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젖 이웃사촌
작성자
함창석
작성일
2023-09-19 17:52
조회
426
풋젖 이웃사촌
함창석
1950년대는 한국전쟁 끝이라
사는 것이 너무나 어려워
산모들도 제대로
먹을 수 없었다 하였습니다
그러하니 출산 후에도
젖이 흔할리가 없었기로
소자는 젖동냥을 다녔다고
할머니는 가끔 말씀하셨지요
첫째 아이로 태어났으니
더 젖이 부족하여
이웃사촌을 넘어서
풋젖사촌이 되었다고
우리 고향에는
유모와 같은 풋젖어머니
산소도 있습니다
선산 성묘를 할 때마다
들리곤 하는 산소입니다
레위도 제사장도 아닌
은혜와 자비를 베푼
사마리아인이 이웃이라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추석 명절이 옵니다
나누고 베푸는 이웃사촌들이
한가위 밝은 달이지요
함창석
1950년대는 한국전쟁 끝이라
사는 것이 너무나 어려워
산모들도 제대로
먹을 수 없었다 하였습니다
그러하니 출산 후에도
젖이 흔할리가 없었기로
소자는 젖동냥을 다녔다고
할머니는 가끔 말씀하셨지요
첫째 아이로 태어났으니
더 젖이 부족하여
이웃사촌을 넘어서
풋젖사촌이 되었다고
우리 고향에는
유모와 같은 풋젖어머니
산소도 있습니다
선산 성묘를 할 때마다
들리곤 하는 산소입니다
레위도 제사장도 아닌
은혜와 자비를 베푼
사마리아인이 이웃이라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추석 명절이 옵니다
나누고 베푸는 이웃사촌들이
한가위 밝은 달이지요
어머니의 젓도 부족했지만 거기에 늦봄에는 보릿고개까지 겪으셨었지요.
저는 보릿고개까지 겪은 기억은 없었습니다만 저의 아버지같이 전쟁세대분들은 보릿고개를 많이 경험하셨다고
이야기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