하여 행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은 불완전하고 유한하고 상대적인 존재이므로 보다 더 중요하고, 보다 더 가치 있고, 보다 더 먼저 할 일을 제대로 분별하지 못합니다. 야고보서 1:5을 보면,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라고 했습니다.

잔칫집에 가신 주 예수님이 청한 자에게, 갚을 것이 없는 가난한 사람들과 지체부자유자들을 청해야 의인들의 부활 때에 보상받으므로 복이 된다고 하셨습니다. 함께 먹는 어떤 사람이 듣고, “무릇 하나님의 나라에서 떡을 먹는 자는 복되도다”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주 예수님은 구원의 진리를 잔치 비유로 가르치셨습니다.

2. 잔치 비유로 가르치신 주 예수님

어떤 사람이 큰 잔치를 배설하고 많은 사람을 초청했는데, 막상 잔치할 시간이 되어 종을 보내자 초청받은 사람들이 거절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화가 난 주인이 시내의 거리와 골목, 그리고 길과 산울가로 나가서 아무나 데려오게 했다는 것입니다.

유대 지도자들이자 유대교 지도자들은, 우선적으로 하나님의 초청을 받아 구원의 잔치 자리에 들어간다고 확신했습니다. 그 증거로, 하나님께서 천사와 모세를 통해 주신 율법을 철저히 행하는 것을 내세웠습니다. 일반 유대인들도 율법 행위로 구원받는다고 믿고, 구원의 잔치 자리에 들어가려고 열심히 율법을 행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율법을 받지 못한 이방인들은 다 멸망당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방인이 구원받으려면, 유대교로 개종하되 할례까지 받는 의의 개종자가 되어 율법을 행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할례를 받지 않은 문의 개종자는, 유대교인으로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유대인들의 율법 행위는, 율법을 주신 하나님의 취지인 율법의 속뜻을 깨닫고 지키는 것이 아닙니다. 율법의 문자적이며 형식적인 의미를 지키는 것입니다. 이런 율법 준행도, 율법의 모든 계명을 죽을 때까지 하나도 안 어기고 다 지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문제는, 율법의 한 계명만 어겨도 율법 위반자인 것입니다.

문제가 또 있습니다. 살인은 안 했지만 증오한다면,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을 잘 지킨 것인가 하는 것과 적이 공격하는데 안식일이라고 방어하지 않는 것이 일하지 말라는 안식일 계명을 잘 지키는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율법의 계명을 문자대로 지켰다고 해도, 율법을 잘 지킨 것이라고 할 수 없는 경우가 있는 것입니다. 어떤 유대인들은 율법보다도, 조상들의 유전을 더 중히 여겨 지키느라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기도 했습니다.

주 예수님은 이 모든 유대인들에 대해, 먼저 초청받았지만 사양한 사람들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여기에 우리가 유의해야만 할 교훈이 있습니다. 주 예수님은 구원의 잔치 자리에 들어가는 방도는 율법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의 초청을 믿고 감사함으로 받아들이는 것임을 밝히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초청한 그들에게 하나님의 종인 선지자들을 보내어 오라고 하셨을 때, 그들은 하나같이 사양했습니다.

한 사람은 밭을 샀기 때문에, 불가불 나가 보아야 하니 용서해 달라고 했습니다. 으레 뭘 살 때에는 먼저 물건을 보게 마련이므로, 이 핑계는 부당한 것입니다. 설령 사실이라 하더라도, 밭을 구원의 은혜와 바꿀 수는 없는 것입니다. 구원의 부르심을 믿음으로 받아들였지만 아직 천국에는 들어간 것이 아닌데, 교인들 중에는 재물을 사랑하느라 천국 잔치에 불참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디모데전서 6:10을 보면,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라고 했습니다.

또 한 사람은 소 다섯 겨리를 샀기 때문에, 시험해야 하니 용서해 달라고 했습니다. 이 핑계도 사기 전에 시험해 볼 수도 있고, 또 잔치에 참석한 다음에 시험해도 되므로 합당하지 않습니다.

아무튼, 이 사람은 ‘겨리’가 두 마리의 소가 끄는 큰 쟁기를 뜻한다는 점으로 보아, 매우 넓은 농토를 가진 부자임을 알 수 있습니다. 어떤 교인들은 먹고 살 만큼 벌면, 하나님의 부르시는 음성에 얼마든지 순종하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재물이 늘면 늘수록, 구색을 맞추느라 그만큼 더 많은 것을 욕심내게 되는 것입니다. 전도서 5:10에, “은을 사랑하는 자는 은으로 만족함이 없고 풍부를 사랑하는 자는 소득으로 만족함이 없나니 이것도 헛되도다”라고 했습니다.

정말 비극인 것은 하나님의 음성을 외면하면서 많은 재물을 소유한다고 하더라도, 그 모든 재물은 반드시 떠나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잠언 23:5에 보면, “네가 어찌 허무한 것에 주목하겠느냐 정녕히 재물은 날개를 내어 하늘에 나는 독수리처럼 날아가리라”라고 했습니다. 죽음은 모든 소유와 결별하게 합니다.

또 한 사람은 장가들었기 때문에 가지 못하겠다고 했습니다. 유대인들은 결혼을 매우 중시하여, 장가든 사람에게는 전시라도 1년간 징집을 면제해 주었습니다. 그렇기는 하나, 초청 받았을 때에 사양할 수 있었고, 또 잔치가 오래 계속되는 것이 아니므로 이 핑계도 잘못된 것입니다.

