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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한 계시록 연재 2회

작성자
최세창
작성일
2020-07-20 11:07
조회
562
Ⅱ. 저자

요한계시록의 저자는 여러 번(1:1-2, 4, 9, 22:8) 자신의 이름을 ‘요한’이라고 밝히고 있다. 특히, 1:1에는 하나님의 종 요한으로 되어 있고, 1:2에는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 곧 자기의 본 것을 다 증거하였느니라”라고 되어 있어서,1) 저자인 요한이 하나님의 말씀과 자신이 본바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를 문서로 다 증거한 교회 지도자임을 나타내고 있다. 또, 요한 자신은 “선지자들과 같은 종”(22:9)이라고 하였고, 또한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로서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의 증거를 인하여 밧모 섬에 있었다고 하였다(1:9).
이러한 점들과 저자인 요한이 밧모 섬에서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들에게 편지를 써 보낸 점을 미루어 그가 사도 시대의 인물로서 말과 글과 행동으로 복음 선교에 열정적이었고, 소아시아 교회들에게 잘 알려진 지도자임을 알 수 있다.
이 모든 것은 본서의 저자가 요한복음과 요한일서와 요한이서와 요한삼서의 저자인 세베대의 아들 사도 요한2)임을 시사해 준다. 교회 전승에 의하면, 본서는 사도 요한의 저작이다. 초대 교회 당시에는 본서가 사도 요한의 저작이라는 점에 대해 거의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그러나 “알로고이파의 가이우스(Gaius, c. 205)에서 시작된 반대설은 오리겐[Origen: 약 185-254]의 제자인 디오니시우스(Dionysius of Alex., c. 2503))에서 본격화하였다. 교회사가 유세비우스(Eusebius, c. 363), 예루살렘 감독 시릴(Cyril of Jeru., c. 386), 크리소스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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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석서와 주해서에서 인용할 경우에는 저자의 이름만 밝혔고, 같은 견해를 가진 학자들이 네 명 이하일 경우에는 본문의 괄호 속에 이름만 밝혔음.
1) T. Randell, p. ii. 하나님의 말씀을 다 증거했다고 한 점을 근거로 요한복음과 요한일서의 저자인 사도 요한과 동일시한다.
2) 필자의 요한복음과 요한일서와 요한이서와 요한삼서의 저자 문제를 다룬 부분을 보라.
3) A. Johnson, p. 404. 264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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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rysostom, 347-409), 콘스탄티노플 감독 데오도렛과 니스포러스(Theodoret, Nicephorus; 806-815) 등은 모두 회의적 내지 반대적 입장을 취했다. 근대와 와서 고등 비평학의 발달과 더불어 반대설이 거의 일반적 견해처럼 되었으나, 또다시 사도 요한의 저작권을 재고하는 경향이 일어나고 있다”(이상근).4)
본서가 사도 요한의 저작이 아니라고 하는 학자들5)의 견해는 다음과 같다.
(1) 요한일서와 요한복음은 저자가 익명으로 되어 있는데, 본서에는 저자의 이름을 밝히고 있다(Dionysius of Alex.).6) 또, 본서에는 저자가 자신의 직함을 밝히지 않았는데, 이는 저자가 12사도 중 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반증해 주는 것이다.7)
고대에는 저자의 이름을 명기하지 않거나 어떤 유명한 사람을 저자로 내세우는 경향이 있었던 점을 미루어 저자의 이름이 있거나 없는 것에 의해 저자가 같거나 다르다고 단정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필자는 이미 익명으로 되어 있는 요한복음과 요한 서신들의 저자가 동일한 사도 요한임을 밝힌 바 있다.8)
본서의 저자가 이름만 밝히고 직함을 밝히지 않은 것은 이름만 밝혀도 당시의 교회들이 알 만한 사람이기 때문에 사도라는 직함은 밝히지 않고, 그냥 “하나님의 종”(1:1) 또는 “선지자들과 같은 종”(22:9)이라고 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헨드릭슨(W. Hendriksen)은 “계시록의 저자가 요한이라고만 자칭(自稱)한 것은, 그가 생활했던 당시의 한 지역뿐만 아니라 아시아 전체의 모든 교회에 너무도 잘 알려져 있었기 때문임을 증명한다.······그렇게 잘 알려진 인물이 사도 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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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이상근, pp. 9-10.
5) “Erasmus, Zwingli” in W. Barclay, p. 1. “Moule, Ford” in W. Hendriksen, pp. 324-325. 김득중, 신약성서 개론(서울: 컨콜디아사, 2000, 11쇄.), p. 288. H. Kraft, p. 21.
6) in A. Johnson, p. 404.
7) in 강병도 편, p. 178.
8) 필자의 요한복음과 요한 서신들의 ‘저자’ 부분을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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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었음에 틀림없다는 결론이 정당하게 생각되지 않는가?”9)라고 하였다. 해리슨(E. F. Harrison)은 “저자의 사도직이 문제되지 않는다면 저자의 신분을 필연적으로 언급해야 할 뚜렷한 이유가 없다.”라고 하였다.
(2) 루터(M. Luther)는 계시록의 내용에 반발하여 그것은 사도가 쓴 것도 아니고, 예언서도 아니라고 선언하였다.10)
(3) 복음서와 요한일서에는 서로 유사한 점이 있으나 계시록에는 그런 점이 없다(Dionysius of Alex.).11)
(4) 본서와 요한복음 및 요한 서신들 사이에는 어휘와 문체의 차이가 뚜렷하고, 본서의 헬라어 문법이 변칙적이고 불완전하기 때문에, 동일한 저자의 저작들로 여길 수 없다(R. H. Charles, H. Kraft, 김득중).12) 그러나 같은 저자라고 해도, 주제와 동기와 의도와 목적과 내용 등이 다른 글을 쓸 때에는 어휘와 문체와 문법 사용에 어느 정도 차이가 있을 수 있다. 金喆孫 님은 “文體와 用語의 差異는 있을 수 있다. 이것은 時代와 環境에 따라서 變化를 가져올 수 있다.”13)라고 하였다.
