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서드】시기질투(猜忌嫉妬)

작성자
함창석
작성일
2020-09-21 10:19
조회
707
시기질투
猜忌嫉妬

시인/ 함창석 장로

질투는 시기하고 증오하는 마음이다. 분쟁의 원인이 된다. 한편 이 표현이 하나님과 관련하여 사용되기도 하는데, 이 경우 택한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거룩한 열정, 열심’으로 해석할 수 있다. 남자(여자) 애인이나 남편(여편)이 다른 여자(남자)에게 관심을 보이거나 좋아하는 감정을 가지거나 할 때, 화를 내거나 싫어하거나 속상해 하는 것. 다소 예스러운 말이다. 아주 강한 샘인 것이다.

질투는 남을 부러워하는 감정, 또 그것이 고양된 격렬한 증오나 적의이다. 사랑의 한 형태로서 사랑하고 있는 상대가 자기 이외의 인물을 사랑하고 있을 때 일어나는 대인 감정 같은 것을 말한다. 그러나 사랑의 상대가 자기에게 무관심하고 공재 관계가 없을 경우에는 질투가 되지 않는다. 동기로는 직접적으로 성적 동기를 가진 성적 질투와, 일반적으로 사회적 친밀관계의 방해에 동기가 있는 비사회적 질투로 분류할 수 있다. 재산 · 명예 · 지위를 대상으로 하는 경우는 선망이라고 한다.

질투의 전형은 이미 유아기에 아우의 탄생, 아버지에 대한 어머니의 주의 · 시중 · 애무 등에 대해서 나타난다. 또 근거가 없이 이상하게 질투심을 가지는 경우는 질투망상이 된다. 이것은 사랑하고 있는 상대가 타인과 성적 관계나 애정관계를 가진다는 망상으로, 알코올중독, 기타 갖가지 정신병에서 볼 수 있는데, 이 가운데는 언제부터 그것이 발생하고, 또 언제부터 그런 생각을 가지게 되었는지를 이해할 수 없는 경우와, 오랫동안에 걸친 망상이 체계를 이루는 경우, 본래 질투심이 강한 성격이어서 뚜렷한 동기가 있을 때마다 일시적으로 생기는 경우 등이 있다.

질투하는 것은 경쟁자의 실제적 혹은 가정된 이득에 대한 부러움을 의미하며, 특히 대상의 사랑을 차지하는 것과 관련되어 있다. 질투는 종종 사랑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을 좋아한다는 의심을 수반한다. 질투는 오이디푸스 상황에 기인하고, 일차적 대상과 독점적인 관계를 맺으려는 소망이 나중에 삶 속에서 다른 대상에게로 옮겨진 것이다. 그것의 목적은 욕구 충족이나 관심만이 아니라 사랑을 얻는 것이다. 여기에는 또한 경쟁자를 제거하고자 하는 무의식적인 소망도 포함하게 된다.

클라인은 질투 또한 시기심에 바탕을 둔 감정이라고 보았다. 그러나 시기심과 달리 질투는 최소한 두 사람 이상이 관여한다. 질투는 죽음의 본능이나 시기심에서 보다 더 발전된 감정형태다. 시기심이 너무 지나치지 않을 경우, 질투 자체는 오이디푸스콤플렉스를 처리해 나가는 대응책이 될 수 있다. 원초적 대상(어머니와 젖가슴)에게 향했던 적개심(시기심) 대신 경쟁자인 아버지와 형제에게 질투심을 느끼게 되는데, 이는 아버지나 형제들이 좋은 어머니와 함께 있을 만하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한다는 뜻이 된다. 시기심은 좋은 것 자체의 가치를 인정하지 못하고 파괴하려고 하지만, 질투는 비록 고통스럽기는 해도 대상의 가치를 인정하고 더 긍정적인 관심으로 발전시키고자 하는 기제다. 따라서 질투는 어느 정도 시기심을 대신하고 대처해 나가는 수단이 될 수 있다. 힌셜우드에 따르면, 일차적으로 자기 파괴적인 죽음의 본능에서 생명의 원천인 대상을 파괴하려는 시기심으로 이동하고, 그다음 단계로 생명의 원천을 파괴하려는 것으로부터 경쟁자에게 공격성이 옮겨 가는 것이 질투라고 하였다. 그 후 사랑의 충동이 공격성의 충동을 점점 완화시키고 건강한 경쟁구도로 발전한다.

청 황제와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입지를 다지던 소현세자로 인해 인조는 왕위를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품었다. 명이 무너진 후, 인질생활을 끝내고 조선에 돌아온 소현세자는 독살의 의심이 있는 의문사를 당했고, 그의 가족들도 모두 누명을 쓰고 죽임을 당했다. 봉림대군이 세자가 되고, 소현세자의 가족들은 죽임을 당했다. 인조는 유능한 아들 소현세자를 질투했다. 청나라에서 소현세자의 입지는 굳건했다. 한 번은 인조가 몸이 안 좋아져서 세자가 일시적으로 귀국을 한 적이 있다. 이때 청태종은 세자를 위해 직접 연회를 열어주었다. 청태종이 세자를 얼마나 좋아하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런데 인조는 이 소식을 듣고 극심한 분노와 질투를 느꼈다고 한다. 자신에겐 무릎을 꿇게 한 청태종이 세자를 위해서는 송별연을 베푼 것에 화가 난 거다. 저라면 아들의 활약을 대견스러워했을 것 같은데…, 인조의 마음속에는 세자가 자신의 왕 자리를 뺏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의 싹이 스멀스멀 자라나고 있었다. 일종의 피해의식이 강한 질투로 나타난 것이라고 본다.

