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것과 하나님의 것

작성자
원학수
작성일
2018-06-08 03:22
조회
616
신명기 30:15-20, 마태복음 22:15-22.


세상에 있는 것들의 주인을 밝혀낸다면 모두 하나님의 것이 분명합니다.
하나님의 것이 아닌 것은 한 가지도 없습니다.
공기, 물, 양식, 땔감, 옷, 집, 가구 등 우리 인간들이 필요로 하고 살아가는데 필요한 모든 것들은 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셨고 만드셨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하나님의 것으로 마음대로 사용하면서도 서로 자기가 소유주라고 우기니 문제입니다.
또 남이 가진 것들을 어떻게 하던지 자신의 소유로 만들려고 속이고 빼앗는 것입니다.
이런 인간들의 행위를 하나님께서 보실 때 얼마나 우스운 일이겠습니까?

어느 곳에 아이들이 싸우고 있었습니다.
이유인즉 한 아이는 길에서 돈지갑을 먼저 발견했으니 자기 것이라 하고 한 아이는 자기가 먼저 주웠으니 먼저 주운 것이 임자라고 싸우는 것입니다.
아이들은 이렇게 서로 자기가 가지겠다고 다투고 싸우다가 피투성이가 되었습니다.
그 때 그 소란을 보고 지갑 주인이 나타나 돈지갑을 빼앗아갔습니다.
그러자 싸우고 다투던 아이들은 계면쩍은 표정으로 자리를 뜨고 맙니다.

세상에는 자기 것이라고 주권행사를 하며 이렇게 다투고 싸우는 일들이 많습니다.
착각과 오류에 빠져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서로 자기의 소유로 만들려고 욕심을 버리지 않고 다투고 욕하며 싸웁니다.
그 같은 행위들은 하나님 앞에 참으로 어리석고 미련한 모습으로 밖에 보이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누구에게나 무엇이든지 마음대로 주실 수도 있고, 주셨던 것을 다른 사람에게 옮길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만물의 주인이시기 때문입니다.
욥은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니 내가 하나님께 찬양할 뿐입니다”고 고백했습니다.
엄격하게 따져서 영원히 한 사람의 것이라고 규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은 바리새인들의 사고방식대로 사람의 것과 하나님의 것을 구분하여 참 소유주의 모습을 생각해 보며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사람의 사람과 하나님의 사람이 있습니다.
본문에는 몇 종류의 사람들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① 바리새인들, ② 헤롯 당원들, ③ 예수님, ④ 가이사, 이렇게 4종류의 인물들입니다.
이들 중 하나님의 사람, 예수님을 제외하고는 모두 사람에 속한 사람들입니다.

바리새인들은 백성들의 지도자급에 속하는 랍비들로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스승의 자리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과 뜻을 자기들의 의도에 맞추어서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하고 가르치며 행동하는 무리들입니다.
자신들의 비위에 맞으면 지키고, 맞지 않으면 전혀 거역해 버리는 행동을 거침없이 저지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에게 “화 있을 진저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여.... 화 있을 진저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여......” 라고 저주를 퍼부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을 가장 잘 믿고 잘 섬긴다고 자화자찬을 하면서도 예수님이 보시기에 외식하고 위선을 보이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믿음을 가졌노라고 하면서도 삶의 태도가 하나님 뜻에 맞게 살지 않으면 하나님께 속한 사람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 다음으로 헤롯 당원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헤롯이라는 권세자에게 아첨하며 약한 서민들을 울리는 자들입니다.
로마 권력에 맹종하며 헤롯과 그 당에게 협조하는 여당인들 입니다.
애국심은 사라진지 오래고 로마 권력과 헤롯 왕조의 그늘 밑에서 만족해하는 매국노들입니다.
어떻게 보면 언제 누구에게나 주어진 권력에 따라 철새처럼 기회를 바꿔 적응하고 파충류들처럼 보호색을 바꾸며 살아가는 기회주의자들입니다.
이들은 입으로는 하나님을 찾으면서도 실제 행동은 세속적인 것에 더 깊은 관심을 가진 자들입니다.
이들은 미래를 위한 영혼의 문제보다 현실에 치우쳐 육신만 위해 세상권세를 쥔 가이사에게 치중하고 있는 것입니다.
땅에서는 가이사를 능가할 권세자가 없음으로 권세를 쥔 자에게 아첨하면서 하나님을 떠난 행동을 하는 헤롯 당원들은 사람에 속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권세 자들에게 매여있다고 해서 하나님께도 합당한 사람들일 수는 없습니다.
헤롯왕과 연합한 무리들처럼 권세 자들에게 결속되는 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세계를 지배하고 통치하고 점령한다고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것도 더더욱 아닙니다.
세계의 황제가 되고, 통치자가 된다고, 하나님과 새로운 관계를 맺는 것도 아닙니다.
이들은 사람에게 속한 자들입니다. 이들은 어떻게 하던지 예수님을 올무에 걸려고 결속하고 함께 와서 예수님을 시험하였습니다.