로벝슨(A. T. Robertson)14)과 피에터즈(A. Pieters)15)는 요한이 복음서를 기록할 때에는 십중팔구 에베소 교회의 장로들이 그를 도왔으나, 그가 밧모 섬에 있을 때에는 협조자들이 없었기 때문에 계시록이 독특한 어법과 문체로 쓰여지게 된 것이라고 하였다. 김철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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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W. Hendriksen, p. 12.
10) in A. Johnson, p. 404.
11) 상동.
12) R. H. Charles, pp. xxix-xxxiii. H. Kraft, p. 20. 김득중, p. 288.
13) 金喆孫, 黙示錄(全景淵‧池東植‧金龍玉‧金喆孫, 新約聖書槪論. 서울:大韓基督敎書會, 1965. 4판.), p. 351.
14) A. T. Robertson, p. 274.
15) A. Pieters, The Lamb, the Woman, and Dragon, pp. 18 이하, in W. Hendriksen, p. 13, 주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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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은 “계시록에는 히브리어식 헬라어를 사용한 데가 많은데, 헬라어 문장법으로 보면 이상할지 모르나 저자의 의도적인 방법으로는 조금도 이상하지 않다. 그리고 계시록은 묵시 문학에 속하는 책이기 때문에, 다른 많은 묵시 문학 형식을 따르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저자 자신이 영적 체험을 하고 직접 본 환상은 기존 묵시 문학을 모델로 해서 서술했기 때문에 문학 형식에서나 표현 방식에서 차이가 있다. 특히, 이 책은 당시 소아시아 지역에서 선택된 일곱 교회로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기록한 것이기 때문에 다른 요한 문학과는 다를 수밖에 없다.”16)라고 하였다.
그러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문체와 어휘가 거의 흡사한 경우들도 발견된다. 해리슨(E. F. Harrison)은 “계시록과 요한복음 사이에 있는 확실한 유사점들은 비록 그 점들이 단지 그 복음의 요한 저작설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에 의해서만 중요하게 간주되어진다[된다]고 할지라도 심사 숙고해 볼 만한 가치가 있다.”17)라고 하였다.
① 말씀(Logos)이 인격적 의미로 사용된 경우는 요한계시록 19:13, 그리고 다른 곳에서는 요한복음 1:1, 14과 요한일서 1:1에만 나타난다.
② 예수님에 대한 칭호로서의 ‘어린양’은 요한계시록(5:6, 13:8)과 요한복음 1:29, 36 등에 28회쯤 나타난다.
③ 예수라는 이름을 관사 없이 사용하는 경향이 두 책에서 보편적이다.
④ 증거(동사와 명사로)라는 말이 빈번히 나타난다.
⑤ ‘진실한’(ἀληθινος)이란 단어가 요한복음에서 13회 발견되고, 요한계시록에서 10회 발견되는데 신약성서 중 요한의 저서가 아닌 다른 책에서는 다만 5회 나타날 뿐이다.
⑥ ‘정복하다’(혹은 압도하다)라는 말은 요한계시록에서 16회, 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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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김철손, 요한계시록, pp. 25-26.
17) E. F. Harrison, 新約槪論, 정성구 譯(서울: 세종문화사, 1986), pp. 503-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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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 16:33에서 1회, 뿐만 아니라 요한일서에서 6회 나타나는데, 신약성경의 다른 책에서는 단지 3회밖에 안 나타난다.
⑦ ‘거하다’라는 말(글자대로는 ‘장막’)은 요한계시록에서 4회, 그리고 요한복음 1:14에서만 유일하게 나타난다.
⑧ ‘생수의 샘’ 혹은 그와 동등한 표현은 오직 요한계시록 (7:17, 21:6)과 요한복음에서만(4:14, 7:38) 나타난다.
⑨ 이스라엘의 버림받은 왕을 찌름에 관한 스가랴 12:10의 예언은 요한계시록 1:7과 요한복음 19:37에 인용되었다. 두 구절에서 동일한 ‘찌르다’라는 단어가 사용되었다. 이 단어는 칠십인역의 스가랴 성경에서는 발견되지 않는다.
⑩ 요한계시록과 요한복음 사이에는 단어만으로 규정되는 일치점뿐만 아니라, 사상의 범위에 있어서도 일치점이 있다. 요한계시록의 짜임새는 요한복음서와 밀접한 유사점을 보여 주고 있다. 웨스트코트(Westcott)는 “두 책의 중심 사상이 동일하다. 쌍방은 선악의 세력 사이의 큰 갈등을 나타내 보여 준다. 이것이 복음서에서는 주로 도덕적인 개념으로 묘사되었고, 계시록에서는 주로 상징과 환상으로 묘사되었다. 복음서에서는 반대 세력들이 추상적이고 절대적인 형식으로 취급되어 빛과 어두움, 사랑과 미움이 나타나고, 계시록에서는 구체적이고 한정적인 형식으로 하나님, 악마와 싸우는 그리스도와 교회, 거짓 선지자와 짐승이 나타난다. 역사와 환상이 향하는 종국으로서의 종말은 그리스도의 승리가 있게 된다.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은 승리의 근거가 되고, 이 승리는 외면적으로는 실패하는 것처럼 보인다.”18)라고 하였다.
이 외에도 유사하거나 같은 점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목자’로 표현한 것(7:17, 요 10:11)과 사단의 활동을 강조한 것(2:10, 12:9, 20:2, 7, 10, 요 8:44, 13:2, 27, 14:30)과 새 예루살렘의 신비 사상(21:22, 요 4:21)과 예수 그리스도의 선재성을 인정한 점(2:10, 12:9, 20:2, 7, 10, 요 8:44, 13:2, 27, 14:30) 등을 더 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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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B. E. Westcott, The Gospel According to St. John, pp. lxxxiv-lxxxv, in E. F. Harrison, Ibid., p. 505.

