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특강 : 제 28 강

작성자
최세창
작성일
2007-01-22 00:00
조회
1085
풍성감리교회. 훼이스신학대학원 교수. 426-3051)
(저서:신약 주석 시리즈 완간/ 난해 성구 해설/ 형통의 기도/ 예수 탄생 이전의 구원:영문, 한글/ 설교집 17권)

진보와 보수를 망라하여 48권의 마가복음 주석서들을 대조 연구하며 집필한 필자의 \\'마가복음\\'(신약 주석 시리즈)을 매주 1회씩(주일저녁 또는 오후예배와 수요저녁예배)을 교인들에게 가르칠 수 있도록 매주 1회 가르칠 분량을 올릴 계획입니다. 여기에 예화나 실화를 첨가해서 사용하시면 더 유익할 것입니다. (아쉬운 점은 여기에 난하주나 헬라어나 문장 부호 등을 제대로 표기할 수 없는 것입니다.)

<<제 28 강>>

라. 은밀히 자라는 씨의 비유<4:26-29>

마가만이 기록하고 있는 이 비유는 다음의 비유와 한 쌍을 이루고 있다(W. Hendriksen, F. C. Grant). “이 두 비유가 제자들에게만이 아니라, 군중에게 가르치신 것이라는 사실은 33, 34절로 뒷받침된다. 즉, 마가는 여기서 주께서 배를 타시고 사람들에게 말씀하셨던 일반적 상황으로 돌린 것이다”(W. Hendriksen).

마태복음의 가라지 비유(13:24-30)를 이 비유의 변형으로 보는 학자들(E. Schweizer, “존슨”)이 있다. 용어에 유사한 것은 있으나, 이야기는 대부분 다르므로 다른 비유라고 보는 것이 옳다.

이 비유는 앞에 나온 씨 뿌리는 비유와 밀접한 관계가 있지만, 그 요지 및 강조점은 다르다. 이 비유는 하나님의 불가사의한 통치력을 강조하고 있다.

마가는 이 예수님의 비유를 【26】또 가라사대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이 씨를 땅에 뿌림과 같으니로 시작한다.

“이 매우 어려운 표현은 하나님의 나라가 인간에게 알려진 그 밖의 어떤 것과도 아주 다르다는 인식에 근거한 것이다”(E. Schweizer).

이 비유를 풍유(allegory)로 해석하여 씨는 복음의 교리로, 땅은 듣는 사람으로, 추수 때는 세상 끝이나 듣는 개인의 죽음으로 해석하는 학자(E. Bickersteth)가 있으나, 꼭 그렇게 해석할 필요가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점과 관련하여 그닐카(J. Gnilka, p. 233.)는 “이 비유는 풍유적으로 하나님의 말씀과 관련될 수 없다. 그리스도론적인 해석이나 신적인 해석을 하기 위해 씨 뿌리는 사람을 성급히 그리스도나 하나님으로 보는 것은 의문의 여지가 있다.”라고 하였다.

마가는 이 비유에서 하나님의 나라와의 관련성을, 씨 뿌리는 사람이나 씨만 아니라 사건 전체와 관련짓고 있다.

씨를 땅에 뿌린 후의 뿌린 사람과 뿌려진 씨의 관계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에 대해, 마가는 【27】저가 밤낮 자고 깨고 하는 중에 씨가 나서 자라되 그 어떻게 된 것을 알지 못하느니라라고 하였다.

밤낮 자고 깨고 하는 중에는 농부로서의 일상 생활을 하는 동안을 의미한다. 즉, 여기서는 경작 과정을 배제하는 것이 아니다(E. P. Go- uld, J. Gnilka, p. 235). 그러나, 씨에서 일어나는 일에 비하면, 별 의미가 없으므로 언급되지 않은 것이다.

농부는 씨에게 싹을 트게 할 수도 없고, 자라게 할 수도 없는 것은 물론, 심지어 그 과정을 이해하거나 알 수조차 없다. 이 점에 대해, 마가는 씨가 나서 자라되 그 어떻게 된 것을 알지 못하느니라라고 하였다. 이 현상은 어떤 현자도 충분히 설명할 수 없는 자연의 비밀이다. 우리가 알 수 있는 사실은 “씨에는 생명의 비밀이 있고, 그 속에는 성장의 비밀이 있다는 것이다”(W. Barclay).