다음으로는 가이사가 있습니다.
당시 가이사의 권력은 세계를 지배하리 만큼 절대 권력을 소유했습니다.
온 세상은 이 가이사의 절대 권력 앞에서 절대복종을 하며 따를 권리밖에 없습니다.
마치 이 세상을 지배하는 신과 버금가는 자이기 때문입니다.
가이사의 명령 한 마디면 한 국가의 존폐가 좌우되었고 가이사의 명령 한 마디면 한 나라의 권력자도 파리목숨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유대의 총독 빌라도는 예수님을 심문하다가 죄가 없음을 알고 세 번씩이나 “나는 그에게서 죄를 발견하지 못하겠다”고 했으나 유대인들이 “당신이 만일 그를 십자가에 못박지 않으면 당신은 가이사의 충신이 아닙니다”라고 아우성 칠 때 빌라도는 예수님이 아무 죄도 없음을 인정하면서도 십자가에 못박도록 내어주고 자기는 대야에 물을 떠다 책임 회피의 손을 씻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무리가 “가이사의 충신이 아니라”고 한 말이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그 말은 유대인들이 가이사에게 가서 유대인의 총독을 다른 사람으로 바꿔달라고 탄원하겠다는 위협이기 때문입니다.
빌라도는 유대인의 총독이 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돈을 쓰고 총독자리를 차지했는데 말입니다.
만약 유대인의 총독자리를 잃으면 그것은 많은 돈을 손해보며 모처럼 잡은 절대 권력을 빼앗기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빌라도에게는 생각조차 하기도 싫은 일입니다.
그래서 빌라도는 유대인들의 비위를 맞추려고 죄 없는 예수님을 채찍으로 치고 유대인들에게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내어주면서 자신의 권력의 자리를 지키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가이사의 충신 빌라도가 불법재판으로 죄 없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처형하라고 내어주며 손이나 씻는다고 책임을 면했나요?
후세의 그리스도인들은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라고 신앙고백을 외치는 것입니다.

세 번째 나오는 사람은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독생자로 하나님과 본체시나 인류를 죄악에서 구원하시기 위하여 인간의 몸을 입고 낮고 천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것도 유대 땅에서 가장 작은 시골 베들레헴의 마구간에 태어나 말구유에 누우셨습니다.
세상에서 아무리 가난하고 천한 사람도 마구간에서 태어나고 말구유에 누울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떡집이라는 별명의 베들레헴에서 짐승이 거하는 마구간에 짐승의 밥그릇인 구유에 누웠으니 가장 낮고 천한 자리임을 상징합니다.
아기 예수님은 인류를 위한 생명의 떡으로 오셨음을 보여줍니다.
그뿐 아니라 인류를 위해 사랑과 자비와 궁휼을 베푸시고, 병든 자들을 치유해 주시고, 소외된 자들의 친구가 되어주시고, 고난받는 자들을 위해 위로자가 되어주셨으며 갇힌 자들에게 자유를 주셨고 눌린 자들에게 해방을 주셨습니다.
끝내는 자신의 몸을 십자가의 제물로 내어 주셨습니다.
이제 모든 인류는 그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받고 영생을 얻게됩니다.
예수님은 우리와 똑 같은 육신을 입으셨으나 천지와 만물을 지으신 삼위일체의 하나님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몸과 피를 온 인류를 위해 내어주신 하나님이십니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구원을 받고 영생을 얻는 것입니다.