출처: 최세창, 요한계시록(서울: 글벗사, 2005, 1판 1쇄), pp. 27-31.

필자의 사이트 newrema.com(T. 426-3051)의 저서: 신약 주석(마~계, 1-15권)/ 설교집 28권/ Salvation Before Jesus Came/ 예수 탄생 이전의 구원/ 난해 성구 사전 I, II권/ 바울의 인간 이해/ 바울의 열세 서신/ 다수의 논문들/ 우린 신유의 도구/ 눈솔 인터넷 선교/ 영성의 나눔 1, 2, 3, 4권/ 영성을 위한 한 쪽/ 눈솔 예화집 I, II. (편저)/ 웃기는 이야기(편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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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3

  • 2020-07-20 13:29

    요한이라는 이름은 히브리의 전통적인 이름이 아니고, 또한 그 시대 로마나 희랍의 어원도 아니라고 들었습니다. 이 이름은 세례 요한을 위해 천사에 의해 계시되었습니다.

    (눅 1:13) 천사가 그에게 이르되 사가랴여 무서워하지 말라 너의 간구함이 들린지라 네 아내 엘리사벳이 네게 아들을 낳아 주리니 그 이름을 요한이라 하라 (눅 1:60) 그 어머니가 대답하여 이르되 아니라 요한이라 할 것이라 하매 (61) 그들이 이르되 네 친족 중에 이 이름으로 이름한 이가 없다 하고

    존 웨슬리, 존 켈빈 .... 기독교 역사에는 휼륭한 John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 2020-07-20 13:47

      필자의 요한 계시록 연재 2회에 관심을 보이시고, 관련하여 의견을 표하셔서 감사합니다.


  • 2020-07-20 14:22

    인간의 문서, 특히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의 각 저자들이 누구인가 하는 연구는 매우 중요하다.

    # 같은 말이 누가 한 것인가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가 된다. 예를 들면, 바울이 말하기를, "인생은 재미있다."라고 하는 문장과 바람둥이가 말하기를, "인생은 재미있다."라고 하는 문장은 부호까지 똑같지만, 요지가 영적 기쁨과 죄악의 기쁨, 하나님에 의한 즐거움과 사단에 의한 즐거움이 된다. "통일을 원한다."라는 말도 자유민주국가인 대한민국 시민이 한 것인가, 북한 공산주의자가 한 것인가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

    # 어떤 가정과 어떤 사람에게서 무슨 영향을 받으면서 성장했으며, 어떤 신앙관과 신학을 가진 사람이 저자인가를 알아야 그의 문서나 성경의 의미를 제대로 알 수 있다.

    # 동시대의 정치, 경제, 사회, 종교, 문화, 관습 등등을 알아야 저자의 문서나, 성경의 의미를 아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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