이 신랑도 알아야 할 것은, 구원의 잔치에 초대하시는 절대자 하나님보다 아내를 더 사랑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0:37에,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라는 주 예수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아무리 가족이 소중해도, 창조주요 섭리자, 구원자요 심판자, 생사화복과 흥망성쇠의 주관자이신 절대자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가족 사랑은, 하나님 사랑의 일환이 되어야 합니다. 가족끼리 어떻게 사랑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당신을 사랑하는 것으로 여기실까 하는 생각을 해야 합니다.

오늘날에도 자기 위주, 자기 본위, 인간관계, 탐욕, 세상적인 것들을 핑계 삼아 하나님의 사랑의 음성을 외면하는 교인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지혜롭다고 자부할지 모르나, 어리석은 사람들입니다.

두 선교사의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동아프리카에서 선교하는 선교사들 사이에, 몇 가지 문제들로 심각한 분쟁이 발생했을 때였습니다. 그런 상황을 바라보던 현지의 교인들이, 분쟁하는 선교사들을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아주 도전적인 어조로, “우리는 당신들이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충격을 받은 선교사들이, “왜요?”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현지의 교인들이 말했습니다. “당신들은 예수님이 우리를 죄에서 구원해 주셨다는 사실을 말해 주려고 왔다고 하셨죠? 하지만, 예수님은 당신들을 구원해 주시지 않고 계시잖습니까? 당신들은 함께 사이좋게 살지 못하잖아요.”

선교사들의 분쟁은, 하나님의 초청에 응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구원의 잔치 자리보다 더 귀한 세상 것이 없음을 깨닫고, 무엇보다 먼저 하나님의 초청에 응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어떤 사람이든지 죄악의 수단과 방법을 쓰거나, 불법을 행하거나, 악법을 만들어 합법적으로 행하는 것은 하나님의 초청에 응하는 것이 아닙니다.

종에게서 “하나같이 거절했습니다.”라는 보고를 들은 주인 곧 하나님께서 노하여 종에게 명령을 내렸습니다. “빨리 시내의 거리와 골목으로 나가서 가난한 자들과 지체부자유자들을 데려 오라.”

종은 충실하게 명령을 복종하여, 많은 사람을 구원의 잔치 자리로 인도해 왔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빈자리가 남아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종은 명령에 복종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하나님께 보고하여 하나님의 처사를 기다렸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길과 산울가로 나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내 집을 채우라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전에 청하였던 그 사람은 하나도 내 잔치를 맛보지 못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인간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끈질기고도 놀라운 사랑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유대교의 배타성과 달리, 하나님께서는 주 예수님 안에서 각계각층의 모든 사람, 각양각색의 모든 인종을 구원의 잔치 자리에 초대하고 계십니다. 이 하나님의 초대를 가로막는 죄의 문제를 해결해 주신 분이, 주 예수님이십니다. 주 예수님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전하는 종의 사명을 죽기까지 감당하셨고, 또 우리에게 구원의 복음을 전하는 임무를 맡기셨습니다.

우리는 구원의 사랑보다 더 큰 사랑이 없고, 구원의 은혜보다 더 큰 은혜가 없는 것을 알고, “강권하여 내 집을 채우라.”라고 하시는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해야 합니다.

3. 맺음말

사랑하는 여러분! 세계사적인 업적을 남긴 바울 사도의 비결이 로마서 5:14에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바울 사도를 강권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바울로 하여금 복음 선교의 삶을 살게 한 것입니다.

세계는 물론, 우리 주변에는 반드시 떠날 수밖에 없는 세상적인 것들 때문에, 영생을 누릴 천국 잔치 자리를 마다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미 하나님의 은혜로 성령을 좇아 믿음으로 구원받았으면서도, 자기 위주와 자기 본위의 사고방식과 탐욕 때문에 영생을 누릴 천국 잔치 자리로 부르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외면하는 교인들도 있습니다. 우리 모두 두렵고 떨림으로 천국 잔치를 향하고, 모든 사람을 강권하여 하나님의 집을 채우시기 바랍니다.

(설교 동영상 : 유튜브)
설교자의 newrema.com(T. 426-3051)의 저서 및 역서 : #신약 주석(마~계, 1-15권)/ Salvation Before Jesus Came/ 바울의 인간 이해/ 바울의 열세 서신/ 예수 탄생 이전의 구원/ 우린 신유의 도구/ 다수의 논문들/ 난해 성구 사전 I, II권/ 설교집 36권/ 기타 다수
#번역서 : 예수의 비유(W. Barclay 著)/ 야고보서(A. Barnes 著)



전체 5

  • 2023-07-23 19:35

    강권하여 내 집을 채우라는 말씀은, 어느 종교인들이나 도덕가들나 법률가들나 사상가들이나 할 것 없이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구원의 잔치 자리에 참석하라는 초청을, 회개하고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 2023-07-25 12:45

      모든 사람을 강권하여 하나님의 집을 채우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하셨나요?
      그래서 채워졌나요?


      • 2023-07-25 19:25

        설교에 관심을 보여서 감사해요.


  • 2023-07-25 19:30

    죄송하지만 설교에 관심은 별로 없습니다
    그저 확인하고 싶었을 뿐입니다.

    설교는 삶이어야 한다는 소신은 있습니다


    • 2023-07-25 19:45

      설교들, 주석들, 성경 강해들, 강의한 내용들, 교계 신문들과 잡지들에 게재하거나 연재한 글들,
      방송 설교들, 방송 신학 특강들, 칼럼들, 대면 전도, 성령의 은사인 치유 기도, 페이스북, 유튜브,
      선교사님들 지원 등등으로 하나님의 초청에 응하도록 강권하기도 했는데, 얼마나 채워졌는지는
      모르겠네요. 주님이 아시겠지요.

      설교는 삶이어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요. 삶은 복음 선교의 삶이 되어야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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