2. 사람의 돈과 하나님의 돈입니다.
데나리온은 로마의 화폐입니다. 데나리온에는 가이사의 화상과 글이 새겨져있습니다.
한 데나리온은 남자장정이 하루를 일한 품삯에 해당하는 돈입니다.
당시는 로마의 지배하에 있었기 때문에 로마화폐가 통용되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 남자 12, 3세가 되면 성전 세를 의무적으로 내야 하는데 성전 세를 낼 때에는 로마화폐가 아닌 유대인의 화폐로 바꿔서 성전 세를 내었습니다.
“가이사에게 세를 바치는 것이 가하니이까? 불가하니이까?” 하는 질문은 그들의 신앙상태와 마음가짐을 보여줍니다.
그들은 가이사에게 맹종하는 자들로 고소할 근거를 찾으려고 악한 심보를 갖고 질문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신앙보다 가이사에게 더 큰 관심을 가진 그들의 심보를 증명하는 행동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마음속을 알면서도 “어찌하여 나를 시험하느냐?”고 되묻습니다.
그들의 마음과 신앙을 불꽃같은 눈으로 보셨습니다.
“세 돈을 내게 보이라 이 형상과 이 글이 뉘 것이냐?”고 묻습니다.
세상의 모든 돈은 사람의 화상과 글이 쓰여있습니다.
그러나 신앙인들은 그 돈으로 십일조와 감사와 연보 합니다.
예수님의 이런 질문은 그들의 양심을 들어보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세상권세 자보다 하나님을 더 의지하고 믿는 믿음 갖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그들의 생활과 마음가짐이 잘못된 상태에서 신앙적인 말이 나오기는 심히 어렵습니다.
“가이사의 것입니다” 얼마나 어리석은 대답입니까?
예수님이 몰라서 물으셨나요?
그들의 마음속을 몰라서 그 같은 대답을 기대하셨나요?
그들은 말만 하나님께 향했고 마음은 세상에 빠져있습니다.
그들의 신앙은 명분뿐이고 재물에만 마음을 두고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질문에 신앙적인 고백이 나왔어야합니다.
“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마음에서 나오나니 이것이야말로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적질과 거짓 증거와 훼방이니 이런 것들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요”(마 15:19-20).

돈의 화상과 글이 세상 것이라 해도 마음가짐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공경한다면 하나님께 드리는데 기쁘게 드려야 할 것입니다.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녹이 해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고 도적질하느니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 저기는 좀이나 동녹이 해하지 못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적질도 못하느니라 네 보물이 있는 곳에 네 마음도 있느니라”(마 6:19-21).
그러면 예수님이 사람의 돈과 하나님의 돈으로 구별하여 말씀하신 것은 무엇을 두고 하신 말씀입니까?
사람이 노력하고 수고하여 벌어들인 돈이 사람의 돈일까요?
아니면 사람의 화상과 글이 쓰였으니 사람의 돈이라는 말입니까?
돈은 같은 돈인데 가이사의 것과 사람의 것이란 무엇을 두고 하신 말씀입니까?
그것은 그들이 치부하려는 물욕으로 가득한 마음상태에서 “너희가 욕심 내 취하려는 돈은 사람의 돈” 이라고 한 말씀이 아닐까요?
사실 사람이 가진 것들 중에 하나님의 것이 아닌 것이 무엇입니까?
다만 인간이 잠시 맡아서 사용할 뿐입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잠깐 사용 할 뿐이지 영원히 사람의 것도 아닙니다.

보십시오!
우리가 가진 것들이 우리의 영원한 소유물입니까?
잘하면 몇 시간, 몇 일, 몇 년, 몇 십 년을 사용하지 못합니다.
아무리 귀하고 중하게 여겨도 자신이 알지 못하는 사이에 다른 사람에게로 넘어가고 사라집니다.
내게 소중한 물건이라고 무덤까지 가지고 갈 수 있나요?
아닙니다.
누구나 세상을 하직할 때에는 모두 다른 사람들의 것이 되고 맙니다.
하나님은 주셨다가 또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또 그가 마땅치 않으면 또 다른 사람에게 맡기십니다.
그러므로 세상물질에 너무 지나친 욕심 두지 말아야 합니다.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다 하나님의 것인 줄 알고 하나님 사업을 위해 쓴다는 생각을 갖는 것이 가장 현명한 지혜일 것입니다.

3. 사람의 말과 하나님의 말씀을 구분하여 봅니다.
사람은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말을 하고 살지만, 그 많은 말 중에 쓸만한 말을 얼마나 하고 사는지, 얼마나 유익한 말을 하고 있는지, 얼마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말을 하는지 생각해 봅시다.
사탄은 사탄의 말을 하고, 사람을 사람의 말을 하고, 하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하십니다.
그러나 사람의 입을 통해서 하는 말 가운데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말과 사탄을 기쁘게 하는 말이 있습니다.
사탄은 간교하게 사람의 입을 통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처럼 말하며 사람을 넘어뜨리려 합니다.
첫 번째 사람 하와를 넘어뜨릴 때에도 사탄은 그렇게 접근했고, 예수님을 넘어뜨리려 할 때도 그렇게 접근했습니다.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고 하시더냐?” 하더니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 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이 떡 덩이가 되게 하라”고 간사한 술책으로 예수님께 속삭였습니다.
하와는 넘어갔으나 예수님은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말씀으로만 살 것이니라”고 책망합니다.
그러나 사탄 마귀는 물러가지 않고 이번에는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 내려 천사들이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고 책망을 합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사탄이 자기에게 절을 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천하만국을 다 주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탄 마귀를 책망하여 쫓아버립니다.