씨의 성장 과정에 관한 예수님의 설명에 대해, 마가는 【28】땅이 스스로 열매를 맺되 처음에는 싹이요 다음에는 이삭이요 그 다음에는 이삭에 충실한 곡식이라라고 하였다.

땅을 환유법에 의해서 땅에 뿌려진 씨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기(W. Hendriksen) 보다는 “식물의 성장에 필요한 자양분과 그 밖의 요소들을 포함하고 있는 땅 그 자체로 보아야 할 것이다”(E. P. Gould).

스스로는 아위토마테(αὐτομάτη)이며 ‘자동적으로’, ‘그것 자체로’, ‘사람의 손에 의하지 않고’ 등을 의미한다.

결국 씨가 땅에 심겨져서 열매를 맺게 되는 것은 인간의 염려나 노력과는 전혀 상관없는 것이며, 오직 씨 자체의 생명력과 땅의 힘과의 협력, 즉 하나님에 의해 창조되어 지배받고 있는 자연의 힘 때문이다.

식물의 성장 단계는 매우 점진적이어서 지각되지 않는다. 우리는 다만 성장에 의해 변화된 상태만을 볼 수 있다. “여기서 강조되는 것은 성장의 필연적 확실성이다”(H. E. Luccock). 따라서, 우리에게는 인내가 요구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무슨 일을 하시든지 때에 맞추어 단계적으로 역사하신다. 하나님께서 주관하시는 인생사에도 반드시 때가 있고, 거쳐야 할 단계가 있다.

예수님과 함께 도래한 하나님의 나라 곧 하나님의 통치(1:15의 주석을 보라.)는, 그의 복음 선포를 통해 인간과 생활 속에 확장되어 가는 것이다. 이 확장은 말씀을 받아들인 인간에 의해서가 아니라, 말씀으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영 곧 성령에 의해서 이뤄지는 것이다(사 40:6-8, 벧전 1:24-25). 그러므로 이 나라의 완성의 때는 반드시 오고야 만다. 아무리 많은 방해와 거역이 있다 해도, 그 나라는 반드시 완성되고야 마는 것이다.

교인 각자의 신앙 성숙과 성장에 있어서도 다를 바 없다. 그 자신의 염려나 노력이 아니라, 그 심령 속에 받아들여진 말씀을 통한 성령의 역사에 의해 믿음이 단계적으로 자라는 것이다(롬 10:17, 고전 3:6-7). 성숙한 교인이란 말씀을 온전히 순종함으로써 하나님의 통치를 온전히 받아들이는 사람이다.

또한, 이 비유는 인간의 힘으로 하나님 나라를 성취하려고 하는 모든 시도, 즉 열심당에 의한 폭력 혁명, 묵시 문학가에 의한 종말의 때까지의 시간을 계산하여 준비하는 일, 바리새인들의 율법 준수 등에 대한 단호한 부정이기도 하다. 인간은 다만 천국을 확장해 나가시는 하나님의 도구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예수님의 비유의 결과에 대한 말씀에 대해, 마가는 【29】열매가 익으면 곧 낫을 대나니 이는 추수 때가 이르렀음이니라라고 하였다.

이 구절의 후반은 요엘 3:13을 인용한 것이다. 원래의 본문은 하나님의 최후 심판의 날을 기술한 것이다.

농사의 마지막은 추수하는 일이다. 열매가 익으면 농부는 즉시로 낫을 대어 거둬들인다. 그런데 여기서 추수하는 이는 하나님을 지시하므로, 그닐카(J. Gnilka, p. 234.)는 본절을 후대의 첨가로 본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알 수 없다.

아무튼, 하나님의 영원한 섭리 안에서 결정된 천국 완성의 때가 꼭 올 것이고, 그 시기가 되면 알곡은 거둬지고, 쭉정이와 가라지는 불살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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