그리스 신화에서 질투를 부리는 것은 언제나 여자 쪽이다. 남자는 여자의 질투 때문에 화를 당하거나 시련을 당한다. 신화학자들에 의하면 헤라의 질투에는 가부장제의 음모가 숨어 있다. 펠라스고이라는 원주민이 살던 그리스 반도는 원래 여신과 여성 중심의 사회였다. 헤라는 그들이 최고로 모셨던 위대한 대지 모신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모든 신과 인간이 헤라 앞에 머리를 조아렸다.

기원전 2000년경부터 그리스 반도에 아카이아 인, 이오니아 인, 도리아 인 등 인도유럽어족이 이동해 온다. 그들의 최고신은 남신 제우스신이었다. 그들이 정복지를 효과적으로 다스리기 위해서는 원주민들의 최고신 헤라를 제우스에게 종속시키는 게 급선무였다. 그들은 헤라를 제우스와 결혼시키고 질투의 화신으로 만들었다. 그리스 신화 속 여자들이 질투의 주체가 된 것도 그 때문이다.

하지만 질투는 여자만 하는 것일까? 남자는 일방적으로 여자가 부리는 질투의 피해자일까? 앞서 언급했듯이 남자들이 벌이는 권력투쟁도 일종의 질투가 아닐까? 황금 손을 가진 미다스가 부린 탐욕도 일종의 질투가 아닐까? 남들보다 더 많은 힘과 돈을 가지려는 것은 분명 질투이기 때문이다. 질투는 여자뿐 아니라 남자의 기본 특성이기도 하다. 질투는 모든 인간의 본성이라는 말이다.

이 세상을 살면서 공동체의 구성원 간에 비교할 누군가가 없다면 질투는 없었을 것이다. 인간의 모든 욕망은 라이 벌에 의해, 라이 벌에 대한 질투에 의해 생겨난다. 권력욕과 탐욕, 이 모든 것의 시작은 질투이다. 그래서 질투는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망이고, 우리 모두를 움직이는 힘이다.

하나님 이외에는 다른 신의 숭배를 결코 용납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성품을 강조한 표현이다. 즉, 택한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뜨거운 열심과 순수한 사랑을 역설적으로 강조한 말이다. 물론 이는 하나님의 지극한 사랑의 표현이자, 전적인 헌신을 원하시는 하나님의 간절하신 마음의 표시이다.

모든 악독과 모든 기만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갓난아기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그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너희가 주의 인자하심을 맛보았으면 그리하라.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돌이신 예수께 나아가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벧전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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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9-19 16:30

    포도원

    시인/ 함창석 장로

    사랑하는 자에게 포도원이 있음이여 심히 기름 진 산이다.
    땅을 파내서 돌을 제하고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었다.
    그 중에 망대를 세웠고 또 그 안에 술틀을 팠다.
    좋은 포도 맺기 바랐더니 들 포도를 맺었다.
    예루살렘 주민과 유다 사람들아 구하노니
    이제 나와 포도원 사이에서 사리를 판단하라.
    포도원을 위해 행한 것 외 무엇을 더할 게 있으랴.
    좋은 포도 맺기를 기다렸거늘 들 포도를 맺음은 어쩜이냐.
    이제 포도원에 어떻게 행할지를 너희에게 이르리라.
    그 울타리를 걷어 먹힘을 당하게 할 것이며
    그 담을 헐어서 짓밟히게 할 것이요.
    내가 그것을 황폐하게 하리니
    다시는 가지를 자름이나
    북을 돋우지 못하여
    찔레와 가시가 날 것이며
    내가 또 하늘 높은 구름에게 명하여
    그 위에 비를 내리지 못하게 하리라 하셨으니
    무릇 만군의 주 여호와 하나님의 포도원은 이스라엘 족속.
    그가 기뻐하시는 나무는 유다 사람이라.
    그들에게 정의를 바라셨더니 도리어 포학함이요.
    그들에게 공의를 바라셨더니 도리어 큰 부르짖음이었도다.
    (이사야 5장a)


  • 2020-09-21 16:10

    위에 소현세자와 인조 얘기를 하셨는데 이들 부자가 갈라서게 된 이유는 삼전도에서의 치욕을 안겨준 청 나라에 대한 이들
    부자간의 시각차가 원인이 되어 소현세자 내외가 죽음을 당하기에 이르른 것이지요.
    그나 저나 선조가 광해군에 대한 질투가 있었고, 인조 또한 소현세자에 대한 질투가 있었는가 봅니다.
    이들 왕의 질투가 결국은 조선의 발전을 막고 조선을 더 낙후된 국가로 만든 건 아닌지 참으로 애석한 역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