이렇게 사탄마귀는 예수님을 넘어뜨리려고 간교한 수단과 방법을 다 부렸습니다.
“선생님이여 우리가 아노니 당신은 참되시고 참으로써 하나님의 도를 가르치시며 아무라도 꺼리는 일이 없으시니 이는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아니하심이니이다 그러면 당신의 생각에는 어떠한지 우리에게 이르소서 가이사에게 세를 바치는 것이 가하니이까? 불가하니이까?”
얼마나 간교한 사탄 마귀의 술책입니까?
만약 사람의 심중을 꿰뚫어 보지 못해 영안이 어둡다면 그 말의 유혹에 넘어가고 그 수단에 빠지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의 심중을 불꽃같은 눈으로 살피시고 마음 중심을 보시는 예수님은 그들을 이미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 그러면 너희가 가지고 있는 돈을 내게 보여라! 그 돈에 누구의 화상과 글이 쓰여져 있느냐?”
“예 가이사의 것입니다”
“그러면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쳐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사탄 마귀는 모든 말을 하나님을 빙자하여 넘어뜨리려고 미사여구를 부쳐서 접근합니다.
이들의 말은 하나님을 멀리 떠나 사탄에게 이롭게 하려는 계책입니다.
그렇게 말하는 이들은 그들 마음속에 사탄이 자리잡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의 입으로 나오는 말에 마귀의 계교가 스며 나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입으로 나오는 말로 마귀를 기쁘게 하지 않도록 주의를 하고 조심해야 합니다.
마귀는 “네 맘대로 말해. 네 맘대로 말해”하고 속삭이며 유혹합니다.
그것은 마귀가 자기 뜻대로 하여 사람을 넘어뜨리려고 하는 속삭임입니다.
그러므로 비록 그들의 말이 유창하고 비단같이 고와도 그 말 속에 담겨져 있는 내용을 잘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말과 마귀를 좋게 하는 말을 구분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정신차리고 있지 않으면 무의식중에 마귀의 올무에 걸리기 쉽습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려는 것 같지만 마귀가 기뻐하는 말을 하고 사람에게 덕이 되는 말을 하는 것 같은데 욕심에 치우친 말이 나오고 하나님을 거역하고 영광을 가리는 말을 합니다.
성경은 “사람이 말에 실수가 없을 수 없지만 그러나 그의 말로 범죄 하면 심판을 면하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야고보서 3:2-6,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 몸도 굴레 씌우리라 우리가 말을 순종케 하려고 그 입에 재갈 먹여 온 몸을 어거하며 또 배를 보라 그렇게 크고 광풍에 밀려가는 것들을 지극히 작은 키로 사공의 뜻대로 운전하나니 이와 같이 혀도 작은 지체로되 큰 것을 자랑하도다 보라 어떻게 작은 불이 어떻게 많은 나무를 태우는가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 몸을 더럽히고 생의 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 불에서 나느니라”
많이 알고 지식이 많나요?
지식과 지혜가 많아도 조심해야 합니다.
생각이 깊고 말을 잘하나요?
교만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람이 많은 말을 하고 많은 생각을 해도 자신이 생각지 못하는 순간에 사탄이 숨어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말에 실수가 없는 사람이면 온전한 사람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여러분!
말 잘하고 유능한 변호사라고 말에 실수가 없나요?
법원에서 법으로 죄인을 곧잘 바르게 판결하는 법관이라고 죄가 없나요?
널리 유명한 의사라고 병에 걸리지 않나요?
은혜로운 설교말씀 잘 전하고 유명하고 능력있는 목사라고 죄가 없나요?

아닙니다.
결코 아닙니다.
그들 모두 같은 인간이요 허물진 백성입니다.
다만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자신의 말에 책임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슨 말을 하든지 하나님 앞에서 하는 것 같이 조심해서 말한다면 실수가 적을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사람으로 알고 충성하며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은 다 하나님의 재물인줄로 알고 감사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는 태도와 삶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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