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월 청령포

작성자
함창석
작성일
2020-05-17 07:47
조회
324
청령포
淸泠浦

시인/ 함창석 장로

진한의 마지막 왕 태기의 전설이 어린 태기산에서 발원하는 주천강은 영월 서강의 지류이다.
태백 검룡소에서 발원하여 정선을 지나는 조양강은 영월에서는 동강으로 불리고
영월읍 덕포 합수머리에서 서강과 동강이 만나 남한강을 이루며 단양 충주호로 흘러가니...

청령포는 1971년 강원도기념물 제5호로 지정되었다가 2008년 명승 제50호로 변경되었다.
동ㆍ북ㆍ서쪽은 한강, 남한강 상류의 지류인 서강이 곡류하고 있고
남쪽은 층암절벽으로 막혀 있어 배로 강을 건너지 않으면 밖으로 나갈 수 없는 특수지형이다.

이곳은 1457년 세조에 의하여 노산군으로 강등된 단종이 유배되었던 곳으로
그 해 홍수로 서강이 범람해 처소를 영월 객사인 관풍헌으로 옮기기까지 머물렀던 곳인데...
5월 16일 아들 병원을 방문한 사돈들과 함께 들렸으니 배를 이용해야만 가능하다.

화강석 비좌 위에 올려 진 오석으로 된 비의 뒷면에 지명 청령포라고 쓰였으니
조선 영조 39년인 1763년 9월에 원주감영으로 하여금 쓰게 했다는 내용이 새겨져 있다.

600년이나 청령포를 지켜온 관음송이 아직도 높이 솟아 온갖 풍상을 말해주는 듯하다.
청령포 수림지로 불리는 소나무 숲이 울창하고 나무마다 관리번호가 붙어있다.
서강의 물이 맑아 예로부터 영월팔경의 하나로 손꼽히는 명소로서 잘 알려져 있다.

13살에 숙부인 세조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숲과 풀로 우거진 이 깊은 산중에서
밤이면 들려오는 짐승 울음소리에 얼마나 무서움과 두려움에 떨었을까?
남몰래 밤이면 엄홍도가 이곳을 찾아 문안을 드렸다 전해지고 있는 애절한 현장이다.

이주해 관풍헌에서 생활하던 어린 단종은 저녁노을이 물들 때면 홀로 자규루에 올라
부인 정순 왕후가 있는 한양을 바라보며 애절한 시를 읊었다고 한다.

자규시(子規詩 = 소쩍새 시)/ 단종(端宗)

一自寃禽出帝宮 (일자원금출제궁) : 한 마리 원통한 새 궁중을 쫓겨 나와

孤身隻影碧山中 (고신척영벽산중) : 외로운 몸 외짝 그림자 푸른 산중을 헤매니

假眠夜夜眠無假 (가면야야면무가) : 밤마다 잠을 청하나 잠은 이룰 수 없고

窮恨年年恨不窮 (궁한년년한불궁) : 해마다 한을 다하고자 하나 한은 끝이 없으니

聲斷曉岑殘月白 (성단효잠잔월백) : 소쩍새 소리도 끊긴 새벽 멧부리 달빛만 희고

血流春谷落花紅 (혈류춘곡낙화홍) : 피 뿌린 듯 봄 골짜기 떨어진 꽃이 붉고나

天聾尙未聞哀訴 (천롱상미문애소) : 하늘은 귀머거리라 슬픈 하소연 듣지 못하는데

何乃愁人耳獨聽 (하내수인이독청) : 어찌해서 수심 많은 내 귀만 홀로 듣느냐

어린 단종의 애처로움과 비통함이 절절히 묘사돼 있어 가슴을 숙연케 한다.

청령포는 좌청룡(左靑龍)으로 동쪽 푸른 임금을 상징하는 청룡포(靑龍浦)는 아니었을까?



전체 2

  • 2020-05-17 10:00

    그곳이 바로 제 성의 본향이자, 선조들의 터전이며 제 고향이기도 합니다. 귀향 온 단종과 생전에 교류하다가 수양대군이 그를 죽이자 묻어준게 저의 12대 할아버지이십니다. 혁명을 한 기세등등한 수양대군의 3대를 멸절한다는 무서운 협박에도 굴하지 않고요. 그 분의 의지 담긴 글이 남아 있는데, 바로 爲善被禍 吾所甘心 입니다.

    淸泠浦: 요즘 한자 독음으로는 청냉포라고 읽어야 합니다. 하지만 영월에서는 다들 청령포라고 부릅니다. 정확한 연유는 모르겠으나 아마 오래 전에는 현재와는 달리 이리한 듯 합니다. 청령포를 갈 때면 수양대군의 명으로 단종에게 사약을 바쳤던 금부도사 왕방연의 시를 떠올리곤 했었습니다.

    천만리 머나먼 길에 고은 님 여의옵고
    내 마음 둘 데 없어 냇가에 앉았으니
    저 물도 내 안과 같아서 울어 밤길 예놋다

    (천만리 머나먼 길에 고운 임을 이별하고
    내 마음 둘 데 없어 냇가에 앉았는데
    저 물도 내 마음 같아서 울며 밤길 가는구나)


  • 2020-05-18 06:32

    15살이면 이제 겨우 중학교 2학년 정도의 나이인데 일찍이 부모를 여의고 거기에다 자기의 부인인 정순왕후 송 씨와
    생이별한 어린 임금이 밤마다 얼마나 외로웠을까요.
    정권의 희생양이 된 어린 단종이 너무도 안타깝습니다.
    간혹 단종의 부친인 문종 임금이 한 5년만 더 살아계셨다면 이런 불행은 없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조회
78 김정효 2020.06.19 203
77 함창석 2020.06.18 165
76 최범순 2020.06.17 333
75 함창석 2020.06.17 147
74 김정효 2020.06.16 268
73 오세영 2020.06.15 287
72 현영선 2020.06.14 294
71 황성규 2020.06.12 183
70 윤법규 2020.06.11 294
69 김정효 2020.06.11 60
68 구경숙 2020.06.10 188
67 구경숙 2020.06.10 172
66 강병수 2020.06.10 181
65 이경남 2020.06.09 286
64 구인수 2020.06.08 2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